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꺼풀 -7-
사실 그때 당시 내 안에는 백인이 되고 싶다는 복잡한 욕망이 꿈틀거리기 사작했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 스스로 의문을 제기해 보게끔 해줄 도구가 없었다. 유진에서 나는 그저 학교에서 몇 안되는 다인종 아이 중 하나였고 대부분 사람들이 나를 아시아인으로 생각했다.
나는 뭔가 다르고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처럼 느껴졌고, 내 외모를 칭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서울에서는, 내 옆에 있는 엄마 모습을 내게서 얼핏 찾아내고 고개를 끄덕이기 전까지는 대부분 내가 백인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느닷 없이 내 '이국적'인 외모가 칭송할 만한 무언가가 된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에 은미 이모가 우리를 데리고 한국민속촌으로 구경을 갔는데, 그 멋진 깨달음은 그때 정점을 찍으며 재확인되었다. 민속촌은 서울 남쪽에 있는 생활사 박물관이다. 그곳에서는 흙길를 끼고 옛날 초가집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곳곳에 항아리가 수두룩했다. 그 옆에 깔린 멍석 위에는 붉은 고추가 햇볕에 잘 말라 가고 있었다. 또 여기저기서 전통복장을한 배우들이 조선시대 농부와 양반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거기서 한국 사극 드라마를 촬영했고 휴식시간에 어쩌다가 나를 보게된 감독이 자기 조수를 우리에게 보냈다. 엄마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하며 명함을 받더니 그 사람이 자리를 뜨자 갑자기 이모들과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저 사람이 뭐라고 한 거야, 엄마."
"네 특기가 뭐냐고."
순간 한국 아이돌이 된 내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식스팩을 가진 다른 네 명의 아이돌과 함께 디자이너 크롭탑을 맞춰 입고 빙빙돌면서 군무를 추고, 내가 토크쇼에 출연한 장면에 말풍선이 들어가고, 10대 팬들이 내가 탄 리무진 주위로 우르를 몰려드는 화려한 미래가.
"엄만 뭐라고 대답했어?"
"너는 한국말도 할 줄 모를고 우리는 미국에 산다고 했지." "한국말 배우면 되지 엄마! 아, 내가 한국에 살았으면 유명해질 수 있었을 텐데!"
"너는 절대로 여기서 유명해질 수 없어. 넌 당최 누군가의 인형 노릇을 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니까." 엄마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를고 내 몸을 자기 엉덩이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저쪽에서 알록달록한 전통 혼례복을 차려입은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신랑은 적갈색 관복을 입었으며 양옆에 비단으로 짠 얄따란 각角이 달려 있는, 대나무와 말총으로 만든 빳빳한 검정모지를 둘러쓰고 있었다. 신부는 한복 위에 소매가 길게 늘어진 화려한 청색 홍색 비단옷을 덧입은 채 방한용 토시를 꼈을 때처럼 줄곧 두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뺨에는 붉은색 동그라미가 그러져 있었다.
"엄마가 모자 한번 써보라 해도 너는 싫어하잖아." 우리 엄마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언제나 열 발짝 앞을 내다 보는 사람, 엄마는 단숨에 그러볼 수 있었다. 평생 다이어트 압박에 시달리는 외로운 삶을, 이 사람 저 사람 달라붙어 내 머리카락과 얼굴을 날이면 날마다 이리저리 매만지고, 무슨 옷을 입을지,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무얼 먹어야 할지 다 정해주는 삶을, 엄마는 명함을 받고 그냥 그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최선임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