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amarkand – Oriental Deep House
with Oud & Violin (Official Instrumental Video) | Zenith Tune
사마르칸트 Samarkand
중앙 아시아에서 오래된 도시들 중의 하나이다. BC 4세기에는 마라칸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소그디아나의 수도로 BC 329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점령되었다. AD 6세기에는 중앙 아시아 투르크인, 8세기에는 아랍인, 9~10세기에는 이란의 사만 왕조, 11~13세기에는 투르크계 종족들의 지배 아래 있다가 13세기에 콰레즘 왕국에 합병되었고 1220년에는 몽골의 정복자 징기스칸에게 점령되었다.
1365년 몽골 통치자들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후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티무르는 공공집회를 할 수 있는 모스크인 비비카놈과 자신의 능묘를 세우고 사마르칸트를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문화 중심지로 만들었다. 1500년 우즈베크인들에게 정복되었고 부하라 칸국의 영토가 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서 쇠퇴했으며 1720~70년대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1887년 러시아 제국에 속한 지방의 행정중심지가 되고 철도 중심지가 된 뒤에야 경제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1924~30년에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였으며 1938년 사마르칸트 주의 주도가 되었다.
고대와 중세에는 중국과 인도에서 연결되는 교역로들의 교차점으로서 상업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7~18세기 무렵에는 쇠퇴했으나 1896년 철도가 들어오면서 중요성이 커졌고 그이후 포도주, 말린 과일과 신선한 과일, 목화, 쌀, 견직, 가죽 등의 중요한 수출 중심지가 되었다.
주요산업은 견직·견방적, 과일통조림·포도주·의류·가죽·신발·담배 제조업 등 주로 농업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밖에 트랙터와 자동차 부품제조, 영화제작용 기구생산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학교(1933)가 하나 있고 농업·의학·무역을 가르치는 고등교육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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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중세 건물인 비비하눔 모스크
우즈베키스탄의 도시. 수도 타슈켄트에 이은 제2의 도시로[1] 중앙아시아의 역사적인 도시로 유명하다. 도시의 어원은 '돌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수도 타슈켄트와 유사하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지점인 트란스옥시아나의 중심 도시로서 장안,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함께 실크로드 하면 떠오르는 도시다. 현재 남은 중앙아시아의 도시 중 가장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다. 대략 4천 년 전부터 그 지역에서 인류가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문헌 사료에서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3세의 동방 정복 시기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그리스, 로마의 기록에는 마라칸다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이는 소그드어 아스마라칸드(Asmarakand)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스마라(Asmara)는 돌 혹은 바위, 칸드(kand)는 성채 혹은 도시를 가리키며 발음이 약간 변하여 오늘날의 사마르칸트가 되었다.
고대의 사마르칸트는 상인 민족으로 유명한 소그드인들의 중심지였으며 실크로드의 가장 중요한 중간 기착지 중 하나였다. 소그드인들은 사마르칸트, 부하라 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기도 했지만 대부분 남쪽의 이란에 기반한 아케메네스 왕조, 셀레우코스 왕조, 박트리아, 사산 왕조 혹은 북쪽과 동쪽의 사카족, 쿠샨 왕조, 에프탈, 괵튀르크 등이 서로 뺏고 빼앗기는 각축장 아래에 놓여 있었다. 사마르칸트는 뛰어난 입지 조건과 소그드인들의 탁월한 상업 능력 덕분에 여러 지배 세력들을 거치면서도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무역 도시로 자리할 수 있었다.
사마르칸트의 대표적인 특산물로는 종이가 있었다. 흔히 종이는 탈라스 전투를 통해 중국에서 중동으로 전파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고고학적 발굴 결과 종이는 서기 3세기 무렵 이미 동튀르키스탄에서 생산되고 있었고, 소그드인 상인들에 의해 중앙아시아 각지에 보급되었다. 이후 소그드인들은 종이를 만들 때 목화 섬유를 사용하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기존 채후지보다 더 보존성이 좋고 더 부드러운 종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