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은 죽어서도 살아 있었다.
1968년 4월 4일 저녁 6시 정각,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 시에 있는 로레인 모텔의 발코니에 마틴 루터 킹 목사(1929.1.15~1968.4.4)와 동료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킹은 노조 승인을 받기 위해 석 달 동안 투쟁을 전개해온 1천 300명의 지역 청소부들을 지원하는 시위와 집회를 이끌기 위해 그곳에 와
있었다.”
“킹은 아래 주차장에 있는 어떤 친구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그 친구는 킹에게 ‘고귀한 주여, 저를 당신의 손으로 데려가주오(Precious Lord, Take Me by Thy
Hand)’라는 노래를 연주한 어떤 연주가를 데려왔다.
킹은 그 음악가에게 그날 저녁 집회에서 그 곡을 연주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때 총소리가 울렸다. 킹은 콘크리트 테라스에 쿵 하고 쓰러졌다. 피가 턱과 쩍 갈라진 목에서 거품처럼 쏟아져 나왔다.”
(<1968년: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126-127쪽)
킹의 죽음. 그이의 나이, 서른 아홉 살이었다.
훗날 킹 목사 암살 사건을 재심한 셀비 카운티 순회법정에서 배심원들은 킹 목사가 정부 내 비밀조직과 마피아 등 범죄조직이 연루된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라른 평결을 내렸다. 자유와 인권과 평화의 외침을 압살하려는 이들이 끝내 일을 저지렀던 것이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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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www.blackcommentat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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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은 죽기 얼마 전이었던 1968년 2월 4일 에베네저(Ebenezer) 침례
교회에서 행한 설교 '군악대장 본능(The Drum Major Instinct)' 에서
흡사 한 편의 시를 읊듯 이렇게 말했다.
(킹은 마가복음 10장 35절부터 님의 좌우편에 앉고 싶어하는 야고보와 요한과 나눈 대화로부터 설교를 시작한다.
이렇듯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며 으뜸이 되고자 하는 본능을 ‘군악대장 본능’이라고 말하면서 이 본능의 부정적 측면을 속물적인 배타주의, 인종차별, 패권주의 등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 사람은 흑인보다 나아’, ‘저 국가는 으뜸된 국가야’,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은 듣고 싶어한다는 것 그러면서 묻는다. 내가 진정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무엇인가?)
“나는 가끔 모든 인간은 인생의 공통분모인 죽음이 닥쳐올 순간을
늘 의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생각합니다. 나는 이따금 나의 죽음과 장례식에 대해서 생각하곤 합니다.
나는 죽음을 음울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따금 ‘내가 진정으로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무엇일까? 하고 자문합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중략)
그날이 오면, 마틴 루터 킹 2세는 자신의 인생을 남을 돕는 데 바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마틴 루터 킹 2세는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내가 전쟁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내가 굶주린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내가 일생 동안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내가 일생 동안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래요, 여러분들이 나를 군악대장으로 부르고 싶다면, 정의의 군악대장, 평화의 군악대장, 평등을 위한 군악대장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나머지 사소한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죽은 뒤에 한푼도 남기지 않을 겁니다.
나는 죽은 뒤에 멋지고 화려한 재물은 하나도 남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죽은 뒤에 헌신적인 인생을 남기고 싶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내가 가는 길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내가 말과 노래로서 누군가의 용기를 북돋을 수 있다면, 누군가 옳지 않을 길을 갈 때 그것을 가리켜줄 수 있다면, 내 인생은 헛된 것을 아닐 것입니다
내가 기독교도로서 의무를 다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님이 가르치신 것처럼 가르침을 널리 펼 수 있다면, 내 인생은 헛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클레이본 카슨 엮음, 이순희 옮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470-471쪽 참조. 이순희 씨의 번역을 조금 수정했다.)
킹의 인생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킹이 역설했던 정의와 평화와 평등의 메시지는 2003년 1월 전세계 시민의 가슴속에서 뜨겁게 부활했다.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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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images.ucomics.com ⓒ Ben Sarg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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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와 msnbc 2003년 1월 17일에 공동게재된 Ben Sargent의 만평
마틴 루터 킹의 유산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특히 지난 1월 18일(토요일)은 지구촌에서 반전 평화주의자들의 외침이 크게 울려퍼진 날로 기억될 터이다. 반전 평화주의자들이 1월 18일이라는 날짜를 선택한 까닭은 이 날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탄생 기념일이 있는 주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매년 1월 셋째주 월요일이 국가공유일이다. ‘마틴 루터 킹의 날’이 제정되기까지는 마틴루터킹온라인 참조. 1983년
미국 의회에서는 흑인 민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념하는
공휴일을 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986년 부터 킹목사의 생일인 1월 셋째 월요일을 킹 목사의날로 선포하고 모든 미국 국민들은 이날을 축하하며 킹 목사의 공적을 기리게 되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유엔사찰단의 보고가 유엔안보리에
제출될 1월 27일, 이 날이 부시 정권이 이라크 공격 여부를 결정지을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세 아래에서 1월 18일 미국과 캐나다, 유럽, 중동, 남미, 아시아 등 세계 30개국 이상에서 이라크 공격에
대한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일어났던 것이다.
미국은 물론 유럽·중동·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반전시위는 연대의 세계화(지구화)가 21세기에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1.18 반전운동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라는 행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전과 평화의 그물망이 펼쳐진 날로 기록될 것이다.
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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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www.lemonde.fr ⓒ Pess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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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르몽드 2003-1-21, Pessin)
만평의 제목은 희망(Espoir). 전쟁반대(Non a la guerre), 부시는 멈춰라(Bush Stop), 아니다(Non)라고 씌어져 있는 플래가드를 들고 있는
사람들. 그 반대편엔 외롭게 한 사람이 사담은 사직하라(Sadam
Demission)는 플래카드를 든 채 반전 평화 시위자들을 돌아보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1월 18일의 시위는 가히 세계적인 규모다. 다음은 여기저기 보도되었던 기사를 종합한 것.
-아메리카-
미국 = 수도 워싱턴에서는 영하 7℃까지 내려가는 강추위속에서도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의사당 앞에 모여 ‘전쟁반대’를 외쳤다. 국회의원, 배우, 인권운동가 등 각계의 저명한 사람들도 다수가 참가했다. 배우인 제시카 랭은 “정치가로서가 아니라 배우가 아비라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반전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미국을 ‘깡패국가(Rouge Nation)’로 규정하는가 하면
‘2004년 정권교체(Regime Change in 2004)’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어 다음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에 대한 심판을 주장했다. 한 시위자는 마틴 루터 킹의 사진과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명언과
함께 부시 대통령의 사진과 ‘나에게는 악몽이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대비시킨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유럽-
영국 = 런던을 비롯, 옥스퍼드, 버밍엄, 노팅엄, 벨파스트, 케임브리지, 코벤트리 등에서 수천 명이 동시다발로 반전을 위한 철야 촛불시위와 거리행진을 벌였다. 런던에서는 도심 중앙의 트라팔가 광장과
의회광장에서 수천명이 반전집회를 열고 촛불시위를 했다.
이에 앞서 수천명의 시위대가 브래드퍼드, 리버풀, 카디프 등에서 거리행진을 했으며 런던 서쪽의 노스우드 군사기지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에서도 반전단체가 평화회의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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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에서 반전 시위 참가자가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복장을 하고 있다. 출처 www.sfgate.com ⓒ Paul
Chin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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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의 반전 시위대. 출처 www.sfgate.com ⓒ
Michael Mac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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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 평화 시위에서 한 치과의사가 "이라크와 싸우지 말고, 플라그와 싸우라"는 코믹한 글을 쓴 옷을 입고 있다. 출처
www.sfgate.com ⓒ Paul Chin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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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1천여 명이 미군기 재급유에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샤논공항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 파리에서는 6천여명이 ‘또 다른 도살 거부’, ‘부시, 최악의 제국’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을 벌이는 등 전국 40여 개 도시에서 반전시위가 이어졌다. 혁명공산주의연맹의 대선후보였던 올리비에 브장스노는 “프랑스는 (이라크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중단하고 유엔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국제적인 연대가 형성되고 있는 지금 제2차 석유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평화운동 대변인인 레진 미네티는 마르세유에서 “여론은 이번달 유엔안보리 의장국을 맡고 있는 프랑스가 비토권을 발동해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명백히 거부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 남서부 예테보리보후스주(州) 주도인 예테보리에서는 평화운동 단체 및 좌익계열 조직원들의 주도로 수천 명의 시민들이 미국의 대(對)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스웨덴의 TT통신이 보도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전날 밤 1천명이 반전시위를 벌였다고 시위 참가 단체의 한 관계자가 전했다.
이탈리아 = 볼로냐에서는 2천명여명의 시위대가 반전시위와 관련이
없는 우익단체의 시위현장을 둘러싼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 해 경찰이
체루탄을 시위대에 발사했다.
독일 = 수백명이 하이델베르그에 있는 미군의 유럽본부 앞에 모여 반전시위를 벌였다.
스웨덴 = 5천여명의 시위대가 ‘부시 타도’ ‘이라크 독재정권 반대’ 등을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였다.
러시아 = 모스크바 주재 미대사관 앞에 운집한 시위대는 ‘부시, 이라크는 당신의 목장이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흔들며 “미국은 이라크에서 손을 떼라”, “미국은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아시아-
일본= 북부 홋카이도에서 남부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전국 10여 곳에서 반전 시위는 물론, 세미나.콘서트 등 다양한 형태의 반전 행사가
열렸다. 특히 도쿄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 젊은 학생들과 노조 관계자 등 5천명이 반전 집회를 갖고 최고 번화가인 긴자(銀座)에서 가두행진 시위를 벌였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포함해 여러 도시에서도 이날 오후
27개 비정부기구 등이 주관하는 반전 가두 행진이 열렸다. 동부 라호르시(市)에서는 시위자들이 미국 영사관 영내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찰에 의해 저지됐다.
홍콩= 60명이 미국 및 영국 영사관과 인접한 금융가에서 "사찰은 가능하나 전쟁은 안된다", "양키는 물러가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중동-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는 1만5천명의 시위대가 ‘미국 타도’를 외치며 의사당까지 행진 벌였으며,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는 수만명이 "우리의 사랑하는 사담이 텔아비브를 공격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이라크를 지지하는 가두행진 시위를 벌였다.
요르단= 암만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에서는 300여명의 시위대가 미·영·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웠다.
이집트=카이로와 레바논에서는 각각 1천명, 4천명의 시위대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초상화를 흔들며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을 반대했다.
이라크= 지난 며칠동안 바그다드에서 미국, 영국, 이스라엘 국기에 대한 화형식과 함께 수차례에 걸친 시위를 벌였다.
그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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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www.arabnews.com ⓒ M. Kah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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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뉴스 2003-1- 20, M. Kahil)
‘전쟁 반대(No to war)’ ‘석유를 위한 전쟁이다(War for oil)'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에 나선 시민들에 둘러싸인 부시. 그런데 부시는 양쪽 귀에 귀마개를 하고 있다. 귀마개로 이용된 것은 투표함인데,
2004년 대통령 선거라고 씌어져 있다.
부시는 귀머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재선에서 당선되고 싶은 마음이
앞을 가려 귀머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런 의미일 것이다.
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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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www.creator.com ⓒ Mike Luckovi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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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2003-1-19, Mike Luckovich)
부시는 마틴 루터 킹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킹의 연설이다. 1963년 8월 28일 ‘흑인의 고용과 자유 쟁취를 위한 워싱턴 행진’에 모인 거대한 군중을 앞에 놓고 행한
연설이다. 부시가 인용하고 있는 부분에서부터 조금 더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어린이들이 백인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저는 이런 희망을 가지고 남부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토막내어 희망의 이정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나라 안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언젠가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함께 행동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서 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평 속에서는 이 연설을 ‘왜곡’해놓았다.
부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사람이 피부색에 따라 평가받지 않고 그들의 학벌(alumni connections)로 평가받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부시가 왼손으로 잡고 있는 문서에는 ‘미시건 대학. 사회적 약자보호 정책(Affirmative Action Policy)'이라고 씌어 있다. 이 만평을 이해하려면, 부시가 1월 16일 소수계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미시간 대학의 입학 사정 제도를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는 소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성적이 좋지만 사회적 약자보호법에 따른 입학 사정 제도 때문에 자신들이 탈락했다는 백인 학생 3명의 주장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부시의 미시간 대학의 소수계 우대정책에 대한 부시의 연설
참조, 사회적 약자보호법에 따른 대학 입학 사정제도가 백인에게는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1월 18일자 기사 “라이스: 인종이 입학 사정의 요소일 수 있다”에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인) 콘돌리자 라이스는 자신은 미시간 대학이 운영하고 있는 인종을 고려한 입학사정제도에 도전하는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인종과 상관 없는 중립적인 제도는 선호할 만한 것이지만, 다양한 학생을 입학시키기 위해 인종을 하나의 요소로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한다. 말하자면 부시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반대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그러나 콜린 파월은 부시의 입장에 대해 뚜렷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파월, 소수계 우대정책에 대한 부시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국내 언론 가운데서는, 부시의 입장에 대해 파월과 라이스가 반대의사를 표명한 데 대해, "부하가 이견을 얘기하도록 한 대통령의 포용력, 소신을 밝히는 참모… 이것이 미국의 힘이라는 시각도 있다"는 특파원(중앙일보 2003년 1월 20일, 김진 특파원, '부시 흑인 참모진 색다른 소신)도 있다. 미국의 힘에는 별것도 다 있다고 해야 할까.
그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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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images.ucomics.com ⓒ Stuart Car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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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2003-1-20, Stuart Carson)
'사회적 약자보호법(Affirmative Action)’이라고 씌어 있는 버스엔 손님이 달랑 두 명. 파월과 라이스이다. 운전기사(부시)가 마이크로 안내하고 있다. “다음 정거장은 몽고메리 1955년입니다.” 이건 무슨
뜻인가?
몽고메리 1955년(Montgomery 1955).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는 보스턴
대학을 졸업한 신학 박사 마틴 루터 킹이 처음으로 전임목사의 일을
맡았던 곳이다. 덱스터 애브뉴 침례교회였다. 1955년 12월 1일 로사
파크스 부인이 버스 내에 백인전용 좌석에는 흑인이 앉을 수 없다는
흑백분리법률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체포되었다.
킹 목사는 12월 5일 새롭게 결성된 몽고메리 진보연합(MIA)을 이끌며
시민불복종운동을 전개했다. 버스 타지 않기, 걸어서 다니기, 카풀 제도 운영하기 등등.
“우리는 마침내 굴욕적인 태도로 버스를 타느니 존엄을 지키며 걸어다니는 것이 훨씬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혼을 혹사하느니 다리를 혹사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우리는 몽고메리 시내를 걸어다니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쇠약해진 불의의 벽은 밀려드는
정의의 망치에 두들겨 맞아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몽고메리 항의 운동 과정에서 킹은 테러를 당하기도 했고, 감옥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 정신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면서, 시민들과 합심하여 이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듬해인 1956년 11월 13일에서야 미국 연방최고법원이 버스 내 흑백분리법률은 위헌이라고 선언했으며, 12월 21일 킹 목사는 항의 운동이 공식적으로 끝났음을 선언하고 처음으로 흑백통합버스에 승차했다.
그런데 만평에서는 다시 몽고메리 1955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니....
이래저래 마틴 루터 킹의 말과 생각과 투쟁의 역사는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만평을 보고 있노라면, 죽은 제갈량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쫓아냈다는 말이 있듯, 죽은 마틴 루터 킹이 살아있는 부시를 비판하고
있는 듯하다.
1월 18일의 반전평화 시위가 있었지만, 이라크 전쟁 관련의 것들이 계속해서 주요 외신의 첫머리를 차지했다.
미국은 로마인가? 이런 질문이 있었다.
<지구화의 종말: 거대한 파국의 교훈(The End of Globalization:
Lessons from the Great Depression)>의 저자이자 프린스턴 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해롤드 제임스(Harold James) 교수는 2002년 12월 30일 <파이낸셜타임스>에 ‘한 제국의 붕괴에서 얻는 교훈’이라는 글에서 현재 미국의 상황은 많은 면에서 로마제국과 유사하지만 로마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미국의 시도가 성공하기에는 기반이 너무나 허약하다고 말했다.(한겨레신문 2002년 12월 31일, 신기섭 기자 “미국
몰락 징후 보인다” 참조)
로마제국의 몰락이라는 역사 속에서 미국 몰락의 징후를 읽어내려고
하는 것은 역사학자들의 중요한 과업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만평에도
미국은 로마제국에 자주 비유된다.
그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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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seattlepi.nwsource.com ⓒ David Hors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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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포스트 인터내셔널, 2003-1-15, David Horsey)
로마병정의 복장을 하고 있는 미국. 그 손에 들린 칼이 곧 사담 후세인의 머리 위로 떨어질 듯하다.
“좀 서둘 수 없나? 내 무기는 지쳤단 말이야!”
유엔의 무기사찰단 앞에서 후세인은 "자 찾아 봐. 대량살상무기를."
그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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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weelkly.ahram.org.eg ⓒ
Fat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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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아흐람,2003-1-9~15, 620호, Fathi)
‘자유의 여신’이 전쟁의 신으로 바뀌었다. 로마병정의 신이다. 그런데, 미국을 로마병정으로 비유하는 그림만큼이나 카우보이로 비유하는 것도 많다.
그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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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weekly.ahram.org.eg ⓒ Fat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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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미국과 이라크의 후세인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후세인이 뽑을 카드는 모두 ‘전쟁’뿐.
그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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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www.aljazeera.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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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리라, 2003-1-20)
유엔사찰단의 한스 블릭스 단장과 IAEA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의 모습이 먼저 보인다. 알고 보니 이들은 카우보이 뒷주머니에서 '놀고' 있는 이들.
벌거벗겨진 사담 후세인이 붉은 금을 그어놓고...
한편 외신에 따르면, 유엔 무기사찰단이 1월 16일 1990년대 말 건설된
남부 우크하이데르의 탄약저장 시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122mm 짜리 화학탄두 11개와 다른 탄두 1개를 찾았다고 사찰단의 이에키 히로
대변인이 밝혔다고 한다. 빈 화학탄두라..... 비어 있지 않은 화학탄두는 미국에 가보면 무수하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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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www.arabnews.com ⓒ M. Kah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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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뉴스, 2003-1-23, M. Kahil)
카우보이가 타고 가던 말에 '딴지'를 거는 인물은?
독일의 슈뢰더와 프랑스의 시라크다.
미국의 거센 공세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중국, 독일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주요국가들은 이라크전쟁 반대입장을 재확인했다. 안보리 이사국 외무장관들은 1월 20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대량파괴무기
확산 방지와 테러 척결을 위한 특별회의를 갖고 이라크 문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전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프랑스의 도미니크 빌팽 외무장관: “무력 사용은 모든 가능성이 없어진 이후에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현시점에서 군사행동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제2의 결의안에서 이라크 공격을 결정하려 한다면 우리는 협조할 수 없으며 국제사회도 협력치 않을 것이다.”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 “군사공격은 중동 지역에 심각한 혼란을 불러올 것이며 테러와의 싸움에도 예기치 못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가 군사행동에 반대하는 데에는 그같은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부장: 27일 유엔 무기사찰단 보고는 사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유엔 사찰이 잘 진행되고 있다.”“우리는 사찰단의 의견 을 존중하고 사찰활동을 지지할 것이다.”
이에 대해,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어려운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의무와 책임 앞에서 움츠러들어서는 안 된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고 있다.”(문화일보 2003년 1월 23일자 구정은 기자, '안보리국가 이라크전 반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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