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
정익진
헤드기어를 쓴다. 마우스피스를 낀다. 언변이나 표정 관리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볼이 쏙 들어가 볼에 빗물이 고이면 난해한 경로를 통하여 특효약을 구해온다. 안면도 없는 신들에게 전화 연락도 한다.
몰래 계단을 오르며 근력을 키운다. 스케이팅하거나 스노보드를 탈 순 없지만 가운의 깃에 깃을 꽂고 날[刃]을 간다. 갈아준다.
아침엔 타조의 깃, 오후에는 백조의 깃이고 저녁엔 공작의 깃털이다.
혼혈 천사처럼 주문을 외며 그 문을 열었을 때 그들은 완전하다. 그 순간만큼은 하얀 성채의 중심 세력, 길고긴 바늘을 뼛속 깊숙이 찔러 탄력성을 주입한다.
막간 시간이다. 밖으로 떠도는 나무와 꽃들을 불러 모은다. 꽃목걸이를 만들거나 나뭇잎을 닦아주며 그늘에 관한 노래를 작게 불러본다. 바다가 보이는 커다란 창문을 향하여 입술 던지기 시합도 한다. 가장 큰 입술이 우승이다.
까르르, 잠시 과장된 웃음 짓다가 영원히 슬퍼진다. 치명적 슬픔이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포도송이가 터진 가슴속에 담아두어야 한다. 고기를 먹어봐야 얼마나 더 먹겠느냐고 반문한다.
네, 잠시만요, 여름 해변을 가져다드릴게요 그래요, 잘하고 있어요, 눈이 올 때까지 좀 더 기다리셔야 합니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헤드기어를 벗고 마우스피스도 뺀다. 화장을 고친다. 형광등이 깨어져 유리 조각이 바닥에 흩어진 탕비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다시 흐느낀다. 규칙적으로 흐느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계간 《시와사상》 2023년 봄호 --------------------- 정익진 / 1957년 부산 출생. 1997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 시집 『구멍의 크기』 『윗몸일으키기』 『낙타 코끼리 얼룩말』 『스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