예전에 형제, 자매 이름이 ‘여진, 여선, 여미’ ‘일우, 이우, 삼우… 칠우’ 이렇게 가는 이름들을 보고 참 무성의하게 지었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 이름을 지으려고 보니 그렇게 지은 데도 어른들 나름의 철학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름들은 기본적으로 항렬자를 따름으로써 형제라는 일관성과 순서는 남기되, 부모의 의지를 이름에 부여하는 것을 최소화한 것이다. 그리고 ‘일, 이, 삼, 사…’로 나가는 이름을 가진 집의 경우 금기시되어 있는 ‘사우’ 대신에 ‘성우’를 쓰고, 소 키우는 집이라 그런지 몰라도 ‘육우’ 대신에 ‘영우’라는 이름을 쓴 것을 보고,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은 원칙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의 이름은 이름을 짓는 사람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평생 가져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부여한 특별한 의미나 상징성이 강한 이름보다는 부르기 좋고, 어감이 좋은 것이 좋다. 그리고 튀는 이름으로 살아 본 사람은 너무 흔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익명성이 있는 이름이 좋은 이름의 조건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싶다면 그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할 일이 아니라 자식이 스스로 가명을 쓰든지, 개명을 하면 되는 일이다.
사물이나 지명에 이름을 붙일 때는 사람 이름을 붙이는 것과는 달라서 이름의 의미와 상징성이 중요시된다. 경산에는 ‘일연로’가 있는데, 길 이름을 그렇게 붙인 이유는 삼국유사를 쓴 일연의 고향이 경산이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대구나 안동의 길에 붙일 수도 있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어색한 이름이 된다.
광주에 새로 짓는 야구장의 명칭을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로 결정하면서 이에 대해 어색하다는 말이 많다. 자꾸 쓰다 보면 익숙해질 수도 있겠지만 두드러지게 보이는 ‘챔피언스’가 광주라는 지역이나 스폰서 비용을 내는 기업과 동떨어지면서 마치 시골 읍내에 있는 ‘서울 슈퍼’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챔피언스’라는 말이 이미 의미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새 구장이라는 뜻)나 보스턴의 펜웨이파크(펜웨이 지역의 구장이라는 뜻)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차라리 ‘K 필드’라고 하는 것이 더 지역을 대표할 수 있을 것 같다.)
대구도 이제 새 야구장의 이름을 지어야 하는 때가 왔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구단주 이름, 구단 이름, 지역의 명물, 스폰서 기업 이름이나 브랜드 등을 따서 짓는 경우가 많다. 대구 구장도 현실적으로 구장 건설 비용을 시에서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구장의 명칭을 스폰서 기업에 일임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가장 유력한 후보가 ‘대구 삼성 구장’ ‘대구 갤럭시 파크’ ‘대구 호암 구장’ 정도가 된다. 그렇지만 광주처럼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말고 기업과 지역이 함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이름에 대해 보다 길게 여론을 수렴해 보았으면 한다.
민송기<능인고 교사·chamtc@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