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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없다' 출판, 판매금지가처분신청(1) | ||
출생과 병역 부분에서 황당한 내용으로 조작된 이명박 자서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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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미래당 총재, j-m-y8282@hanmail.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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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미화 부분 자서전에 나타난 병역부분은 극도로 미화돼 있습니다. 리어카를 끌다가 너무 힘이 들어 공백기를 갖기 위해 군대에 들어가려고 자원입대하였으나 군의관으로부터‘이렇게 망가진 몸’은 군대에서 받아줄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병역이 면제되었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남들은 있는 줄 없는 줄 다 동원해서 부정적인 방법으로 군대를 기피하는 마당에 이명박만은 군대에 가고 싶었어도 가지 못했다는 아름다운 줄거리로 쓰여진 것입니다. 이는 사실과는 너무나 다르게 미화돼 있습니다. 4. 자서전 내용#4 “아무리 젊은 나이라 해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감당하기 버거웠다. 나는 군 입대를 탈출구로 삼았다. 의식주 걱정은 안 해도 되고,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면 정신적 여유도 생길 것이었다. 재충전할 수 있는 당 하나의 방법이었다. (중략) 2학년1학기를 간신히 마치고 나는 자원입대했다. (중략) . 군의관은 내 몸 여기저기에 청진기를 들이댔다. ‘네 몸이 어떤 상태라는 걸 모르고 여길 왔는가?’ (중략) . 쯧, 너 임마 이런 몸은 군대에서도 안 받아 줘. 도대체 나이 스물밖에 안 되는 놈이 몸을 어떻게 글렸기에 이 모양이야, 정밀검사 받아 봐.’ 정밀검사 결과 내 몸은 정말 엉망이었다. 그 중에서도 기관지가 형편없이 늘어져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병명이 기관지 확장증이었다. (중략) 군의관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관지 확장증은 근본적인 치유가 불가능하다. 과로하면 열이 심해서 훈련을 받을 수가 없다. 게다가 축농증도 악성이다. 그 몸을 끌고 지원하다니 군을 무슨 요양소로 알고 왔나?’ 나는 논산훈련소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고 쫓겨나왔다. 남들은 있는 줄 없는 줄을 동원해 군에 안 가려고 하는 마당에, 나는 군에 가고 싶어도 병들어 가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중략) . 훈련소에서 쫓겨나온 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입원했다. (중략) . 어느 정도 회복되어 한 달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자서전 64-65쪽) 거짓내용 #5: “2학년1학기를 간신히 마치고 나는 자원입대했다. (중략) 군의관은 내 몸 여기저기에 청진기를 들이댔다. ‘네 몸이 어떤 상태라는 걸 모르고 여길 왔는가?’ . (중략) 쯧, 너 임마 이런 몸은 군대에서도 안 받아 줘. 도대체 나이 스물밖에 안 되는 놈이 몸을 어떻게 글렸기에 이 모양이야, 정밀검사 받아 봐.’ 정밀검사 결과 내 몸은 정말 엉망이었다. 그 중에서도 기관지가 형편없이 늘어져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병명이 기관지 확장증이었다. (중략) . 군의관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관지 확장증은 근본적인 치유가 불가능하다. 과로하면 열이 심해서 훈련을 받을 수가 없다. 게다가 축농증도 악성이다. 그 몸을 끌고 지원하다니 군을 무슨 요양소로 알고 왔나?’ 나는 논산훈련소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고 쫓겨나왔다. 남들은 있는 줄 없는 줄을 동원해 군에 안 가려고 하는 마당에, 나는 군에 가고 싶어도 병들어 가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중략) . 훈련소에서 쫓겨나온 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입원했다. (중략). . 어느 정도 회복되어 한 달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거짓이유: 위 글은 이명박의 병역사항에 관해 쓰여진 자서전에서의 유일한 글입니다. 이 글에는 이명박은 군대에 가고 싶어 했는데도 불구하고 고생으로 인해 중병이 들었기 때문에 부득이 면제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사실과는 달리 이명박을 매우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들을 살펴보면 이명박의 병역부분은 ‘의혹’의 차원을 넘어 ‘확실한 병역부정’으로 생각될 만큼 황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2학년 1학기에 자원입대했다는 말은 거짓이며, 이는 의도된 거짓으로 보입니다. 이명박은 1962년(2학년)에 입대한 것이 아니라 1963.8.15에 입대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이명박이 스스로 밝힌 자료와 병무청자료에서 확실히 밝혀진 사실입니다. 갑9호증 제3쪽에는 1963.8.15에 논산훈련소에 자원입대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갑제10호증 1쪽에서도 1963.8.15로 되어 있습니다. 병무청 기록에도 같은 내용으로 기록돼 있습니다.(갑5, 131쪽). 오래 된 역사를 회상하는데 1년 정도는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숨기고 싶어 하는 의도가 개입됐을 것이라는 게 신청자의 판단입니다. 만일 이명박이 그가 3학년이었던 1963년에 훈련소에 입대했다는 사실을 사실대로 자서전에 쓰면 그 후의 이야기들이 뒤틀리게 됩니다. 저서전의 말대로 이명박이 논산훈련소에서 쫓겨난 후 곧장 1개월간 입원을 했다면 그날은 1963년 9월 15일 경이 됩니다. 그런데 갑제7호증으로 제시된 1963.9.21.자 고대신문을 보면 1963년 9월경, 이명박이 이미 상과대학 학생회장 후보자로 등록돼 있었습니다. 단과대학 학생회장에 출마하려면 과대표에 먼저 당선돼야 합니다. 이는 이명박이 9월 중순 이전부터 이미 선거운동을 했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자서전 제68쪽을 보면 “나는 누구에게도 의논하지 않은 채 등록부터 해놓은 뒤 고향친구들을 만났다. 이태원의 허름한 대폿집에서 막걸리 잔을 돌리면서 내가 출마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자(하략)”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1963.8.15에 기관지 확장증 고도와 악성축농증을 앓아서 병역까지 면제받고 곧바로 병원에 가서 1개월간 있다가 동년 9.15.경에 나왔다는 사람이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대포를 마시고, 연일 소리를 질러가면서 선거연설을 한 후, 학생회장 선거에 당선됐다는 것은 무협지보다 더 황당한 일입니다. 이런 왕성한 활동과 음주는‘기관지확장증 고도’와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반 국민은 ‘기관지확장증고도’가 무슨 병인 잘 알지 못합니다. 여러 의사들에게 일일이 물어보니 당시 ‘기관지확장증 고도’라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확률이 매우 낮다고 말합니다. 숨이 가쁘고, 온몸이 들썩일 정도로 기침을 심하게 하고, 가래를 뱉어내기에 여념이 없으며, 심해지면 수술을 해서 목에 구멍을 내는 무서운 병이 바로 ‘기관지확장증 고도’라는 것입니다. 야후 백과사전(갑12)을 보면 이렇게 설명돼 있습니다. “기관지가 원기둥 모양 또는 주머니 모양으로 확장됨에 따라 일어나는 호흡기 질환이다. (중략) 주요 증상으로는, 대량의 고름성 담(痰)이 나오고, 때로는 객혈(喀血)을 하며 국소성 폐렴이 되풀이되기도 한다. 확장된 기관지 내에는 분비물이 고이기 쉬우며, 배출되기가 어렵다. 일어날 때나 자세를 바꿀 때 기침과 함께 대량의 객담을 하는데 1일 수백㏄가 될 때도 있다. 담의 저류는 세균감염의 원인이 되고, 발열·식욕부진·체중감소 등을 볼 수 있으며, 때로는 폐렴이나 흉막염(胸膜炎)·농흉(膿胸) 등을 불러일으킨다. 치료로는 담의 배출을 촉진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흡입요법이나 거담제(去痰劑)의 복용, 또 담이 배출되기 쉬운 자세를 취하는 체위배담법(體位排痰法)을 행한다. 그 밖에 병소가 국한되어 객담량이 많고 혈담(血痰)이나 객혈이 반복될 때에는 수술에 의한 절제가 행하여진다.” 이는 자연 치유될 수 있는 병이 아니며 술과는 상극이라 합니다. ‘기관지확장증 고도’가 되면 자각증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병에 대한 공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성 축농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한 ‘악성축농증’을 앓는 사람역시 나오는 누런 코를 주체할 수 없어 하고, 골이 쪼개질듯 아픈 등 고통에 시달립니다. 이 두 가지 병을 동시에 심하게 앓고 있는 사람이 자각증서를 느끼지 못하고 군대에 자원입대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상식입니다. 또한 자서전 72쪽에는 63사태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이 계획의 수립과 전달은 당국의 감시를 피해야 했으므로 은밀하게 추진되었고, 나는 그 중심에 있었다. . .고려대학교의 이명박, 이 경우, 박정훈 등을 이날 소요의 주동자로 지목해 수배령을 내렸다. 길고 어두운 도피의 나날이 시작된 것이다.” 1963.3.28.자 고대신문(갑8)에 의하면 동년 3월26일 하오 7시에 한일외교 정상화 반대를 위한 좌담회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이는 6.3사태에 대한 준비가 3월에도 경찰을 피해 진행됐다는 뜻입니다. 63년 8월15일에 고도의 기관지확장증과 악성 축농증을 앓았다는 사람이 1964년 3월부터 6.3사태의 중심에 서서 사태를 주도했다는 것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2006.11.27. 이명박이 스스로 밝힌 병역자료(갑10, 2쪽 제2항)에서 이명박은 1963.8.15.에 “고도의 기관자 확장증”과 축농증이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해명했습니다. 2007.2월호 신동아(갑제5호증, 131쪽)에도 똑같은 병무청 기록이 있습니다. 위 자서전에는 그냥 축농증이 아니라 악성 축농증이라고 표현돼 있습니다. 병무청 기록을 보면 1961년 갑종, 1963년 입대 후 귀가(질병), 1964년 징병처분 미필, 1965년 병종(활동성 폐결핵 및 기관지 확장증)(갑5,131쪽)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이명박은 1961년에 갑종판정을 받은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은 자서전에서 이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자신은 군대에 그토록 가고 싶어 했는데 리어카 노동 때문에 몸이 쇠약해진 것으로 미화했습니다. 그리고 갑종판정을 받은 지 2년 만인 1963년8월15일에 자원 입소했습니다. 2년 전에도 갑종합격판정을 받았을 만큼 건강했던 그가 1963년에 자진해서 입소를 했다면 그는 그 자신을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 건강이라면 군대생활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입소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신체검사에 임해보니, 기관지 확장증도 경도나 중도가 아니라 고도(최악)로 판정이 났고, 축농증도 매우 심하다는 ‘악성’으로 판정이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죽을병으로 알려진 '고도의 기관지확장증과 공포의 대상인 '악성충농증'을 동시에 앓고 있던 사람이 자각증세를 느끼지 못한 채 군대생활을 하겠다고 자원입대했다는 것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것과 같은 거짓으로 보입니다. 병역의혹에 대한 이명박 측의 변명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는 불합격 판정을 받은 사실에 대해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남들은 있는 줄 없는 줄을 동원해 군에 안 가려고 하는 마당에 나는 군에 가고 싶어도 병들어 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에 병역을 면제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사회분위기였다는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당시는 군을 면제시켜주는 브로커들이 흥성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은 2006.11.27. 기자회견에서‘병무청은 절대로 부정을 저지를 수 없는 기관’이라고 아래의 인용구에서처럼 항변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진단서를 제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징집 면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병무청에서 이틀간 실시한 공식적인 신체검사 절차 내에서 징집면제사유에 해당하는 질병이 발견되어 면제판정을 받았으므로 사적인 요소나 부정이 개입될 소지가 전혀 없었음”(갑10, 제2쪽 하단) 그렇다면 자서전에서 쓴 “남들은 있는 줄 없는 줄 다 동원해 군에 안 가려고 하는 마당에 나는 군에 가고 싶어도 병들어 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자서전에서는 당시에 병역비리가 있었는데 자기는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놓고, 갑10의 해명서에서는‘병무청에서 받았으니 부정이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자서전에서 했던 자랑을 그 스스로 뒤집은 것입니다. 병무청 기록에는 “1964년 징병처분 미필”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에 대해 2006.11.27.자 기자회견 자료(갑10, 2쪽 중간)가 있습니다. 기자: “병적기록상 1964년에 ‘법 제35조 징병처분미필’로 기재된 것은 이 전 시장이 고의로 신체검사를 회피하였다는 의미가 아닌지” 이명박 측 해명: “1964, 상반기에 병무청이 지정한 재신체검사 기일에 응하지 못한 것은, 귀향조치 이후 1963.4학년 2학기 연말에 실시된 상과대학 학생회장 선거에 당선되면서 1964,부터 학생회 활동을 주도하였고, (중략) 한일국교정상화활동에 매진하고 있었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일 뿐 병역을 기피할 의도는 추호도 없었는데 (하략)” 이명박 측의 해명을 보면 이명박이 1964년 상반기의 신체검사에 응하지 않은 것은 6.3시위의 중심인물로 시위 준비를 주도했기 때문이고, 이는 불가피한 사정에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1964년도 2월의 매일신문을 보면 1964.2월, 경상북도병무청장 명의의‘징병검사실시공고’라는 광고문(갑11)이 있습니다. 영일군은 1964년 3.15-3.30 기간에 징병검사를 하도록 공시돼 있습니다(갑11.제1쪽). 1964.3.28.자 고대신문을 보면 이명박은 동년 3월26일에 한일회담반대를 위한 좌담회를 열고 있었습니다(갑8). 데모 준비를 위해 징병검사에 응하지 않은 것입니다. 데모를 위해 징병검사에 응하지 않는 것이 무슨 ‘불가피’한 일이고 ‘정당한 일’이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해명이 이 정도라면 국가적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명박의 병무청 기록을 보면 1965년 병종(활동성 폐결핵 및 기관지 확장증)(갑5,131쪽)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병역의혹에 대해 이명박 측이 스스로 해명한 자료(갑10, 제2쪽)에는 이렇게 해명돼 있습니다. “1965.3.29. 재신체검사시 보건소에서 촬영한 X-ray상으로 이상이 발견되어 지정병원 포항영남병원에서 정밀촬영한 결과 ‘폐활동성결핵경도 양측’‘기관지 확장증 고도 양측’이 발견되어 3.30. 내과군의관이 3(병종) 판정을 하였고. 당시 시행되고 있던 ‘병신체검사기준표’ 상으로 ‘기관지 확장증 고도’는 3 즉 징집면제 사유로 규정하고 있어 판정관이 이를 근거로 병종 즉 징집면제로 최종판정 하였음” 1965년에 군의관으로부터 기관지 확장증 고도와 활동성 폐결핵 판정을 받은 사람이라면 곧바로 전격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기관지 확장증에 대해서는 전술한 바 있습니다만 활동성 폐결핵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폐결핵은 감염성이 대단하므로 식구들까지도 접근하기를 피하는 병입니다. 가래를 수시로 뱉어내고, 얼굴이 노랗고, 기침을 하는 등의 증세를 보이는 병이기 때문에 타인들도 쉽게 알아보고 접근을 피하는 몹쓸 명이었습니다. 당연히 격리수용하여 치료를 하는 병이었으며 1960년대에는 죽음의 병이었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의학 상식입니다. 어느 의학 전문가가 전해온 갑13에는 폐결핵 치료제의 발달사가 잘 요약돼 있고, 이 글들은 의학사전과 의학지 등으로부터 발췌한 것들입니다. 전문가의 요약분은 이러합니다. “당시에 폐결핵은 불치병에 가까웠고 고친다 해도 (선진국에서도) 1년6개월이상 치료기간이 필요했던 질병이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 당시 선진국에서는 환자가 입원한 상태에서 스트렙토마이신과 아이나(이소니아지드) 그리고 pas( para-aminosalycilic acid )로 치료를 했는데 스트렙토마이신은 주사제로 써야 했으므로 환자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고 pas는 액체로 많은 양을 투여했으므로 환자가 구토를 하는 등 문제가 많았습니다. 당시 영미 선진국에서도 폐결핵은 이 3가지 약제를 사용하여 1년6개월이상 치료를 해야 치료가 가능했던 질병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가난한 후진국이었기에 폐결핵은 곧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습니다. 여기까지를 보면 1965.3.30.에‘기관지확장증고도’와 ‘활동성폐결핵’진단을 받은 이명박은 병원 등에서 생과 사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병마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자서전을 보면 그는 신체검사장을 나오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정상인 이상의 건강을 자랑하며 같은 해 4월에는 대구의 모 섬유회사에 취직하여 사장으로부터 가정교사를 겸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가 한 달 만에 서울로 올라와 1965.7.1부터 현대건설에 출근했고, 그해 여름에는 정주영회장과 28명의 신입사원들이 벌인 술 마시기 대회에서 천하장사를 했고, 기관지확장증과 폐결핵에는 독약으로 알려진 콘크리트 가루와 흙먼지를 마셔야 하는 건설현장에서 근무했고, 자서전 내용대로 섭씨 40도가 넘는 열사의 나라 태국과 중동 등 세계 각곳을 누비며 입사 11년만인 1977.1.1에 현대건설 사장으로 약진한 신화를 이룩했습니다. ‘기관지확장 고도’와 폐결핵은 술, 먼지, 콘크리트 가루가 독약입니다. 그런데 이명박은 ‘해외건설에 나가 일할 역군’을 모집한다는 광고 문안에 현혹되어 취업원서를 냈다고 합니다. 그는 폐병환자도 아니었으며, ‘기관지 확장증 고도’도 아니었습니다. | ||
이를 뒷받침하는 그의 자서전 내용을 아래에 열거합니다. 1) “대학을 졸업하고 몇 군데 학교에 입사시험을 치렀지만 번번이 2차 사루전형이나 면접에서 떨어졌다. . . .입사시험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던 나에게 대학교에서 일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대구에 있는 작은 섬유업체였다. . .이군, 회사일을 하면서 내 자식 공부 좀 가르쳐 주게.” 출근한지 나흘째인가 되는 날, 사장은 나를 불러 가정교사도 겸해 달라고 부탁햇다. . . 나는 내려온지 한달 만에 대구를 떠났다. . . 신문 한 구석에 내 눈길을 끄는 작은 광고가 하나 있었다. ‘해외 건설 현장에 나가 일할 역군 모집’. . .그 광고가 눈에 들어온 까닭은 기업의 규모가 아니라 해외로 나간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가 현대건설에 원서를 낸 것은 1965년5월, . . 우여곡절 끝에 1965년6월에 면접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7월1일부터 출근할 것. 1주일 뒤에야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 내가 배치된 부서는 본사 공사관리부였다. 여기서 9월까지 3개월 근무했다.“(저서전 87-92쪽) 2) “그해 여름 강릉에서 열린 신입사원 연수회에서였다. . .우리 때에는 28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뽑았다. . .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씨름도 하는 ‘통과의례’였다. ‘자, 우리 이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자. 남자는 풍류가 있어야 해. 저 달이 질 때까지 마시는 거야.’ 정사장은 소주잔을 높이 들었다. ‘취한 놈들은 뒤로 빠져라. 계속 술을 돌리며 마시는 거다.’ . . 이 모와 나 둘만 남았으나 이 모는 더 이상 마시지 않았다. 달이 지도록 마시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 혼자 잔을 들고 있었다.”(자서전 94-95) 3) “10월 초에 나는 처음으로 현장관리를 맡아 나갔다. 진해 제4비료 공장 건설현장이었다,”(자서전 96쪽) 4) “ ‘이군은 타이 현장으로 간다. 즉시 본사로 올라와야겠어‘ 진해 현장에서 근무하던 12월초, 본사에서 정사장이 전화를 걸어왔다.”(자서전 98쪽) 5) “서른다섯 살짜리 사장” (자서전 129쪽 제목) 그의 자서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명박은 1961년 병역 신체검사에서 갑종을 받았고, 1963년도에는 치열한 학생회장 선거전을 치르고 당선되었으며, 1964년 봄에는 가장 건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6.3데모를 주동했고, 경찰을 피해 도피생활을 했고,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현대에 들어가 술의 천하장사가 됐고, 수많은 외국 땅에서 기염을 토하며 일한 결과 승승장구 하여 자신이 어째서 유독 신체검사만 하면(1963년 및 1965) “고도의 기관지 확장증”이 나오고, “악성 축농증”이 나오고 “폐결핵”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까? 이런 의혹덩어리의 사실을 숨겨놓고 이명박은 그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이명박은 스스로를 병역에서 깨끗한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미화시켰습니다. 그의 자서전과 객관적 사실들을 연결해 보면 이는 만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지, 실화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믿어지는 이야기들입니다. 자서전의 병역부분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거짓으로 미화돼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1965.3.30. 정밀검사 결과 ‘폐활동성결핵경도 양측’‘기관지 확장증 고도 양측’이라는 진단을 내렸다는 ‘포항영남병원’은 어떤 병원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글을 첨부합니다. 1960년대 ‘극동방송 체험수기 당선작’“사모이야기”“이것이 나의 간증이요”(이옥희지음)를 보면 ‘포항영남병원’이 어떤 병원이었나를 대체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 병원(포항영남병원)에 주사를 놔주는 남자간호사가 있었어요. 입원환자들은 약 10여명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간호사도 구원을 받고 홍 현제가 되었어요. 그때에는 병원이 옛날 집으로 빙 둘러 있어서 환자들이 서로 내다볼 수 있었어요. 그 형제가 아침마다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하면서 주사기를 들고 다녔어요.”(갑14). 당시의 포항영남병원은 입원환자 10여명, 마당을 가운데 두고, 문을 열면 반대편 환자를 마주 볼 수 있을 정도, 남자간호사가 찬송가를 부르며 주사를 놓고 다녔던 정도의 그야말로 목가적인 시골 병원이었습니다. 5. 자서전 내용 #5 거짓내용#6: “1964년 6월말에 들어간 서대문 형무소 생활은 그해 10월 말에 끝났다.”(자서전 72쪽) 거짓이유: 갑제6호증 고대신문에 의하면 이명박은 자서전에서처럼 10월말에 형무소를 나온 것이 아니라 10.1일에 나왔습니다. 실제 감옥생활은 3개월간 했는데 4개월간 한 것으로 기술해 놓았습니다. 당시의 운동권 출신들은 감옥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평가가 올라갔습니다. 이는 작아보이지만 그가 자서전을 함부로 썼다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대선주자가 자서전을 부정확하게 쓴 것도 선거전에서는 충분한 흠결사항입니다. 결 론 이명박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는 출생과 병역 부분에서 황당한 내용으로 조작-미화돼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거짓 미화된 이 책을 읽고 이명박을 지지합니다. 이는 선거법 위반이요 대국민 사기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즉시 그 출판과 판매가 중지돼야 할 것입니다. | ||
첫댓글 판매 가처분신청 돼있나여? ...연대서명해서해야되면 그렇게라도 해야죠~
거짓인 책자가 출판되면 안되는것이죠....
참 나쁜 명바기네요
양심도 없나봐요 싯체말로 쪽팔려요
당연...전부가 거짓말 투성이니...
많은 연구 노력에 감탄합니다.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을 경우 한나라당에서 또 실폐내요

이런것도 모르고 ......답답한 국민들이군요


좋은 자료 잘읽었씁니다


한나라당은 검증 철저히 해야한다. 명박상 근혜님 선거운동하고 다니는데 뒤에서 또 무선 음모꾸밀지 이젠 아니올시다.
어찌 이렇게 사기투성이로 살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기꾼이 따로 있을까요? 이런 인간이 사기꾼이지..... 어떻게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 뿐인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네요. 이명박은 즉각 경선후보군에서 사의를 발표하라.
병이들어 군에도 안받주는 이명박을 우리국민이 대톨령으로 받아줄가? 쑈를 해도 정도가 있지 이사람아 한나라당도 맹바기을 후보로보내면 집권 못한다 손학규메로 이명박이 공천못받으면 탈당해도 박근혜는 당선된다 다른 당에서도 상대가 이명박보다 박근혜가 더 어렵게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