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복음의 영혼들에게는 하나의 결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서로 통하여 생명의 교제를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미천한 자에게 하늘의 기쁨을 뿌려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주의 자비는 무궁합니다.
주의 성실함에 놀라고 또 놀랄 뿐입니다.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의 모든 일정 위에도 성령의 선하신 이끄심을 기대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2.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3.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
4. 사악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5.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
6.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7.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8.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본문 주해)
시편 101편의 표제어는 ‘다윗의 시’이며, 시의 주체는 통치 중에 있는 군왕이다.
1~4절 : 군왕이 자신을 스스로 가르친다.
“주님, 주님의 사랑과 정의를 노래하렵니다. 주님께 노래로 찬양드리렵니다.
흠 없는 길을 배워 깨달으렵니다. 언제 나에게로 오시렵니까? 나는 내 집에서 흠이 없는 마음으로 살렵니다.
불의한 일은 눈 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렵니다. 거스르는 행위를 미워하고, 그런 일에는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구부러진 생각을 멀리하고, 악한 일에는 함께 하지 않겠습니다.”(새번역)
왕은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인 인자(헤세드)와 정의(미쉬파트, 심판)를 노래한다.
그런데 인자와 정의는 상충하는 면이 있다.
법대로 하는 것이 정의이지만 법대로 하면 살아남을 자가 없기에 긍휼을 베풀어 주심을 인자라고 할 수 있다.
왕은 완전한 의인의 길로 행하나, 그가 탄원하는 것은 악한 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왕이 말하는 ‘내 집안’(2절)은 그의 통치 영역, 곧 여호와의 성(8절)이다.
시인이 묘사하는 이상적인 왕은 장차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예시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길(2,6절), 완전한 마음(2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에 대한 사랑과 심판이 공히 드러난 구원의 사건이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우리도 그와 함께 죽었다.(요12:32, 고후5:14) 이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된 것이다. 또한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그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요일4:9)
5~8절 : 왕의 통치 영역 안에 있는 자에 대한 왕의 처신이다.
“숨어서 이웃을 헐뜯는 자는, 침묵하게 만들고, 눈이 높고 마음이 오만한 자는, 그대로 두지 않으렵니다.
나는 이 땅에서 믿음직한 사람을 눈여겨보았다가, 내 곁에 있게 하고, 흠이 없이 사는 사람을 찾아서 나를 받들게 하렵니다.
속이는 자는 나의 집에서 살지 못하게 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앞에 서지 못하게 하렵니다.
이 땅의 모든 악인들에게 아침마다 입을 다물게 하고, 사악한 자들을 모두 주님의 성에서 끊어버리겠습니다.”(새번역)
두 집단이 왕의 통치 영역에 공존하고 있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숨어서 이웃을 헐뜯는 자, 눈이 높고 마음이 오만한 자, 속이는 자, 거짓말하는 자, 사악한 자’로서 그들은 악인들(8절)이다. 왕은 이들을 미워하고 멸하고 용납하지 아니할 것이다. 반대로 긍정적인 사람들은 ‘충성된 자,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이다. 왕은 이들을 구별하여 이들이 자신을 따르도록 하여 함께 다스린다.
그리하여 왕은 모든 행악자를 여호와의 성으로부터 끊어낸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시는 중요한 일을 여호와의 성이 예시하는 아버지 집에 거하는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는 아침마다 악인을 멸하시며, 행악자들을 여호와의 성(아버지 집)으로부터 끊어낸다.
경건한 왕은 오직 경건한 공동체 안에 계신다. 불경건한 자들, 악인들은 공동체에서 멸하며, 하나님의 성에서 분리된다.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형벌이며 저주이다.
그러나 주님께 성실한 자들과 마음이 바른 자들 즉 아들의 구속의 은총을 힘입은 자들은 아버지 집에 거하게 하신다.
아들 예수의 피를 힘입는 것은, 아침마다 자기 속의 악을 멸하는 것이다. 말씀 앞에 비추어진 죄악과 비참성을 드러내어 보혈로 씻는 자는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 집에 들어간다. 그는 아버지 집에 거하여 그분이 지으신 만물을 충만케 하는 복된 삶을 살아간다.
(나의 묵상)
성경에 나오는 의인은 다 교회에 충성하는 ‘나’같은 자이고, 악인은 교회일에 열심을 내지 않는 ‘저 누구’와 같은 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숨어서 이웃을 헐뜯는 자, 눈이 높고 마음이 오만한 자, 속이는 자, 거짓말하는 자, 사악한 자’로서 악인에 속한 자가 나 자신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악인이 바로 ‘나 자신’인 것을 알면 틀림없다는 복음 전도자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전에 그런 말을 들으면 ‘무슨 소리!’ 하면서 반발했을 것이나, 이제 매일 말씀 앞에 나아가니 천하에 나 같은 악인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는 짓의 동기와 마음의 생각이 빛에 드러나는 먼지처럼 뿌옇게 일어나는 것을 늘 분명히 보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주저앉힐 수도 없이 온통 풀썩이는 먼지요, 무엇으로 가릴 수도 없이 투명하게 보이니, 그 어떤 변명거리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나를 의인이라고 불러주시는 분이 계신다.
악인이요, 죄인일 뿐인 나는 너무도 어리둥절하다. (나를 잘 아는 가까운 사람들도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어찌 된 일인지를 주님께서 아침마다 말씀하여 주신다.
창세전에 나를 택하셨고, 믿음을 부어주셔서 복음을 믿도록 이끄신 분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신 것을 알게 하시고, 매일 그분을 주목하게 하신 것이다.
내가 착해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니고, 무슨 대단한 일을 행해서 된 것도 아니요,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믿음조차 내게서 발현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것인데도 말이다.
오늘날 나는 이 세상의 왕이신 주님의 통치 영역에 들어와 행복하게 사는 자가 되었다.
악인으로서 나는 그분의 영역에서 반드시 쫓겨날 자이지만, 주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를 누리면서 사는 의인이 된 것이다.
그 이후 의인은 세상을 주목하지 않고 주님을 주목한다.
오늘 눈에 띈 2절 말씀이 그것이다.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흠 없는 길을 배워 깨달으렵니다. 언제 나에게로 오시렵니까? 나는 내 집에서 흠이 없는 마음으로 살렵니다.”(새번역)
‘완전하고 흠없는 길’은 바로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요, ‘완전하고 흠없는 마음’은 십자가에 연합된 마음임을 생각한다.
내가 이 길을 주목하고, 이 마음을 흠모하게 된 것이 기적이다.
악한 죄인이었던 자가 십자가를 주목하며, 그에 연합되고자 하니 이것이 어찌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태일까?
오직 매일의 말씀에서 함께 하시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니 나는 무지무지 기쁘다.
이제 근엄하고 무겁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일을 기대하는 자가 아니라, 한없이 자유한 마음으로,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는 자가 된다.
왜냐하면 주님은 십자가에서 이미 이 모든 일을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 일들이 언제쯤, 어떻게 생생하게 펼쳐지는가만을 기대하게 된다.
최종 승리를 아는 운동 경기의 재방송을 느긋하게 보는 기분으로....
완전한 길을 주목하게 하시고, 완전한 마음을 흠모하게 하시는 성령님께 감사를 드린다.
(묵상 기도)
주님,
아들의 보혈을 힘입어 아버지 집에 거하는 자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버지 집에 거하는 자는 당연히 십자가의 길을 사모합니다.
그 길이 주님 가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스스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그 완전한 길과
스스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그 완전한 마음을 주목합니다.
이렇게 주목하게 하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께서 다 허락하실 것을 믿습니다.
성령님,
저의 온몸과 마음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