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수·환초로 고전한 타라와 전투-美, 물때 착오 상륙주정 72％나 파괴 당해

[529 이종일]

불타오르는 섬 정상에 성조기를 세우는 미 해병대원들과 함께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울려 퍼지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영화가 있었다. 존 웨인의 젊었던 모습이 나오는 ‘유황도의 모래’라는 영화다.
 
이 영화는 1950년 태평양 도서상륙작전에 투입된 미 해병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미국 애국주의(Patriot)를 진하게 강조한 영화이기도 하다. 태평양의 섬들을 탈환해 나가던 미군의 전투장면이 너무 생생한 기억이 있는데 이 영화의 배경이었던 이오지마 전투도 피해가 컸지만 사상자 비율에서는 타라와 전투가 더 높았다.
 
1943년 여름, 미군은 태평양의 주요한 전략거점을 차례로 점령해 가던 중, 전략적 가치가 높은 타라와를 공격목표로 선정했다.
 
타라와 섬은 미국 본토에서 호주로 이어지는 수송로로부터 가까울 뿐만 아니라 마셜군도를 거쳐 일본군의 거점인 오키나와를 공격할 수 있는 전략적 중요한 거점이었다.
 
1943년 11월 미군은 ‘갈바닉(충격)’이라는 암호명으로 타라와 섬 상륙작전을 계획했다. 상륙작전에 동원된 부대는 정예로 알려진 미국 제2해병사단이었다. 이 당시 타라와 섬에는 일본군 최정예로 손꼽히는 일본해군 특별육전대 2619명을 포함해 해군 4836명이 지키고 있었다.
 
상륙작전이 벌어진 타라와 섬은 길이가 4㎞이고 폭은 가장 넓은 곳이 600m 정도밖에 안 된다. 수면 위로 3m 이상 올라온 지역은 아무데도 없으며 총 면적은 대략 2.5㎢ 정도다. 타라와 섬의 단면은 전형적인 산호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물속에 잠긴 가장 바깥쪽의 기울기는 35~45도로 매우 가파르며 높은 파도가 거세게 몰아친다. 경사의 가장 윗부분은 평평한 산호로 이뤄져 낮은 암초의 해변을 형성한다.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의 섬들은 산호와 해조류들이 복잡하게 얽힌 암초로 형성돼 있다. 산호가 죽으면 그 위에 새로운 산호가 쌓여 견고하게 굳어지면서 섬을 둘러싸 라군(산호 등에 갇혀 호수가 된 바다)의 암초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상륙작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만조 때에만 물에 잠기는 암초다.
 
미군이 타라와를 공격하기 위해 고려해야 했던 점은 조수간만과 파도의 높이와 세기였다.
 
첫째, 상륙군을 싣고 해변에 도달해야 하는 배들이 암초에 좌초되지 않기 위해서는 밀물 때여야만 했다. 둘째, 파도의 높이가 낮아야 했다. 미군은 파도가 잔잔하고 밀물일 때로 예상되는 11월 20일을 공격의 D-데이로 잡았다. 그러나 태평양에 위치한 섬들에 상륙작전을 하기 위해서는 섬 주변에 생성된 산호 등의 암초를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타라와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수의 시간과 파도의 높이 외에 환초까지 고려해야 했다. 미군은 섬에 형성된 산호초와 환초의 암초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게다가 작전에 참고했던 조석(潮汐)자료는 미 해군 카를 윌크스 장군에 의해 1841년 작성된 것이었다. 무려 100년 전에 만들어진 불확실한 자료였던 것이다. 타라와에 15년을 산 한 영국인은 20일께는 만조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지만 무시되고 말았다.
 
미군이 주먹구구식으로 작전을 짤 때, 일본군 수비사령관이던 도미나리 소장은 타라와 섬을 가공할 요새로 바꿔 놓았다. 일본군을 탱크와 수많은 자동화 무기로 무장시킨 것이다. 지뢰를 해안을 따라 묻었고, 상륙주정을 막기 위해 수많은 장애물을 설치했다.
 
상륙작전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준 인공적인 산호초도 그의 작품이었다. 이 구조물은 적의 상륙정들을 저지하거나 아니면 중기관총으로부터 127㎜ 포의 화력이 효율적으로 집중될 수 있는 좁은 사계로 적을 몰아넣도록 만들어졌다.
 
기상예보 장교들은 20일께에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으면서 바람이 거의 없고 무더운 날씨가 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1943년 11월 20일 타라와 상륙작전이 시작됐다.
 
미군의 상륙주정들이 해안에 다가가면서 이 작전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만조가 아니었던 것이다. 상륙주정들은 해안선까지 이르지 못하고 암초에 걸려 버렸다. 해안까지의 수심은 1~3m 정도였지만 곳곳에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 해병대의 상륙주정들이 해안에서 수백 미터나 떨어진 암초에서 좌초되자, 해병대원들은 상륙주정에서 뛰어내려 해안선으로 진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해병대원들이 가슴까지 오는 물속에서 해안을 향해 첨벙거리다가 일본군의 강력한 십자포화에 죽거나 익사하고 말았다. 일본 수비대의 강력한 방어와 인공 환초로 인해 타라와 전투에 투입된 125대의 상륙주정 중 90대가 파괴될 정도로 타라와 전투는 치열했다.
 
해안까지 약 500m를 진격하기 위해 치른 손실은 예상보다 컸다. 상륙작전에 커다란 차질이 생겼으나, 용맹스러운 미 해병들의 용전분투로 3일 만에 가까스로 타라와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미 해병대의 인명피해가 4400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인명손실을 기록했다. 미 해군이 타라와 전투의 이름을 상륙함에 붙일 정도로 태평양전쟁에서 가장 처절한 피해를 입은 전투였다.
 
 
Tip-타라와 전투의 명과 암
 
엄청난 손실에도 불구하고 타라와 전투는 미국에 중요한 승리와 교훈을 줬다. 미군은 타라와를 점령함으로써 1100㎞나 떨어진 도쿄에 대한 폭격거리를 줄였다. 또 앞으로 벌어질 상륙작전에 교과서적인 지침을 만들 수 있었다. 환초의 전투로부터 얻은 교훈은 전례가 없었기에 상륙작전의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많은 병사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륙작전을 결정할 때 조수간만, 파고, 섬 주변의 지형 등에 대한 연구가 빠르게 진행됐고, 이런 결과로 미군은 서쪽과 북쪽으로부터 일본에 더욱 빨리 다가갈 수 있었다.　일본은 이 전투에서부터 와전옥쇄(瓦轉玉碎) 전법을 택했다. ‘기왓장처럼 굴러다니느니 옥처럼 부서지겠다’는 것이다.
 
최후의 한 명까지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가 죽겠다는 일본군을 향한 두려움은 태평양 전쟁 내내 미군에게 공포를 안겨 줬다. 또한 미군은 이후 시작된 일본의 옥쇄 전법과 항공기가 적의 함정으로 돌진해 자폭하는 가미카제 특공대 때문에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