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연합뉴스 2012-11-15
<프로필> 장가오리 中상무위원
(선양=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중국의 차세대 지도부의 한 축을 맡게 된 장가오리(張高麗, Zhang Gaoli·66) 상무위원은 중국 정가에서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인물로 꼽힌다.
중국 남부 푸젠(福建)성 진장(晉江)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0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샤먼대에서 계획통계를 전공한 뒤 광둥(廣東)성의 마오밍(茂名)석유공업공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석유회사의 시멘트 운반공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지만 15년간 재직하면서 성실함과 능력을 안정받아 공장 당서기를 거쳐 경리직까지 올랐다.
장가오리는 1985년 광둥성 경제위원회 주임으로 공직에 입문한 뒤 자리를 옮길때마다 탁월한 성과를 내며 명성을 쌓았다.
특히 경제가 발달한 선전(深천<土+川>)시, 산둥(山東)성, 톈진(天津)시 서기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경제관료로서의 이미지를 굳혀왔다.
장가오리는 중국 권력의 3대 계파에 걸쳐 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석유회사에서 일하던 그를 공직으로 불러낸 인물은 석유방(국무원 산하 석유부 또는 석유학원 출신의 정가인맥)의 대부이자 태자당(당원로 및 고위층 자녀그룹)의 막후 실력자인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으로 알려져 있다.
장가오리는 일반적으로 상하이방의 태두인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계열로 분류되는데, 그를 중용한 인물은 장쩌민의 측근인 리창춘(李長春)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리창춘은 1998년 광둥성 서기 부임 후 장가오리를 중용해 선전시를 맡겼다.
장쩌민도 2000년 광둥에서 '3개 대표론'을 발표하며 장가오리 선전시 서기의 '선전모델'을 극찬하고 산둥성장으로 발탁했다.
장가오리는 2001~2002년 산둥성장을 지낼 당시 산둥성 서기였던 우관정(吳官正)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기율검사위원회 서기를 지낸 우관정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파의 좌장인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칭화대 동창이다.
이런 인연으로 장가오리는 2007년 후 주석이 빈하이(濱海)신구 개발에 역점을 두었을 때 톈진시 서기로 발탁되는 등 탁월한 행정실력을 바탕으로 각 계파의 수장들로부터 두루 인정을 받은 인물로 평가된다.
장가오리는 중화권의 '유리대왕'으로 통화는 리셴이(李賢義) 신이(信義)유리 회장과 사돈 관계이기도 하다.
다음은 주요 경력.
▲1984년 마오밍석유공업공사 경리 ▲1994년 광둥성 부성장 ▲1997년 광둥성 선전시 당 서기 ▲2001년 산둥성 성장 ▲2003년 산둥성 당 서기 ▲2007년 톈진시 당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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