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먼지 쌓인 슈트케이스를 꺼내기 시작했다. 코로나 범유행 동안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좁은 이코노미석에 몸을 끼워 넣는 고행을 바라왔던지 비행기 표는 금세 동이 났다. 모두가 떠나기 시작했다. 어떤 친구는 임윤찬 공연을 보겠다고 뉴욕으로 갔다. 어떤 친구는 맛대가리 없는 음식이 그립다며 런던으로 갔다. 한국인이 미워한다고 말하면서도 내심 사랑하는 국가의 수도로 간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 사람밖에 없어. 여긴 그냥 서울이야.” 도쿄는 한국인이 장악했다. 우리는 마침내 임진왜란 복수에 성공한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모두가 날아가는 동안 나는 서울에서 가만히 숨 쉬고 있었다. 해외로 가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았던 탓이다. 아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평소 잘 먹지도 않는 비빔밥을 플라스틱 포크로 비비는 것은 나의 기쁨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기내식 사진이나 보며 만족하고 있는 건가. 쇼핑 때문이다. 나는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해외여행의 주목적도 언제나 쇼핑이었다. 여행을 가면 꼭 H&M이나 자라에 들렀다. 한국에 없는 옷을 사서 돌아오면 “그 옷 어디서 샀냐”는 말을 듣는 것이 기쁨이었다. 기쁨은 곧 사라졌다. 패스트 패션 제국이 전 세계 모든 도시에 매장을 열기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H&M과 자라는 서울을 비롯한 모든 도시 중심가에 코로나처럼 퍼진 뒤 풍토병처럼 자리 잡았다. 굳이 해외에서 쇼핑을 해야 할 이유가 옅어진 것이다.
명품 브랜드 역시 해외로 나가서 사는 재미가 없어졌다. 각 브랜드가 내놓는 옷도 패스트 패션처럼 서로 비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많은 명품 브랜드는 각자 개성을 갖고 성장했다. 브랜드 사냥꾼 LMVH가 인수 합병 전쟁에 뛰어들자 시장은 바뀌었다. 그들은 루이비통, 지방시, 겐조, 셀린느를 집어삼켰다. LMVH가 삼키지 않은 브랜드들은 개성을 갖고 살아남았는가. 그것도 아니다. 목재 사업으로 시작한 기업 케링도 LMVH에 맞서 구찌를 인수하며 명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등을 집어삼켰다. 2010년대가 되자 대부분 명품 브랜드가 LMVH 아니면 케링의 자회사가 됐다. 셀린느도 구찌도 발렌시아가도 로고를 커다랗게 박은 티셔츠와 나일론 바람막이를 파는 브랜드가 됐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바꾸고 매년 새 컬렉션을 선보이는 건 그냥 눈속임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이런 옷들은 발품까지 팔아가며 해외에서 살 이유가 없다.
나는 이야기를 패션 이외의 산업으로 확장할 생각이다. 자동차 산업을 생각해 보시라. 이제 모든 자동차 디자인은 비슷비슷하다. 가장 많이 팔리는 중급 세단은 현대와 도요타와 벤츠와 BMW 로고 없이는 구분도 힘들 지경이다. 자동차 산업도 거대 회사들이 작은 회사를 집어삼켜 덩치를 키우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나로 통합되는 순간 모든 사업적 결정은 비교적 일원화되기 마련이다. 팔리는 것만 내놓다보니 서로 비슷한 자동차만 양산하게 된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자 휴대폰 시장도 몇몇 기업들의 독점 시장이 되어버렸다. 노키아, 모토로라, 블랙베리와 LG는 사라졌다. 애플과 삼성만 남았다. 커다란 화면이 중요해지자 각 기업이 생산하는 스마트폰 디자인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같아졌다. 놀랄 정도로 다양하던 휴대폰 디자인은 디자인 역사책에나 화려하게 남았다.
제품은 비슷해지지만 문화는 다양해지고 있지 않느냐고 당신은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계속 비슷한 영화를 내놓고 있는 마블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를 봤다. 전자는 형편없고 후자는 즐겁지만 둘 다 수퍼히어로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스타워즈’ 짝퉁에 가까운 영화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마블도 ‘스타워즈’도 결국 한가족이다. 지금 할리우드는 디즈니가 장악했다. 디즈니는 2006년 픽사를 인수했다. 2009년 마블코믹스를 인수했다. 2021년 ‘스타워즈’를 낳은 루카스필름을 인수했다. 2018년 전통의 21세기폭스마저 인수해 버렸다. 각각의 회사들은 대표가 따로 있다. 그러나 최종 결정을 하는 건 결국 디즈니의 최고위층 인사들이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들이 어째 다 비슷해진다고 느꼈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국도 시대의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케이팝을 이끄는 아이돌 산업? 하이브는 작은 기획사들을 인수하며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누리기 시작했다. 결국 실패한 SM엔터테인먼트 인수 합병 시도에 오랜 SM 팬들이 극도의 반발감을 표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영화? CJ와 롯데엔터테인먼트 등이 압도적 자본력으로 시장을 장악하며 지난 이십여 년간 내놓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블록버스터들이 한국 상업영화의 활력을 떨어뜨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나? 한국 영화 전성기를 일군 기업들이 요즘 모두가 근심하며 말하는 한국 영화 위기에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말할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제작자와 감독들이 열어젖힌 산업은 과학적 차트로 영화의 흥행 요소를 꼼꼼하게 예측하는 대기업 제작 시스템 속에서 에너지를 잃어버렸다. CJ가 만든 영화의 속편을 롯데가 만들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다 똑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니까 여기서 만들던 저기서 만들던 별 차이는 없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모든 창의력 결핍의 시대가 거대한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자면 크게 나쁜 일은 아닐 수 있다고 자위하는 중이다.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집어삼켜 합병하는 것은 어쩌면 자본주의 진화의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언젠가는 인종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합방, 아니, 합병하며 뒤섞여 더는 흑인 ‘인어공주’ 같은 것을 만들 필요가 없는 시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구릿빛의 피부를 지닌 하나의 형제가 될 것이다. 형제들은 한 회사가 만든 옷을 입고 한 회사가 만든 스마트폰을 들고 한 회사가 만든 자동차를 몰며 한 회사가 만든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자. 우리는 지금 모두가 평범하게 평등하고 평화롭게 평이한 ‘멋진 신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획일적이어서 암울한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 아니었냐고? 알게 뭔가. 어차피 그 소설은 제목만 유명하지 읽은 사람도 몇 없다.
■ 조선일보 : 김도훈 문화칼럽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