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의 잘익은가을날 곰배령단풍과 갈대숲모습..)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주여, 해시계들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오곡 무르익은 들판에 바람이 불어오게 하소서.
주여, 마지막 남은 열매들까지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열매들이 영글도록 재촉하시어
단맛 중의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며들게 하소서.
주여,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외로운 사람은 오래 외로움에 머물게 될 것이고...
잠 못 이루고, 글을 읽고, 그리고 긴 편지들을 쓸 것이고...
나뭇잎이 바람에 휘날리면,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체코 프라그 태생의 오스트리아 시인이며 소설가로서, 위의 시 <가을날>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그의 대표적인 기도시이자 서정시입니다. 그런데, 종래에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가을날>이 독일어 원문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다고 하여 원문의 뜻을 살려 새롭게 번역된 것입니다.
릴케는 젊은 시절 러시아와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인간 실존의 본원적인 고독과 불안의 실체를 찾아내기 위한 유랑생활을 했습니다. 그 무렵 만난 러시아 여인 살로메와의 사랑과 광막한 러시아의 자연과 농민들의 순수한 내면 세계에서 느낀 신비스러움을 노래한 시집인 <나의 축제>와 <형상시집>을 발표했고, 한때 파리에서 조각가 로댕의 비서로 곁에 머무는 동안, 로댕의 영향을 받아 사물을 깊이 관찰하고 규명하는 즉물적인 인식의 세계를 노래한 <新시집><로댕론>과 소설 <말테의 수기>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세 해 전인 1923년 스위스의 한 낡은 고성에서 병마와 씨름하며, 세계 1차대전 이후 인간성을 상실한 전후세대를 향해 순수한 영혼의 절규를 전하는 <듀이네의 비가> 열 편과 <올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겼습니다.
첫댓글 유난히도 단풍이 곱게물든 가을..
가난한 마음으로 나의 삶을 미소짓게 하소서....
~~~가을밤에 릴케의 시와...와인을 한잔 하면 좋겠어요~~~^^*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집을 짓지 않습니다.
마음이 아픔이 물듭니다.
오랫만에 릴케의 목가적인 시를 읽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