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사탄이 가만히 놓아둔 덫에 걸리지 않게 하십니다.
우둔한 자에게 지혜를 베풀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십자가에 연합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선택임을 다시 경험하며
선하신 주님을 노래합니다.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심령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오니 진리로 기뻐 춤추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7.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18.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19.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 보셨으니
20.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21.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2. 그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23. 그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하게 하시며 내 날을 짧게 하셨도다
24.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25.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26.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27.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28.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본문 주해)
공동체(시온)의 회복을 위해 고통스럽게 탄식하며 간구하던 시인은 절망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 시편을 끝맺는다.
17~22절 :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여호와께서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간구를 무시하지 않으셨다.
이 일이 앞으로 올 세대를 위해 기록될 것이니 아직 태어나지 않은 백성이 그를 찬양하리라.
여호와께서 높은 성소에서 내려다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굽어 살피시고
감옥에 갇힌 자들의 탄식을 들으시며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을 해방하셨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이 시온에서 선포되고 예루살렘에서 그가 찬양을 받으리라.
그때 세계의 모든 민족이 함께 모여 여호와께 경배할 것이다.”(현대인)
가난한 자들의 기도가 응답된다.
‘가난한 자’(빈궁한 자)는 표제에 나온 ‘고난당한 자’와 동일하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시고 응답하신다. 그것은 시온의 회복을 보여주신 것이며, 그로 인해 고난당하는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장래 세대, 곧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함께 여호와를 찬양할 것이다.
창조함을 받을 백성은 장차 새로 지음 받을 백성을 뜻한다. 그들은 장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 받을 새 언약 백성이다.
그리하여 시온에서 주님 이름이 널리 퍼지고, 예루살렘에서 주님께 드리는 찬양이 울려 퍼진다. 바로 그때 뭇 백성이 다 모이고, 뭇 나라가 함께 주님을 섬길 것이다.
시인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구원만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열방이 구원을 받고 성소에서 주를 찬양하고 함께 주를 섬길 것을 내다본다.
이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통해 열방이 구원을 받으며 함께 주를 찬양할 것을 미리 보는 것이다.
23~28절 : 23~24절--종말의 구원을 대망하며 찬양한 시인은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나는 아직 한창 때인데 기력이 쇠하여지다니, 주님께서 나의 목숨 거두시려나?
나는 아뢰었다. "나의 하나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십시오. 주님의 햇수는 대대로 무궁합니다."”(새번역)
시인은 건강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주께서 자신을 중도에서 쇠약하게 하지 마시라고 간구함은 젊어서 죽는 것이 억울해서가 아니라 주의 뜻이 확실하게 이루어짐을 믿는 고백으로 보아야 한다. 즉 시온의 회복과 시온의 건설을 보겠다는 소망의 간구이다.
25~28절--(인간은 유한하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그 옛날 주님께서는 땅의 기초를 놓으시며, 하늘을 손수 지으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모두 사라지더라도, 주님만은 그대로 계십니다. 그것들은 모두 옷처럼 낡겠지만, 주님은 옷을 갈아입듯이 그것들을 바꾸실 것이니, 그것들은 다만, 지나가 버리는 것일 뿐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주님의 햇수에는 끝이 없습니다.
주님의 종들의 자녀는 평안하게 살 것이며, 그 자손도 주님 앞에 굳건하게 서 있을 것입니다.”(새번역)
주 앞에서 인간의 생애는 한 뼘 길이 같고, 없는 것 같다.
세상의 피조물은 모두 옷처럼 낡아진다. 주께서 옷을 갈아입듯이 그것들을 바꾸실 것이다. 그것들은 지나가 버리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주는 영존하시며, 주의 연대는 끝이 없다. 주의 자녀들은 항상 주 앞에서 살고 대대로 주의 보호를 받아 안전할 것이다.
시인은 대대에 이르는 여호와를 신뢰하며 기도를 마친다.
(나의 묵상)
영원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생을 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과 풀과 같이 이내 시들고 마는 인생임을 아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기 전에 나는 티끌이요, 입김이요,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는 늙지도 않을 것처럼,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그저 세상 것을 얻으려고 열중하며 살았다. 물론 세상적 교훈으로 늙음을 대비해야 하는 것과 유수와 같은 세월의 흐름에 대해 말하기는 했지만, ‘주님 앞에 서 있는 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것은 이 역사의 주인공이 주님이신 것을 몰랐기 때문이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세상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창세전의 삼위 하나님, 영생을 주신다는 약속,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영생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심, 그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 보이심, 주님의 승천과 성령을 보내심....나는 말씀을 통해 이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자가 되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이 세상은 다 불타 없어질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는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0~1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방이 구원을 받으며,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영원한 새 나라-새 하늘과 새 땅-가 임할 것을 미리 보며 주님을 찬양하며 사는 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시편 102편 17~18절을 보며 생각한다.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주의 공동체를 위해 고난 속에서 기도한 시인의 기도가 다음 세대를 위해 성경으로 기록되었고 오늘날 나에게 전해졌다. 그러고 보니 나도 다음 세대였던 적이 있구나.
이제 어느덧 인생 후반을 살고 있는 나 역시 또 다른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며, 그들과 함께 영원하신 주님을 찬양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나의 매일의 이 묵상 기록도 다음 세대인 나의 자녀들에게 전해져서 먼지와도 같고, 헛것과도 같은 엄마가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어 영원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가 되었는지를 알게 하며, 그들의 믿음을 든든히 세우는 일에 사용되어지기를 기도한다.
장차 영원한 그 나라에서 함께 소리 높여 주님을 찬송할 것을 소망하는 아침이다.
(묵상 기도)
주님,
한때 다음 세대였던 자가 오늘날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을 원하는 그런 다음 세대가 아니라,
장차 주님 다시 오실 것을 알고 주님을 기다리는 다음 세대로 키워지길 원합니다.
예수께서 굳건히 세우신 영원한 그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에 복음이 충만하여 주님의 알곡들을 키워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