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영옥의 말과 글 / 305
챗GPT는 질문이다
백영옥 소설가
동료 작가와 챗GPT가 쓴 소설 이야기를 하다가 번역가 선배가 툭 던진 ‘침몰론’이 떠올랐다. 우리가 타이태닉 호의 악사들처럼 모두 가라앉는 중이라는 것이다. 챗GPT의 등장 이후 회계사, 변호사, 기자,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이 대체되거나 사라질 거라는 기사를 보며 7년 전,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의 충격이 데자뷔처럼 떠올랐다.
TV가 처음 나왔을 때도 그랬다. 영화관은 이제 끝났다고 했지만 이후 영화산업은 훨씬 더 발전했다. 19세기에 사진이 발명됐을 때, 화가들 역시 회화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절망했다. 그러나 똑같이 재현해 그리는 것을 미덕으로 삼던 회화는 ‘재현’에서 ‘표현’으로 넘어갔다. 오히려 사진 발명 이후,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등 다양한 심상의 표현이 나타나며 미술시장은 더 진일보했다.
챗GPT가 나타나자 많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문제는 챗GPT와의 경쟁이 아니라, 누가 그것을 더 창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인간이 말과 달리기를 해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말 위에 올라타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은 인공지능을 만든 사람들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대한다고 말했다. 검색의 시대에 사색은 점점 힘을 잃었다. 그럼에도 생각을 멈추어선 안 된다. 챗GPT의 핵심은 질문이며 그것의 기반이 곧 ‘사유’이기 때문이다. 질문의 밀도와 창의성이 좋은 답변을 만든다. 덧붙여 우리에겐 답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지성의 의무가 있다.
기계가 많은 것을 대체하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며 ‘핸드 메이드’라는 라벨이 붙은 제품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더 중요한 건 역설적으로 “무엇이 변하지 않는 것인가!”이다. 전자계산기의 등장 이후 사라진 건 ‘주판’이지 ‘수학’이 아니다. 형태는 변해도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ㅡ조선일보 2023년 5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