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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준비한 게 인도의 신화에 대한 책이었다.
그만큼 인도는 신과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나라 같았다.
카주라호는 힌두교 사원이 밀집한 곳이라는 점에서 신화의 본 고장 같은 곳이다.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조각이 남녀의 성교(미투나) 상이 많아 오히려 그것이 더 유명해졌지만
어디까지 사원의 주인은 그 본전에 모셔진 신상이다.
그 들의 아랫것들이 벌이는 정사는 사실 부차적인 것이다.
카주라호의 아침이 밝았다. 동쪽 사원의 첨탑위로 해가 올라온다.
밤새 목욕탕에 있던 빨래를 난간에 걸고 식당으로 간다.
스프가 맛나다. 토스트와 계란을 먹고 남들보다 먼저 서부사원군으로 간다.
서부사원군 까지 양쪽에 죽 늘어선 가게들이 아직 손님을 맞기 전이라 한가하다.
커다란 정자나무에 마을 동제를 지내는 우리네처럼 이들도 큰 나무를 숭배하는 토템을 가지고 있는 지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띠를 둘러놓고 치성을 드리고 있다.
박물관 뜰에 있는 큰 나무로 연두색 앵무새가 떼 지어 날아가고 날아오는 풍경이 아니라면
한국 어느 시골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일인당 250루삐를 주고 서부사원 입장권을 먼저 끊는다.
만나기로 한 8시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신에게 바칠 화환을 팔고 있는 아이들을 지나 머떵게스와르로 들어간다.
서부사원군 밖에 있는 이 사원은 지금도 예배가 행해진다.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여인네가 사원 앞에 있는 가네쉬상에 꽃을 바치고 성수를 붓는다.
그 뒤로 시바의 상징인 링가와 그 여성성의 상징인 요니 상이 시바가 타고 다니는 난디 상과 함께 있다.
“관광객이 가네쉬상 목에 화환을 걸고 돌아서자마자 꽃을 판 사람들이 바로 걷어가 다시 판다”
는 론리 프래닛의 설명과는 달리 새가 그 위에 앉아 꽃을 쪼아 먹고, 링가상의 것은 소가 먹고 있다.
아침 식사로 신께 바쳐진 제물인 꽃을 먹고 성수를 마시고 있는 새와 소.
이들에 비해 사람으로 태어난 공덕이 더 났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이 절도 커다란 나무에 금줄을 걸어 놓았는데, 한 남성이 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다.
“나무를 껴안고 있는 압살라상을 순다리라 하는데, 여기서 나무는 남신의 대리물이니
순다리상이 바로 남신과 압살라가 교접하는 미투나상이다”
라는 말을 탄트리즘 이란 책에서 보았는데 확실히 나무를 신성하게 여김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절에 들어갈 때 합장 반배를 하듯 이들은 신전에 손을 대고 그 손을 이마에 대고 입에 대고 가슴에 댄다.
사원이 바로 서부사원군의 략슈미나 사원과 붙어 있어 경계담의 창살 너머로 책에서 본 미투나 상이 보인다.
나중에 볼 것이지만 눈에 보이니 카메라를 들이대고 몇장을 찍는데 경비가 다가오더니 찍지 말라는 손짓을 한다.
인도사람들이 대충 대충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돈에 관해서는 철저한가 보다
담 밖에서 안을 찍는다고 뭐라 하는 것을 보니.
아까 끊은 표를 보이니 씩 웃고 그냥 간다.
어느 사원이나 마찬가지로 신을 벗고 계단을 올라가니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
힌두 사원은 모두 동쪽으로 문을 두고 있다.
따라서 신상은 모두 동쪽을 바라보고 서쪽을 등지고 있게 된다.
태양을 숭배하는 사상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문을 들어가니 한단 높은 곳에 구루가 앉아 있다.
동네 여인네도 그 위로 올라가있는데 또 다른 문이 있어 잠시 머뭇거리니 손짓으로 오른쪽으로 돌라고 한다.
인도의 전통예절이 장자나 성자를 보면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돈 다음 인사를 한다던데,
이 건물은 누구나 이곳에 들어온 사람은 자연스레 오른쪽으로 돌게 만들었나 보다.
그 뒤로 돌아가니 링감(요니)으로 올라 설 수 있게 되어있다.
인도에서 가장 크다는 링가를 받치고 있는 링감에 구루가 앉아있고,
여인들은 링가에 꽃을 바치거나 성수를 붓고 구루 앞으로 가니 이마에 점을 찍어 준다.
나도 앞으로 나가 구루에게 합장 반배하니 손짓으로 가까이 오라한다.
가까이 가니 제삼의 눈 지혜의 눈을 뜨라는 의미로 이마에 점을 찍어 준다.
그 앞에 바구니가 놓여 있어 갖고 있던 50루삐를 시주한다.
입구와 달리 출구가 북쪽으로 나있다.
우리네 사당이 동입서출이라면 여기는 동입북출이 되나.
그런데 이런 식으로 두 개의 문이 있는 곳은 나중에 들른 사원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
일행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 서부사원군 매표소 앞으로 나간다.
일행과 만날 시간이 되어 매표소 앞으로 간다. 이미 다 와 있는 일행과 합류하여 서부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신누르라고 하는 돌가루로 그리는 그림 랑골리)
바닥에는 파스텔톤으로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아름답다.
집 앞이나 사원 앞에 매일 매일 그리는데 아름다울수록 신의 눈길을 끌어 그것을 사뿐히 즈려밟고 오시라는 의미란다.
12시까지 오전 관람을 끝내고 오후에는 동부사원과 남부사원을 볼 예정이니 일정이 빡빡하다.
단체사진을 찍고 각자 관람하기로 한다.
박물관이 유물들의 무덤이라면 서부사원군은 울타리에 갇힌 사원전시장이라 할 수 있다.
단지 그 옛날 그 자리에서 예배가 행해졌다는 것만 빼고는
서부사원군에 모셔져 있는 신은 치트라굽타 사원에 모셔진 태양신 수리야를 빼곤 모두 비슈누와 시바이다.
인도의 신이 삼억삼천만이라 하는 데 신중의 신이라면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유지의 신 비슈누 그리고 파괴의 신 시바이다.
이들 삼신은 삼위일체의 개념으로 하나이기도 하고 셋이기도 한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신을 주신으로 생각하고 모신다.
브라흐마를 모신 신전은 현재 인도에선 한군데 밖에 없다고 하니 이 신은 버려진 신이다.
토사구팽이라고 할까 이미 태어난 인간은 창조의 신에게 더 이상 빌 무엇이 남아있지 않다.
태어난 이후에야 어떻게든 그것을 유지해야 하니 필요한 신은 비슈누이다.
뭔가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술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지켜야만 한다.
이런 속성을 반영해서인지 유지의 신 비슈누나 그의 화신들의 행태는 기만과 술수 위계가 난무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의 행태는 어찌 보면 가장 인간적이다.
신라의 불교가 왕족을 중심으로 화엄사상에 기반한 전법륜왕을 지향했다면,
인도의 지배계급인 크샤트리아는 비슈누를 자기와 동일시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화신 중에 크리슈나나 라마야나가 무사계급인 왕족이었다는 점이
신의 구현으로서 왕이라는 전법륜왕의 개념이 있었던 것 같다.
유지할 것이 없는 사람은 세상이 뒤집어져서 새 세상이 열렸으면 할 것이다.
새 생명과 새 세계를 열기 위해서는 지금의 세계는 파괴 되어야 한다.
파괴가 곧 창조니 시바는 파괴 속에 창조를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신이 된다.
용화세상을 펼칠 미륵을 기다리는 심정과 같다고나 할까
때문에 시바는 악신이든 인간이든 수행을 통해 자신을 숭배하는 자에게 힘을 준다.
이야기인도신화를 보면 인간이 수행을 해서 신보다 더 센 힘을 갖게 되고
신들은 이들 인간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비슈누의 화신도 이들을 꺾기 위해 위장하고 사기치고 술책을 부린다.
신을 버릴 수 있고 스스로 수행을 통해서 신이 될 수 있는 나라 인도가 매력적이다.
내안의 신성이 너 안의 신성에게 인사드린다는 뜻의 ‘나마스테’
오직 내가 믿는 신만이 진정한 신이라는 아집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의 신으로 만나는 인도
그들의 그 여유가 좋다.
카주라호 사원을 수놓고 있는 미투나 상을 만든 이유에 대해 많은 설이 있지만 모두 설일 뿐이다.
남자 수행자만 있는 사원의 학생들에게 인간의 행사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서였다고도 하고,
일곱 개의 챠크라를 깨워 니르바나에 이른다는 샥티교 탄트라 수행의 다섯 개 방편중
하나인 미투나를 표현했다고도 한다.
또한 번개의 신 인드라가 이를 보고 부끄러워서 다른 곳으로 가라는 피뢰침의 역할도 있다고 한다.
카주라호에서는 어떤 상상도 자유다.
어차피 신의 탄생이나 신의 행사는 상상의 것이지 현실의 것은 아니다.
상상의 힘이 고갈된 곳에서 조각은 구체성을 띈다.
고인돌에 새겨진 동심원 하나만으로도 생명을 노래한 원시인들의 상상의 산물
링가와 요니 이 하나만으로는 생산에의 갈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나보다.
상상의 힘과 추상의 힘이 고갈된 인간들은 더 이상 생각할 능력을 잃어버린
자신을 깨우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 냈으니-
부처 사후 500년이 지나 부처의 상을 만들어 냈듯이 카주라호의 미투나는 상상력의 고갈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가장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는 락쉬마나사원은 기단부에 카주라호에서 가장 파격적인 미투나 상이 있다.
말과 수간하는 장면인데 뒤의 여인은 차마 눈뜨고 못 보겠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인도의 성과 풍속이란 책에 크샤트리아 계급의 남자들은 결혼 전에 천명의 여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꿈이었단다.
말과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간 이들에게 천명을 채울 여인이 없었나보다 그들은 급기야 말까지 탐했으니.
기단부는 비슈누가 크리슈나와 라마야나 로 화현했을 때의 생활을 표현한 것 같다.
기단이 지상이면 기단 위는 천상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기단부의 조각과 사원부분의 조각이 차이가 나 보이는 것도 같다.
성행위를 표현한 것도 기단부가 저질스럽고 사원부분은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
다른 사원들은 기단에 이런 조각이 없으니 인간으로 화현했을 때의 미투나가 사원벽의 하단에 같이 새겨져 있다.
카주라호 미투나 상을 살피다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는 데 사원의 벽 중심에 벽감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미투나 상을 모신 것들이다.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독립된 벽감을 만들고 그 안에 모셨으니
인간의 행위가 아닌 신의 행위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카주라호사원의 미투나 상은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자세로 교접을 하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왜 그래야만 했을까?
탄트라와 체위가 갖는 상관관계를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책을 찾을 수 없으니 답답하다.
상상은 자유라 했으니 내 멋대로 추측한다면 어떤 어려운 지경에 처해서라도 포기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인다.
옆에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서라도 일단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생산 활동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교훈이 아닐까?
수레를 끄는 말의 숫자에 따라 바람의 세기가 달라진다는 바람의 신
뮤투가 끄는 마차에 말이 한 마리부터 999마리까지 다양하니 얼마나 극심한 기후의 변화가 있겠는가?
게다가 건기도 있고 우기도 있으니 인도의 생산 활동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악조건속에서도 생산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말고
또한 중심 미투나 상을 보면 가장 많은 자세가 서로 껴안고 다리를 하나씩 상대방에 몸에 감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네 다리 중 한 다리씩 두 다리만이 대지를 딛고 서있는 미투나.
여성과 남성이 함께 했을 때 비로소 한 인간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신은 중성이라는데 그 신의 양면성이 남성신과 여성신으로 화현한 것을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남부사원의 챠투르부즈의 벽면에는 한몸에 시바와 파르바티가 반쪽씩 표현되어 있기도 하니 말이다.
비슈누를 모신 락시마나사원 앞에는 비슈누의 화신인 멧돼지 바라하를 모신 작은 신전이 있다.
바라하를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도 있고 작은 건물이지만 아름다운 기둥과 천장을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난간에 그려진 그림이다.
처음 지었을 때부터 그려진 것인지 아님 후대에 누군가가 기둥을 보고 따라 그린 것인지 모르지만,
바라하가 서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위와 아래로만 공간을 두지 않고 좌우 옆면으로도 공간이 확장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 그림으로 인해 바라하의 신전은 육면체 공간이 아닌 계속 팽창하는 구형 공간의 성격을 띈다.
이런 확장성을 생각한다면 사원의 외벽에서 왕성한 성욕을 보여주고 있는
신들은 단순히 성교를 하고 있다기보다는 세계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자신이 모시는 신에 대한 경건한 표정으로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체위의 왕성한 생산력으로
자신이 맡은 방면으로 계속 씨를 퍼뜨리고 그 힘을 받아 옥수수콘 같은 시카라-
곧 우주가 쑥쑥 자란다고 생각하니 사원 자체가 역동적으로 보인다.
이런 상상 속에 어찌 미투나 상을 낯 뜨거워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는 생명창조의 존엄성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쾌락만을 쫓는 자이리라.
카주라호 사원을 돌아보는 재미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하나지만 사원의 벽에 붙어 있는 조각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감상거리다.
같은 조각 같은데도 찾기에 따라 특별한 조각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색다른 미투나 상을 찾거나 압살라의 특이한 자세나 생활 속의 자세를 찾아내는 것도 아주 큰 재미를 준다.
온몸을 비틀고 서있는 압살라의 모습은 아마도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섹시한 포즈가 아닐까?
몸 전체는 나를 등지고 서 있으니 어딘가로 떠나려 한다.
마지막 기회인듯 돌아본 그를 붙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동료들과 함께 그 자세를 따라하는 것도 서로에게 큰 즐거움이다.
덤으로 신체나이도 알 수 있다.
압살라들은 천상에 살아서 그런지 중력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가슴은 공처럼 하늘로 한껏 부풀어 있다.
성형을 하는 여인네들이 갖고 싶은 가슴이 저럴까?
인도의 선녀들은 날개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늘 옷도 아닌 가슴에 매달려 하늘로 오를 것 같다.
카주라호가 워낙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한국에서 온 관광객도 많다.
춘천에서 오셨다는 비구니 두분과 인도를 몇 개월째 여행중이라는 청년과도 이야기를 나눈다.
단체로 오신 분들도 만났다. 카주라호에 한국식당이 많은 이유가 다 여기있다.
공원처럼 잘 가꿔진 서부 사원군을 시계방향으로 돌기로 한다. 머떵게시와르 사원에서처럼.
락시마나에서 시계방향으로 돌면 카주라호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깐다리야마하데바 사원이 나온다.
시바를 모신 사원으로 안에 시바의 상징 링가가 있다.
그옆에는 사자를 쓰다듬고있는 싸르둘라상이 있는 마하데브와 시바의 부인인 파르바띠가 분노했을 때의 모습인
검은색의 칼리상을 모신 데비자간담바가 있다.
카주라호에서 유일하게 태양신 쑤리야를 모신 치트라굽타가 바로 곁에 있다.
아담한 모양에 정감이 간다. 외벽 중앙에 있는 십일면 비슈누상이 유명하다.
비슈누의 자신과 열 개의 화신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우리에겐 십일면관음보살처럼 보인다.
일행과 관람에 지친 다리도 풀겸 잔디밭에 앉아 몸을 푼다.
국선도 사범님께서 벽감속에 압살라처럼 유연한 몸을 보여주신다.
따라하니 여기저기서 우두둑 뿌드득 소리가 들린다.
한 이십 여분 몸을 푸니 상쾌하다.
비슈와나트 사원과 빠르바티 사원으로 간다.
신경의 끈도 느슨해지고 미투나상도 자꾸 보니 싫증이 난다.
그게 그거 같고 도상을 연구하는 것도 아닌데 하면서 대충 훑으면서 지나간다.
그러다 뭔가 색다른 것을 발견하면 서로에게 보기를 권하니 단체여행의 재미가 이런 것인가 보다.
비슈와나트 사원은 시바를 모시는데 그 앞에 시바의 탈것인 황소 난디 상이 멋지다.
마지막으로 빠르바티란 이름이 붙은 아담하고 하얀 사원은 악어에 올라탄 강가상이 있어
우리가 다음에 갈 바라나시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두 시간 남짓 주어진 시간에 서부사원군을 돌아본다는 것은 무모하다.
하나하나의 사원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 시간을 다 써도 모자랄 듯하다.
그만큼 사원이 갖고 있는 볼거리는 사원임에도 이것을 지은 사람들과 신의 문제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게 한다.
많은 사원들이 파괴되었다지만 그래도 이만큼 남은 것도 천만다행이다.
찬델라 왕조가 가진 꿈은 무엇이었을까?
도시 전체를 사원으로 만들 만큼 절박한 무엇이 있었을까?
그러나 그들의 바람은 헛되었으니 신을 향한 짝사랑이 다른 인간들을 괴롭히면서
스스로를 좀먹어 들어간 것은 아닐까?
서부 사원을 나와 정자나무 곁에 있는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카주라호 전역에서 나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잘 만들어진 부조와 환조 작품들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어
높은 곳에 붙어 있는 사원의 부조와는 다른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춤추는 가네쉬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바와 파르바티 사이에 태어난 가네쉬.
엄마의 수련-인도에선 신들도 수련을 해야 한다. 아니면 인간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을 방해하지 못하게 명령을 받지만 하필 그 때 찾아온 욕정에 불타는 애비 시바.
엄마의 명을 따라 아빠를 막았건만 자신의 권능을 손상당한 시바는 정말 시바스럽게 아들의 목을 치네.
이를 뒤늦게 안 엄마 파르바티.
‘야 이 씨바 니가 뭔데, 응 니가 뭔데~ 내 아들 머리를 자른 거야 이 씨바야’
협박도 하고 항의도 하니 시바는 가장 먼저 만난 인드라 신이 타고 다니든
코끼리 머리를 잘라 아들의 몸통위에 얹어주지.
그래서 몸은 인간이요 머리는 코끼리인 가네쉬가 탄생한거야.
시바는 미안했던지 부와 지혜의 신으로 그를 만들어 주었지.
또 하나 어머니 파르바티의 수행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다가 머리가 잘렸으니,
그가 지키고 있는 곳은 그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는
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들어갈 수가 없게 만들었지.
그래서 가네쉬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쥐를 타고 다녀.
인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신 가네쉬‘
(박물관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신전의 벽에 붙어있는 가네쉬상)
머리가 바뀌었어도 즐겁기만 한 가네쉬 눈가에 웃음을 잔득 머금고 흥겹게 온몸을 흔든다.
내 마음도 덩달아 흔들린다.
이제 볼 것 다 봤으니 먹어야한다.
각자 먹을 것을 찾아 떠나지만 조그만 카주라호 거기가 거긴 듯해도 식당을 정하기가 만만치 않다.
여기 저기 둘러보는데 한글 간판이 제법 눈에 띈다.
단지 한글로 쓰여 있다는 이유 하나로 들어간다.
‘아씨 식당’-다른 일행들은 ‘총각식당’에서도 먹었단다.
장금이 식당은 어제 저녁 자기 죄 아닌 죄 때문에 아무에게도 선택되지 못했다.
물론 아씨 식당에도 여자는 아예 없다.
그러고 보면 카주라호에선 식당이나 가게에 나와 있는 여자를 본적이 없는 것 같다.
홀 서빙보면서 주방일 거드는 총각 붙박이로 주방일 하는 총각 주방에서 허드렛일 도와주는 꼬마 이렇게 남자 세 명이 일한다.
한국 식당답게 기본 반찬으로 총각김치를 준다. 수입해서 담갔을 리는 없고 이곳에서도 총각무가 재배되나 보다.
여섯 명이 일행인데 김치볶음밥 두 명 나머지는 인도식으로 시킨다.
이름만 봐서는 무슨 버섯이나 야채 볶음 요린 줄 알고 시켰는데 나중에 나온 것을 보니
우리네 닭도리탕과 비슷해서 서로 웃는다.
입맛에도 맞아 탁월한 선택이니 먹는 데 운이 따른다느니 한마디씩 주고받는다.
인도 음식의 기본 달과 커리 몇 가지 더 시켜서 먹는데 모두들 만족이다.
식당에는 모기가 많지만 얘네들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비뚤어지는지 물지를 못한다.
그래도 몇 마디 하니 친절하게 모기향을 피워준다.
물론 여기서도 한국인 기질이 발동해 음식 빨리 되는 것이 무언가 부터 묻기도 하고, 시키고 바로 재촉도 하는데 아씨 식당 간판 값을 하는 지 생각보다 빨리 나온다.
이곳이 시골은 시골인가보다 내 뒤로 밤톨만한 새앙쥐가 휙 하고 지나가는데 가네쉬는 보이질 않는다.
정말 자연친화적 식당이다.
밥맛이 떨어질까 봐 나 혼자 보고 만다.
몇 년 전인가 순천으로 여행 갔을 때 저녁이 생각난다.
외지에서 왔다고 미리 예약해놓은 집 가장 깊숙한 방에 새앙쥐가 들어와 내 뒤에 있던 휴지통에 스스로 갇히던 그 일이.
같이 있던 누군가는 몸보신한다고 산채로 꿀에 찍어 먹었었다는 옛이야기까지 했었는데.......
다른 일행도 이곳으로 들어와 김치찌개와 볶음밥 등을 시켰는데 나중에 보니, 맛이 별론지 김치찌개가 그냥 남아있다.
이렇게 여섯 명이 푸짐하게 먹고도 200루삐(한국 돈 5000원정도)정도밖에 안 나왔다.
주어진 시간보다 빨리 끝내고 오후 일정을 시작할 호텔 앞으로 간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남은 짜투리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일행은 간단하게 쇼핑을 하고 나는 고른 물건을 흥정한다.
왜 내가 조장이니까?
가만 놔두면 쇼핑의 세계에 한없이 빠져들 여인들을 결국은 찾으러 올 것 같으니까?
첫댓글 ㅋㅋㅋ 내가 조장이니까... 네 훌륭한 조장이셨어요 ^^ 선거를 잘 끝내서 너무 기쁜 나눔...^^
위와 동문올시다! 두툼한 일당으로 뭘하셨나요, 나눔님! 낼 밤 뵈을께요, 훌륭한 조장밑에 싹싹한 조원들이 있쟎수! ^^*
인도 여행을 최고로 멋지게 여행하셨군요.
카주라호가 정리가 되지 않더니......맘대로 상상한 청한님의 글을보니 나름대로 정리가 되는 기분입니다.....즐겁게 감상하고 갑니다...
남해대교님~ 진짜 반가내고 올라오시게요?? 일당은 내일이 아빠 생신이라 용돈 드렸어요 ^^
캬아~~..역시..책으로 내셔야 한다니까요~~ㅎㅎ...이렇게 하는 공부라면 맨날이라도 하겠네요~~..ㅎㅎ..
야 이 씨바~~네가 뭔데 응, 씨바~~~그래서 시바인줄은 몰랐어요...ㅎㅎㅎㅎ
너무나 완벽한 답사기에 찬사를 보냅니다~~소설같은 답사기 읽으니 마치 제가 인도같다온거 같다니깐요^^
캬아~~ 역시 책을 내셔야 한다니까요..우리만 보긴 정말 아까워요. 책 내세요. 출판 기념회도 하게요.ㅎㅎㅎ
현장 스케치가 너무나 훌륭하네요. 아무래도 모놀에서 힘쓰서 강단으로 보내야겠어요
시간상 우리조는 점심을 빵으로 먹은지라 저녁에 시킨 김치찌게를 국물꺼정 맛나게 먹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