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일
11/18(금)
4:30 법문
의심에서 해방되는 청정
『큰 스승의 가르침』, pp. 300-315 참조.
http://cafe.daum.net/satisamadhi/8fFZ/24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로 의심에서 벗어난다. 걸을 때 의도에 의해 풍대가 생기고 이 풍대가 육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를 ‘걸어감’이라고 한다. 의도가 원인이 되어 ‘나아감’이라는 결과가 발생했고, 다시 이 나아감이 원인이 되어 나아감을 앎이라는 결과가 생겼다.
몸이 파괴되면 정신도 없어진다. 정신이 파괴된다고 해도 남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업의 힘이 남는다. 이 업의 힘이 원인이 되어 물질과 정신의 탄생이라는 결과가 이루어진다. 업 중에서 불선업을 제거해 버린 수다원은 사악도(사악처)에 떨어지지 않으며, 불선업은 물론 선업도 제거한 아라한은 윤회에서 벗어난다. 아라한이 아닌 모든 중생은 업을 가지고 있다.
거울에 몸을 비추면, 몸이 원인이 되어 거울 속의 영상이라는 결과가 생기는 것처럼,
전생의 업이 원인이 되어 다음 생에 육체와 정신의 탄생이라는 결과가 초래된다.
산에 올라가서 ‘야호’하고 지르는 소리가 원인이 되어,
메아리라는 결과가 생기는 것과 유사하다.
이렇게 원인과 결과를 철저히 알아서 의심에서 벗어난 사람은 작은 수다원이다.(『큰 스승의 가르침』, pp. 201-212 참조.) 이런 사람은 다음 생에서 사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삼매에 들려고 기를 쓸 필요 없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만 하면 된다.
질의응답
질문: 대념처경에서 호흡의 모든 과정을 사띠하면서 들이쉬고 내쉬고 한 다음에, 호흡하는 몸을 고요하게 하면서 들이쉬고 내쉬라고 되어 있다. 이 ‘호흡하는 몸을 고요하게 하면서’를 의도를 가지고 해야 합니까, 아니면 그냥 그런 생각만 가지고 하면 호흡하면 되는 것입니까?
대답: 그것은 수식관할 때 채택하는 방법이다. 마하시 방법은 대념처경 중에서 행주좌와라는 몸의 자세와 분명한 앎(삼빠잔냐)로 수행을 지도한다.
질문: 지금까지는 삼매에 들려고 노력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알기만 하면 됩니까? 그렇게 알기만 해서 언제 삼매에 듭니까?
대답: 자꾸 알기만 하다 보면 집중 비슷하게(찰나 삼매) 된다.
질문: 10가지 설명하지 않은 것과 네 가지 설명한 것(* 十事無記와 四聖諦)은 ‘윤회니 전생이니 미래생이니 세상이 영원한지 무한한지 따지다가 일생을 허비하지 말고, 욕심(集)이 원인인 고(苦)를 해결하기 위하여 팔정도, 특히 사띠를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통역: 그렇습니다.
대답: 세상의 끝은 열반이다. 만약 10가지를 계속 생각한다면 아마도 미칠 것이다.
* 설명하지 않은 것(10事無記)과 설명한 것(四聖諦)(M63에서)
말룽꺄뿟따여, 그러므로 내가 설명하지 않은 것은 설명하지 않은 대로 호지(護持)하라. 내가 설명한 것은 설명한 대로 호지하라.
그러면 나는 무엇을 설명하지 않았는가?
1.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2.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3. “세상은 유한하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4. “세상은 무한하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5.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6.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7. “여래는 죽고 난 후에도 존재한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8.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9.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10.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말룽꺄뿟따여,
그러면 왜 나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지 못하고,
청정범행의 시작에도 미치지 못하며,
[속된 것들을] 염오(厭惡)하도록, 욕망을 빛바래도록, 그치도록,
고요에로, 초월지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룽꺄뿟따여, 그러면 나는 무엇을 설명하였는가?
1.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설명하였다.
2.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나는 설명하였다.
3.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설명하였다.
4.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나는 설명하였다.
그러면 왜 나는 이것을 설명하였는가?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고,
청정범행의 시작이며,
[속된 것들을] 염오하도록, 탐욕을 빛바래도록, 그치도록,
고요에로, 초월지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질문: 찟따(心)와 마노(意)와 윈냐나(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대답: 같은 것이다.
질문: 손에 물건이 닿아서 알았을 때 신식(身識)이 있어서 안다고 할지라도 뇌가 없으면 알 수 없지 않을까요?
대답: 심장에 마음이 있습니다.
질문: 만약 심장에 마음이 있다면,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에는, 생명이 생성되었다면 마음이 있을 텐데, 그 순간에는 심장이 없지 않습니까?
대답: 수태의 순간 3가지 물질이 있다. 까야(몸), 바와(성별), 왓투(심장토대)가 그것이다.
질문: 왜 경행을 병행해야 합니까?
대답: 정진과 삼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다.
첫댓글 사두사두사두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