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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길 / 벧전 3장 1-7절
대한민국의 이혼율은 10여 년 만에 3배로 늘어나더니 마침내 2006년에는 결혼한 네 쌍 중(33만2,000건) 한 쌍(7만3,000건) 꼴로 이혼하면서, 이혼율이 전 세계에서 세 쌍에 한 쌍이 이혼을 하는 미국을 바짝 뒤따르며 전 세계 2위까지 이제 올라갔습니다. 물론 세계 제 1위의 기록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낙태입니다. 우리는 현재 연간 적게는 150∼200만 건(뉴스위크 2000. 4. 8)에서 많게는 3백 만 건(낙반연, 2000년 추산)의 낙태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낙태공화국'에서 산지도 8년이 넘어섰습니다.
정상적으로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 1명이 태어날 때 3명의 아이들은 울음 터뜨리지도 못하고 낙태로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낙태로 죽어가는 아이의 숫자는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6배나 많은 미국과 맞먹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달리 말하면 매일 8천 2백 명이 넘는 젊은 여성이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몸서리치며 모체를 손상하고 법적 윤리적 죄의식 속에서 낙태를 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러브호텔의 번성을 빗대어 우리나라를 '불륜공화국'이라 부르는 것이 무리가 아닙니다. 그 공화국에서는 미혼여성의 72.7%가 혼전 성경험을 가졌다는 끔찍한 통계조차 나와 있습니다.
가정생활의 원리는 교회생활이나 인간관계를 잘하는 원리도 됩니다.
첫째, 무승부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가정은 상대를 때려눕히고 이겨야 하는 링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승패의 개념이 없어야 합니다. 어항을 독점하려고 강한 붕어가 약한 붕어를 죽이면 얼마 후에 죽은 고기가 썩고 물이 오염되어 결국 강한 붕어도 죽습니다. 아내를 죽이면 남편도 죽고, 남편을 죽이면 아내도 죽습니다. 부부간에는 지려고 할 때 결국 이깁니다.
둘째, 화해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부부관계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두 강이 만나면 서로 상대방 물줄기를 휘어잡으려고 하니까 소용돌이가 생기고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그 상황을 잘 극복하면 두 물이 마주치는 곳에는 두물머리, 즉 양수리라는 최고의 경치가 생기고, 조금 더 내려가면 물줄기가 넓어져 결국 한강이 됩니다. 그처럼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잘 극복하면 더욱 놀라운 축복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셋째, 나눔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남편은 자기의 장점을 나누어 아내의 약점을 덮어주고, 아내는 자기의 장점을 나누어 남편의 약점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가정은 행복을 저축하는 곳이지 행복을 채굴하는 곳은 아닙니다. 받으려고 이룬 가정은 반드시 무너지지만 주려고 이룬 가정은 반드시 행복해집니다. 행복은 내 행복이 남에게도 행복이 될 때 다가옵니다.
넷째, 절제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가정은 참 단순하고 소박한 곳이지만 그 단순하고 소박한 곳에 진짜 행복이 있습니다. 살면서 즐겁고 신기한 것만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부부와 가족이 함께 계속 살면 신비감이 사라집니다. 그래도 배우자와 식구가 최고인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영웅이 되기보다 가정에서 좋은 식구가 되는 것이 더욱 소중합니다.
다섯째, 감사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부부는 서로 최대한 감사하고, 때로 배우자에게 약점이 보여도 그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최대한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사람을 현재 그대로 대하면 그는 점점 나빠지지만 그의 가능성을 바라보고 그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고 섬겨주면 그것이 디딤돌이 되어 최고의 배우자가 됩니다. 삶과 환경의 빛깔이 어두워도 서로 감사하고 격려하며 산다면 그것이 행복입니다.
여섯째, 사랑의 원리가 필요합니다. 사랑은 성공적인 결혼생활의 주성분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배우자를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이 좋든지 나쁘든지 상관없이 그 상황에서 최대한 사랑해야 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서로 사랑해서 행복한 가정과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2.남편들은 아내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래서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신 것처럼 남편들은 아내를 목숨걸고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뭐 예쁜 구석이 있어야 사랑을 하든 목숨을 걸든 한다구요? '앙리드 몽더랑'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장점 때문에 좋아합니다. 그러나 단점 때문에 사랑합니다." 장점 때문에 사랑한다면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니다. 단점 때문에 사랑할 수 있을 때에만 참 사랑이다. 그 단점은 사랑함으로써만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점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진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아내의 단점은 고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평생 사랑의 가슴으로 품고, 인내의 어깨로 지고 가야할 사랑의 짐이요 삶이다. 그렇게 할 때 아내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런 남편하고 있을 때 자기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된다.
남편의 '사랑의 표현'을 통해 마음에 안정을 얻고, 인격이 성숙해 가고, 점점 아름다워져 간다. 아내가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아내가 아름답기를 원하는가? 그럼 사랑을 듬뿍 주시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성들이 아내에게 사랑 표현을 잘 못한다.
경상도 남자와 상냥한 서울 아가씨가 결혼을 해서 사는데 남편이 사랑한다는 말을 도무지 하지 않자 참다 참다 못한어떻게 해서든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겠다고 작정을 했다. 문제를 내서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남편에게 문제를 냈다. "여보, 내가 문제를 낼 테니 잘 듣고 그 중에 번호로 하나만 골라보세요.
1번, 나는 아내를 영원토록 사랑한다. 2번, 나는 아내를 미치도록 사랑한다.
3번, 나는 아내를 죽도록 사랑한다. 4번, 나는 아내를 하늘 만큼 땅 만큼 사랑한다.
이 중에 몇 번이에요?" 멋적은 남편이 한참 후 대답했다. 뭐라고 대답했을까? "꼭 그걸 말로해야 아나?" 그러나 이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그래도 하나만 골라보라고 사정을 했다. 그러자 남편은 정말 무뚝뚝하게 "1번이다. 와! 인자됐나?"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남편의 이 한 마디에 아내는 감격하고 행복해 했다는 것이다. (감격하고 행복해 했다는 거 아입니까!) 아내는 남편의 말 한 마디 속에서 사랑을 느낀다. 그러니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에만 품고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표현하시기 바란다. 좀 어색하고, 멋적기도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서 표현할 때 사랑의 관계는 더욱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아내의 등 뒤에서 살짝 안아보라. 어색하겠지만 용기를 내보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이 서로의 가슴에 물결칠 것이다. 우리는 쑥스러움 때문에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오늘이라도 당장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보자.
지진이 나면 통째흔들립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세계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이혼율이 수위에 올라있는 비참한 지경을 보게 됩니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 결혼 부부 30만 명 중 반에 가까운 14만 명의 부부가 이혼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 중 2위다. 결혼 건수는 지난해에 비해 1만3000여건이 줄어든 30만 6000건인 반면 이혼건수는 지난해에 비해 1만 여건이 늘어난 14만 5000여건으로 나타났다.
인구 1000명당 이혼건수를 보여주는 조기 이혼율은 1995년 1.5건에서 98년 2.5건으로 대폭 상승한 뒤 2000년까지 같은 수준을 유지하다 지난해 3.0건으로 크게 늘었 났다고 합니다. 이는 OECD국가 중에서 미국(4.2건) 다음으로 높은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영국(2.9건)에 이어 우리나라(2.8건)가 호주와 함께 공동 3위였습니다.
I. 남편은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1. 아내를 잘 이해하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7절 상)
본문 7절 상반 절에서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내를 이해하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지식을 따라"라는 말씀은 “사려가 깊어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입장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높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육적인 필요뿐 아니라 영적인 필요와 감정의 변화까지도 세심하게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결혼초기에는 다 이해하고 다 받아들일 것처럼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내를 이해하는데 무뎌지고 맙니다. 남편의 요구는 즉시 시행되지 않으면 불쾌해 하지만 아내의 요구는 아예 묵살될 때가 많습니다. 아내의 입장에 서서 아내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아내를 이해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식을 따라'라는 말은 상식을 존중하고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자는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 되고 흔들리지 않는 바람막이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 큰 도움은 주지 못해도 아내에게 든든한 맛 하나는 주어야 합니다.
누가 든든합니까? 잔소리하지 않고 말없이 사랑과 관심을 주는 사람이 든든합니다. 때로 깐깐하게 행동할 필요도 있지만 아내에게만은 절대 깐깐해서는 안됩니다. 부부는 실패를 꼬집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관계입니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남편의 사랑과 관심과 위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가정에서 아내의 신앙문제로 크게 부부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남자가 화를 참다못해 '당신 것 모두 가지고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커다란 가방을 방 한가운데 쫙 열어 놓고 말합니다. "다 필요 없어요. 이 가방에 하나만가지고 갈래요. 당신 어서 가방 속에 들어가세요'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자기만 의지하는 사는 아내에게 너무했다 싶어서 곧 남편이 사과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잘 이해해 주고 지혜롭게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그 어느 것보다 남편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고,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아내가 있는 곳에 언제나 함께하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7절 중)
본문 7절 말씀을 계속 보십시오.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이 구절에서 ‘동거하고’라는 말은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뜻입니다. 남편은 아무리 바빠도 아내와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고, 때로 힘든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함께 해야 합니다.
어느 날, 한 가정에서 아내의 신앙문제로 큰 부부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남자가 화를 참다못해 “당신 것 모두 가지고 나가!”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큰 가방을 쫙 열어 놓고 말했습니다. “다 필요 없어요. 이 가방에 하나만 가지고 갈래요. 당신 어서 가방 속에 들어가세요.”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책임감을 느끼며 자기만 의지하는 사는 아내에게 너무했다 싶어서 곧 사과했습니다.
부부는 최대한 붙어 다녀야 합니다. 어떤 관계도 부부관계에 끼어들 수 없습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서는 먼저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즉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혼자 살려는 독립심과 용기와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지 않으면 가장 자격이 없습니다.
결혼은 부모의 품을 떠나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부모 품을 떠나는 것은 불효인 것 같고 마음이 아프지만 그 아픔은 행복한 결혼을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할 지불금입니다. 행복한 결혼을 위한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 좋은 말도 많은데 왜 하나님은 가장 먼저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아픈 교훈을 주셨을까요?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말씀에는 몇 가지 실제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남자는 결혼 순간부터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각오하고 부모 재산에 조금도 관심이 없어야 합니다. 그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효도가 생겨납니다. 물론 부모님이 기쁘게 도와주면 기쁘게 받아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더 안 준다고 섭섭한 일도 많이 생기고, 형제간에도 의가 상합니다. 결혼은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삶을 마감하고 부모님에게 드리는 삶을 시작하는 이정표입니다.
둘째, 남편은 아내와 어머니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비교하면 아내는 점점 남편에 대해 실망하게 됩니다. 어머니를 높이고 아내를 낮추는 것은 잘못이고, 반대로 어머니를 낮추고 아내를 높이는 것도 잘못입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존중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존중하는 것이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셋째,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명령은 남편에 대한 명령이기도 하지만 시어머니에 대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시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며느리의 남편사랑보다 더 숭고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숭고할수록 멀리서 지켜보며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시어머니는 결코 며느리보다 앞서서 아들의 앞길을 이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명령은 “여자도 부모를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속이 상한다고 툭 하면 친정에 가버리는 태도를 버리고, 친정 부모도 그런 딸을 감싸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감싸면 자식 농사를 망칩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지만 자녀를 확실히 떠나보내 독립적이고 책임적으로 살게 해야 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을 끊듯이 새 가정을 이루었으면 부모와 자녀간의 탯줄을 끊고 홀로 서야 삶이 가치 있게 됩니다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서는 먼저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나오는 결혼생활을 위한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고 하는 교훈을 가장 먼저 가르쳤을까요?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한다는 말씀에는 몇 가지 실제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1) 남자는 결혼한 순간부터 부모의 재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효도가 그때부터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순간부터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물론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도와주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려는 마음을 가지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섭섭한 일이 자주 생기고, 형제간에도 의가 상하게 됩니다. 자녀들은 결혼한 순간부터 더 이상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삶을 마감하고, 그때부터는 부모님에게 드리는 삶을 시작하면서 그 영역을 넓혀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말씀에 함축되어 있는 교훈입니다.
2) 남편은 아내와 자기 어머니를 비교하는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비교하면서 판단하면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자꾸 실망하게 됩니다. 남편이 어머니를 높이고 아내는 낮추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반대로 어머니를 낮추고 아내를 높이는 것도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남편은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존중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3)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명령은 남편에 대한 명령이기도 하지만 시어머니에 대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시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며느리의 남편사랑보다 더 숭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숭고할수록 멀리서 지켜보면서 기도해주는 것이 낫습니다. 결코 며느리보다 앞서서 남편의 앞길을 이끌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4)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말은 '여자도 부모를 떠나라!'는 말입니다.
툭 하면 친정에 가버리는 아내가 있다면 그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부모도 그런 딸을 감싸 안으려고 하면 그것은 딸의 결혼생활을 망치는 것입니다. 분명히 딸을 사랑하지만 부모는 딸을 확실히 떠나보내야 딸에게 행복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새로운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과거를 끊으라고 하십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면 탯줄을 끊고 어머니와 자식관계를 새로 만들듯이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으면 부모와 자식관계도 새롭게 설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떠나 아내와 동거하려는 마음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거한다는 말은 정신적인 면만 의미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이혼의 가장 큰 이유는 성격의 차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성 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은 가볍게 보면 절대로 안됩니다. 때로 정신적으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신앙에서도 영혼과 육신이 함께 가는 일원론적 신앙이 바른 신앙이듯이 부부관계에서도 영혼과 육신이 함께 가는 모습이 바람직한 부부관계입니다.
3.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7절 하)
본문 7절 하반 절에서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은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을 끝까지 함께 가야 하는 유일한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동반자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서로 존중하고 서로 존경하라는 말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해야 하지만 남편은 자기 맘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남편은 아내와 상의하고 아내와 모든 영역을 같이 나누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께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나눌 때 그곳에 바로 천국이 펼쳐질 것입니다.
여기에서 '존귀히 여긴다'라는 말의 첫 번째 의미는 아내에게 '명예를 준다'는 뜻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아내에게 명예를 돌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존경 한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제자가 스승을 대할 때 가까우면서도 두려운 마음으로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는 남편들에게 많은 권면을 줍니다. 엡5:25에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고, 골 3:19에서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고, 살전 4:4에서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고 생각하며 순복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라는 국경을 넘나드는 수많은 이사에서 불평 없이 아브라함을 따라주었습니다. 정말 사라는 훌륭한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훌륭한 남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종으로 여기지 않고 일생의 동반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면서도 울지 않았고, 기근을 만나도 울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조카 롯이 잡혔을 때도 울지 않았고 롯과 헤어질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집안 갈등으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어쩔 수 없는 집에서 내보낼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바쳐야 하는 상황에서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37세에 아내 사라가 죽자 노인 아브라함의 눈에서 드디어 눈물이 보였습니다. 그처럼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일생의 동반자로 여기고 아내를 위해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진정 동반자로 여길 때 정상적인 아내는 반드시 순복할 것입니다. 아내가 순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왜 성경대로 살지 않느냐?"고 하지 마십시오. 여권이 높아지고 아내의 성격이 못되서 순복하지 않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 경우에 자기를 동반자로 여기고 더 사랑해 달라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아내의 순복을 원한다면 남편은 아내를 동반자로 여겨주어야 합니다.
이런 동반자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간의 대화를 잘하는 것입니다. 제발 헐뜯는 대화를 하지 마십시오. 오직 칭찬하는 말, 격려하는 말을 하십시오.
그러므로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는 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그릇입니다. 이는 남편의 보호가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내에 대해 함부로 대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연약하면 쉽게 상처를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 할 이유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나만 혼자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남편과 같이 하나님 앞에 가서 같이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나눌 수 있는 모습이 더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남편이 아내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마음이 상하게 되며 기도가 막힙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아내를 새 차처럼 대합니까? 아니면 중고차처럼 대합니까? 우리는 말 못하는 차라도 내 것이기 때문에 존귀한줄 알고 조심해서 다루는데, 연약한 그릇인 아내를 함부로 대해서야 되겠습니까? 아내를 존중하게 여깁시다.
한 심리학자가 아내의 자존감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많은 부분은 친정에서 어릴 때부터 성장하는 과정에서 형성이 됩니다. 그러나 결혼한 이후에는 남편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괴테는 “지금 아내의 얼굴 모습은 남편의 작품이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대하느냐?”라는 태도 여하에 따라서 아내의 얼굴에 그늘이 있을 수도 있고, 기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남편의 말 한마디 행동하나 느낌 때문에 아내의 마음에 주름살이 생깁니다. 결혼한 이후에 남편으로 인하여 아내의 자존감이 높아졌습니까? 내 아내는 나 하나 믿고 인생 전체를 맡겼는데 내가 자존감을 높여 주어야 합니다.
기독교 심리학자중 30년 동안 결혼 상담만 하신 윌리엄 할리라는 분이 있습니다. 수천 쌍을 상담하고 [남편의 필요, 아내의 필요]라는 책에 결혼생활의 원리에 대해 다섯 가지로 말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원하는 관심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아내는 남편의 애정을 필요로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만을 기대하고 결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에베소서5:28에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골로새서3:19에는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원문에 보면 "많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내에 대해 아무리 사랑을 많이 쏟아도 사랑을 다했다고 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먹고 삽니다. 사랑은 말로 해야 하고, 사려 깊은 행동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신체적인 접촉이 필요합니다. 미국인들은 하루에 평균 4번 포옹합니다. 8번은 좀더 나은 수준이고, 낙심한 자는 12번의 포옹이 필요합니다. 아이에게도 신체적인 접촉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월드 비전 가족지킴이 센타(회장 박종삼 목사)에서 지난 17일 여의도 공원에서 “가족끼리 안아주면 행복해요”라는 캠페인을 전개한 바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든든하고,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안아주는 것을 잘 해 주어야 합니다. 포옹을 통해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② 아내는 남편과의 대화를 원합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연구했는데 여자아이는 거의 100%가 대화와 관계됩니다. 남자아이들은 60%가 대화에 관계되고 나머지 40%는 대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넋두리였습니다.
남자는 밖에서 충분한 대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집에 돌아올 때는 지쳐있지만, 아내는 아이들과의 20%정도의 대화만 가졌을 뿐 80%정도의 대화욕구가 남아 있습니다. 남편이 피곤하더라도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이 욕구를 채워 주어야 합니다. 아내들은 대화가 있어야 속병이 생기지 않습니다.
③ 아내는 남편의 정직하고 열린 마음을 기대합니다.
서로 느끼는 감정과 직면한 문제의식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화해서 서로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따라 상대방을 배려하고 함께 대책을 세워 나가는 투명하고 깨끗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비밀이 없고 정직해야 가정이 견고하게 설수 있습니다. 돈 문제도 시댁의 문제에 있어서도 아내에게는 알 권리가 있습니다. 비밀이 있으면 사탄이 틈타 가정이 무너질수 있습니다. 부부가 정직한 관계로 하나 되어 있으면 어떤 사람, 문제, 죄도 틈탈 수 없고 부부사이를 갈라 놓을 수 없습니다.
④ 아내는 남편이 경제적인 후원을 해주기를 원합니다.
디모데전서5:8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자니라"고 하셨습니다. '돌아보지 아니하면'은 '부양할 책임을 감당하지 아니하면'의 뜻입니다. 가정의 경제문제나 자녀교육(子女敎育)문제 등을 아내에게 다 떠넘기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믿음과 기도가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아내는 경제적인 안정감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⑤ 아내는 가족에 대한 남편의 헌신을 요구합니다.
자녀교육이나 집안을 꾸미는데 있어서 남편의 적극적인 참여와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믿는 아내는 남편이 가정의 영적인 제사장이 되어주기를 기대합니다. 가족을 위해 깨어 기도하며 가정을 말씀위에 든든히 세워주기를 원하는 소원을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