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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 뼈들이 살아남(이장우 목사) from 우림과둠밈 on Vimeo.
[수요설교{에스겔서강해46회}(12.10.31)]
/ 마른 뼈들이 살아남(이장우 목사)
에스겔 37:1-14 마른 뼈들이 살아남 2012. 10. 31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이 10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10월의 마지막 밤은 한국 사람에게는 어느 가수의 노래가 생각이 나겠지만 교회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종교개혁기념일입니다. 초대교회 때에 핍박받던 교회가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 때부터 자유를 얻고 심지어 세상의 권력을 가진 교회가 됨으로 중세 천년을 흔히 암흑기라고 합니다. 이런 암흑기에 종교개혁의 횃불들이 타 올랐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건이 1517년 10월 31일 정오에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비텐 베르그 성 교회당 정문 앞에 붙여놓았던 것을 기념하여 이날을 종교개혁기념일로 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이 가톨릭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라는 개혁의 원리를 잊어버리고 교권의 횡포와 신인협력설이 선포되며 세상의 권력을 탐하는 모습들이 중세의 가톨릭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입니다. 이미 세상은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죽은 세상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살았다는 성도들이 모인 곳이 여전히 죽은 세상으로 보입니다. 마치 에스겔 선지자가 수많은 해골들이 바짝 말라 있는 것을 본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주 많이 인용되어 설교에 사용하였기에 교회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가지고 어떻게 적용을 하는가 하면 경제가 어려운 때에는 경제의 회복을 말합니다. 요즈음 경기가 침체라고 합니다. 이럴 때에 교회라는 이름의 대형집회를 하면 오늘 본문을 인용하여 경제가 회복 되도록 기도하자고 합니다. 또는 교회의 부흥을 말하면서 이 본문을 인용합니다. 사람이 새롭게 되는 부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세가 커지는 것을 부흥으로 말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온갖 적용들을 들어보았습니다.
본문 1~3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에스겔을 데리고 어느 골짜기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곳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는데 그 곳에는 아주 바짝 마른 뼈들이 많이 쌓여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뼈들이 살겠느냐고 에스겔에게 묻습니다. 이런 질문을 오늘 우리게 하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성경을 많이 알고 있기에 살아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믿습니다!’를 잘해서 살아난다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좀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사람들은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에스겔은 주께서 아신다고 대답합니다.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4~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대언하라고 합니다.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마른 뼈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고 어떻게 마른 뼈들이 살아납니까? 들을 수 있는 귀도 다 썩어 없어져 버렸고 마른 뼈들만 가득한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은 그 말씀 자체가 창조의 능력이기에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서 살아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뼈 위에 힘줄과 살과 가죽으로 입히고 그 속에 생기를 넣어서 살아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여호와인줄 알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에스겔은 이 말씀을 믿고 마른 뼈들에게 전하여야 합니다.
제 자신도 설교의 대상으로 포함을 하지만 이 말씀을 보면 설교자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설교를 할 때 청중들의 반응이 나타나야 하는데 설교자와 청중이 공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이 길다, 짧다고 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대언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설교자 자신이나 설교를 듣는 사람이나 간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임하여야하기에 비록 납골당의 뼈들처럼 한 줌의 뼈를 향하여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 설교자의 사명이라고 봅니다.
7~10절입니다. 주의 명령을 따라 대언을 합니다. 이 상황은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마른 뼈들을 보면서 대언을 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할 때에 뼈들이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서로 연결이 됩니다. 뼈의 형체들이 서로 들어맞아 진 곳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속에 생기는 없습니다. 이 생기는 사용하는 대상에 따라 영이라고도 하고 바람이라고 하고 마음과 정신이라고도 하는 히브리어의 ‘루아흐’입니다. 사람의 형태는 갖추어졌지만 생기가 없습니다. 다시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고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생기가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됩니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서는데 큰 군대더라고 합니다.
이것이 에스겔이 본 환상가운데 일어난 일입니다. 이 과정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만드시는 모양과 같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사람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생기라는 말고 에스겔서의 생기라는 말은 단어가 다르지만 같은 의미로 사용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숨길이 흙에게 들어가니 사람이 된 것처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것은 죽은 자와 같고 그 기간이 오래되어 바짝 마른 뼈와 같인 되었습니다. 이들이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그 능력으로 다시 창조하여 돌아오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1~14절입니다. 1~10절까지의 환상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설명하십니다. 이 뼈들이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해골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 그들이 마른 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도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가 다 멸절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뼈라는 말로 사람전체를 사용하여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 잡혀와 있는 이들에게는 아무른 소망이 없기에 자신들을 마른 뼈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들에게 말씀을 대언하라고 합니다. 대언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여기서는 무덤이라고 합니다. 그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시고 또 하나님의 영을 그들 속에 두어 살게 하여 고국 땅에 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여호와께서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과 영으로 인한 것입니다.
바짝 마른 뼈, 무덤에 있는 자들이 살아나는 것은 오직 말씀과 성령으로 인하여 살아납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으로 생기가 들어와서 살게 됩니다. 이것을 성경은 여러 모양으로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하여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서의 말씀과 생기가 요한복음의 물과 성령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물이 곧 말씀이며 성령이 생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짝 마른 뼈들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사람의 자리에 있으려면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아모스 8:11~13절을 봅니다.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하나님께서 기근을 땅에 보내신다고 합니다. 이 기근은 양식과 물이 없어서 기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근입니다. 여기서 양식과 물은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물은 가득합니다. 그러나 마시지 못할 바닷물입니다.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물이 많지만 그런 물을 마셔도 또 목마른 물이기에 사람의 마실 물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대에 에스겔서 말씀은 어떻게 적용을 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듯이 온 세상에 있는 유대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적용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벨론에서 마른 뼈와 같고 무덤에 있는 것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과 성령으로 인하여 회복되어 돌아오는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을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생기가 사방에서 불어오듯이 신약시대는 사방에서 예수 믿는 자들이 나오는 것으로 말합니다.
요한복음 5:25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바로 이 때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그때부터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에스겔 말씀처럼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살려내십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성령을 보내십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다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을 보내시는 것은 창세기에서 흙으로 지은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듯이, 에스겔서에서 사방에서 생기가 와서 살아나듯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합니다(요20:22).
요한복음 7:37~39절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가 강 같이 흘러나온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바짝 마른 뼈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서 죽은 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는 일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살려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완성으로부터는 이 지상의 특정한 나라와 민족을 택하셔서 새로운 성전을 만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사도들이 확증한 것은 다윗의 무너진 집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15:14~18절입니다.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바짝 마른 뼈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이런 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첫댓글 우림과 둠빔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수고해 주시니..쌀쌀해진 날씨에 건강 더욱 유의하셔요
감사합니다.
다이렉트로 펌이 안되어 파일 다운으로 Vimeo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사역은 시간싸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