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하는 족발은 허름한 시장 통에서나 먹는 그저 그런 음식이었다. 주당인 아버지는 가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뼈와 살코기가 그리 예쁘지 않은 모양으로 뒤엉켜 있는, 미끄덩거리는 돼지고기를 소주와 함께 드셨는데 그게 당시 생각나는 족발의 모습이다.
족발이 나름 ‘맛난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10년 정도 지난 후의 일이다. 서울 장충동의 고모댁에 놀러 왔다가 고모부가 포장해온 족발을 보고 신세계를 경험했다. ‘어느어느 할머니네 족발’ 이런 비슷한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지금 생각해보면 뚱뚱이 할머니 족발이 아니었을까 싶다) 손으로 북북 찢어놓은 큼직한 돼지고기를 쿰쿰한 된장에 찍어먹는 맛이 어찌나 부드럽고 달던지, 그 많은 족발을 급하게 다 먹었다가 체해서 밤새 잠 설치며 앓았던 기억.
장충동의 유명한 족발거리가 아닌 다음에야 사실 족발은 야식이나 배달 음식의 대표적인 메뉴 정도로만 인식됐다. 늦은 밤 허기를 참지 못하고 전화 주문하면 언제든 삶은 돼지고기 한 점에 서비스 품목인 매콤한 쟁반국수를 훌훌 감아 소주 한잔과 먹을 수 있었다.
직화구이만큼 고객 입맛을 끌어당기는 중독성의 요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따져보면 삼겹살만큼 즐겨 찾는 대중적인 육류요리다. 부드러운 살코기와 쫄깃한 콜라겐의 식감도 그렇고 특히 맛있게 잘 담근 무김치나 부추겉절이와 먹었을 때의 맛 궁합은 최적이다. 더구나 회사원들에게는 퇴근길 넥타이를 풀고 앉아 살코기를 뜯으며 소주잔을 비우기 좋은, 나름 로망이 있는 음식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장수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오키나와 지역에는 유독 장수하는 노인 인구가 많은데 그 비결 중 하나가 삶은 돼지고기를 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다른 지역보다 3배에 가까운 양의 삶은 돼지고기를 먹는다. 삶는 과정에서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거의 빠져나가, 육류를 섭취하면서도 건강을 유지하면서 장수하는 것이다. 그만큼 족발은 ‘웰빙육류’라는 점에서도 제법 매력적인 외식 아이템이다.
최근에는 주당 손님을 배려해 칼칼한 전골을 서비스하는 집부터 매콤하고 시원한 물회 양념에 족발과 채소를 담가 먹는 족발빙수를 판매하는 집까지, 같은 족발이라도 특색과 개성을 잘 살린 족발집들이 많이 생겼다.
새콤한 겨자소스와 쫄깃한 족발의 앙상블 ‘냉채족발’ 냉채족발의 매력은 차갑게 식힌 족발과 꼬들꼬들한 해파리냉채, 그리고 새콤한 겨자소스의 조합이다. 여기에 오이나 당근 등의 채소가 푸짐하게 들어가 아삭아삭한 식감까지 가미돼 술안주로 제격이다. 더구나 겨자소스 자체가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 오향가 냉체족발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오향가>는 족발을 주력 판매하는 족발전문점이기도 하면서 짬뽕과 탕수육 등의 중식 메뉴도 구성해 ‘중식당’의 콘셉트도 잘 살린 곳이다. 이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냉채족발(대 3만5000원 중 3만원 소 2만5000원). 냉채족발의 경우 간단해 보이지만 해파리의 쫄깃쫄깃한 식감과 신선한 채소의 상태, 겨자소스의 새콤한 정도를 얼마만큼 조절하고 신경 쓰느냐에 따라 맛 차이가 확연히 난다.
<오향가>의 경우 겨자소스에 한약 재료의 일부와 함께 꿀을 넣는다. 설탕을 넣었을 때보다 깊은 단맛이 나면서 윤기도 적당이 돈다. 슬라이스 한 전지 부위와 채 썬 오이, 달걀지단을 함께 내는데 해파리의 꼬들꼬들한 식감과 부드러운 족발이 갖은 채소와 잘 어우러져 식감과 풍미의 밸런스가 잘 맞는다. 냉채용으로 사용하고 남은 발목 부분은 따로 접시에 담아 제공한다. 주당 손님에게 반응이 좋은 서비스 품목이다.
24시간 냉장 숙성으로 쫄깃한 육질 살린 ‘맛있는’ 족발 족발마니아들이 선호하는 족발 스타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온족발과 차갑게 식히면서 쫄깃한 식감을 살린 족발이다. 광주시 서구 치평동의 <김육갑족발>은 후자의 매력을 선택했다. 꼬들꼬들하면서도 쫄깃한 육질과 돼지고기의 고소한 풍미를 살리는데 집중한 것.
- 김육갑족발
보통 냄새를 없애기 위해 한약재 성분을 많이 넣는 경우가 많다. 이때 고기에 한약재의 맛이 스며들어 고기 본연의 맛을 놓치는 집들도 있다. 그러나 이집 족발은 전체적으로 심플하다. 오히려 적당히 씹히는 맛이 있어 느끼하지 않고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쫄깃쫄깃한 식감의 비결은 ‘냉장 숙성’이다. 2시간가량 삶은 족발을 실온에서 한 시간 정도 식힌 후 다시 하루 정도 냉장 숙성시키는데 이때 지방이 굳으면서 쫄깃한 식감이 배가된다. 숙성시킨 족발은 비교적 얇게 썰어 나온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맛이다. 족발을 주문하면 서비스로 나오는 칼칼한 만둣국도 인기 요소다. 만두와 유부, 홍합, 숙주나물, 애호박을 푸짐하게 넣고 청양고추로 맛을 잡았다. 칼칼하고 개운한 국물 맛과 각종 재료들을 넉넉하게 넣어주는 인심에 만족도가 높다.
완소 맥주 안주, 독일식 족발요리 ‘슈바이네학센’ 서울 서초구의 <옥토버훼스트>은 독일식 맥주와 욕리를 판매하는 하우스맥주전문점이다. 다양한 수제소시지 메뉴와 함께 슈바이네학센(3만2000원)이 이집의 인기 품목이다.
- 옥토버훼스트의 슈바이네학센
슈바이네학센은 슈바이네학센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역의 음식이자 독일의 대중육류요리로 국내에선 ‘독일 스타일의 족발’이라고 하기도 한다. 아마 돼지고기 앞다리나 뒷다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조리방식과 재료에서부터 두 메뉴는 다르다.
한국의 족발은 삶는 과정이 관건인데 반해 슈바이네학센은 숙성과 굽는 과정으로 조리한다. 맥주와 물, 소금을 적정비율로 섞은 후 여기에 약간의 향신료를 더해 하루 정도 잰다. 이 과정에서 돼지 특유의 냄새가 말끔하게 제거된다. 맥주 성분으로 숙성을 시키기 때문에 살코기 부분이 퍽퍽하지 않고 연하고 부드럽다. 숙성 후엔 오븐에서 4시간가량 굽는데 겉은 바삭하게 익으면서 속은 부드럽게 씹히는 것이 특징.
간은 전반적으로 좀 센 편이다. 이집은 일반 스테이크 소스에 단맛을 가미한 ‘샤슈르’ 소스를 함께 낸다. 아무래도 소스를 찍었을 때 맛의 밸런스가 더 잘 맞는 듯 하다. 시원한 맥주 안주로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기름기가 없어 ‘치맥’보다는 다이어트에 훨씬 안전(?)하다. 여성동지에겐 ‘땡큐’ 안주다.
재래식 간장과 감초 넣고 삶은 따끈한 온족발의 매력 갓 삶아 내는 따끈따끈한 고기 맛이 그리울 때 찾으면 좋은 곳이다. 깨끗하게 작업된 국내산 돼지 앞다리살과 뒷다리살을 매일 공급 받아 2시간가량 삶은 후 바로 판매하기 때문에 <오목집>에서는 항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족발을 맛볼 수 있다.
- 오목집 온족발
족발은 비교적 단맛이 강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달착지근하면서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뛰어난 편에 속한다. 돼지고기 본연의 고소한 풍미와 적당히 씹히는 맛을 선호하는 이들에 한해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단맛을 화학조미료나 설탕이 아닌 감초로 낸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단맛이 가볍지 않고 깊게 우러나는 반면 뒷맛은 깔끔하다. 간장도 일반 간장 대신 전라도에서 공급받는 재래식 간장을 사용, 둥글레까지 넣어 고기 냄새와 맛을 잡는다. 천연재료로 만든 웰빙 족발의 개념이다.
족발 주문 시 서비스 품목으로 제공하는 해물전골은 필자 같은 주당에겐 아주 고마운 술안주다. 홍합과 꽂게, 바지락, 배추 등을 넣고 맑게 끓여낸 해물전골은 서비스보단 메인요리만큼 완성도면에서 훌륭하다. 채소와 해물로 우려낸 밑 국물에 청양고추로 맛을 잡아 시원하면서도 맵고 칼칼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족발과 칼칼한 해물전골의 앙상블이 살아있다.
불맛과 매운맛 살린 ‘불족발’, 술안주로 제격! 매운 음식이야말로 주당에겐 빠질 수 없는 ‘완소’ 술안주다. 대구 신천시장 부근의 <55온족발>은 갓 삶은 따뜻한 족발와 매운 소스를 결합한 불족발(대 3만5000원 중 3만원)을 주력 판매한다. 적절한 불맛과 매운 소스가 야들야들한 족발에 잘 어우러져 소주와 함께 먹기에 탁월한 맛이다. 소스의 중심은 콩과 곡물이다. 콩을 짜서 만든 곡물소스와 한약재, 물엿, 청양고춧가루 등을 넣고 특제소스를 별도로 만든다. 냄새도 없고 부드럽다.
- 55온족발의 불족발
1차로 삶은 족발을 소스와 함께 프라이팬에 볶고 주문 시엔 숯불에 한 번 더 구워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족발에 불맛이 밴다. 보통 불족발을 ‘매운 족발’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보단 매콤한 소스와 불맛을 입힌 ‘직화구이족발’의 개념에 가깝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상태에서 맵기만 하다고 다 맛있는 게 아입니더. 어느 정도는 달착지근한 맛도 있어야 하고 불맛도 가미돼야 계속 묵고 싶은 땡기는 맛이 됩니다” 주인장의 설명이다.
불족발용 족발은 살코기보다 비계 부분을 더 많이 넣는다.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지방 부위에 매운 소스가 촉촉하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독특한 점은 족발을 삶기 전 고기의 부분 부분을 손으로 직접 주무르며 마사지를 해준다는 것. 마사지를 통해 수축된 근육을 풀어 육질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고, 피가 고이거나 뭉쳐있는 부분들도 풀어지면서 누린내도 없어진다.
구기자, 개똥쑥 넣고 삶아 음양오행 밸런스 맞춘 ‘웰빙족발’ 족발은 삶는 과정이 관건이다. 어떠한 재료를 넣고 얼마만큼 삶느냐에 따라 냄새와 족발의 식감부터 확연히 차이난다. 부산 안락동의 <미미참족발>은 팔각과 초피, 회향, 정향을 포함한 ‘오향’과 구기자, 개똥쑥을 넣고 족발을 삶는다.
- 미미참족발
주인장 정수영씨는 음식 맛의 큰 틀을 깨지 않는 선에서 식재료 간 음양의 조화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 음양오행의 기준에서 물(水)의 기운이 강한 족발과 불(火)의 기운이 있는 개똥쑥의 궁합이 최적이라 족발을 삶을 때 개똥쑥을 넣는다. 더구나 개똥쑥은 구기자와 함께 돼지 특유의 냄새를 잡아주는 중요한 재료로 꼽는다.
약불과 중불 사이에서 2시간 가까이 삶은 족발은 위생 부분을 생각해 진공포장한 후 실온에 둔다. 주문 시엔 포장 상태 그대로 뜨거운 물에 데친 후 바로 썰어 따뜻한 상태로 낸다. 살코기는 부드럽고 껍질 부분은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조미료를 배제하고 삶는 과정에서 식재료나 불의 세기, 시간 등에 철저하게 신경 쓰기 때문에 고기의 맛과 육질 자체만 두고 봤을 때는 으뜸인 집이다.
재래식 된장소스와 취나물장아찌, 콩나물국, 갓김치, 무겉절이 등 주방에서 직접 담그고 만들어내는 김치와 나물종류의 반찬구성도 돋보인다. ‘가정식 족발요리 한 상’의 느낌이다.
매콤하고 시원한 맛으로 먹는 신개념 족발요리 ‘족발빙수’ 족발빙수, 이름만 듣고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슨 음식일까 싶었다. 수원 사는 지인의 소개로 들러 드디어 맛을 봤다. ‘회 대신 돼지고기를 넣은 물회’ 라고 하면 아마 가장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매콤한 물회 양념 국물에 푸짐하고 다양한 채소와 돼지편육을 얼음과 함께 넣어 제공한다. 수원시 영화동의 <북문족발>에서 처음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 시그니처 메뉴다.
- 북문족발의 족발빙수
족발빙수의 특이점은 일반 족발 대신 편육을 넣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편육은 머릿고기가 아닌 후지 부위로 만든다(돼지고기 후지로 편육을 만드는 집은 아마 <북문족발>이 유일할 것이다). 편육은 일반 삶은 족발보다 식감이 쫄깃하고 탱탱한데, 육수 안에 들어있는 찬 얼음과 만났을 땐 그 식감이 배가된다. 여기에 당근과 양배추, 양파 등의 채소와 미니갑오징어, 새우, 해파리 등의 해물도 푸짐하게 넣는다. 또 매우면서도 달착지근한 소스는 중독성이 있어 여름철 이색메뉴로 탁월하다.
주인장 하세종씨는 여름철마다 인천소래시장에서 싱싱한 회를 떠다가 물회를 만들어 먹었다. 하루는 판매하고 남은 족발을 물회 소스에 넣어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그 후 양념 맛을 잡고 여러 번 시식한 후에 정식 메뉴로 올렸다. 여름철엔 대부분이 손님이 족발빙수를 먹고 간다. 낮부터 ‘쏘맥’을 마는 경우도 허다하단다. 편육과 채소를 어느 정도 먹고 난 후에는 막국수를 말아먹을 수 있게 막국수 사리를 서비스한다. 가격은 2만8000원.
<오향가>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73-2전화 (02)401-6999 <김육갑족발> 광주시 서구 치평동 1221-1 (062)376-1137 <옥토버훼스트>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17-31 (02)3481-8882 <오목집> 서울시 양천구 목동 917 목동파라곤 지하 45호 (02)6737-6692 <55온족발> 대구시 수성구 범어3동 1422 (053)742-5568 <미미참족발>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 468-31 (051)531-1235 <북문족발>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346-1 (031)252-7788
글 외식경영 황해원 기자, 사진 외식경영 변귀섭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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