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유아들마저 '학원 돌리기'에 동참시키려는 건가
“아이를 제때 유치원에 보내려면 주민등록번호가 나오자마자 등록해서 대기해야 해”
“왜? 때 되면 등록하지 않고? 내 돈 주고 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겠다는데 보낼 유치원이 없다는 말이야?”
“응, 없어. 아이 1명인 집은 국공립유치원은 꿈도 못 꾸고, 사립유치원도 일찍 줄서야 복귀 전에 겨우겨우 들어간다더라.”
“왜? 아이를 맡기고 싶은 부모들이 그렇게 많은데, 어린이집이 부족하다는 게 이해가 안 가는데. 시장에 작은 틈만 있어도 어떻게든 파고 들어가 공급을 해내는 게 시장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말이야?”
유치원 문제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남편과 얼마 전 나눈 대화다. 남편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따르는 대한민국에서 ‘수요는 있는데 공급은 없는’ 어린이집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출산을 준비하며 맞이한 ‘유부녀 월드’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는데, 그 중에 나를 가장 분노케 했던 것도 바로 유치원‧어린이집 문제였다. 돈을 주고 맡기려고 해도 맡길 곳이 없는 이 기이한 구조 말이다.
좀 더 설명을 해보자면 이렇다. 운이 좋아 아이를 맡기더라도 대부분의 맞벌이 가정은 ‘등하원 도우미’를 또 따로 구해야 한다. 아이가 출근 시간 이후에 등원하고 퇴근 시간 전에 하원하기 때문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법정 운영시간은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7시 반까지지만, 실제로는 대개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 문제 역시 수요는 있는데, 공급은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상하지 않나. 산후조리원은 2주당 저렴하게는 백만원에서 비싸게는 천만원까지 다양한 곳이 존재하고, 유모차도 수십만원 짜리에서 수백만원 짜리 제품이 나오는데 어린이집과 유치원만은 선택의 여지조차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교육 당국의 ‘규제’가 놓여 있다. 교육당국이 유치원의 서비스 가격과 인상률 등을 제도적으로 완벽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공립은 물론 자신의 자본을 투자해 유치원을 운영하는 설립자들, 즉 사립유치원조차 시장의 수요에 맞춰 탄력적으로 서비스를 공급할 수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유치원 선생님들의 인건비를 올려 교육의 질을 높이거나, 선생님 한 명당 원아 수를 줄여 보육의 질을 높이거나, 시설 투자를 늘려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고 하더라도 현재 구조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동안 이런 기이한 구조에서 부모들의 탁아 수요를 해결해 온 사립유치원들이 최근 한 여당 의원의 폭로로 '비리 유치원'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 그 폭로에 따르면 사립유치원의 91%가 ‘아이 밥 먹일 돈으로 명품백과 성인용품이나 산 악마들’이다. 교육부와 상당수 언론은 이들이 마치 ‘악마들의 소굴’인 것처럼 묘사하며 이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가고 있다. 교육부는 여당 의원의 소위 ‘폭로’가 나온지 불과 열흘 만에 비리신고센터 가동을 시작했고 종합대책 마련도 지시했다. ‘이렇게는 도저히 유치원을 운영할 수 없다’며 폐원을 각오한 유치원을 향해서는 “묵과하지 않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이상한 점은 두 가지다. 교육 당국의 감사 결과대로라면 대부분의 사립유치원이 비리로 얼룩졌다는 것인데, 유치원 설립자들은 정말 다 그렇게 나쁜 사람들일까. 또 교육 당국이 ‘비리 유치원’이라며 인민재판장에 내던진 그 유치원들 대부분이 법정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는다는 것도 이상하다.
해답은 교육 당국이 지난 2012년부터 사립유치원에 준용하기 시작한 ‘회계규칙’에 있다. 교육 당국이 제시하는 기준대로라면, 사립유치원들은 교육 및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투자를 하더라도 투자금을 회수하려 해선 안 된다. 회계규칙이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금을 한 푼이라도 회수하려는 순간, 교육부가 강제하는 기준에 의해 ‘비리 유치원’으로 찍히게 된다. 결국 정부의 보조를 받지 않고 시설과 설비를 투자해 유아들을 교육시키는 사립유치원들은 유치원에 투입된 모든 자본비용은 국가에 헌납하고, 자원봉사하는 마음으로 유치원을 운영해야 비리유치원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검찰과 법원은 사립유치원의 설비 투자비는 물론 수업료 등으로 조성된 교비는 유치원 설치·경영자 소유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비리유치원’ 사태를 키우며 국‧공립 유치원을 확충하고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시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외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우선 재원 마련부터가 난제다. 국공립유치원은 시설의 자본비용과 운영비를 개인이 감당하는 사립유치원과 달리 국민의 세금으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 한유총에 따르면 유치원을 짓는데는 평균 10억~5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2017년 4월 기준으로 전국 유치원은 국‧공립 4,747개소 사립유치원은 4,282개소니까, 사립유치원을 전부 국‧공립으로 바꾼다면 최소한 4조 2820억원이 든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부모들도 과연 ‘국‧공립 유치원이 사립유치원보다 낫다’는 교육부의 판단에 동의할지가 미지수다. 실제로는 국‧공립 유치원보다 사립유치원이 더 만족스럽다는 부모들도 많다는 것을 교육부는 정말 모르나.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아우성이 나온지 벌써 수십년째다. 교육부는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 이 문제를 떠 안고서도 비리유치원의 해법이 공교육이라고 말하고 있다. 교육부의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을 기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2일 연 간담회에서 학부모들은 “모든 유치원이 비리 유치원으로 비춰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단순 서류미비와 같은 행정착오와 원비 횡령 등 사안의 경중에 따라 학부모에게 구분해 공개해야 유치원 전체를 비리 집단으로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교육부가 그동안 애써 모른척 해 온 ‘모든 유치원이 비리 유치원은 아니다’는 비리유치원 폭로의 실상을 학부모가 지적한 셈이다.
이쯤되면 교육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는 교육 및 보육의 질을 높이는 데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학부모들의 분노를 이용해 사립유치원을 없애고 유아 교육을 공교육에 완전히 편입시키려는 건가. 학부모들은 전자를 바란다. 원하면 언제든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아이가 유치원에 있는 동안에는 믿고 밑길 수 있는 유치원을 바란다. ‘무너진 공교육’으로 ‘학원 돌리기’라는 전 세계 초유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낸 교육부는 학부모들을 만족시킬 자신이 있나. 앞서 언급한 유치원 부족 문제와 교육 서비스 다양성의 결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시장'(Market)이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닌가.
교육부가 내놓은 해법대로라면 머지 않아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아이들 마저 ‘학원 돌리기’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