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에 입술을 댄다 창밖으로는 세 쌍의 새가 서로를 향해 날아오르고 넘칠 듯 들이치는 햇빛이 지나가는 사람의 옆모습을 비추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에'
- 정다연 詩『천사가 지나가는 동안』中
- 詩集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모처럼 평일 휴가다. 오랜만에 머리도 자르고 필요한 것들도 구매하려고 나섰다. 이른 오후를 만끽하며 걷던 참이었다. 전화기가 울린다. 문자메시지가 와 있다. 잊고 있던 일을 독촉한다. 간곡한 어조로, 서둘러 처리해달라는 종용이 담겨 있다. 서둘러 카페를 찾아 들어간다. 노트북을 열고 파일을 찾아 문서를 작성해 부랴부랴 전송한다. 숨이 턱 막히고 놓친 일이 없는가 싶어 불안해진다. 도무지 끝나지 않는구나.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고 허리를 펴본다.
건너편 자리에 친구 사이로 보이는 청년 둘이 앉아 있다. 시끄럽다 싶게 떠들어서 눈살 찌푸리게 했던 이들이다. 결국 이어폰을 찾게 만들었던 그들이 조용하다. 무엇 때문일까. 가만 보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순간 픽- 웃고 말았다.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을 맞이했구나. 여럿이 모여 떠들다 일순 조용해지는 느닷없는 현상을 유럽에선 그렇게 표현한다던데. 그 짧은 시간을 못 견디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구나. 우스워하다가, 내 처지라고 뭐 다를 게 있나 싶어졌다.
휴가를 만끽하겠다고 나섰다가 한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노트북을 켜고 만 나는 더 한심하다. 그럴 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핑계 아닌가. 그 순간을 괜히 천사라는 존재로 표현하겠어. 그것이 여유이기 때문이다. 쫓듯 쫓기듯 급하다간, 천사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살게 되겠지. 이건 패배다. 패배가 아닐 수 없다. 소리 내어 노트북을 덮었다. 어떤 답장이 오든 오늘은 쉬겠어, 다짐하면서.
버스가 오면
버스를 타고
버스에 앉아 울지 않는 마음
창밖을 내다보는 마음
흐려진 간판들을 접어 꾹꾹 눌러 담는 마음
마음은 남은 서랍이 없겠다
없겠다
없는 마음
비가 오면
비가 오고
버스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곳에 나를 놓아두는 것
나는 다만 기다리는 것’
- 박소란 詩『울고 싶은 마음』中
- 詩集 ‘있다’
어릴 적 별명이 찔찔이였다. 툭하면 운다고. 톡 건드리면 눈물을 흘린다고 찔찔이. 쟤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눈물이 헤퍼.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버지를 흘겨보곤 했다. 실은 아버지의 별명이 찔찔이였다지. 휴가를 뺏겼다고 군대에서도 울었다던 사람.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나는 훌쩍이면서 아버지도 찔찔이였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스무 해가 다 돼간다. 나는 내 어릴 적 아버지만큼 나이가 들었고 이젠 울지 않는다. 사실은,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눈물에도 총량이 있는 것일까. 어릴 적 너무 울어서 더는 울지 못하게 돼버린 것일까. 슬픈 일이 있어도 콧등이 시큰거리고 그뿐이다. 다들 우는데 혼자 멀쩡해서 곤혹스러웠던 적도 몇 번 있었다.
며칠 전엔 우는 사람을 봤다. 중년의 사내였는데 엉망으로 취해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기대앉아서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굽은 어깨에 손을 대주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로할 용기가 내겐 없었다. 서툰 마음을 감추느라 냉큼 버스에 올라탔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나도 울고 싶어졌다.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 사내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는 이 없는 곳에서 펑펑 울고 속이 후련해졌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언젠가 엉엉, 크게 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좀 부끄러우니까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