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체가 인류학자를 채용한 까닭
통섭은 세계 학계·산업계의 주요 화두다.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융합해 여태껏 볼 수 없던 창조적 결과물을 내놓는 일이다. 황창규 국가R&D(연구개발)전략기획단장은 “스마트 혁명으로 세계 산업계가 전례 없는 변곡점을 맞은 이때, 통섭형 인재는 기업과 사회에 가장 절실한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크리스텐센 교수의 말처럼 “정보기술(IT)이 득세한 뒤에는 융·복합 기술이 답”이며 “애플의 혁신 제품들은 통섭형 R&D의 전범”이라는 것이다.
실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지난 1월 태블릿PC인 아이패드 출시 발표장에서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애플이 있다. 세계 유수의 IT 업체들이 기술을 앞세워 경쟁하지만 이를 압도할 힘은 인문학에서 나온다”고 역설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인텔이 미국 본사에 인류학자가 이끄는 상호작용·경험연구소를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디자인의 심장’으로 불리는 미국 디자인 업체 아이디오(IDIO) 사무실엔 명문대 MBA(경영학 석사) 출신은 물론 다양한 분야 예술가와 군인 출신, 언어학자, 역사학자, 골동품 자동차 매니어가 북적거린다.
‘통섭’ 개념을 국내에 도입해 전파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통섭 능력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균수명이 80대 이상을 바라보는 고령화 시대에 한 가지 일밖에 할 수 없다는 건 불행이기 때문이다.
통섭 인재 공통점은 ‘꿈과 재미·실행력’
통섭형 인재를 기르고 잘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박학다식이 곧 통섭은 아니다. 소설가이자 콘텐트 융합 전문가인 김탁환씨는 “10대, 20대 연령 때 다양한 융합 시도가 놀라운 성과로 이어지는 경험을 자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학점·학벌 위주의 교육이 득세한 우리나라에선 통섭 재능을 지닌 이들이 외려 쓴맛을 더 볼 수 있다. 골고루 잘해야 하는 대학입시 관문이 쉽지 않다.
추천받은 7인을 개별적으로 장시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결과 공통점이 많았다. 우선 자신의 재능과 흥미 대상을 일찌감치 발견해 10대에 이미 특정 분야에서 준전문가급의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의사·프로그래머이자 작가인 관동대 정지훈(의학) 교수는 열두 살 때 동네 백화점에서 본 애플2 컴퓨터에 빠져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의 신훈 부장은 고교 시절부터 아마추어 만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이들은 전공을 택할 때도 ‘재미’를 우선했다. 대학 생활 중엔 선후배와 은사는 물론 사회 각계 ‘선수’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변화에 적응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키웠다. 새로운 게 나오면 일단 덤벼들고 봤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이성식 디자인그룹 파트장은 “영상 제작이든, 그래픽 디자인이든 참신하다 싶으면 독학을 해서라도 즉각 현장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통념을 거스르는 것은 모두의 전매특허. 포스코의 김지용 소재사업실장은 “포스코가 처음으로 박사 출신 공장장을 구한다기에 미국의 꽤 안정적인 일을 뒤로 하고 귀국했다”고 말했다.
이나리 기자
유명인보다 현장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인재 선정
통섭형 인재 7명 어떻게 뽑았나
‘통섭 에너지’를 왕성하게 분출하는 인재를 찾기 위해 다양한 업종의 경륜 있는 경영자와 융합·인력개발 전문가 등 7명의 추천을 받았다. 강우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을 비롯해 김상영 포스코 부사장, 김탁환 소설가 겸 융합 콘텐트 전문가, 나성찬 엔씨소프트 OU본부장, 원광연 KAIST 문화기술대학원장, 이원진 구글코리아 대표, 장동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디자인그룹장이 도움을 주었다. 본인이 몸담은 기업이나 학계에서 남다른 접근방식과 혁신적 발상으로 도드라진 성과를 거둔 이들을 우선 추천했다.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창업자처럼 이미 대중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인물보다, 각 분야 현장에서 창의적인 활동으로 통섭적 사고의 확산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기여하는 이들 7명을 엄선했다.
통념 깨는 진로 선택 … 10대에 이미 전문가 뺨쳐
미국 스탠퍼드대 컴퓨터음악·음향학연구소장인 거 왕(32) 교수. 최근 1년간 애플 신제품 출시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이하 앱) 개발자로 유명하다. 세계 최초의 랩톱(노트북) 오케스트라, 모바일 오케스트라의 창안자이기도 하다. 컴퓨터공학 박사 출신의 음악대 교수, 교육자이자 벤처 창업가, 프로그래머 겸 기타리스트인 그는 이른바 ‘통섭형 인재’의 전형이다. 우리나라에도 왕 교수처럼 분야와 경계를 허무는 이들이 곳곳에 존재하지 않을까. 각 분야 전문가들이 추천한 국내 ‘통섭형 인재’ 7명을 심층 인터뷰해 그들의 공통분모를 헤아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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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찾은 재능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여운승 교수는 중1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중3 때 베이스기타를 처음 접했다. 공부보다 프로그램 짜고 새 연주법을 익히는 데 몰입했다. 고2 때는 학교 밴드에 들어갔다. 선배들이 ‘프로 무대에 데뷔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관동대 의과대 정지훈 IT융합연구소장은 초등학교 6년 때 당시 살던 서울 목동의 한 백화점에서 PC라는 것을 처음 봤다. 이에 금세 매료된 그는 프로그래밍을 배우겠다고 미국·일본 잡지를 뒤졌다. “게임을 만들고 싶었지만 집에 PC가 없어 종이에 연필로 코드를 써가며 밤새 골몰했어요.” 겁도 없이 게임 제작에 매달린 그는 PC를 처음 접한 석 달여 만에 첫 ‘작품’을 완성했다. 중학생 땐 당시 막 선뵌 컴퓨터 전문지에 기고하는 수준이 됐다. 그 또한 여 교수처럼 고교 때 밴드 활동을 했다. 무협지도 섭렵했다. 그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도 모르는 새 기술과 예술·스토리텔링을 융합하는 능력을 키웠다. 그는 특히 “주어진 길에 안주하기보다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도전할 줄 아는 자유정신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수확이었다”고 말했다.
#‘재미’와 ‘소통’에 몰입
도시환경연구센터 전영옥 소장은 학창 시절 빼어난 미술 실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몰입한 것은 역사 과목이었다. 망설임 없이 예술사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실제로 손에 만져지는 걸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더라”고 했다.
미술·역사 모두 좋아 예술사학과 진학
마음이 이끄는 대로 조경학·건축학·도시계획학 등으로 관심을 넓혔다. 그는 “동서양 도시문화에 대한 역사적 지식, 조형 감각, 실제적인 것에 대한 욕망이 합쳐져 오늘의 내가 됐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김지용 소재사업실장은 “대학 시절 솔직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각종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며 ‘사람 공부’에 몰두했다. 이는 훗날 그가 포스코 최초의 박사 출신 공장장으로서 현장 직원들과 단시일에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생각보다 행동, 안정보다 변화
삼성전자 이성식 파트장은 대학 졸업 때 친구들과 시집을 냈다. 직접 쓴 시와 그림을 담아 전문 인쇄소에서 정식으로 만든 책이었다. 그의 ‘남다른 짓’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언젠가 필요하리라 믿어 대학 시절부터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 미디어 아트, 그래픽 디자인 등 새로운 것이 나오면 무조건 배우고 봤다. 그는 “새 거다, 이걸 해야 앞서갈 수 있겠다 생각하면 돈·시간 같은 건 따지지 않고 일단 뛰어들었다”고 했다. 디자인사무소 창업도, 대학 강의도 그렇게 시작했다. 국민대를 거쳐 연세대 교수로 자리 잡은 뒤에도 변화를 향한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그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삼성맨으로 변신해 휴대전화 ‘사용자 경험(UX)’이란 새 세계에 뛰어든 이유다.
엔씨소프트 신훈 팀장은 대학 1학년 때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다. 몇몇 친구와 일본 게임을 ‘베끼는’ 수준에서 시작해 난이도를 높여갔다. 애초 디자이너로 시작했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아트 디렉터, 게임 기획을 거쳐 전체 과정을 총괄하는 프로듀서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요구르팅’ ‘샤이닝로어’ 등 히트작을 내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게임 개발자 중 한 명으로 자리를 굳혔다. 고교 시절 시작한 만화 작업도 계속해 한국출판만화대상 신인상까지 수상했다.
#자녀에게 믿고 맡겨준 부모의 힘
7명은 나이도 전공도 직업도 다 다르다. 성장기 가정 형편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키운 부모의 양육 방식엔 공통점이 있었다. 자녀의 판단을 믿고 존중하는 태도였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기타 연주, 컴퓨터 프로그래밍, 만화 그리기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존중했다. 그런 부모가 있었기에 이들 7인은 삶을 풍요롭게 한 통섭적 사고와 체험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
이나리 기자
◆통섭(統攝, Consilience) =‘큰 줄기를 잡다, 모든 것을 다스린다, 총괄하여 관할하다’라는 뜻이다. 학문에선 ‘지식의 통합’의 개념으로, 특히 서구 르네상스 시대 이후 거리감이 있던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려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최근에는 학문 세계뿐 아니라 산업현장·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가치 있는 것들을 결합해 새롭고 창조적인 것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흔히 쓰인다. 단순히 지식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섞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일찍 찾은 재능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여운승 교수는 중1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중3 때 베이스기타를 처음 접했다. 공부보다 프로그램 짜고 새 연주법을 익히는 데 몰입했다. 고2 때는 학교 밴드에 들어갔다. 선배들이 ‘프로 무대에 데뷔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관동대 의과대 정지훈 IT융합연구소장은 초등학교 6년 때 당시 살던 서울 목동의 한 백화점에서 PC라는 것을 처음 봤다. 이에 금세 매료된 그는 프로그래밍을 배우겠다고 미국·일본 잡지를 뒤졌다. “게임을 만들고 싶었지만 집에 PC가 없어 종이에 연필로 코드를 써가며 밤새 골몰했어요.” 겁도 없이 게임 제작에 매달린 그는 PC를 처음 접한 석 달여 만에 첫 ‘작품’을 완성했다. 중학생 땐 당시 막 선뵌 컴퓨터 전문지에 기고하는 수준이 됐다. 그 또한 여 교수처럼 고교 때 밴드 활동을 했다. 무협지도 섭렵했다. 그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도 모르는 새 기술과 예술·스토리텔링을 융합하는 능력을 키웠다. 그는 특히 “주어진 길에 안주하기보다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도전할 줄 아는 자유정신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수확이었다”고 말했다.
#‘재미’와 ‘소통’에 몰입
도시환경연구센터 전영옥 소장은 학창 시절 빼어난 미술 실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몰입한 것은 역사 과목이었다. 망설임 없이 예술사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실제로 손에 만져지는 걸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더라”고 했다.
미술·역사 모두 좋아 예술사학과 진학
마음이 이끄는 대로 조경학·건축학·도시계획학 등으로 관심을 넓혔다. 그는 “동서양 도시문화에 대한 역사적 지식, 조형 감각, 실제적인 것에 대한 욕망이 합쳐져 오늘의 내가 됐다”고 말했다.
구글 총괄 웹마스터인 데니스 황(한국 이름 황정목)은 ‘만화 그린다고 매를 드는’ 학교가 싫어 중2 때 혈혈단신 미국 조기 유학을 떠났다. 홈스테이를 하며 동네 학교에 다녔다. “고2 시절 한 그래픽디자인 업체에 현장수업을 하러 갔다가 새 세상에 눈을 떴어요. 바로 책임자를 찾아 무급 인턴으로 써 달라고 매달렸지요.” 남다른 감각과 성실성을 인정받은 그는 얼마 안 가 월급까지 받는 ‘고교생 직원’이 됐다. 성적이 최상위권이 아니었는데도 ‘최고의 학교에서 정보기술(IT)과 그림을 함께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명문 스탠퍼드대학에 원서를 냈다. 합격 뒤에도 ‘재미를 위한’ 공부는 계속됐다. 3학년 때 과감히 한 신생벤처 문을 두드렸다. 훗날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이 된 구글이었다.
포스코의 김지용 소재사업실장은 “대학 시절 솔직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각종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며 ‘사람 공부’에 몰두했다. 이는 훗날 그가 포스코 최초의 박사 출신 공장장으로서 현장 직원들과 단시일에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생각보다 행동, 안정보다 변화
삼성전자 이성식 파트장은 대학 졸업 때 친구들과 시집을 냈다. 직접 쓴 시와 그림을 담아 전문 인쇄소에서 정식으로 만든 책이었다. 그의 ‘남다른 짓’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언젠가 필요하리라 믿어 대학 시절부터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 미디어 아트, 그래픽 디자인 등 새로운 것이 나오면 무조건 배우고 봤다. 그는 “새 거다, 이걸 해야 앞서갈 수 있겠다 생각하면 돈·시간 같은 건 따지지 않고 일단 뛰어들었다”고 했다. 디자인사무소 창업도, 대학 강의도 그렇게 시작했다. 국민대를 거쳐 연세대 교수로 자리 잡은 뒤에도 변화를 향한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그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삼성맨으로 변신해 휴대전화 ‘사용자 경험(UX)’이란 새 세계에 뛰어든 이유다.
엔씨소프트 신훈 팀장은 대학 1학년 때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다. 몇몇 친구와 일본 게임을 ‘베끼는’ 수준에서 시작해 난이도를 높여갔다. 애초 디자이너로 시작했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아트 디렉터, 게임 기획을 거쳐 전체 과정을 총괄하는 프로듀서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요구르팅’ ‘샤이닝로어’ 등 히트작을 내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게임 개발자 중 한 명으로 자리를 굳혔다. 고교 시절 시작한 만화 작업도 계속해 한국출판만화대상 신인상까지 수상했다.
#자녀에게 믿고 맡겨준 부모의 힘
7명은 나이도 전공도 직업도 다 다르다. 성장기 가정 형편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키운 부모의 양육 방식엔 공통점이 있었다. 자녀의 판단을 믿고 존중하는 태도였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기타 연주, 컴퓨터 프로그래밍, 만화 그리기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존중했다. 그런 부모가 있었기에 이들 7인은 삶을 풍요롭게 한 통섭적 사고와 체험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
이나리 기자
◆통섭(統攝, Consilience) =‘큰 줄기를 잡다, 모든 것을 다스린다, 총괄하여 관할하다’라는 뜻이다. 학문에선 ‘지식의 통합’의 개념으로, 특히 서구 르네상스 시대 이후 거리감이 있던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려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최근에는 학문 세계뿐 아니라 산업현장·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가치 있는 것들을 결합해 새롭고 창조적인 것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흔히 쓰인다. 단순히 지식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섞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