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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태백산 jumok 원문보기 글쓴이: 장주목
☆ 20180419 전북익산 용화산龍華山342m-산200미륵산장군봉彌勒山430.2m ☆
[현장 취재] 국보 미륵사지석탑 복원 '20년 대장정' 익산=장지훈 기자 2018.01.23 16:09
①1910년 ‘조선고적도보’에 남은 미륵사지석탑 동쪽 면의 모습. 반대쪽 면은 이미 절반 이상 파손된 상태다. ②1915년 일제에 의해 콘크리트로 임시 보수된 석탑. ③2010년 석탑 해체가 완료된 기단부 모습. ‘금제사리봉영기’ 등 다양한 문화재가 발견됐다. ④2017년 10월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수팀 직원들이 6층 지붕돌을 조립하는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①지난 1998년 시작된 미륵사지석탑 복원 작업이 이달 말 완료된다. 오는 10월 덧집 철거가 마무리되면 자연 속 석탑 본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②복원된 미륵사지석탑은 70%의 원부재(원래 재료)와 30%의 신부재(새로 쓰인 재료)로 이뤄져 있다. 누런빛을 띠는 게 원부재고, 흰빛을 띠는 게 신부재다. ③깨져 있는 돌에 충전재 겸 접착제를 주입해 이어 붙이는 모습. ④미륵사지석탑은 동서남북 사방에 문을 내고 기단에는 계단을 설치해 사람이 내부를 드나들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주로 목탑 건축에서 발견되는 형태다. /익산=김종연 기자
◇ 일제가 콘크리트 발라 망가트린 국보, 100년 만에 제 모습 찾아 - 9층 추정 석탑, 6층까지만 복원한 이유는 "원형 지키기 위해"
지난 22일 찾은 전라북도 익산 미륵사지(彌勒寺址)는 고즈넉했다.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이 7세기 초 창건한 동아시아 최대 사찰 미륵사는 그 터만 남았을 뿐, 미륵산 아래 펼쳐진 넓은 평야에는 옛 백제의 영광을 지켜본 석탑만이 조용히 바람을 맞고 있었다. 백제 건축술의 정수를 담은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이 여기 있다. 한국사를 통틀어 최고(最古)·최대(最大)를 자랑하는 미륵사지석탑은 우리 석조 문화재의 백미로 꼽힌다. 수천 개의 크고 작은 돌을 얇게 조각해 9층(추정)까지 쌓아올린 기술력도 대단하지만, 하늘을 향해 뻗은 '귀솟음' 양식의 지붕돌은 후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천 년이 넘는 모진 세월의 풍파 속에 허물어졌던 미륵사지석탑이 마침내 창연히 일어섰다. 20년 동안 이어진 복원 작업이 곧 마침표를 찍는다. "공정률은 99.99%입니다. 지난해 11월 조립을 마쳤어요. 이후 약해진 기존 부재(部材·건물을 이루는 재료)를 특수 약품으로 강화·발수 처리하고, 조치한 부분의 색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색 맞춤'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달 말이면 모든 작업이 끝납니다." 지난 2000년 미륵사지석탑 해체·보수팀에 막내로 들어와 지금은 팀장으로 작업을 이끄는 김현용(42)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가 거대한 덧집(문화재 보호를 위해 임시로 지은 건물)으로 둘러싸인 미륵사지석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높이 14.2m에 무게 약 2000t에 달하는 미륵사지석탑은 웅장했다. 대부분 무너져 내렸던 기단(빗물이 내부로 차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터 위에 먼저 쌓은 단)은 다시 일어서 탑을 떠받치고 있었고, 파손됐던 1~2층 탑신(탑의 몸통 부분)도 복구돼 부드러운 곡선의 미를 뽐냈다. 미륵사지석탑은 지난 639년 첫 번째 심주석(탑의 중심축이 되는 돌)을 놓은 뒤로 1400여 년 가까이 이곳에 서 있었다. 하지만 부서지고 깎이길 반복하면서 점차 원래의 모습을 잃어갔다. 보다 못한 17~18세기 조선인들이 석탑 주변에 축대를 쌓아 붕괴를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00년대 초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고적도보'에는 1910년 당시 원형을 유추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미륵사지석탑의 모습이 남아 있다. "일제는 1915년 미륵사지석탑 서쪽 면에 콘크리트를 덧바르는 공사를 해요. 우선 무너지지 않게 조치한 것이지만, 장인의 땀이 밴 석탑에 콘크리트를 마구 부었으니 흉물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이걸 복구하는 데 100년이 넘게 걸렸네요. 이제라도 우리 손으로 석탑을 되돌려 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일제에 의해 '임시 보수'된 미륵사지석탑은 지난 1998년 구조안전진단을 한 문화재위원회가 더는 복구를 미룰 수 없다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해체·보수에 돌입했다. 조사를 거쳐 2001년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나씩 돌을 떼어내는 데에만 꼬박 10년이 걸렸다. "워낙 오래된 석탑이다 보니 부재의 강도가 50%나 약해져 있었어요. 신중할 수밖에 없었죠. 콘크리트를 제거할 때는 행여 부서질까 봐 조그마한 치과용 드릴로 일일이 갈아내야 했어요." 해체하고 나니 돌이 2500개 정도 됐다. 70개 정도의 돌로 이뤄진 석가탑과 비교하면 엄청난 양이었다. "3D스캐너 등 특수장비를 이용해 모든 돌의 특성을 하나하나 파악했어요. 모양과 크기, 강도, 훼손 정도에 따라 '맞춤형 처방'을 하기 위해서였죠. 덕분에 원래 부재의 70% 이상을 재활용할 수 있었어요. 부재 보수에 2년이 걸렸고, 조립하는 데 또다시 4년이 걸렸습니다." '원형의 보존'은 미륵사지석탑 복원의 제1원칙이기도 하다. 석탑 서쪽 면 3~6층 탑신을 복구하지 않은 것은 원래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6층까지만 복원한 것도 같은 이유다. 김현용 학예연구사는 "언젠가 미륵사지석탑이 탑첨(탑 꼭대기의 뾰족한 부분)까지 복원되는 날이 올 것"이라며 "후손들이 석탑의 원형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발견해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미완성으로 남은 현재의 미륵사지석탑의 모습도 나름의 멋과 가치가 있습니다. 상처 입은 석탑의 현재를 보면서 과거 찬란했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요?"
[출동! 기자단] 과학으로 지켜라, 미륵사지 석탑 2018년 03월 01일
초기 미륵사에는 동쪽과 서쪽에 석탑이 하나씩. 그 가운데 목조 탑 하나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어린이과학동아 제공
보수 공사 전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 1915년 일제는 무너질 위험이 있다며 미륵사지 석탑 위에 시멘트를 무었다 (왼쪽), 보수 공사 전 석탑의 모습 (가운데), 보수 공사를 마친 뒤의 모습
2018년 올해, 우리나라 최대의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이 옛 모습을 되찾아요. 보수 공사가 시작된지 18년만이지요. 석탑 보수 공사는 작년 11월에 마쳤지만, 앞으로 석탑 주변을 둘러싼 가건물을 해체하기 위해 아직 미공개 상태랍니다. 10월쯤이면 일반인들에게도 미륵사지 석탑이 공개된다고 해요. 동탑은 1991년부터 3년만에 급하게 복원하느라 새 돌이 많이 사용됐어요. 본래부터 있던 화강암은 35개밖에 없답니다. 나머지는 새 화강암 2000여 개로 복원했지요. 이 때문에 명지대학교 유홍준 교수는 “20세기 한국 문화재 복원 최악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답니다.
김현용 학예연구사 “동탑은 무리해서 ‘복원’, 서탑은 부서진 부분만 보강하는 ‘보수’를 한 거예요. 서탑이 9층이었다는 증거는 없거든요. 그래서 서탑은 6층까지만 있답니다.”
☆ 20180419 전북익산 용화산龍華山342m-산200미륵산장군봉彌勒山430.2m ☆
전북익산 미륵산彌勒山430.2m 등산안내도 ...
전북익산 미륵산彌勒山430.2m 등산안내도 ...
전북익산 미륵산彌勒山430.2m 등산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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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19 전북익산 용화산龍華山342m-산200미륵산장군봉彌勒山430.2m ☆
전북익산 미륵산彌勒山430.2m 등산안내도 ...
전북익산 미륵산彌勒山430.2m 산행 궤적도 ...
전북익산 미륵산彌勒山430.2m 궤적도 ...
전북익산 미륵산彌勒山430.2m 궤적도 ...
전북익산 미륵산彌勒山430.2m 궤적도 ...
전북익산 미륵산彌勒山430.2m 위성도 ...
전북익산 미륵산彌勒山430.2m 위성도 ...
전북익산 미륵산彌勒山430.2m 트랭글정보 ...
전북익산 미륵산彌勒山430.2m 고도표 ...
☆ 20180419 전북익산 용화산龍華山342m-산200미륵산彌勒山430.2m ☆
◊ 용화산(龍華山342m) : 전라북도 익산시의 왕궁면 용화리와 금마면 신룡리 경계에 있는 산.
『신증동국여지승람』(익산)에 "미륵사는 용화산(龍華山)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해동지도』(익산),『해동지도』(여산),『1872년지방지도』(익산),『조선지지자료』(익산)에 '용화산(龍華山)'이 기록되어 있다.『신구대조』(익산)에는 제석면 신사동과 화곡리 등을 통합하여 '용화리'를 신설한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산 지명인 용화산에서 촌락 지명 '용화리'가 파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한국지명총람』에도 '용화산, 용화리'가 표기되어 있다.
◊ 미륵산(彌勒山430.2m)
금마면에서 북쪽으로 5km쯤 떨어진 미륵산(430.2m)은 미륵사지를 품은 익산의 진산이다. 봉우리가 사자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일명 사자암이라고도 불린다. 산 골짜기에는 사자암, 수박암, 천정암 등이 있다. 사자봉 밑 약수는 안질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정상은 주변의 넓은 평야지대로 인해 초록의 바다위에 우뚝 솟은 섬처럼 거칠 것 없는 조망이 일품이다. 동남북 대둔산을 잇는 금남정맥 줄기가 부드럽게 이어져 있고 익산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면 마한시대 것으로 추정하는 미륵산성을 만난다. 특히 미륵산은 서동 백제 무왕이 태어나 말을 타고 무술을 연마하던 산으로 이곳에서 서동이 선화공주와 사랑을 속삭이던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산이기도 하다. 지금도 무왕과 선화공주가 넘던 재를 아리랑고개 라고 불러지고 있다. 왕이 된 서동이 부인과 함께 지금 익산시 금마면의 용화산(미륵산) 앞을 지나다 미륵보살을 만나고, 부인의 청에 따라 지은 절이 미륵사다. 신라 황룡사보다 2배가 크고 황룡사의 모델이 됐던 미륵사는 지금 미륵사지석탑(彌勒寺址石塔)(금마면 기양리 104-1 국보 제11호 : 2018년10월 현재 복원완료하여 공개예정)만 남겨두고 빈 터로 남아있다. 미륵산에서 날이 좋으면 금강변 웅포까지 볼 수 있다. 무왕이 왜 이곳으로 천도를 꿈꾸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고려의 신돈이 평양 천도를 꿈꾸고, 조선의 정조가 화성을 건설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륵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왕궁면 왕궁리라고 왕궁을 아예 지명으로 하는 곳이 있고, 그 곳에는 6만5,700평 규모의 거대한 궁궐터가 실재한다. 노릿한 들판을 내처 달려 금강변에 이르면 웅포나루다. 날씨 좋은 날 저녁이면 황홀한 석양을 연출하고 추수가 끝날 즈음에는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찾아 드는 철새의 낙원이다. 미륵산은 천호산의 줄기가 동서로 가로질러 이룬 산으로 북으로는 황산벌이 보이고 남으로는 멀리 호남평야를 바라보는 평지에 우뚝 솟아 있으며, 이산에서 발원하는 도천, 부상천, 궁평천 등은 만경강의 상류를 이루며, 서해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산의 최고봉을 운제봉이라 하고 조금 낮은 앞 산봉을 장군봉이라 하는데, 장군봉에는 마치 장군이 투구를 쓴 것 같은 모양으로 생긴 까닭에 투구 바위라고 부르고 있는 바위가 있다. ‘여지승람’ 익산군 산천조에서는 “장군봉은 용화산에 있는데, 남쪽에 있는 바위에는 두어말의 기름을 녹일 수 있는 구멍이 파져 있어 이 바위를 등잔암이라 한다”고 하는 기록이 보이는데, 여기서 말하는 등잔암은 지금의 장군봉 산정에 있는 투구바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산의 남록에 있는 거북바위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거북바위에는 가로 70cm 세로50cm 정도의 구멍이 파여져 있다(출처: 두산백과)
- 금남기맥 : 금남정맥 왕사봉에서 군산 금강하구까지 약97km 구간을 말한다. 왕사봉, 불명산, 장재봉, 남당산, 작봉산, 까치봉, 천호산, 용화산, 미륵산, 함라산, 봉화산, 망해산, 취성산, 용천산, 대명산, 고봉산, 용화산, 청암산, 돗대산, 석치삼, 점방산, 장계산등이 있다.(출처: 위키백과)
▻미륵산성은 우제봉과 장군봉 두 봉우리에 동쪽으로 계곡을 돌아서 쌓은 석성이다. 동국여지승람에 고조선의 왕 기준이 이곳 금마 땅에 내려와 마한을 개국하고 이 성을 쌓았다 하여 기준성으로 불린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성안에서 출토되는 유물에는 마한 시대의 것은 발견되지 않고, 백제 후기의 토기와 금마저성이라 쓰인 백제 와편이 여러 곳에서 출토되고 있어 이곳을 ‘금마저’라 칭한 백제 성으로 백제 말기에서 조선시대까지 몇 차례 개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의 총길이는 1,823m이고, 동쪽 계곡 수구문 근처에 정문터가 남아 있고, 남벽 중앙부에 남문터가 있다. 성 외벽은 수직으로 쌓고, 성벽 높이는 4~5m이며, 성벽의 넓이는 3~5m이다.
☆ 20180419 전북익산 용화산龍華山342m-산200미륵산장군봉彌勒山430.2m ☆
※ 전북 미륵산 430 산림청200/140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낭산면,삼기면
◎ 산행일자 : 2018년04월19일(목/맑음/조은)
◎ 산행위치 : 전북 익산 금마면, 삼기면
◎ 주봉우리 : 총3개봉 - 용화산342m, 용리산309m, 미륵산430m
◎ 산행코스 및 산행시간 : 05시간29분(산행, 휴식시간 등 포함)
▻서동공원(09:46) → 삼각점221m(10:17) → 용화산龍華山342m(10:38/10:40) → 용리산306m(11:06) → 능선봉?(11:31) → 용리산갈림길(12:13) → 아리랑고개/다듬재(12:33) → 미륵산장군봉彌勒山430.2m(13:08/13:14) → 사자암(14:04) → 미륵사지동원구층석탑(14:32) → 미륵사지주차장(15:15)
※ 트랭글정보 = 이동거리 : 14.4 ㎞
∘ 소요시간 : 05시08분04초(이동시간04시40분35초/휴식시간00시20분29초)
∘ 속도 : 평균 3.0 ㎞/h ↔ 최고 6.9 ㎞/h ∘ 고도정보 : 최저 45 m ↔ 최고 450 m
◎ 소요경비 : 총 25,200 원 = 2,700 원 + 1,500 원 + 21,000 원
∘ 교통비 : 목사 1,250 원 ↔ 신사역/양재역 ↔ 목사 1,450 원
∘ 기 타 : 간식 1,500 원
◎ 산행기 : 서동공원에 도착하여 우측 용화산둘레길 안내도를 보고 계단을 조금 오르다가 좌측 마한박물관을 한바퀴를 돌고(모처럼 박물관 견학?이라 좌측에서 우측으로 돈다?) 완만하게 오르면서 우측으로 익산소방1-1표지판(입구 0.2㎞)을 지나 완만하게 양탄자길?을 이어가면서 공동묘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면 (우측으로 용화저수지가 보이고) 삼각점221m이 보이고 ... 이어 삼각점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서다가 조금 오르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가다가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서 쉼터(편백나무 숲?)와 익산소방1-11표지판(입구 2.2㎞)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가면서 안부?를 지나 오르막?을 조금 오르고 헬기장을 지나 급경사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 용화산龍華山342m(서동공원 2.6㎞-아리랑고개 2.6㎞)이 보이고 ... 이어 용화산龍華山342m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가다가 좌측으로 철조망(알레르기반응)을 보면서 조금 이어가면 좌측으로 경고문(군발이들이 사격한다고)을 지나 등로는 다소 우측사면으로 이어가는 데 좌측에서 콩소리가 요란하더니 앞쪽으로 경계병?(오전사격중이라고-육군특전사령부 예하 7공수특전여단?)과 좌측 전망바위가 보이고 ... 이어 미륵산성과 미륵산을 조망하고 내리막을 조금 내려서면서 돌탑?과 익산소방1-18표지판(입구 3.6㎞)을 지나 (여기에도 경계병?이 보이고) 우틀하여 내려서면서 용리산갈림길(용화산 1.0㎞-좌:아리랑고개 1.6㎞-우:용미산)을 지나 우틀하여 완만하게 이어가다가 (좌측 갈림길?을 지나) 다시 우틀하여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조금 오르면서 익산소방4-9표지판(입구 1.8㎞-가람이병기선생 생가방향)을 지나면 용리산삼각점306m이 보이고 ... 이어 용리산에서 용리산갈림길로 되돌아가다가 익산소방3-11표지판(입구 2.2㎞-전북익산여산면 제남리석교마을방향)을 지나 우틀하여 완만하게 내려서다가 공터?와 좌측 참나무?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서다가 조금 급하게 내려가다가 (앞쪽에 한분?이 보이길래 물으니 길?을 잘못 들어 내려가는 일행?분이라 다시 용리산갈림길로 돌아가라고 가르쳐주고) 참나무를 지나 좌틀하여 급하게 내려서다가 다소 완만하게 내려서면서 안부를 지나 조금 오르면 전투전문가 과정(독도법)과 익산소방3-5표지판(입구1.0㎞-익산여산면제남리 석교마을방향)이 있는 능선봉이 보이고 ... 이어 능선봉(좌직하면 선인봉?방향인가?)에서 (용리산갈림길로 되돌아가다가 다소 편안한 자리?가 보여 잠시 쉬다가) 다시 용리산갈림길/사거리로 되돌아가서 우틀하여 내려서다가 (좌측 철조망은 미륵산성 부근까지 이어지고) 조금 오르다가 다시 조금 내려서면서 완만하게 이어가면서 등로는 다소 좌틀하여 이어가다가 좌측 철조망을 뒤로 하고 다소 우틀하여 이어가다가 쉼터?공터?(익산소방2-2표지판 입구0.4㎞)를 지나 우틀하여 급하게 내려서다가 다소 완만하게 내려서면 아리랑고개/다듬재가 보이고 ... 이어 아리랑고개/다듬재를 지나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서 이정표/정정렬명창길(미륵산성 0.5㎞)을 지나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면서 갈림길(장암마을 3.3㎞-좌:미륵산성 0.1㎞-등산로)을 지나 다시 급하게 조금 오르다가 미륵산성(동문지?)을 지나 성터?를 급하게 오르다가 바위를 지나면서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면서 능선봉?(우제봉)을 지나 능선봉(우제봉)에서 좌틀하여 조금 내려서다가 성터?를 오르면서 묘지?를 지나면 미륵산彌勒山430.2m(아리랑고개 1.5㎞/심곡사 0.6㎞-기양제 2.41㎞/연수원 1.94㎞/약수터 0.99㎞)이 보이고 ... 이어 미륵산에서 좌틀하여 미륵산성(남문지)로 급하게 내려서면서 곤돌라?와 산성터 흔적?을 지나 내려서면서 미륵산성 남문지를 둘러보고 다시 미륵산으로 급하게 오르다가 모노레일을 보면서 좌틀하여 이어가다가 좌측 치성을 지나 내려서면 갈림길(장군봉 140m-우:장항교/별장가든 2050m-사자암)이 보이고 ... 이어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가다가 바위지대를 지나면서 좌측으로 한반도 모양의 금마저수지를 보고 다소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다가 갈림길(정상 0.39㎞-좌:연수원주차장 1.552㎞/사자암-우:약수터 0.605㎞)을 지나 좌틀하여 급경사 돌계단 내리막을 내려서다가 (사자암을 찾으려고?) 좌측 등로로 이탈하여 완만하게 사면을 오르다가 (앞에 한 분이 내려오기에 사자암 위치를 물으니) 다시 돌아서서 내려서면서 다시 급경사 테크를 내려서면 사자암갈림길(정상 0.558㎞-좌:사자암 100m-연수원 1.384㎞)이 보이고 ... 이어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조금 이어가면서 모노레일을 지나 사자암을 둘러보고 다시 등로로 돌아와서 급경사 계단 테크를 내려서다가 이정표(정상 0.980㎞-우:연수원 0.960㎞)를 지나 우틀하여 급경사 테크를 내려서면서 소나무 숲길을 조금 내려서면서 완만한 오솔길이 이어지면서 약수터갈림길(정상 0.397㎞-좌:연수원/미륵사지-우:약수터 0.780㎞)과 구룡마을갈림길(정상-좌:구룡마을 1.7㎞-우:미륵사지 1.0㎞)을 지나고 ... 이어 갈림길을 지나 조금 가다가 이정표(구룡마을 1.8㎞-미륵사지 0.9㎞)를 보고 우측 등로로 이어가다가 조금 내려서면서 이정표(구룡마을 2.1㎞-미륵사지 0.6㎞)를 지나면 우측으로 미륵사지가 보이면서 우틀하여 (복원) 동원 구층석탑과 주위 유물들을 둘러보고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좌측 연못을 지나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서 관람(좌에서 우로 돌아야 하는 데 거꾸로 돈 듯 - 촌놈)을 마치고 근처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미륵사지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고 ...
☆ 20180419 전북익산 용화산龍華山342m-산200미륵산장군봉彌勒山430.2m ☆
첫댓글 산행안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