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 되면
조병화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뚝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어머니>(1973)-
해설
[개관정리]
◆ 성격 : 교훈적, 희망적
◆ 표현 : 공통된 구절의 반복을 통해 시적 통일감 획득
순차적인 구성, 각운의 사용
부드러우면서도 설득적인 어조
의인, 은유, 직유, 열거법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어린 시절 그 분 → 앞세대(부모님, 선생님 등)
* 생명을 만드는 쉬임없는 작업 → 봄의 왕성한 생명력
*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 꿈의 소중한 가치
* 봄은 피어나는 가슴 → 봄은 그만큼 희망적인 시간이라는 점
* 솟는 대지의 눈 → 대지의 생명력을 담은 새싹
*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 계승의식
◆ 주제 : 삶에 대한 강한 애정과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부지런함
◆ 2연 : 꿈을 가짐
◆ 3연 : 새로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시작하는 '어린 벗'에게 삶의 지혜와 같은 소중한 교훈을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봄'과 대비시켜 전하고 있다.
'부지런 해라', '꿈을 지녀라', '새로워라'라는 시어의 연결은 단지 '봄'이 지니는 속성에 대한 나열이 아닌, 시인의 명징한 의식의 소산이다. 이미 지나가고 있는 세대로서 생활인의 덕목인 부지런함을 넘어서 꿈을 가져야 하고 새로워 질 것을 순차적으로 강조하고 있는데서 시인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자신이 앞 세대로부터 당부 받았으나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기에, 새로운 세대는 자신이 지닌 삶에 대한 의식과 태도와 달리 '꿈'을 지니고 새로워져야 함을 강조하는 부분에서 바로 시인의 삶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다음 세대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어떤 당부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당부가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이야기가 아닐 때는 현학적이기 쉽다. 그러나 이 시인은 자신이 끊임없이 추구해온 삶에 대한 통찰에서 오는 당부를, 자신이 어릴 적에 앞세대가 주었던, 이제 지당한 것으로 판단된 목소리를 빌어 말함으로써 진실을 확보하고 있다. 더욱 그 당부가 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고 인간을 뛰어 넘는 존재인 자연 현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임을 은연중에 개진함으로써 무게를 얻고 있다.
시인 조병화가 추구하는 시세계의 한 줄기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다. 삶을 나그네의 의식과 같은 흐름으로 보기도 하고, 죽음을 향한 긴 여로의 한 구비구비에서 되돌아 볼 때 때로는 아쉽기도 하고 때로는 행운유수(行雲流水)같기도 한 존재로 볼 때도 있다. 이러한 시인의 입장에서 항로에 첫발을 내딛는 '어린 벗'과 만물이 소생하고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봄'을 대비시켜 삶의 지혜를 전하고자 하는 것은, 삶에 대한 애정의 한 표출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애정은 '그분 - 나 - 어린 벗'으로 연결되듯 한 개인의 의식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비록 시인 자신은 삶에 안주하지 못할지라도 그리고 자신의 삶이 그저 흘러가는 것으로 인식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후대에게는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권유하는 것은 삶에 대한 잔잔한 애정의 표현이다.
[작가소개]
조병화 : 시인
출생 : 1921. 5. 2. 경기도 안성
사망 : 2003. 3. 8.
데뷔 :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
수상 : 1997년 5·16민족상
1996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1992년 대한민국문학상
경력 : 세계시인회의 국제이사, 세계시인대회 회장
작품 : 도서, 기타
호는 편운(片雲). 1921년 5월 2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난실리에서 조두원의 5남으로 출생.
1938년 경성사범을 졸업하고, 1943년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이과에 입학하여 물리‧화학을 전공했다. 1945년 6월에 귀국한 후 경성사범, 제물포고, 서울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중앙대, 이화여대 강사를 거쳐 1959년부터 1980년까지 경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인하대로 옮겨 1984년 정년 퇴임한 후, 명예교수로 재직하였다. 2003년 3월 8일 사망하였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발간하며 문단에 등단한 이후 『하루만의 위안』(1950), 『패각의 침실』(1952), 『인간고도』(1954), 『사랑이 가기 전에』(1955), 『서울』(1957), 『석아화(石阿花)』(1958),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1959), 『밤의 이야기』(1960), 『낮은 목소리로』(1962), 『공존의 이유』(1963), 『쓸개 포도의 비가』(1963),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1964), 『내일 어느 자리에』(1965), 『가을은 남은 거에』(1966), 『가숙(假宿)의 램프』(1968), 『내 고향 먼 곳에』(1969), 『오산 인터체인지』(1971), 『별의 시장』(1971), 『먼지와 바람 사이』(1972), 『어머니』(1973), 『남남』(1975), 『창안에서 창밖에』(1976), 『딸의 파이프』(1978), 『안개로 가는 길』(1981), 『머나먼 약속』(1983), 『나귀의 눈물』(1985), 『어두운 밤에도 별은 떠서』(1985), 『해가 뜨고 해가 지고』(1985), 『지나가는 길에』(1989), 『후회없는 고독』(1990), 『찾아가야 할 길』(1991), 『낙타의 울음소리』(1991), 『타향에 핀 작은 들꽃』(1992), 『다는 갈 수 없는 세월』(1992), 『잠 잃은 밤에』(1993), 『하루만의 위안』(1994), 『시간의 속도』(1995),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1998), 『공존의 이유』(1998) 등 많은 시집을 발간했다.
그의 다작의 비결은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본질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를 쉬운 일상의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많은 독자와 솔직한 대화를 이루어 왔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현대시가 난해하고 안 팔린다는 통념을 무너뜨린 희소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림 분야에도 일가를 이루어 15차례에 이르는 개인전을 갖기도 하였다.
한편 『밤이 가면 아침이 온다』(1958) 등의 시론집 4권과 『시인의 비망록』(1977)을 비롯한 27여 권의 수필집을 간행하기도 했다. 아세아 자유문학상(1960), 경희대문화상(1969)과 대한민국 예술원상(1985), 3‧1문화상, 대한민국 문학상(1992) 등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시인대회 계관시인, 세계시인회의 한국위원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학력사항
[네이버 지식백과] 조병화 [趙炳華]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첫댓글 그분의 말씀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가을정취 만끽하시면서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