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4월 26일 토요일 |
인천일보
인천일보
인천일보
한겨레신문
천지일보 ● '민중 만평' 최민 논설위원 ▲민중의소리 |
▲서울신문
▲내일신문 |
▲중부 일보 |
▲중부 일보 |
▲중부 일보 |
▲중부 일보 |
▲한라일보 |
▲한라일보 |
[뉴시스 만평] 외로운 의인 ▲ 뉴시스 |
▲중앙일보 |
'안 봐도 그만' ▲중앙일보 |
▲창원일보 |
▲ 충청일보 |
1987년 8월29일. 경인일보에겐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토요일이었고 날은 잔뜩 찌푸려 있던 그날. 오후 3시? 4시? 경기도 유일의 종합 일간지 경인일보 편집국의 전화가 요란스럽게 울었다. 용인군 남사면 북리 산 210에 소재한 공예품 회사 오대양(五大洋) 용인공장에서 다수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용인주재기자의 전화였다. 그때부터 비가 후두둑 내리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된다. 강한 회오리 바람도 불었고, 번개가 쉴새없이 번쩍 거렸다. 경인일보 기자가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고 잠시 후 중앙지 기자와 경찰이 모두 오대양 사건 현장으로 모여 들었다. 그날 그곳에서 우리는 '악마를 보았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오대양 식당 천장에는 32구의 시신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이들은 사이비종교 교주였던 박순자와 신도들로 모두 기독교복음침례회(속칭 구원파) 신도였다. 산전수전 모두 겪은 베테랑 강력계 형사들도 "이렇게 무서운 장면은 본 적이 없었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등골이 서늘했다. 그날밤 중부지방에는 밤새도록 250㎜의 폭우가 쏟아졌다. 오대양 사건은 그렇게 시작에서 끝까지 미스터리의 연속이었다. 사건의 발생도, 사건의 진행도, 사건의 종말도 그랬고 경찰의 수사도 그랬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건이 조종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사건은 그렇게, 누구도 다시는 열어 볼 수 없도록 튼튼하게 봉인돼 '영구미제'란 딱지를 붙여 '망각의 창고'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들이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화성연쇄 살인사건'과 함께 기자들에게 원죄같던 영구미제 '오대양 집단 살인사건'이, 저주가 풀렸다는 듯 단단한 봉인을 풀고 다시 우리앞에 나타난 것이다. 세월호를 운영하는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을 비롯해 청해진해운 직원 상당수가 구원파 신도라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구원파. 오대양의 그 구원파다. 이번엔 반드시 사건의 실체가 밝혀져 죽은이의 원혼이 풀어지길 기대해 본다./이영재 논설위원 ▲경인일보 |
▲국민일보 |
▲국민일보 |
보| ●← 원본 글 닷컴가기'☜ |
▲ 영남매일 |
새누리 후보들 ▲폴리뉴스 |
기다려봐! 곧 씽씽 달릴테니까! ▲폴리뉴스 |
지방선거 관심도 침몰 ▲폴리뉴스 |
▲시사저널 |
기본이 침몰하는 나라 ▲시사IN Live |
미용실 전망 ▲시사IN Live |
▲시사IN Live |
▲일요신문 |
▲일요신문 |
주간경향 |
▲한겨레신문 |
▲ 한국경제 |
▲약업신문 |
▲약업신문 |
▲경기일보 |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다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라구요? 그러니 안전하지 않은 사회, 어디선가 무언가가 터질 것 같은 위험 사회의 난민처럼 살지 않겠다는 옹골진 다짐이라도 바칩시다. 저 착한 아이들에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그러나 아직은 마지막까지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말고 온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제발 살아서 돌아오길…. ▲Redian |
▲오마이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