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산오이풀
전남매일 <한송주가 만난 사람> 박문기 농부사학자
자연농사 지으며 역사를 캐는 사람
전북 정읍시 신정동 삼신산 기슭에 한 사람의 기인이 산다. 그를 사람들은 흔히 '농부사학자'로 부른다. 농초(聾樵) 박문기(朴文基)선생(53).
그는 학교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스스로 한학만을 공부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한 발짝도 떠나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자신을 가리켜 '귀머거리 농부'라 일컬으며 티끌세상과 거리를 두었다.
그럼에도 그는 학문과 농사 양쪽에 두루 커다란 성과를 이룩했다. 한민족의 뿌리를 캐는 작업에 심혈 기울여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그동안 '맥이(貊耳)' '대동이(大東夷) 6권' '본주(本主) 2권' '숟가락' 등의 역작을 생산했으며 최근에는 우리 문자의 기원을 더듬은 '한자는 우리글이다'라는 연구서를 펴내 화제를 모았다.
농초는 한국 토종쌀인 '다마금'을 육종해 낸 선구자이기도 하다. 농약과 비료를 전혀 쓰지않는 유기농법을 40년 전부터 실천해 녹색 품질 인증을 따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매우 특이한 영농을 시도해 눈길을 끄는데 이름하여 '풍장농법'이다.
'풍장농법'이란 수확기를 앞둔 벼논을 돌며 꽹과리며 징 장구를 쳐대는 걸 말하는데 이렇게 하면 희한하게도 해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간해서는 생각해 내기 어려운 초식이 아닐 수 없다.
"삼라만상이 다 사람과 한가지라고 여기면 모든 이치가 다 풀립니다. 풀 한포기도 사람이고 벌레 한 마리도 사람이지요. 해충이라고 해서 감정이 없겠습니까. 시끄러운 걸 싫어하기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거판스럽게 메구를 한판 치고나면 멸구고 진딧물이고 우수수 떨어져요. 생각이 못미쳐서 그렇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는 이 태평한 농사법으로 자그마치 200마지기의 논농사를 지어낸다. 여기에서 난 '다마금'쌀은 공해가 없고 맛이 좋다해서 보통 쌀의 두배 값으로 팔려나간다. 그것도 서울등지의 백화점에서 미리 주문을 받아 생산한다.
'다마금' 말고도 '흑미(멥쌀)' '화도(찹쌀)' 등 쌀과 표고버섯, 태양초, 보리, 콩을 역시 청정하게 길러낸다. 이 방대한 농사를 농초는 그의 삼형제들과 아들을 두레지어서 감당해내고 있다. 이런 열성이 돋보여 그는 1997년에 새농민상을 받기도 했다.
'동이학교' 열고 민족교육
농초는 삼신산 기슭에 '백학농원'이라는 널따란 터를 닦았다. 여기에 '동이학교(東夷學校)'를 열고 민족교육을 펼치고 있다. '동이학교'는 우리 한민족의 기원을 '동이(東夷)'에 둔 농초의 역사관을 반영한 명칭으로 겨레의 문화 전반을 가르치는 배움터다. 학교는 철철이 강좌를 개설하는 식으로 운영되는데 사계의 권위자들이 강사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과목은 역사에서 문화, 민속, 예절, 건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일반인 대상의 정규 강좌 외에 따로 학생들을 위한 청소년 문화교실, 여성들을 위한 규수학당, 향민들을 위한 향토 사랑방 강좌 등을 고루 두고 있다.
"한겨레의 역사를 뒤적여 보니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았거나 눈을 감은 진기한 사실이 매우 많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모임이 있어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동이학교는 옛 선인들의 온갖 지혜를 오늘에 되살려 배우는 곳이라고 이해하면 돼요. 강의도 식어빠진 암기 주입식이 아니라 직접 느껴서 몸으로 아는 체험식으로 엮어가고 있습니다."
3만평에 달하는 백학농원에는 강의실 말고도 연회장, 다실, 식당, 전통 혼례장, 궁도장, 야외 공연장, 농산물 판매장, 과수원 등이 갖춰져 오랫동안 머물며 배우고 생활하는 데 불편이 없다. 특히 마한시대의 주거 형태를 복원했다는 5동 15실의 황토집은 휴식과 요양에 안성맞춤이라고 소문이 높다,
움집 모양으로 봉긋봉긋 늘어선 황토방은 맑은 황토와 돌, 흙, 짚으로 만들어졌으며 장작을 때 난방을 한다. 황토집 외에도 백학농원 안의 여러 시설들은 거의가 전통적인 기법으로 결구되어 있다.
"전통 자체 속에 들어앉아서 역사를 배워야 제대로 된 공부 아니겠어요. 황토집은 제 나름대로 마한때의 살림집을 복원한다고 애를 써본 것인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학인들이나 손님들이 이용해보시고는 심신이 아주 편안하고 맑아진 기분이었다는 말을 많이 하십니다. 당초에 농원을 꾸밀 때 자연과 역사의 배움터를 지향했기 때문에 곳곳에 문화냄새가 제법 배 있을거예요."
이 덕에 가족 단위로 문화 학습을 오는 경우가 많단다. 이 배움터에 오면 맨 먼저 '자연은 곧 나의 생명이다'라는 청규를 소리 높이 외쳐야 한다. 그 다음에 '한민족은 위대하다'는 자각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이어 학인들은 깨끗하게 재배된 먹거리를 먹고 논밭에 들어가 땀흘려 일하고 널따란 공부방에서 좌정한 채 '우리'를 배운다. 책과 전통차가 있는 다실에서 다도를 배우고 황토집에서 태고적 잠을 잔다. '온조우(溫祖宇)'에 들러 문화유산의 숨결을 더듬는다. '온조우'는 말그대로 조상들을 따뜻이 모신 집으로 팔작 5칸의 헌칠한 자태를 뽐낸다. 그안에는 가지가지 민속 자료와 풍물이 갗춰져 있다.
'역사의 대륙' 되찾아야
이 삼신산의 자연배움터에는 전국적인 학인 동아리인 '양명회(養命會)'가 두레를 쳐서 더욱 유명하다. '양명회'는 온갖 방면의 이름 있는 대수들이 철마다 만나 그동안 닦은 소식을 나누는 모임인데 그 수가 100여명을 헤아린다. 이들은 회지도 만들어 돌려보며 순수 민간 학술활동의 전범을 세워가고 있다. 농초는 이 두레의 꼭두쇠이기도 하다.
"대학 강단에만 학문이 있는 게 아닙니다. 길 위에도 산야에도 학문은 있습니다. 그리고 박사학위에만 지혜가 있는 게 아닙니다. 시골 농부에게도 지혜는 있습니다. 요즘 공교육의 위기를 말합니다만 가르치는 이들 가운데에는 참으로 귀머거리 농부의 눈보다도 어두운 경우를 가끔 보게 됩니다. '양명회'나 '동이학교'의 이름 없는 학인들은 대개 진실로 학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어요."
이들 배움 두레꾼들은 생업 속에서 가르침을 캐내는 슬기를 지니고 있다. 이들이 적는 영농일기 속에, 이들이 뒤적이는 옛 문서 속에, 이들이 찾아낸 비석 토막 속에 학문의 금광은 빛나고 있다. 비록 서툴고 조악할망정 이들이 엮는 이론 속에는 진지성과 신선미가 담겨 있다.
농초는 '재야'라는 앞말을 단 사학자이지만 학계로부터도 범상찮은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의 학문은 한민족은 대륙을 경영했던 대동이족(大東夷族)이며 그 역사는 만년을 헤아린다는 사관을 벼리로 삼고 있다. 우리의 역사교과서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일본인들의 조작에 의해 역사가 형편없이 토막났다는 것이다. 사서들에 그 자취가 뚜렷한 기자조선이나 단군조선을 제거해버린 게 결정적인 증거라고 제시한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를 들먹이기 전에 우리나라의 교과서부터 바로 잡아야합니다. 한민족이 얼마나 위대했는가 하는 사실을 알면 젊은이들이 절대 비뚤어지지 않아요. 광활했던 '역사의 대륙'을 수복하는 일에서 교육이 시작되어야 하지요. 저의 이론을 그저 독특한 하나의 학설로만 취급하지 말고 적극적인 검증을 통해 시비를 가려줄 것을 학계에 제의하는 바입니다."
흙에 살면서 역사를 캐는 농초 박문기. 그는 결코 '귀머거리 농부'가 아니었다.
논설실장 한송주 (2001-08-09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