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가증 없이 비행한 대가로 영수증 없는 1,300달러 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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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촐라체 베이스캠프에서 동력비행 준비 중. (아래) 포르체 뒷산에서 이륙을 준비 중인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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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전 9시가 넘지 않은 시간이라 태양이 대지를 달구기에는 이르다. 지난 비행 경험을 바탕으로 열의 포인트를 찾아갔지만 아직 열이 익지 않았다. 다음 사람이 이륙하는 순간까지 간신히 고도를 유지하며 하늘을 떠돌았다. 간간이 초당 4m 정도의 열이 있지만 반경이 좁아 상승기류를 타다 열권에서 나오면 다시 하강기류를 타고 만다.
승산 없이 ‘노가다’를 하면서 다른 대원들의 이륙을 기다린다. 장갑을 착용하지 않고 이륙해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없는 여덟 손가락’이 아파 온다(필자는 2005년 촐라체 등반 당시 동상으로 인해 손가락 여덟 개를 절단했다). 20분이 지나도 대원들이 이륙하지 않고 손가락은 점점 단단하게 굳어가고 있다. 촬영이고 뭐고 하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순간을 위해 지나온 길들을 생각하니 포기할 수 없다.
홍필표 대원이 겨우 이륙한다. 연두색 ‘예티’(雪人·기체 이름)와 흰색의 예티는 눈 위가 아니라 하얀 산 위로 신나게 내달린다. 아마다블람으로 캉테가(6,685m)로 하강로를 만들어간다. 이어 2인승이 이륙했다. 쿰부 지역에 세 마리 예티가 나타난 것이다. 깊은 협곡을 발아래 두고 이륙할 때면 두려움이 두 발을 잡는다. 땅에서 발이 떠나는 순간 가슴속에 숨겨진 공포감을 솟아내며 함성을 토해낸다. 와우~.
기체는 바람을 타고 돛을 편다. 때로는 땅에서 데워진 열기둥을 타고 솟구치면서 하늘과 땅 사잇길을 수놓는다. 계곡을 따라 편대비행을 하기도 하고 줄지어 기차놀이를 하기도 한다. 히말라야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노는 사이 태양이 점점 불타면서 바람과 열은 폭발하기 시작한다. 기체는 몰아치는 바람에 수평을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열은 주기적으로 상승과 하강을 계속하며 파일럿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간다.
2인승으로 마음의 부담을 가진 함영민 대원은 먼저 나선식 강하로 초당 7m 정도로 떨어지며 내려간다. 카메라를 잡고 있던 김형운 PD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에서 신음을 흘린다. 어? 이건 아니야…. 기체는 순식간에 포르체의 감자밭으로 내려앉는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피가 머리로 솟아올랐지만 지상과 닿는 순간 공포는 사라지고 두 다리가 비행기 랜딩기어처럼 감자밭에 내려앉는다. 두 사람 모두 큰 숨을 몰아쉬며 히말라야의 첫 무사 비행에 대해 감사하며 탄성을 질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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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드코시 계곡을 편대비행중이다.
- 하늘에서 날아온 이상한 사람들을 향해 아이들과 주민들이 달려든다. 하늘을 나는 신비스런 천조각을 만지작거리고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줄을 당겨보면서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을 장난감처럼 이리보고 저리보곤 한다.
무전을 통해 바람이 강해진다는 소식을 들은 함 대원의 “어서 가야 한다”는 소리에 기체 면적을 작게 만드는 귀접기, 즉 양쪽 날개의 끝을 접어 낙하산처럼 하강하는 방법으로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포르체는 에베레스트 지역과 초오유 지역에서 발원한 두 계곡의 합류점 지역이라 양옆으로 강한 상승기류가 발생하고 검은 감자밭은 열기류를 만들기에 최적의 장소라 폭발적인 열기둥이 발생한다. 오늘은 5,500m 정도 상승하고 하강했지만 두려움을 버리고 날아갔다면 에베레스트 언덕 어디든 불시착할 수도 있는 멋진 날이었다. 아쉬움이 많았지만 감자밭에 두 다리를 내려야 했다.
모두 즐거운 마음에 로지로 돌아와서 멋진 비행 후기들을 쓰기 시작한다. 홍 대원은 불안정한 바람으로 이륙 직전 하마터면 벼랑에 추락할 뻔했다고 한다. 함 대원 역시 고소증세로 30분가량 이륙하지 못하고 고소증세와 바람과 싸웠다고 한다. 비행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캔맥주로 축배를 들고 있는데 실탄을 장전한 총을 멘 군인들이 몰려온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 마오이스트들이 다시 나타난 건가’ 의아스러웠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가이드가 “대장님!” 하면서 들어온다. 군인들이 우리를 체포하러 왔다고 한다. 총알을 장전한 군인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갑자기 로지 분위기는 전쟁통처럼 오싹해진다. 가이드는 일단 우리 허가증을 보자고 하고, 우리는 아직 허가증이 발급되지 않은 상태라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이드에게 묻는다. 일단 카트만두로 연락하고 대행사와 허가증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지만 이들은 막무가내로 모두 지금 남체에 있는 국립공원사무소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세 개의 기체를 보았다며 장비들과 파일럿을 오늘밤까지 남체로 이송해야 한다고 한다. 구속이라도 되는 건지 하늘이 깜깜하다.
김형운 PD는 오히려 한가한 표정으로 사건을 지켜본다. 결국 김 PD의 유창한 영어로 허가증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장비와 김 PD만 남체로 가기로 했다. 김 PD는 7명의 무장 군인들에게 포위되어 남체로 향했고, 다음날 줄다리기 협상 끝에 영수증 없는 벌금 1,300달러를 지급하고 김 PD를 석방시키고 장비를 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 패러글라이딩 항공법이 만들어지지 않은 히말라야 접경국에서 생겨날 많은 문제들이 머리를 스친다. ‘인샬라’.
세상에서 가장 높이, 가장 멀리 나는 독수리 되기를 염원
우리는 포르체에서 로부체 베이스캠프로 이동했다. 2005년 1월 16일 촐라체 동계 세계 초등에 앞서 훈련 삼아 매일 기본기를 익히던 빙벽에서 3시간가량 어센더와 아이젠, 피켈 사용법, 추락제동 방법 등을 반복 훈련한 다음 로부체 전진캠프를 설치한다.
다음날 새벽 4시 캠프를 출발해 10시간의 긴 사투 끝에 홍필표 대원과 함영민 대원, 김형운 PD 모두 로부체 동봉을 품을 수 있었다. 홍필표, 함영민 대원은 한라산 한 번, 지리산 한 번 가보지 않은 파일럿들이다. 하지만 홍 대원은 1년 전 담배를 끊고 함 대원은 매일 제주 오름에서 땀 흘린 결실을 거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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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전형적인 네팔의 마을 위를 날고 있다. 2. 촐라체 사면을 따라 상승하고 있다.
- 한국을 출발할 때 첫 계획은 등정 후 패러글라이딩 하산이었지만 내가 이들에게 여기서 비행을 요구한다면 목숨을 요구하는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전의 횡단에서는 이곳에서 이륙해 에베레스트와 로체 등 히말라야의 심장을 담아야 한다. 우리는 구름바다 위에서 서로를 느끼고 한 달 가까운 실전 같은 훈련으로 마음속에 존재했던 히말라야 대횡단을 가슴속에서 살며시 꺼내기 시작했다.
다시 촐라체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동력 패러글라이더 고도 비행 성능 시험을 끝내고 포카라를 거쳐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정찰등반은 많은 기술적인 요소들과 경험들을 축적케 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게 한다.
바람 속에 몸을 맡기고 예티를 몰고 3,500km 길이의 광역 히말라야를 날아갈 생각을 하니 내가 바로 알바트로스란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높이 멀리 나는 독수리가 되기를 염원하는 대원들의 안전을 기원하면서 모험의 끝인 집으로 향한다. 무모한 도전에 후원을 아끼지 않는 KBS와 경상남도. 노스페이스, 진글라이더에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