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실족했다면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 18:7, 개역개정)
몇일전 목사가 되었다는 고향 선배와 통화를 통해 "나는 초등학생때 부터 목사가 꿈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선배는 가난한 시골마을 10남매의 가정에서 성장을 하다보니 정규교육의 혜택에 한계가 있었고, 환경상 정규과정은 꿈도 꿀수가 없어 비정규과정을 통해 16년전 안수를 받았다고 하였다.
나의 경우는 주변분들로 부터 "너는 목사가 되거라"라는 권면을 수없이 들었다. 아마도 광신도적인 나의 신앙스타일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하지만 목회자가 겪는 고난의 과정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권면은 그냥 한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덕담 정도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신학교로 진학한 것은 동지나해에서 태풍속에 바다에 추락해 선체와 부딪힐 때 부러진 치아가 해마다 가을이면 나를 고통스럽게 했고 그 고통을 잊기위해 기도를 하면서 물 속에서 하나님과 서원했던 기도를 회상하며 내려진 결단이었다.
하지만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무거운 일이고 심사숙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약 3:1, 개역개정)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는 "함부로 선생이 되지말라"고 권면한다.
직장생활 할 때 회사입구 동네에 있던 순복음교회를 출석했었다. 나의 신앙배경과는 전혀 다른 교단이었지만 열정적인 나의 성격과 너무 잘맞았기 때문에 고민없이 등록한 교회였다. 등록당시의 목사님은 1년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그분의 손위동서가 담임으로 부임을 했는데, 이 분이 욕심이 좀 과한 분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담임을 했는데, 예배당건축을 시도하며 교인들을 들들 볶아대기 시작했고, 목사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생각한 중진들이 하나 둘씩 교회를 떠나갔고 그 때마다 담임목사는 그들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퍼부었다. 정말로 이해가 안되는 것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는 자들을 향한 원망"이라는 점. 그야말로 요즘 유행어로 [가스라이팅]이었다.
만일 이 자리에 참석한 당신들도 이 교회를 떠난다면 이런 욕을 먹을줄 알라는 협박아닌 협박인 셈이다. 차라리 학교선생이나 계속할 것이지 왜 목사가 돼서 불쌍한 교인들을 저렇게 괴롭힐까 하는 수수께끼를 품으며 신앙생활을 해야 했다. 이 교회에서의 경험은 후일 나의 목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목사는 결단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신자를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결심.
안산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18년의 목회를 하며 조심에 조심을 하느라 교회성장은 더딜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다고 확신했다. 선교사로 활동하던 15년의 기간중 2년반 한인교회를 담임했는데, 이 기간이 나의 목회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한인이라야 유학생까지 합해 100여명 밖에 안되는 지방도시이다보니 신앙과 관련없이 친교의 목적으로 출석하는 교인들이 많았고, 이미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던 교회제직들의 목사길들이기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고, 결국 교회가 분열되고 말았다. 어차피 선교사 신분이니 미련없이 교회를 사임하고 다시 원래의 사역지로 복귀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부임하던해 주재원으로 이사온 몇가정이 나를 원하다보니 그들을 두고 떠날수가 없었다. 유학생들 역시 끝까지 나를 신뢰해 주었다.
이따금 마지막 목회지에서의 경험을 회상하다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 자신은 정의라고 생각해 그들과 맞서야 했지만 그러한 나의 행동으로 실족한 사람은 없었을까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때문에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되다고 하셨다. 우리는 살면서 본의 아니게 타인을 실족시키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야고보는 기어코 선생이 되려고 애쓰지 말라고 권면 하신다.
한 때 한국교회에 유행어가 있다. "내가 기도해보니 당신은 사명자이다. 그러니 당장 현재의 일을 정리하고 신학교에 입학해라"라는 선무당들. 이런 충동때문에 좌우 분별없이 신학교를 진학해 목회자가 된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분들이야말로 자기 자신도 실족해 목사가 되었을 것이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