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0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전삼용 신부
<주님 앞에 나설 힘을 지니려면> 오늘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마지막 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심판관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실에 따라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일일이 심판하신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이미 우리는 양이나 염소로 바뀌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분이 심판하시기 이전에 우리는 심판 받았습니다. 마치 오징어잡이 배의 환한 불빛이 이미 나뉘어 있는 오징어와 다른 물고기들에게 심판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오징어처럼 빛을 좋아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명이 나오는데, 한 명은 구원을 못 받고 한 명은 받습니다. 어떻게 두범죄자가 하나는 구원되고 하나는 구원되지 못했을까요? 한 죄수는 예수님께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 23,39)라고 말합니다. 메시 아로 믿어도 그분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구원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메시아의 위에 서서 이래라 저래라하는 사람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더라도 그분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구원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 다른 죄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1-42) 이 죄수는 구원해 달라고 청하지 않습니다.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청하는 것과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청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구원해 달라고 청한 죄수는 그에 합당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기억해 달라고 청한 죄수는 그에 합당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위해서는 두 방법이 있습니다. 상처를 주거나 고마운 일을 하거나. 제가 신학생 때 유학을 떠날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제 가슴을 꼬집어 상처를 낸 자매가 있었습니다. 엄청 아프게 꼬집어서 손톱자국과 벌건 멍까지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일은 기억나는데 그렇게 한 자매는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다음에 만난 적이 거의 없어서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공항까지 따라 나온 자매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한 번도 다시 만난 적이 없는 사람까지 거의 기억에 남습 니다. 아마 제가 악한 사람이었으면 아픈 것을 더 기억하려 했을 것입니다. 반면 굳이 아프게 한 사람을 기억하며 속 썩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 금방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 저에게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상처를 주며 기억해 달라는 방법을 취한 사람보다는 고마운 일을 한 사람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마지막 때 예수님 앞에 설 힘이 없을 것입니다. 구약의 야곱을 생각해보십시오. 형의 축복을 가로채고 어찌 쉽게 형 앞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쫓기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그분 앞에 나설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 방법은 오늘 구원받은 죄인처럼 주님께 고마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잊는 일이 있는데, 오늘 예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 을 얻은 죄수는 예수님께 고마운 일을 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변호한 것입니다. 그분을 모독하는 죄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루카 23,40-41) 그분이 우리를 변호하시도록 우리도 그분을 세상에서 변호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때 그분 앞에 설 힘을 얻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할 때 주님께 저를 불러 주신다는 증거를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성당에 올라갔을 때 성모님이 진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감히 그분의 얼굴을 쳐다 볼 용기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냥 무릎을 꿇고 바닥만 내려다보았습니다. 가끔 그분의 발가락이나 보며 그분이 가셨는지 안 가셨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때 그분 앞에 설 아무 일도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성당에서 많은 봉사 를 하였지만, 그런 것으로는 성모님 앞에 설 힘도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분 앞에 서려면 죽기까지 당신 아드님 을 변호한 고마운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 앞에 설 힘을 얻으려면, 내가 고마워할 무슨 일이라도 하여라!” 유튜브 채널 ‘From SOLA’에서 감동적인 영상을 보았습니다. 암에 걸려 머리를 밀고 돌아온 주인을 본 반려견의 반응입니 다.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아서 반려견은 주인을 안아줍니다. 물론 다른 반려견은 3년 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고 길러준 주인 을 못 알아보고 짖기도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분이 고마워할 만한 무엇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께서 해 주신 엄청난 사랑 앞에서 견딜 수 있습니다. 그분이 왕으로 우리 앞에 오실 때는 우리는 더는 그분께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처지가 안 됩니다. 반면 지옥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앞에서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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