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팔복에 대해 가르치기를 마치신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을 치유하는 기적을 통해 천국의 실재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의 병을 왜 고치셨을까요. 인간을 사랑하사 구원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나타나는 현상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렇게 된 이유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병 고침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냥 불쌍해서 고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병은 고치시지 않으셨지요. 고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때는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질병이 축복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 위에서 가르치신 대로 소외된 이들을 환대하십니다. 사실은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나병 환자나 이방인 백부장은 유대 사회에서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인이라면 만나기를 꺼리는 부정한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은 개의치 않고 만나시며 그들의 간구대로 치유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와 백부장 하인을 고쳐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병 환자는 예수님이 자신을 고쳐주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요청을 합니다. 가버나움의 로마군 백부장은 자애로운 자였기에 자기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만으로도 질병을 치유하실 수 있는 분임을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놀랍게 여기시며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합니까. ‘기도한다고 뭐가 변하겠어’ 혹은 ‘기도하라니까 하긴 하는데, 진짜 그렇게 될 리가 없지’ 이런 마음 아닙니까.
개척할 때 교회를 얻으려고 하면 상가주인들은 십중팔구는 공간을 안 내어줍니다. 그래서 제가 개척할 때 주인에게 사정했습니다. 성도는 우리 식구 다섯 명뿐이고 더 이상 부흥할 일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믿지 않는 상가주인은 ‘이 교회는 반드시 부흥할 것’이라고 믿고 계약을 하지 않습니다. 개척하는 목사는 교회가 절대로 부흥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고 믿음이 없는 상가주인은 반드시 부흥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현실입니다. 누구의 믿음이 더 좋을까요.
혹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더라도 기껏해야 나나 우리 가족의 안위를 위한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기도의 방향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누가 잘 되고 복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일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드러나기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병이 있어도 주님께 나아가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내게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개인적인 병 고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표현과 응답입니다. 때로는 그 믿음을 보시려고 병을 주시기도 합니다.
기도 :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우리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심을 또한 우리에게 병 고침의 은혜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