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사에 왔다가네
이재부
친구, 직지사에 왔네그려. 아름다운 봄꽃! 그 중심에 무리 지어 어우러진 꽃구름 속에는, 사랑의 환희가 넘치나보네. 그 절정에서 부서지는 꽃들의 함성! 내부에 가득 실린 아름다운 시어(詩語)들이 함께 모이면, 사랑을 노래하는 연시(戀詩)가 되리. 화려한 춤사위로 애무하는 곡선들, 사뿐히 내려앉는 그림 같은 자태가, 천국에서 펼치는 사랑의 춤판이 아닐는지.
직지사를 찾아가는 황학산 골짜기는 전체가 봄의 향연이요, 꽃들의 축제 무대라네. '저 신성하고, 위대한 자연의 연중행사엔 초대받은 손님도 많은가보다.' 찾아오는 관객들이 줄을 잊고, 대면하는 탄성도 가지가지일세. 그들의 꾸민 치장도 꽃같이 화려한데, 꽃 속에서 미소 짖는 얼굴들, 진한 평화를 상상해보시게. 벚꽃 터널을 지나는 사람들의 감탄사에도, 그 꽃들은 겸손한 수줍음을 바람으로 가린다네. 근심과 욕심을 다 떨쳐버리는 꽃길을 지나, 직지사에 오르면, 청정한 불심을 배우지 않아도, 다 부처가 되어 가리.
무리 지어 공연을 마치고, 물러서는 꽃들의 연기(演技)가 내 감성을 마구 흔드는구려. 그 기묘하고 화려한 무희들이 무지갯빛 파도를 일으켜, 오감을 만족시키는 낙원이 되는군. 자연이 펼치는 축제에서는 삼라만상이 다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가. 제자리 찾아 전시된 부지기수의 자연물이 다 명화요, 명시화첩이며, 조각작품이고, 무용이며, 명작 사진일세.
그 자연의 예술품들은 천공(天工)이 빚은 작품인가, 명공(名工)의 유물일까. 섬세하고, 현란함에 마음을 뺏기고, 그 미모에 넋을 잃었지. 자연 그대로의 산천도 곱지만, 치자(治者)의 정성이 가득 담긴 공원의 축성도 허술함이 보이지 않네.
자연 속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인공을 가미하여 편리하게 꾸미는 것은, 자연도 끝마무리가 허술한 곳이 더러 있는가보네. 산기슭에 펼쳐놓은 아름다운 공원은 자연의 끝마무리를 일품으로 했네.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절경, 그 한 가운데서 속세의 옷을 훌훌 벗고, 천국으로 승천하는 꿈을 꾸는 것은 왜일까. 한 육체에 매달려야하는 마음이 속박을 벗어나서 비상하는 도원경이 여기라서 그러한가보네. 그대는 육체를 떠나는 영혼의 자유를 아시리.
친구여! 자네와 같이 펼치던 내 인생의 무대엔 아직도 수많은 꽃들이 피어있지만, 연리지(連理枝) 같이 의지하던 자네가 없으니 왜 이리 허전한가. 나이 들수록 먼저간 친구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데, 자네와 동행하여 호젓하게 즐기던 직지사에 다시오니, 자네가 너무나 아쉽네.
뜻밖에도 숲 속에 자목련이 피었다네. 군자의 품위 같은 고고함이 자네의 영혼 같아서 멍하니 보다가, 툭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고개를 돌렸네. 명년에도 다시 피어날, 떨어지는 꽃잎은 별것 아니지만, 한번 가서 다시 못 오는 자네 같아서, 서러움이 얽히는구려. 대 가람(伽藍)으로 들어가는 산이라고 하지만, 산 속에 핀 자목련은 어딘가 어색하게 보이네. 낮에 나온 반달 같이 희미한 꿈을 꾸는 듯도 하고, 근심은 속으로 감추고, 떠들썩한 자네 같아서 이면(裏面)의 고독이 내 눈에 머무는구려.
친구여! 내 지팡이 자네에게 빌려주던 직지사 들어서는 계단일세. 세상만사 무상(無常)이라 하더니, 천년을 훨씬 넘긴 고찰은 달라진 것이 없구려. 미술을 전공한 자네가 종교와 예술의 경지로 설명 해 주던‘黃岳山直指寺’현판 글씨는 원나라 조맹부의 예술혼을 아직도 지키고있네. 대웅전 삼존후불탱화도 자리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계시는데, 자네만 없구려. 자네의 설명이 아직도 생생하여 대웅전에 들러 삼배 올렸네, 가운데 석가모니불보다, 오른쪽의 약사여래불을 보고 원망의 마음을 품었더니, 왼쪽의 아미타여래불이 빙그레 웃으시는구려. 자네를 지키지 못한 원망을 알고 있는 듯.
세상사 원망해 무엇하리. 긴 것은 긴 대로, 짧은 것은 짧은 대로, 피고 지는 저 꽃같이 살다 가리라. 목탁소리, 풍경소리에 흔들려 떨어지는 꽃잎을 띄워, 따뜻한 차 한잔 나누고싶은데, 아쉽구려. 자네와 솔잎차 마시던 다원이 발치에 있는데, 옛길에 눈맞추다 그냥 간다네. 지는 꽃향기 경내에 가득한데, 우짖는 새는 어디에 있는가. 동행하던 친구 없으니, 직지사를 품은 황학산은 절반이 구름이구려. 그리운 친구! 직지사에 왔다가네.
(2010년 4월 22일 문학기행 중 직지사에서)
첫댓글 일곡 전회장님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날씨가 차갑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직지사의 경내공원은 전 김천시장님의 집념으로 조성된것이랍니다 잘조성되였으니 오랜세월 여러분이 즐거움을 누릴것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깊은 글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선생님. 늘 깊은 글로 저희들에게 감동을 주시니 감사 합니다. 더욱 건강 하소서!
긴 것은 긴대로 짧은 것은 짧은 대로, 피고 지는 저 꽃 같이 살다 가리라에 ㅁ한참 머물었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자연도 끝마무리가 허술한 곳이 더러 있는가보네. 산기슭에 펼쳐놓은 아름다운 공원은 자연의 끝마무리를 일품으로 해 냈네" 그렇게 표현될수도 있는거였군요, 선생님의 글을 대하면 소박함속에 화려함을 맛보게 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오늘 수업 시간에는 세월의 바다로 울리시더니 ...떠나신 친구를 그리워 하는 간절함이 읽는이의 마음을 적시어 주시는군요. 다작을 하시면서도 어찌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시는지 놀랍습니다. 더욱 건강하소서.
선생님의 가슴속엔 정이 가득하십니다.연리지 처럼 다정했던 친구와의 영원한 이별의 아픔이 제 가슴에 젖어 옵니다.
선생님의 글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 집니다.
친구를 지키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시는 선생님의 마음 감히 헤아려 봅니다.
애잔합니다 선생님 ~.^ 긴것은 긴 대로 짧은 것은 짧은대로 피고지는 저 꽃같이 살다 가리라.
일곡 선생님 ! 이번 문학기행에서도 또 친구분 생각을 하셨군요. 좋은글 감상 잘하고 갑니다.
참으로 멋진 글이에요. 감동입니다.
늘 멋진 글로 감동 시켜주시는 선생님 존경스럽습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글 빚을 지고갑니다
문우님들!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늦게 들어 와서 글 잘읽었습니다. 선생님 가슴에는 언제나 부처님이 자리를 잡고있는듯 합니다.
좋으신 의견을 참작하여 수정하여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