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얼굴
원제 : Angel Face
1952년 미국영화
감독 : 오토 프레밍거
음악 : 디미트리 티옴킨
출연 : 로버트 미첨, 진 시몬즈, 모나 프리맨
허버트 마샬, 리온 에임즈, 바바라 오닐
필름 느와르 전성시대는 1941년 '말타의 매' 부터 1958년 오손 웰즈 감독의 '악의 손길' 까지입니다. '로라 살인사건' '이중배상' '사냥꾼의 밤'을 비롯하여 어마어마한 걸작들이 등장했고, 최소한 평타는 치는 재미를 선사하는 게 이 장르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죠. 대부분 흑백 영화이고 적은 제작비로 흥미롭게 만들 수 있어서 당시 스튜디오 시대에 활성화되었던 장르입니다.
이 장르의 특징은 사악하고 요염한 악녀가 등장한다는 겁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관능적 미모로 남자를 유혹하고 파멸의 길로 이끄는 것이죠.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라나 터너, '이중 배상'의 바바라 스탠윅, '로라 살인사건' '애수의 호수'의 진 티어니, '길다'의 리타 헤이워스, 이른바 팜므파탈은 필름 느와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묘미입니다. 이 장르의 전성기가 끝난 이후에도 '보디 히트'의 캐서린 터너나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으로 그 계보를 이어갔죠.
'천사의 얼굴'은 1952년에 만들어진 필름 느와르 영화입니다. 악녀의 손길에 사로잡힌 한 남자가 사랑하던 애인까지 버리고 결국 파멸의 길을 걷는 내용입니다. 로버트 미첨과 진 시몬즈라는 할리우드 유명 스타가 등장합니다. 진 시몬즈가 팜므파탈 역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기존의 사악하고 요염한 팜므 파탈과는 상당히 다른 이미지입니다. 아시다시피 진 시몬즈는 아담하고 청순한 여배우의 표본입니다. 작은 오드리 헵번이라 할 수 있는. 사악함이나 요염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배우고 착한 역할이 더 어울립니다. 이 영화에서도 제목처럼 '천사의 얼굴'을 가진 악녀 입니다. 그 악함은 결국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지만 그게 다른 팜므파탈 처럼 영악하고 사악한 것과는 다른, 그냥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한 다소 허술하게 직진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그녀가 아빠와 연인을 사랑한 건 진심입니다. 정말 애처로울 정도로 사랑에 매달리지요.
캘리포니아 지역 외지의 트레메인 대저택, 원인 모를 가스 중독 사고가 발생하고 캐서린 트레메인(바바라 오닐)은 간신히 목숨을 건집니다. 구급차 운전수인 프랭크(로버트 미첨)와 다이앤(진 시몬즈)은 이날 처음 만납니다. 다이앤의 아버지 찰스(허버트 마샬)는 작가였고 그는 부유한 캐서린과 재혼을 했습니다. 프랭크는 울고 있는 다이앤을 위로했고 다이앤은 그의 강직하면서도 따뜻한 모습에 반합니다. 다이앤은 프랭크에게 접근하고 프랭크는 애인 메리(모나 프리맨)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이앤과 오붓한 시간을 보냅니다. 다이앤은 다음 날 메리에게 연락을 하여 프랭크와 함께 보낸 사실을 이야기하여 메리를 프랭크와 떼어놓으려 합니다. 프랭크에게 집착하는 다이앤 때문에 메리와의 관계가 난처해진 프랭크. 병원 사무원인 메리와 부유한 집 딸 다이앤은 완전히 다른 부류였습니다. 프랭크는 다이앤의 권유로 트레메인 저택의 운전기사로 고용되고, 프랭크는 다이앤이 계모인 캐서린을 극도로 증오하는 것에 질려서 그녀를 멀리하고 메리에게 돌아가려 하지만 그 때 엄청난 사건이 터집니다. 다이앤과 프랭크는 살인 공모 혐의로 기소되는데 다이앤의 변호인으로 100% 승소로 이름이 높은 변호사 배럿이 선임됩니다. 배럿은 치밀한 두뇌로 재판을 유리하게 이끄는데....
기존 이 장르속의 팜므파탈은 남자를 이용해먹는 사악함을 드러내는데 진 시몬즈가 연기한 다이앤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녀는 부유한 집 딸이고 고급차를 몰고 다니지만 가진 것 없는, 장래 카센타를 운영하겠다는 소박한 야망을 가진 프랭크를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아빠를 사랑하는 만큼 계모를 증오합니다. 10살때 어머니를 여의고 친구도 없이 외롭게 자란 다이앤은 아빠가 삶의 전부였는데 캐서린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에 더욱 캐서린을 증오하죠. 결국 이런 상황에서 프랭크가 애꿎게 엮이게 되고 프랭크는 다이앤의 손길에서 빠져나가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습니다. 남자를 이용해먹고 버리는 다른 팜므파탈과 달리 다이앤은 더 이상 프랭크를 이용할 필요가 없음에도 그에게 집착합니다.
'천사의 얼굴'은 범죄영화면서 굉장히 집요한 로맨스 영화입니다. 프랭크를 향한 다이앤의 간절한 사랑이 계속되지요. 그리고 이건 프랭크, 메리, 다이앤 모두에게 불편함을 주지요. 사랑에 갈망하는 여자,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숨도 던질 수 있는 여자, 기존의 교활하고 영악한 팜므파탈과는 너무나 다른, 단순하고 직설적이고 치밀하지 못한 캐릭터가 다이앤입니다.
로버트 미첨과 진 시몬즈라는 우리나라에서 제법 인기가 있고 개봉작이 많았던 두 스타가 주연이고 오토 프레밍거 감독, 디미트리 티옴킨 음악인 흥미진진한 범죄물인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에 개봉이 안되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외화 개봉 전성시대인 50년대였음에도. 대체 왜 개봉이 안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부모를 살해하는 딸이라는 내용이 패륜적이라서 그랬을 것 같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정서로는 불편한 소재였을테니.
진 시몬즈는 수수한 얼굴로 등장하여 후반부로 갈수록 아름답게 빛납니다. 그야말로 순진한 천사의 얼굴을 한 여주인공이죠. 로버트 미첨은 건장하고 듬직한 체격으로 매럭적인 호남형의 이미지로 등장합니다. 대저택의 외동딸과 그집 운전기사로 취직한 가난한 젊은이의 위험한 사랑, '천사의 얼굴' 이라는 제목도 딱 적절하고 로맨스와 치열한 법정씬, 돌발적인 사건 등 흥미로운 요소가 많은 영화입니다.
ps1 : "당신 같이 아름다운 여자와 50만 달러를 포기할 젊은이는 아무도 없소" 프랭크가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다이앤에게 변호사가 자신있게 하는 말이죠. 그렇지만....
ps2 : 진 시몬즈는 이 영화에서 무난히 연기했지만 필름 느와르 영화에서 많이 쓰여진 배우는 아닙니다. 차기작 '비련의 왕녀 엘리자베스'나 '성의' 같은 영화에서 선역이었으니까요. 라나 터너나 리타 헤이워스 같은 요염한 팜므파탈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었고 선역이 어울리는 배우죠.
ps3 : 여성의 유혹에 걸려 파멸의 길을 가는 남자, 필름 느와르 영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소재지요. 그리고 상대가 막대한 상속녀인 미모의 진 시몬즈라면 어떻게 안 넘어갈까요?
[출처] 천사의 얼굴 (Angel Faec, 52년) 두 톱스타가 공연한 범죄 로맨스|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