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부터 LA 성 그레고리 성당에서 있는
성체신심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 샌디에고에 있습니다.
새벽 4시 30분이 지나면
이미 밝아오는 여명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길을 걷습니다.
오래간만에 흙을 밟을 수 있고,
상큼한 공기를 마실 수 있으며
여러 종류의 화초 뿐만 아니라 달팽이들도
만날 수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늘 사막에서 결핍을 체험하다가 이렇게
자연 환경이 조금 나은 곳에서 있게 되면,
이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고
무상의 은혜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잃어버린 감사의 영성이 되살아 납니다.

여기 미국에서 늘 보면서
안타깝게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흙을 밟고 잔디를 밟아
땅으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아야 하는데,
꼭 개들이나 말들이,
아니면 그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만이
그 순간만 흙을 밟고 잔디를 밟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구기 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흙과 단절된 시멘트 콘크리트
위를 걷고 뛰고 달립니다.
참 답답합니다.
좀 더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며 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의 어떤 도시에서 휴가 아닌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어떤 장소에 가서 기도하고 묵상하고
글을 쓰려 할 때에는
단한번도 조용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도 하필 제가 간 시간에
잔디를 깎거나 낙엽을 청소하거나
집수리를 하거나 도로 공사를 하거나
단 한번도 조용했던 적이 없습니다.
항상 결핍과 불안정과 고통이 공존합니다.
단 한 순간도 평화와
안정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연 환경과 주변 환경이 조용하면 이제
지인들의 가족이나
교우들 사이에 불편함이 생깁니다.
그야말로 어둠이 빛 가운데 함께 공존합니다.

그래서 늘 깨어 있어야 하고, 기도해야 하며,
고통을 요구하고 어떤 지향으로
봉헌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앞에 있게 됩니다.
늘 자연을 보면서
감사할 줄도 즐기지도 못하고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는 지인들의 직장 생활과 격무를 보면서
참으로 불쌍한 생각들을 갖게 됩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경쟁해야 하고
첨단 과학과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제대로 휴식도 못하면서
건강과 생명을 해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경쟁력있는,
그래서 좀 더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언젠가는 사라질
이 세상과 지구라는 허무의 모래 위에
바벨탑을 끊임없이 쌓아올려서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참 답답합니다.

차라리 좀 불편하고 좀 힘이 들더라도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살면 좋겠는데,
그리고 좀 더 덜 벌고 나누면서 살면 좋겠는데,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컴퓨터가 다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조 조정으로
일터에서 좇겨나는 비인간화와 기계와
과학의 노예됨을 극명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정말로 이 시대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세상일까요?
점점 멸망을 향해 스스로 매를 벌며 정신없이
어떤 힘에 끌려가는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학 문명과 편안함과
안락의 이기 속에서 슬픈 소외를 체험합니다.
역시 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과
치유와 구원은
하느님과 영원한 천상 세계뿐입니다.
첫댓글 아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