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편지를 받은 아버지는 답장을 씁니다. 아버지의 답장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반가움과 그리움을 짐짓 억누르고 끝맺습니다.
"…아들아, 이만 줄인다."
대체 이게 언제 적 풍경이냐고요?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전 모습입니다.
요즘에는 이렇지 않습니다. 군대 간 아들에게 아버지가 편지를 먼저 쓰고, 군인 아들은 답장을 씁니다.
증거를 보여드리죠. 부산발전연구원 황영우(도시계획학 박사) 선임연구원이 아들 윤상 씨와 함께 얼마 전 펴낸 책 '637'(도서출판 다찬)은 윤상 씨가 군에 복무한 637일간 부자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것입니다.
장건조(왼쪽) 화백이 아들 진혁 씨의 군 생활을 그림편지 형식으로 엮은 '아들아'. 그림은 박재동 화백이 그린 작품.
"황윤상 훈련병! 잘 적응하고 있나?
오늘 오후에 편지 작성이 가능하다는 문자를 받고 급한 마음으로 자판 두드린다. 벌써 5일이 지났네. '아들 데려가세요'라고 전화 안 오는 것 보니 그럭저럭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빠가 날씨에 이렇게 관심 가져보기는 처음이야."(2013년 8월 23일 첫 편지) '아들'과 '아빠'라는 낱말만 달리 바꾸면, 친구나 애인 편지라 해도 믿겠습니다.
닷새 뒤 황 박사는 또 편지를 씁니다.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 민제가 한성그룹 회장이 되었다가 망해가는 전개와 프로야구 롯데 손아섭의 타율이 3할5푼2리라는 깨알정보를 전하더니, 편지 막판에 슬쩍 진심 어린 당부도 합니다. 군대 다녀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언입니다. 형식이 아들 이름으로 지은 삼행시라는 점은 독특합니다.
"황, 황금 같은 시기 썩는다고 생각 말고. 윤, 윤택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새로운 시간과 공간임을. 상, 상당히 말은 좋으나 이 시간 빨리 무탈하게 지나가길."
청년들이 아픈 시대입니다. 무한경쟁, 청년실업, 비정규직, 열정페이, 헬조선, 금수저·흙수저…. 청년 세대를 둘러싼 우리 사회 유행어만 살펴도 이들이 얼마나 힘겨운 상황에 처했고 절망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짐작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들 세대 못지않게 힘든 시절을 살아낸 아버지들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갈 날을 무수히 앞둔 아들 세대를 위해서입니다. 군대 간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거나 소통하면서, 이를 책으로 펴내는 최근 흐름이 눈길을 잡습니다.
경영전문가 공병호 박사가 쓴 '공병호의 군대 간 아들에게'는 2013년 5월에 나왔는데 올해 2월 4쇄를 찍는 인기를 누리는군요. 부산의 장건조 화가는 군에 간 아들에게 보내는 그림과 편지 모음 '아들아'를 내 청년세대를 격려합니다.
올해 나온 비슷한 범주의 책만 꼽아도 '군대야 아들을 보낸다'(윤상복) '아들과의 행복한 동행'(이형우) '작전명령 640-아버지와 군대 간 아들, 편지를 주고받다'(김성태 김영준) 등 적지 않습니다.
무언가 가르치지 않아도, 군대라는 특수한 곳에 있는 아들과 소통하는 행위 자체가 큰 힘과 위안이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출판가에는 이런 흐름을 이어 '아들아 서른에는 노자를 만나라' '아들아 너만 봐라-월급쟁이 노하우 100' 같은 책이 잇달아 나옵니다.
피 끓는 청년 시절, 힘든 군대 시절을 지나 사회라는 전쟁터에서도 잘 살아낸 아버지들, 살아갈 아들을 위해 편지를 써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