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아들 야곱도, 그리고 이삭 자신도 모두 어긋나 있었습니다. 물론 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에서야 그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자기가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예외로 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셔서 야곱에게 복 주시기로 하셨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도 에서에게 모든 축복을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 두 아들을 불러놓고 나름의 축복을 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훨씬 나중에 일어난 일이지만,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할 때, 장자인 므낫세가 아니라 둘째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어 축복하여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더 창대할 것이며, 이스라엘 지파의 중요한 기둥이 될 것이라고 축복했던 것을 볼 수 있는데(창 48:1~22), 이삭도 그런 방식으로 두 아들을 축복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도록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자기가 더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기로 한 것입니다.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알았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야곱은 어머니의 방식으로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이 조금 꺼려지기는 했지만, 결국 어머니의 방식으로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아냅니다. 아마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그런 방식을 보면서 그런 꼼수를 배워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삶은 자녀들에게 거울이 되어 자녀들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삭이 아무리 눈이 어두워서 잘 볼 수 없다고는 하지만, 야곱이 음식을 가지고 이삭 앞에 왔을 때 실제로 에서의 목소리가 아니라 야곱의 목소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습니다(22절). 그래서 손을 만져보기도 하고, 가까이 오게 하여 그 냄새도 맡아보면서 확인하였는데, 이미 리브가가 야곱의 목과 손 등에 염소 새끼의 가죽을 입혀 털이 있게 하고, 에서의 의복을 입히는 등의 조치를 해놓았기에 이삭은 긴가민가 하면서도 에서로 알고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합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거론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리 빨리 사냥 거리를 잡았느냐고 이삭이 물을 때에, 야곱은 “하나님께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다”라고 답합니다(20절). 거짓말에 하나님까지 동원한 것입니다. 흔히 그리스도인들이 자칫 잘못 사용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악한 일에, 거짓된 일에 하나님을 동원해서는 안 됩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라고 물을 때에도 “그러하니이다”라고 대답하는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24절).
야곱을 향한 이삭의 축복은 풍요함이 있길 기도하는 것이었고(28절), 만민과 열국을 다스리고, 다른 형제들의 주(主)가 될 것이라는 축복의 기도였습니다(29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과 축복의 내용이 그대로 담겨있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과 축복이 이삭에게 계승되었고, 그 언약과 축복이 야곱에게 계승되는 매우 중요한 기도였습니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하는 축복의 기도는 상징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장자를 승계하는 기도와도 같습니다. 이렇게 하여 리브가가 원하는 대로, 그리고 야곱이 원하던 대로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가져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어차피 야곱이 받아야 축복으로 정해진 것이기에 그렇게 해서라도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이 괜찮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러한 꼼수와 술수들이 횡행(橫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무리 옳은 목적이라고 해도 잘못된 방법으로 이뤄가서는 안 됩니다. 그 방법조차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면, 정직하게 행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께서 이뤄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뤄간다고 하면서, 때로는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되,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해야 합니다. 혹시 그렇게 할 때 손해를 보거나,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온전히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뤄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비열한 방법을 사용하는 바람에 결국 가족을 떠나 피신해서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형 에서와 원수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방법은 그 목적을 금세 이루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고통스러운 수많은 대가를 치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함에 있어서 그 방법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행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온전하게 행하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