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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맛을 아는 게 수행이지. 마음으로 맛을 보면 냉수도 곰탕이 되고, 김치도 갈비가 되는 법이지.”
도명 스님은 ‘마음의 맛(心味)’을 알아가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란 말씀부터 하셨다. ‘마음 을 어떻게 쓰느냐(用心)’에 따라 수행이 깊어질 수도,얕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도들은 내가 반찬도 없이 밥을 먹는다고 하면 야단이야. ‘스님, 반찬은 뭐해 드세요?’ 라고 물으면, 난 ‘아침마다 곰탕에 밥 말아 먹는다’고 말하지. 그럼 신도들이 처음에는 정말 스님이 진짜로 뭐 감춰두고 먹는 줄 알더거만. 그런데 내가 냉수에 밥을 말아먹는 걸 보고는 놀라더군.
마음을 제대로 쓸 줄 몰라서 이렇게 말들 하는 거야. ‘이건 물이 아니라 곰탕이라 생각하 고 먹으면 곰탕인거야. 김치도 마찬가지지. ‘이건 갈비다’ 생각하면 갈비인 거지 뭐. 부처 님 말씀대로 뭐든지 마음이 일으키는 대로 보고 맛을 느껴야 하는 거야. 그래 서 마음으로 참 맛을 알아 가는 게 수행이 아니겠어?”
끼니도 냉수에 밥 말아 김치 한 조각 먹는 것이 전부다. 수행은 청빈한 삶에서 비로소 나온 다는 스님의 수행론 때문이다. 그래서 덕양사에는 공양주가 없다. 시봉하는 상좌도 없다.
하기 싫은 일은 남들도 하기 싫은 법이야. 그 이치를 왜 몰라.”
스님께 지난 60년 경남 밀양의 한 토굴에서 7년간 ‘장좌불와’ 했던 이야기를 물었다.
화두에 매달렸어. 그러다 참선을 한다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쓰러졌어. 원래 화두를 잡고 있으면, 눈을 감고 있는 상태로 전진해가는 내 모습이 보이거든. 그것을 참선해가면서 더듬어 들어간다고 해. 그리고 눈을 감고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갔는데, 그 다 음은 끊어져버리더군. 그러다 쓰러졌어. 그때 느꼈어, ‘참선이 참으로 무서운 거구나’. ‘젊은 혈기에 너무도 쉽게 생각했구나’ 하고 말이지.”
이어 또 한 가지의 수행일화를 말씀하셨다. 토굴에서 수행하다 통도사 극락암 조실 경봉 스님에게 장좌불와 수행을 자랑하다 혼쭐이 난 사연이다.
이 겁 없는 젊은 수좌인 내게 한 마디를 던지시더군,
‘도명, 선방은 산에만 있는 게 아니네. 시장장터에도 있고, 철길 옆 오두막집에도 있고, 폭포에도 선방은 있네. 내가 앉은 자리가 선방인 것을 왜 모르나?’
라고 말이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뜨였지. 경봉 스님이 한 말씀 더 하시더군. ‘참선만 한다고 도를 깨치는 것이 아니네. 불자들을 위해 포교하는 것이 더 큰 수행이네’라고. 그 자리에서 마음을 바꿨지. 산에서 내려가야겠다고 말이야.”
경봉 스님의 경책은 7년간의 토굴생활을 접고 곧장 세간으로 내려오게 했다. 그리고 도명 스님의 지칠 줄 모르는 포교는 시작됐다.
할 수 있거든. 선(善)이라는 게 마음공부지 특별한 게 있나. 그렇게 내 마음 안에 있는 걸 잘 베푸는 게 수행이고 포교가 아니겠어. 마음 밖에 있는 것을 찾을 필요가 없어. 다 내 마음 안에 있어. 참선수행도 마찬가지야. 꼭 앉아서 도를 깨쳐야만 참공부인가. 속세에 나와서 중생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수행이지. 다를 것 없어.”
스님은 28년 전 이곳 고양시에서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힘이 들었다. 남의 밭을 빌려 비닐하우스 법당을 지어 부처님을 모셨다. 고양시의 척박한 불교세는 출가사문에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했다.
죄송스러워 부처님께 절하며 ‘3년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지. 밤낮으로 기도를 올렸어.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땅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일념뿐이었지.”
아낌없이 베풀겠다’는 애틋한 마음으로 포교하다 보면 그 절절한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다.
있는 수행법을 골라야 해. 남이 이것 좋다고 권한다고 무작정 따라 하면 안 돼. 가령 절 수행을 한다 치면, 법당에 와서 한 배를 해도 간절히 해야지, 마음은 딴 데 가 있고 형식 적으로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 암만 3천배를 해도 소용이 없어. 때문에 내 마음자리가 중 요해. 일념으로 절만 해야지. ‘현관 스위치를 끄고 왔나, 가스불은 잠그고 왔나’하고 그런 마음자세로 부처님한테 절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정성이 모아지겠어? 그런 마음으로 는 만 배를 해도 하나도 내 것이 안 돼. 오로지 부처님한테 정성을 들여야 조금이라도 깨 치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지. 알겠어?”
스님은 재가불자들의 수행법을 선택할 때 주의점도 일러줬다.
수행을 하는 것이 어울리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공부하는 자세가 중요해. 하다못해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것도 공부야. 구정물에 담겨 있는 남이 먹은 그릇을 내 손을 넣어 서 깨끗이 씻는 것도 수행이야. 처처에 공부할 거리가 있는데 그런 것은 도외시하고, 이 게 좋은 수행법이 저게 더 좋으니 하고 분별을 하는 사람은 잘못된 거야.”
스님은 이어 불자들이 일생생활에서 수행할 때 유의할 점도 말씀했다.
스님들한테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큰스님에게 화두를 받는다든지, 스님들과 같이 앉아 서 단 몇 개월이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승에게 점검받지 않은 채 혼자 참 선하면, 망상과 아상만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으면 망상만 나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겠어, 머리만 복잡해지지. 그러면 공부가 되질 않아. 재가불자들은 반드시 스님에게 와 묻고, 화두를 받은 다음에는 집에서든 직장에 서든 끊어짐 없이 화두를 잡아야 돼.”
마음자리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스님은 참선에 그 해결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앉히는가이겠지. 참선을 하다보면 선방에서 갑자기 뛰쳐나가는 스님들이 있지, 그건 망 상이 자꾸 떠오르다보면 견디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뛰쳐나가게 돼. 목탁을 들고 정 근을 하다보면, 출가하기 이전의 일들이 마치 영화필름처럼 지나가. 어떤 게 지나가는 줄 알아? 착한 일들은 잘 안 떠오르고, 남들한테 나쁘게 한 것만 자꾸 나와. 오죽하면 내가 목탁을 안치고 머리를 두드릴 정도였으니까. 하도 괴로운 것들이 안 없어지니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 입으로는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스쳐지 나가는 것 때문에 머릿속 생각이 정근에 안 모아지고 괴로운 생각들에 모아져서. 그렇게 괴로웠지. 출가생활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기억이 그거야. 나쁜 짓들만 생각나고, 착한 행동은 안 떠오르니, 그래서 참선한다는 게 힘든 거야. 재가불자들도 마찬가지지.”
스님은 특히 불자들에게 ‘효도’를 강조했다. ‘부모를 위하지 않는 사람은 부처님을 섬길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하도 기가차서 여기저기에 내 수명도 짧은지 물으셨어. 그리고 3년 후 난 해인사 에서 스님이 됐지. ‘나 죽기 전에 출가하지 말고 죽거든 가라’던 어머니의 애원을 뒤로 한 채 로 말이야. 그런데 후회가 되더군. 울다 지쳐 잠드신 어머니를 두고 도망쳐 나온 것이 말이야. 어머니는 7년 더 사시다 돌아가셨다고 하더군. 그때 ‘아! 내가 잘못했구나. 어머니를 모시다 가 7년 후에 충분히 스님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참회를 했어. 부처님 말씀에도 이런 말이 있어. ‘부모를 위함이 나를 위함이다’라는 가르침 말이야. 효도해, 살아계실 때.”
따라 부처도, 효자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마음의 맛’을 제대로 알 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고희(古稀)에 가까운 노스님이 세속을 사는 불자들에게 알려준 삶의 지혜였다.
받았다. 남해 보리암, 순천 선암사, 광양 상백운암, 밀양 영천암, 대전 신광사, 부산 금정 사 등 전국의 선방을 돌며 철저히 활구참선을 위한 수좌로 살았다. 한 때는 토골을 손수 짓고 7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 수행에 매달렸다.
맡아 지역불교 발전과 자원봉사활동을 이끌고 있다. 천수천안봉사단의 경우, 자원봉사 교육 수료자 5백여 명을 배출하는 등 ‘자원봉사도 수행’이란 가르침을 펼치는 데 앞장서 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는 ‘불교호스피스’ 교육 강좌도 마련해 자원봉사의 전문화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031)672-8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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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불 하십시오...감사 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_()_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시길..._()_ 성불 하십시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