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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한 곡의 추억(외국곡) 스크랩 ★ A Hard Rain`s Gonna Fall(소낙비) / 밥 딜런,양병집,조안 바에즈 외 6
violet 추천 0 조회 36 08.07.01 13:0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자료화면

 

A Hard Rain's Gonna Fall, 소낙비

 

01. A Hard Rain's Gonna Fall - Joan Baez

02. 소낙비 - 양병집

03. A Hard Rain's Gonna Fall - Bob Dylan (Concert For Bangla Desh)

04. 소낙비 - 이연실

05. A Hard Rain's Gonna Fall - Edie Brickell & New Bohemians

06. 소낙비 - 이정렬

07. A Hard Rain's Gonna Fall - Ann Wilson

08. A Hard Rain's Gonna Fall - Leon Russell

09. A Hard Rain's Gonna Fall - Hanne Boel

 

은 밥 딜런이 1963년에 발표한 두 번째 음반 'The Freewheelin' Bob Dylan' 에 수록된 반전 노래로(이 음반을 밥 딜런의 데뷔 음반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뷔 음반은 'Bob Dylan'이다) 1962년 당시에 있었던 쿠바의 미사일 위협으로 인해 고조된 3차대전의 기운에 대한 경고성 메세지가 있는 곡이다. 미-소 양국의 냉전이 잔재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우려감이 드러나 있다. 여기서 Hard Rain은 미사일이나 폭격을 의미한다. 일부에서는 이 곡을 "핵 낙진의 폐해를 고발한 반전노래의 대표곡"으로 소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수록된 음반'The Freewheelin' Bob Dylan' 은 당시 반전과 평화를 주창하던 젊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시대 히피 문화의 반영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이연실이 73년에 발표한 음반 <시악시의 마음>에 "소낙비" 라는 제목으로 양병집이 번안하여 소개한 바 있고 1974년에 양병집은 음반 <양병집 1집 - 넋두리>에서 불렀다 .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가 부른 녹음은 음반으로 많이 나와 있는데 여기엔 한 곡씩만 올린다. 밥 딜런의 노래는 1971년 3월25일 파키스탄 나팍 병사들에 의해 벌어진 방글라데시 다카대학에서 일어난 대학살과 관련하여 비틀즈 멤버 조지 해리슨과 동료 가수들이 1971년에 진행 한 공연의 실황이다.

 

A Hard Rain's Gonna Fall, 소낙비 이어듣기

 

▲ 밥 딜런의 최고작이자 저항·포크 음악의 경전으로까지 손꼽히는 1963년 음반

 

A Hard Rain's A-Gonna Fall

 

Oh, where have you been, my blue-eyed son?
Oh, where have you been, my darling young one?
I've stumbled on the side of twelve misty mountains,
I've walked and I've crawled on six crooked highways,
I've stepped in the middle of seven sad forests,
I've been out in front of a dozen dead oceans,
I've been ten thousand miles in the mouth of a graveyard,
And it's a hard, and it's a hard, it's a hard, and it's a hard,
And it's a hard rain's a-gonna fall.

 

Oh, what did you see, my blue-eyed son?
Oh, what did you see, my darling young one?
I saw a newborn baby with wild wolves all around it
I saw a highway of diamonds with nobody on it,
I saw a black branch with blood that kept drippin',
I saw a room full of men with their hammers a-bleedin',
I saw a white ladder all covered with water,
I saw ten thousand talkers whose tongues were all broken,
I saw guns and sharp swords in the hands of young children,
And it's a hard, an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And it's a hard rain's a-gonna fall.

 

And what did you hear, my blue-eyed son?
And what did you hear, my darling young one?
I heard the sound of a thunder, it roared out a warnin',
Heard the roar of a wave that could drown the whole world,
Heard one hundred drummers whose hands were a-blazin',
Heard ten thousand whisperin' and nobody listenin',
Heard one person starve, I heard many people laughin',
Heard the song of a poet who died in the gutter,
Heard the sound of a clown who cried in the alley,
And it's a hard, an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And it's a hard rain's a-gonna fall.

 

Oh, who did you meet, my blue-eyed son?
Who did you meet, my darling young one?
I met a young child beside a dead pony,
I met a white man who walked a black dog,
I met a young woman whose body was burning,
I met a young girl, she gave me a rainbow,
I met one man who was wounded in love,
I met another man who was wounded with hatred,
An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rain's a-gonna fall.

 

Oh, what'll you do now, my blue-eyed son?
Oh, what'll you do now, my darling young one?
I'm a-goin' back out 'fore the rain starts a-fallin',
I'll walk to the depths of the deepest black forest,
Where the people are many and their hands are all empty,
Where the pellets of poison are flooding their waters,
Where the home in the valley meets the damp dirty prison,
Where the executioner's face is always well hidden,
Where hunger is ugly, where souls are forgotten,
Where black is the color, where none is the number,
And I'll tell it and think it and speak it and breathe it,
And reflect it from the mountain so all souls can see it,
Then I'll stand on the ocean until I start sinkin',
But I'll know my song well before I start singin',
An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It's a hard rain's a-gonna fall.
 

 

▲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자료화면

 

세찬 비가 내리려고 해

 

어디에 가 있었니? 푸른 눈동자의 내 아들아
어디에 가 있었니? 사랑하는 얘야
난 12개의 안개 자욱한 산중턱을 발견하기도 했고,
여섯개의 구부러진 고속도로 위에서 걷고 그리고 기기도 했었단다
일곱개의 슬픈 숲의 한 가운데에 들어가기도 했고,
열두개의 죽은 바다의 앞에 닿기도 했단다
묘지의 입구에서 10,000마일을 가보기도 했지
아주 세찬, 아주 아주 세찬
세찬 비가 오려고 해

 

무엇을 보았니? 푸른 눈동자의 내 아들아
무엇을 보았니? 사랑하는 얘야
나는 야생 늑대들이 둘러싸고 있는 갓 태어난 아기를 보았고,
그 어느 누구도 가보지 못한 다이아몬드로 덮힌 고속도로를 보았단다
뚝뚝 떨어지는 피로 얼룩진 검은 강줄기를 보았지
그리고 손에 피범벅이된 쇠망치를 들고 있는 사내들로 꽉 찬 방과
물에 젖은 하얀 사다리를 보았어
혀가 찢어져버린 10,000명의 수다장이들과
어린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총과 날카로운 칼도
아주 세찬, 아주 아주 세찬
세찬 비가 오려고 해

 

그리고 무엇을 들었니? 푸른 눈동자의 내 아들아
무엇을 들었니? 사랑하는 얘야
나는 경고라도 하려는 듯 으르릉 거리는 천둥소리를,
온 세상을 삼킬 수 있을 만치의 거대한 파도 소리를,
손이 번쩍 빛을 내며 움직이는 100명의 드러머들의 북소리를,
어느 누구도 듣지 않는 10,000개의 속삭임을,
굶어 죽어가는 한 사람의 목소리와 많은 이들의 웃음소리를,
빈민굴에서 죽은 한 시인의 노래를,
뒷골목에서 광대가 외쳐대는 소리를 들었단다
아주 세찬, 아주 아주 세찬
세찬 비가 오려고 해

 

누구를 만났니? 푸른 눈동자의 내 아들아
누구를 만났니? 사랑하는 얘야
나는 죽은 조랑말 곁에 선 어린아이를,
검은 개와 걸어가는 백인 남자를,
몸에 화상을 입은 젊은 여자를,
내게 무지개를 준 한 어린 소녀를,
사랑에 상처입은 한 남자를,
증오로 상처받은 또 다른 한 남자를 만났단다
아주 세찬, 아주 아주 세찬
세찬 비가 오려고 해

 

이젠 무얼 하려고 하니? 푸른 눈동자의 내 아들아
이젠 무얼 하려고 하니? 사랑하는 얘야
나는 비가 내리기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한단다
깊고 어두운 숲의 한가운데로 걸어갈거란다
그들의 손에 아무 것도 쥐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
습기차고 더러운 감옥을 대신할 계곡의 집이 있는 곳
사형 집행인의 얼굴이 언제나 잘 감추어지는 곳
배고픔이 추한 곳, 영혼이 잊혀진 곳
검은색만이 존재하고, 숫자라고는 없는 그 곳으로
난 산으로부터 말하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숨쉬고, 표현할거야
그래서 모든 영혼이 그것을 볼 수 있게
그리고 잠기기 시작할 때까지 넓은 바다에 서 있을거야
그렇지만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난 내 노래를 잘 알고 있겠지
아주 세찬, 아주 아주 세찬
세찬 비가 오려고 해

 

▲ '소낙비'가 실린 이연실의 1971년 1집음반과 이 곡의 번안자인 양병집의 1집음반 '넋두리'

 

소낙비

 

어디에 있었니, 내 아들아
어디에 있었니, 내 딸들아
나는 안개 낀 산 속에서 방황 했었다오
시골의 황톳길을 걸어 다녔다오
어두운 숲 가운데 서 있었다오
니는 시퍼런 바다 위를 떠 다녔었다오
무덤들 사이에서 잠을 잤었다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무엇을 보았니, 내 아들아
무엇을 보았니, 내 딸들아
나는 늑대의 귀여운 새끼들을 보았오
보석으로 뒤덮인 행길을 보았오
빈 물레를 잡고있는 요술쟁일 보았오
새까맣게 타버린 초가집을 보았오
하얀 사다리가 물에 뜬걸 보았오
녹슬은 칼과 총을 가진 애를 보았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무엇을 들었니, 내 아들아
무엇을 들었니, 내 딸들아
나는 비 오는 날 밤에 천둥 소릴 들었오
세상을 삼킬 듯한 파도 소릴 들었오
성모 앞에 속죄하는 기도 소릴 들었오
남편 잃은 여인네의 한 숨 소릴 들었오
나는 배부른 송아지의 웃음 소릴 들었오
물에 빠진 시인의 노래도 들었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어디로 가느냐, 내 아들아
어디로 가느냐, 내 딸들아
나는 비 내리는 개울가로 돌아 갈래요
빈 손을 쥔 사람들을 찾아서 갈래요
영혼을 잃어 버린 산동네로 갈래요
뜨거운 사막 위를 걸어서 갈래요
나는 부모님이 기다리는 내 집으로 갈래요
나에게 무지개를 따다준 소녀 따라 갈래요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쿠바 미사일 위기

 

쿠바는 1959년 1월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고 공산 정권을 수립하였다. 쿠바 혁명 정권은 곧바로 일정 한도 이상의 토지를 국가가 몰수하고,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했으며, 토지를 농민에게 무상 분배하는 획기적인 농지 개혁에 착수했다. 특히 1959년 10월에는 쿠바에서 미국의 이권을 폐기하고, 미국 자본이 착취하는 것을 제한했으며, 1960년에는 미국계 기업의 자산을 국유화했다. 곧 반봉건 토지 소유제와 외국자본을 근절했으며, 1961년 5월에는 쿠바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을 선언하고 1962년 부터는 사회주의 건설 4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이러한 쿠바의 움직임은 당연히 미국과 관계를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1960년에 미국은 쿠바로부터 사탕수수 수입을 대부분 삭감했으며, 중요 물자의 수출 금지 로 쿠바에 경제적인 압력을 가했다. 1961년 1월에는 국교가 단절되고, 미국내에서 결성된 쿠바 혁명 평의회 의장 호세 미로 카르도나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동년 4월 반혁명군을 인솔하고 쿠바 동남부에 상륙, 카스트로 정권 타도를 계획하였으나 오히려 진압되었다. 미국으로부터의 무력 공격의 위협을 느낀 쿠바는 급속도로 소련에 접근하였고, 1962년에는 소련과 쿠바의 무기 원조 협정에 따라 쿠바에 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 케네디 정권은 10월 23일 미사일 기지 철거와 핵 미사일 반입 금지를 요구하고 쿠바에 대한 해상 봉쇄 명령을 내려, 핵전쟁의 위험으로 전세계를 동요시켰다. 미국과 소련 정상이 긴박하게 대응한 결과, 소련은 미사일 기지를 철거하고 미국은 쿠바를 침략하지 않을 것을 약속함으로써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의 제1서기 흐루시초프의 새로운 협정은 11일(또는 14일) 동안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던 긴장감을 완화시켜주었고, 핵전쟁으로부터 시작된 미소간의 냉전을 풀어주었다. 극도로 긴장된 양국간의 관계를 먼저 회복시킨 쪽은 흐루시초프였다.

 

흐루시초프는 쿠바에 건설중인 미사일 기지 공사를 중단하고, 기곳에 이미 도착된 모든 무기들을 소련으로 다시 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케네디는 쿠바를 침공하지 않을 것이며, 쿠바에 대한 봉쇄 정책을 해제하겠다고 다짐했다.

 

1959년 수립된 쿠바의 혁명정부에 대하여 미국은 1961년 4월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에 의한 쿠바 반(反)혁명군의 침공작 전을 시작하고, 미주기구(OAS)로부터의 쿠바 축출, 미국 해 ·공군의 영해 ·영공 침범 등 군사 ·외교압 력을 가하였다. 이런 속에서 쿠바는 1962년 9월 ‘소련-쿠바무기원조협정’을 체결하여 소련의 미사일을 도입하였다. 미국은 그 해 10월 14일 중거리탄도미사일의 발사대가 쿠바에 건설 중임을 공중촬영으로 확인하였다. 22일 미국 대통령 J.F.케네디는 텔레비전 전국방영을 통하여 처음으로 “소련은 서반구에 대하여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쿠바에 건설 중”이 라고 공포하고, 쿠바에 대하여 해상봉쇄조치를 취하였다. 케네디는 소련의 N.S.흐루시초프 서기장에 국제연합의 감시하에 공격용 무기를 철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전 세계의 긴박감 속에서 소련은 26일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한다면 미사일을 철거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하고, 27일 쿠바의 소련 미사일기지와 터키의 미국 미사일기지의 상호철수를 제안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27 일의 제안을 무시하고, 26일의 제안을 수락할 것을 결정하였다. 28일 흐루시초프는 미사일의 철거를 명령하고 쿠바로 향하던 16척의 소련선단(船團)의 방향을 소련으로 돌림으로써 11월 2일 위기는 사라졌다. 소련이 쿠바로부터의 폭격기 철거에 동의한 20일 미국은 해상봉쇄를 풀었으며, 12월 7일 소련은 공격용 무기를 쿠바로부터 철거하였음을 미국에 통고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63년 미 ·소 간에 핫라인(hot line:긴급통신연락선)이 개설되었고, 핵전쟁 회피라는 공통의 과제하에서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모스크바조약)’이 체결되었다.

 

쿠바에서 당한 소련의 굴욕은 1964년 10월 흐루시초프의 실각과, 적어도 미국과 대등한 핵능력을 보유하겠다는 소련의 비장한 결의에 중대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쿠바에서의 케네디의 승리는 곧바로 후르시초프의 실각으로 이어졌다. 그는 바보스럽게 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했으며 비겁하게 이를 제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형상 승리자로 보였던 케네디는 결국 암살되었다. 어찌보면 흐루시초프와 케네디는 양극에서서 전쟁이라는 극단 상황을 피하려했던 공동의 목적을 가진 정치가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맑은영혼을 위하여  |  글쓴이 : 김승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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