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호를 따라 아침햇살을 맞으며 걸어간 곳은 중앙탑공원이었다. 중앙탑공원에는 중앙탑은 물론이고 여러 볼거리가 있기 때문에 애초에 이쪽은 필수로 가야겠다고 생각하였었다. 중앙탑공원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바로 술박물관 리쿼리움이었다.
사실 난 술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술이라는 것이 존재하여 오순도순 대화를 하거나 회식을 하거나, 아니면 즐거움을 만끽하거나 슬픔을 나누는 등 감정과 함께 한잔 한잔을 나누게 된다.
이러한 술의 역사와 종류 등을 알 수 있게 한 곳이 바로 술박물관 리쿼리움이다. 이곳에서는 세계의 술, 그리고 우리나라의 술을 전시하여 술에 대한 이해를 도모해 준다.
오크통을 쌓아 만든 리쿼리움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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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쿼리움 입구. 오크통을 쌓아 그 입구를 만들었다. |
ⓒ 송영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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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쿼리움은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외부입구는 Pot Still이라는 증류기를 가지고 만들었다. 이 Pot Still은 10,000L 용량으로 스코틀랜드 것인데, 1차 증류액(알코올 농도 25%)을 증류하여 원액(알코올 농도 65%)을 생산한다고 한다. 그 뒤로는 박물관 입구가 보이는데, 박물관 입구는 오크통을 삼각형 모양으로 쌓아 올렸다. 그 가운데에 문이 있어 그 속으로 들어가면 리쿼리움의 세계가 펼쳐진다.
리쿼리움에 들어가면 지하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왠지 와인창고에 들어온 것처럼 서늘하다는 느낌도 받는데, 박물관은 총 7개의 갤러리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6개가 전시실이며, 다른 하나는 2층의 음주체험관이다. 6개의 전시실은 각각 와인관, 오크통관, 맥주관, 동양주관, 증류주관, 음주문화관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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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포라. 이집트의 토기로서 이것에 술을 보관한다. 아래의 뾰족한 부분은 여과와 유사한 효과를 낸다. |
ⓒ 송영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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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관에는 여러 유물들과 그림들, 그리고 그에 따른 설명이 자세히 써졌다. 유물 중에서 돋보였던 것은 암포라(Amphora)라고 하는 토기였다. 암포라는 밑 부분이 뾰족한 원추형이고, 긴 목에 두 개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이 암포라는 기원전 20세기부터 나무통이나 가죽 부대가 출현한 기원전 7세기까지 사용되었으며, 밑이 뾰족하였기에 똬리 위에 모래를 파서 올려놓았다.
이 유물은 밑 부분이 뾰족한데, 이는 와인을 저장할 때 침전물, 즉 주석산이나 효모 찌꺼기가 깊게 가라앉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와인을 따르면 찌꺼기가 따라 올라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과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세계의 와인을 종류별로 진열해 놓았다. 게다가 와인 보관방법 및 고르는 법, 평가하는 법 등에 대해서 자세히 쓰여 있기 때문에, 와인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그만큼 도움이 된다. 게다가 착즙기(Grape Press)나 와인병과 와인잔들도 진열하였으며 이들의 시대변천에 따른 모습변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맥주관에 마녀사냥 그림이 있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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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그. 인물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
ⓒ 송영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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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관에는 맥주와 관련한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병따개나 맥주병, 맥주캔은 물론이고 맥주잔까지 그 많은 종류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맥주잔이었다.
이곳에 진열된 저그(Jug)는 인물형 맥주로서 맥주잔에 사람의 다양한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생김새는 주로 게르만족 계통으로 보이며, 리쿼리움에 진열된 저그는 조금 굳센 얼굴로서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러한 저그에다가 생맥주를 가득 따라 마시면 그 기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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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사냥 그림. 서양 중세시대에는 맥주가 변질되었을 때 마녀 때문에 신이 노여워하였다면서 화형을 시키곤 하였다. |
ⓒ 송영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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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관에 걸린 그림 중에서 놀라운 그림이 하나 있었다. 서양 중세 때의 마녀사냥에 관한 그림이었는데, 이게 왜 여기에 걸려있는가 의아하였다. 그런데 그 아래의 설명을 보니 그럴만한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맥주가 변질되었을 때 마귀가 돌아 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맥주 제조가들은 마귀라고 지목된 마녀들을 잡아다가 화형을 시켰다고 한다. 맥주와 그 여성들과 과연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한 일들이 있었을까?
서양 중세의 마녀사냥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흉흉한 일이 있을 경우 신의 뜻을 어긴 이들을 희생으로 삼아 신의 노여움을 푼다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악용되기도 하였으며, 위정자들이 분위기를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하여 일부러 그러하기도 하였다. 결국 불쌍한 여성들만 잔인하게 희생되었을 뿐이며, 결국 신의 이름 앞에서 인간은 처참하게 그을려 죽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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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술병. 과형주전자와 어룡주전자로서 고려 상감청자의 화려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
ⓒ 송영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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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주관에서 돋보이는 유물은 역시 우리나라와 관련된 유물이었다. 특히 고려시대의 술병들은 그 아름다운 자태를 과시하면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려시대 상감청자의 매혹적인 모습은 모든 이들의 발길을 붙들어 놓는다.
과형주전자와 어룡형주전자는 고려 장인들이 만든 명품이라 하겠다. 부드럽고 섬세한 곡선으로 아름답게 만든 작품으로서 고려의 귀족들은 이 주전자에 술을 넣어서 부어 마시면서 풍류를 즐겼으리라.
술은 술과 안주로만 먹는 게 아니다. 술을 따르는 술병의 아름다운 자태와 술의 맑은 빛, 그리고 그러한 술을 마시는 풍경 좋은 곳에서 풍류를 즐기면서 먹는 술이 최고의 맛을 더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풍류를 알았으며, 그들은 이러한 술을 마시면서도 시를 짓고 음악을 들으면서 분위기를 최대한 만끽하였다.
동양주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전통주일 것이다. 이곳에는 충주의 청명주를 비롯한 우리나라 곳곳의 민속주들이 진열되어 있다. 비록 마셔본 것은 얼마 없긴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주위에 술을 좋아하는 친구와 답사를 다녀본다면 저런 술이 있는 고장을 찾아 한번 떠나보는 것도 어떨까?'
천사가 살짝 맛보는 그윽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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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의 몫. 시간이 자나면서 술이 증발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서 맛은 더욱더 그윽해진다. 이 줄어드는 술의 양을 천사의 몫이라 부른다. |
ⓒ 송영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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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류주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는 것이다. 오크통 9개가 놓여 있고, 그 속에는 술이 들어있다. 아래쪽의 오크통 5개는 비어 있고 위의 오크통을 받치는 역할을 하며, 위의 4개의 오크통에는 해 단위별로 술이 보관되어 있다.
천사의 몫이란 위스키나 브랜디를 오크통에서 숙성 시킬 때 알코올과 향 성분이 증발되는데, 이때 줄어드는 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스코틀랜드와 꼬냑지방의 하늘에는 이런 천사가 많이 산다는 말이 전해진다. 비록 양은 줄어들지만 그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맛은 더욱 깊어지기 때문에 천사가 맛을 보는 횟수만큼 깊어지는 맛 또한 비례하는 것이리라.
이곳에는 5년 단위로 술이 담겨져있다. 가장 왼쪽의 술은 막 담은 것이며, 그로부터 오른쪽으로 가면 5년, 10년, 15년 묵은 술이 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색은 좀 더 짙어진다. 이 오크통의 윗부분을 살짝 두들기면 그 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오른쪽으로 갈 수록 그 향기 또한 진하다.
박물관 위로 올라가면 술을 시음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는 입장료와 시음료는 따로 받는데, 둘의 값이 서로 비슷하다. 시간이 있어 넉넉하게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와인 한잔을 탄금호와 연인을 바라보며 맛을 보면서 감상하는 것도 괜찮으리라.
리쿼리움은 술에 대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 놓았으며, 마지막엔 술을 맛볼 수 있는 구조로 짜여졌다. 경치를 좋아하는 애주가들에게는 이곳만큼 좋은 곳도 없을 것이며, 중앙탑의 웅장한 모습을 보러 온 사람들도 한번 이곳에서 술의 향기를 맡는 것 또한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게 하는 선택이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