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 씨!
추억할 수 있는 날들
노부부의 마지막
주인집 흑백티브이 속 타잔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오늘,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말을 들었다. 어르신께서 "아가씨 물 좀 건네줘." 하셨다. 아! 양심 불량인 오십 대인 내가 제일 먼저 벌떡 일어났다. 아가씨!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라 당황스러웠다. 반가웠다. 그 어떤 말보다 힐링이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우울할 때나 힘들 때 바로 그 순간에 듣고 싶은 말이었다.
수십 년 전에 잃어버린 나의 타이틀! 아가씨!! 오빠가 있는 여자들은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나와 상관없는 이 말!! 아. 가. 씨! 어르신께서 장난인지 , 눈이 안 좋으신 건지, 심부름시키기 미안해서 아부성 발언이셨는지, 시집 못 가게 생겨서 인지, 분명한 건 당황스러웠고 기분이 좋았다는 사실이다. (뻔뻔스러운 아줌마!)
내 가슴속에 아가씨란 단어가 이렇게 설레는 단어가 아닌 일상이었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이 먼 전설처럼 느껴진다. 오십 대가 되면 하루하루가 늙어가는 게 여기저기서 막 드러난다. 일단 화장실거울, 슈퍼마켓 유리문, 길가 차량의 사이드미러, 세면대 수도꼭지 위에 비치는 내 모든 얼굴들이 다 각양각색으로 이상하게 늙어있다. 독특한 특징들을 드러내 놓고 나타난다.
나인 듯 나 아닌 듯, 날마다 낯설다. 신선하게 썩어가는 얼굴을 실시간으로 감상하는 것도 나이 들어감에 있어서 겪는 색다른 경험이다. 내 얼굴인데 나도 모르게 내가 이렇게 생겼었나? 하고 놀라게 된다. 이 경이로운 사실들은 경험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오십 대가 되기 전엔 절대로 모른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경험 외엔 알 수 없는 경지가 있다. 그 반열에 내가 서있다.
내가 기억하는 아름다움과 절망, 어쩔 수 없이 사랑해야만 하는 늙은 나는 소박한 감동의 파동을 지니게 되었다. 나이와 함께 오는 겸허함이다. 얼핏 본 어르신의 얼굴에서 요절한 친구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순간, 인사할뻔했다. 순식간에 기억 속에 존재하되 기억나지 않고 복병처럼 숨어있었던 날들이 그분과 함께 떠올랐다. 줄줄이 따라오는 낡은 그물 뒤 해초처럼 처럼 늙은 내 모습만 남기고 세월은 교묘히 사라졌다.
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고통의 연속점들, 점잇기 놀이를 평생하고 있다. 어디가 도대체 끝인가? 알 수 없는 날들, 그리고 이젠 정말 알고 싶지도 않은 날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쓸데없는 기억들이 나도 모르는 내 몸속 세포처럼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기억할 수 있음으로 행복하고 그 기억으로 인해 불행도 함께하니 삶이여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 도대체 어디까지 내가 감당하고 감내해야 하는 건지 나에게 처음부터 맞지 않는 옷을 던져주고 어쩌란 말인가?
어린 시절, 주인집 흑백티브이 앞에 모여 타잔을 보던 순간이 떠오른다. 잘생긴 백인남자와 쎅쉬한 가죽 팬티, 복식호흡의 함성이 정글을 뒤 흔들면 구원동물들이 달려온다.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에 심장이 따라 일렁인다. 그 순간의 희열은 누워서 보던 사람들을 벌떡 일어나게 했다. 주인집 아들 시험기간엔 다들 조용히 각자의 방에서 에서 눈치만 봐야 했다. 유독 길었던 주말이었다. 주인집 안방마루에 흐르는 정적과 함께 이방 저 방서 빼꼼히 눈치만 보던 사람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이 무슨 기억의 처절함인지, 이제 그들은 거의 다 떠나고 없다. 내가 꼬꼬마 시절이었으니까. 치타도 팔십까지 살다 죽었다.
배운자와 못 배운자의 선이 확실했던 날들! 화날 때마다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 동네 한 바퀴 돌던 대문 입구 1번 방 아저씨! 부엌에서 쪼그리고 밥 먹던 내 또래 아이의 엄마가 입은 꽃무늬 월남치마가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그냥 고추장에 막비빈 비빔밥이었다. 그때엔 <우울증>이라든가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없었다. 우울함이 삶을 지배하진 않았던 날들! 지금은 돌아와 아내 앞에선 무릎 꿇은 남편 같은 꽃이여! 그의 마지막은 아내와 함께했다. 폭력적인 그 아저씨는 집을 나가 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리고 살다가 아내가 잘 키운 자식들 덕분에 다시 돌아와 뻔뻔하게 남은 여생을 동화 속 주인공처럼 잘 보내고 가셨다.
동네마다 비슷하지만 색다른 사연도 참 많았고 다닥다닥 붙은 틈바구니 사이에서 고만고만한 살림살이들이었다. 열 가구 넘게 한 지붕아래 살고 있었고 하루도 조용한 날은 없었다. 같은 수도꼭지 아래서 빨래를 하며 수다를 떨던 날들, 어떻게든 잘 버텨왔던 순간들, 지금은 추억의 회오리 속에서만 존재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경험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삶에서 많이 배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오늘 하루, 힘들었지만, 사려 깊고 정직한 하루였기를 내 삶의 철학으로 내가 진정한 자유인이었기를!!
운명을 믿지 않는 자 누구인가? 그냥 태어난 자체가 운명이다. 내 부모를 만난 것도 내가 지나가다 우연히 누군가와 부딪치는 것도 운명이다. 운은 세 번 온다는데 삶의 내비게이션은 어디서 사야 하는 건지? 나침반이라도 준비해야 어디서 귀인을 만날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수행과 내공을 쌓아야 한다. 시간을 지배하고 싶다. 인생, 길어야 팔십이다. 유년은 희미한 그림자이고 쉰넘으면 온몸이 삐걱이기 시작한다. 건강하게 살아갈 날은 얼마 없다. 돌아보면 크고 작은 운들이 삼백번은 왔다 간 것 같다. 얼굴을 가리고 베일을 쓴 채 내 방창을 서성이다 말 못 하고 갔겠지!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