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장에서
당기소/ 김양순
2009년 12월 셋째 토요일 오후 6시쯤,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 매표소 주변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각자 가지고 있는 티켓으로 지정좌석표를 교환하려는 사람들이 줄 서 있는 행렬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길었다. 모두가 가수 조영남씨의 콘서트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내가 이 날 그 대열에 낄 수 있었던 것은 불과 몇 시간 전에 만난 뜻밖의 행운 때문이었다.
콘서트 시작하기 세 시간 쯤 전이었다. 중학생인 딸아이가 영어 인증시험을 보는 날이어서 전주시내 한 고등학교에 갔었다. 그 곳에서 딸아이 시험 끝나기를 기다리는 중에 아는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분도 나와 같은 목적으로 그 곳에 왔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담소를 나누다가 아이들이 고사장에서 나올 때 쯤 되자 그 분이 티켓을 주며 “관심 있으시면 이따가 구경 가세요” 해서 받아들고 보니 조영남 콘서트를 관람할 수 있는, 한 장에 오만 원짜리 R석 티켓 두 장이었다. 나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반갑기도 해서 “이렇게 비싼걸 그냥 받아도 될까요?” 했더니 “괜찮아요, 어차피 임자 없는 티켓인걸요” 사정을 들어보니 그 분 가족과 같이 가기로 약속했던 다른 가족이 갑작스런 사정으로 못 가게 되어 임자 없는 티켓이라 했다. 나는 산타 할아버지에게서 선물 받은 기분으로, 시험 끝내고 나오는 딸아이를 데리고 곧장 소리문화의 전당으로 향했던 것이다.
콘서트 시작시간이 되자 무대에 사람은 안 보이는데 조영남씨의 친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한 손에 마이크를 들고 ‘옛 동산’ 을 부르면서 객석 출입구에서부터 통로를 따라 무대를 향해 입장하는 조영남씨가 보였다. 조영남씨는 통로에 있는 많은 청중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천천히 걸어서 무대에 올랐다.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뜨거운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무대에 오른 조영남씨가 입을 열어 “여러분 지금 밖에는 자리 없어 못 들어오는 사람들이 수 백 명 있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어떻게 그냥가라고 합니까? 밖에 있는 분들 들어오게 해 줍시다.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찬성한다는 뜻의 청중들의 박수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 통로계단 맨바닥에 앉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뒤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아서 콘서트장은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이 날 음악회는 조선왕조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지금은 전주 한옥마을에 살고 있는, 황손 이석 씨가 총재로 있는 황실문화재단 주최로 마련되었다. 그리고 전라북도와 전북은행이 후원하는 음악회인지라, 공무원 가족들과, 전북은행 직원가족들을 위한 송년음악회 분위기였다. 또 전주지역을 대표하는 낯익은 유명인사들과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던 서울에서 온 여 기자의 얼굴도 청중석에서 보였다.
조영남씨의 노래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면서도 마음의 빗장을 풀게 하는 힘이 있다. 이 날 노래 시작하기 전에 그는 “감기기운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100% 의 기량을 다 보여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걱정 어린 첫 인사를 했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히 힘이 있었다. 바퀴달린 신발을 신고 무대를 누비며, 65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명나는 열창으로, 전기기타 연주와 피아노 연주로, 그리고 거침없는 입담으로 청중들을 즐겁게 했다. 거기다 무대 뒤편 스크린에서는 그의 유명한 화투그림들이 무대 배경으로 보여지고 있어서 이 날 미끄러운 눈길을 달려온 청중들의 귀와 눈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나는 그의 화투그림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 표정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날 음악회에서 그동안 그가 불렀던 노래들을 거의 다 들을 수 있었다. 딜라일라, 제비, 화개장터, 주하나님 지으신 모든세계 등 모두다 귀에 익숙한 노래들이어서 속으로 따라 부르며, 음악회를 즐겼는데, 음악회 끝날 때 쯤 그가 부른 ‘모란 동백’이라는 노래는, 내 가슴에 차가운 빗줄기가 주르륵 지나가게 했다. 노랫말 내용을 대강 소개하자면 ‘모란꽃 필 때 길 떠난 어떤 나그네가 모란꽃 그늘 아래서 잠이 들거든 그대로 두고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그 나그네를 기억해 달라’ 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 노래는 조영남씨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에 온 동료 가수들이 조영남씨를 추억하며 불러주기를 바라고 만든 노래라고 했다. 두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고 끝 곡으로 ‘그대 그리고 나’를 조영남씨의 시원스런 열창과 청중들의 한마음 된 노랫소리가 하모니로 어우러져 모악당 가득 울려 퍼지며 이 날 콘서트는 끝났다.
행복하고 열기 가득했던 그 콘서트가 끝난 지 보름 쯤 지난 2010년 1월초 인터넷 뉴스에 조영남씨의 입원소식이 올라왔다. 웬 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벼운 뇌경색 증상이라니 큰 변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의 가수생활에 지장을 가져오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그 날 모악당 음악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무대바닥에 주저앉아 노래 부르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그 날 많이 힘 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투철한 프로의식이 가슴으로 느껴졌다.
내가 조영남씨의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의 가수생활 초창기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솔직하고도 거침없는 그의 입담은 아슬아슬한 듯 하면서도 듣는 사람 마음을 유쾌하게 만든다. 이러한 장점과 개성 때문에 그 오랜 세월동안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져 왔다. 특별한 히트곡도 별로 없고, 눈에 확 뜨일만한 용모를 지니지도 않은 그가 60대 중반의 나이까지도 여전한 인기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아마도 그의 철저한 프로의식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는 타고난 목소리와, 무대를 즐기는 끼,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솔직하고 당당한 성격 등 자신의 장점과 개성을 최대한으로 살려내어 실력 있는 최고의 대중예술인이 되고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가수로 ,화가로,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도 그 바쁜 중에 책을 여러 권 썼다는데, 그 모든 일들이 피나는 노력 없이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조영남씨가 병원에 입원한지 10여일이 지난 1월15일자 인터넷뉴스에는, 조영남씨는 현재 빠르게 회복되어 가고 있으며 병원에서 그림을 그리며 쉬고 있다고 한다. 오는 2월1일~2월17일까지 그의 평생에 이루어 놓은 예술작품들(음악, 미술, 문학)을 집약한 전시회를 서울에서 갖는다고 한다. 병상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조영남씨의 예술에대한 뜨거운 열정과 프로의식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무대에 선 조영남씨가 그 힘찬 목소리로 '제비'를 부르는 모습을 하루속히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끝
첫댓글 감상문이라기 보다는 보고서 양식으로 전개한 당기소님의 자상한 콘서트 내용과 조영남 가수의 근황까지 곁들여 잘 소개해 주셨습니다. 글의 전개의 내용이 아주 치밀하고 정확하게 구성하여 읽는 본인도 컨서트에 온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쓰셨습니다. 연말의 행운을 얻으심을 축하드리고 좋은 콘서트는 온 몸과 마음의 전율을 느끼며 감격스럽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수필을 대하고 보니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콘서트장에 갈 수 있었던 인연과 행사의 내용도 잘 묘사 되었습니다. 독자에게 흥미를 줄 수 있는 조영남 가수에 대한 이야기도 놓치지 않고 조목조목 잘 나타냈습니다. 특히 그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불러달라고 했던 '모란 동백'에 대한 느낌을 '내 가슴에 차가운 빗줄기가 주르륵 지나가게 했다'라는 표현은 시인의 글이어서 감동적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영남 가수에게 초점을 맞추어 주제의 흐름이 한결 같아 집중을 하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기소님의 글이 끝까지 마음을 당기었습니다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아이콘인 스타나 가수에 우리는 열광합니다.매혹을 풀풀 품어내는데 진짜 매력있죠. 그리고보니 당기소님도 만능 엔터테이너시다. 이렇게 음악에 조예가 깊을 줄이야! 조영남의 주옥같은 노래 제비를 오늘 또 불러보며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습니다.무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