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문광스님의 한국학 에세이 시즌 2] <4>
한국禪이 보여주는 한국 정신의 진수
생사 자재했던 선사들 추모재에 한국禪 저력 있다.
인곡선사의 추모재는 종사영반(宗師靈飯)이나 다례재의 형식도 없이
삼배를 올린 뒤 오직 죽비 3타에 이은 입정(入定)과 죽비 3타의 출정(出定)으로
순식간에 끝마치고 마는 것이었다. 그 연유를 스님들께 여쭤보니
“내 염불은 내가 다 하고 가니 내 기일 날에는 염불 안 해도 된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는 것이다. 상좌이자 법제자였던 혜암 큰스님은 스승의 기일마다
선정(禪定)에 드시는 것으로 추모재를 대신해 왔던 것이다.
향곡선사는 입적하시기 전에
“나의 기일에는 다른 공양은 모두 필요 없으니 나의 법제자 진제가
운문삼전어(雲門三轉語) 법문을 공양으로 올려다오”라는 유훈을 남기셨다고 한다.
법회가 진행되자 진제 큰스님은 진영이 모셔진 오른쪽 단상으로 나가셔서
일주향을 사르고 예삼배를 올린 뒤 운문삼전어 법문을 공양으로 올렸다.
“운문선사가 묻고 파릉선사가 답했다.
1)‘무엇이 도(道)인가?’
‘눈 밝은 이가 우물에 떨어졌습니다.’
2)‘무엇이 제바종(提婆宗)인가?’
‘은쟁반에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3)‘무엇이 취모검(吹毛劒)인가?’
‘산호나무 가지가지마다 달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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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 삼전어 화두
중국 당나라 파릉 선사는 운문선사의 법을 이어 세상에 나와 개당(開堂)하기 전
악주의 파릉원에 머물렀는데 법을 깨친 오도송을 따로 짓지 않고 운문선사가 자주 말씀하신
삼전어(三轉語: 세 가지 화두)를 스스로 자문자답하여 선사께 올려서 인가를 받았습니다.
운문선사는 이 파릉의 삼전어 답을 보고 말하였습니다
"훗날 노승의 제삿날에 다만 이 삼전어를 거량하여 법문하면 충분히 노승에 대한
은혜를 갚는 것이다." 이후로 부터 운문선사 제삿날에는 선사의 유촉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고 다만 이 삼전어 법문만을 거량(독송)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고래로 파릉 삼전어 법문은 운문선사의 골수를 밝힌 법문일 뿐만 아니라
조사선의 극치를 밝힌 심심미묘한 격외법문인 바,
졸납이 이 파릉 삼전어 법문에 착어와 총송을 다음과 같이 붙였습니다.
● 巴陵三轉語 파릉(운문)삼전어
1. 어떤 것이 도입니까?
(여하시도如何是道)
파릉답: 눈 밝은 사람이 우물에 빠짐이로다.
(명안인낙정明眼人落井)
※拙云졸운 졸납(법현)이 말하다.
(的的當陽句 적적당양구)
확실하고 확실한 밝은 날의 말이요
(明明箭後路 명명전후로)
밝고 밝은 화살 뒤의 길이로다.
2. 어떤 것이 취모검(지혜의 보검)입니까?
(여하시취모검如何是吹毛劎)
파릉답: 산호 가지마다 달이 비침이로다.
(산호지지탱착월珊瑚枝枝 撑着月)
※拙云졸운 졸납이 말하다.
(面南看北斗 면남간북두)
남쪽을 향하여 북두성을 보고
(日午打三更 일오타삼경)
정오에 삼경을 치도다.
3.어떤 것이 제바의 종지입니까?
(여하시 제파종如何是 提婆宗)
파릉답: 은 주발에 눈이 소복함이로다.
(은완리성설銀椀裏盛雪)
※拙云졸운 졸납이 말하다.
(巴陵 得人半斤 파릉 득인반근)
파릉은 남한테 반근을 얻고서
(還他八兩 환타팔양 )
여덟 양을 갚으니
(未免錯認定盤星 미면착인정반성)
저울 눈금을 잘못 알았음을 면할 수 없도다.
(*한 근이 16양이니 반근은 8양이 된다. 그러므로 파릉은 남한테 반근을 얻고서
8양으로 갚았으니 맞게 갚은 것인데 어째서 저울 눈금을 잘못 읽었다 하는 것인가?
이 말뜻을 바로 알면 '은 쟁반에 눈이 가득하다'는 파릉 선사의 말뜻을 바로 알 수 있다.)
*파릉호감(巴陵顥鑒): 생몰미상. 파릉은 주석지명. 운문문언(864~949)의 법을 이음.
악주 파릉 신개원에 머뭄. 파릉삼전어巴陵三轉語가 유명함.
*제바(提婆): 생몰미상. 서천 부법장 제 15조 가나제파(迦那提婆) 존자로서
용수의 법을 이어 라후라다에게 법을 전함. 본시 외도 무리 중의 하나이나
용수를 뵈었을 때 바늘을 발우에 던져서 용수의 심종에 계합하고 제 15조가 되어
그 후로 96종의 외도 무리 속에 들어가 그들을 교화하다 마침내 순교함.
*제바종(提婆宗) ᆢ(불교신문 송강큰스님의 글에서 따옴)
중국의 선어록에 ‘제바종’에 대한 질문이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스님들의 관심을 끌었던 종파였음을 알 수 있다. 제바종은 중국에서
그 위력을 크게 떨쳤던 삼론종의 다른 이름이다.
삼론종(三論宗)은 용수보살(龍樹菩薩)의 <중론(中論)> <십이문론(十二門論)>과
제바존자(提婆尊者)의 <백론(百論)> 등을 주요경전으로 삼아 성립된 종파이다.
중국에 불경을 전한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스님이 바로 이 맥을 이은 분이다.
삼론종의 종지는 공(空)을 비탕으로 한 중도(中道)를 역설한 종파로 보면 된다.
“무엇이 제바종입니까?”라는 질문은 ‘제바종에서 주장하는 핵심이 무엇입니까?’라는 뜻이다.
2565(2021년). 10.
백화산 임제선원
조실 현봉법현
분향 근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