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녀 도로테아, 2월 6일 축일
옛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녀 도로테아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에 사람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고문 기구에 매달려
혹독한 고통을 받고 심한 채찍질을 당하다가 마침내 그 지방 총독인
키프리아누스의 명령으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고 한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성녀 도로테아는 카이사레아 지방의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 중 한 명으로 덕행이 뛰어난 처녀였다.
그녀에게 반한 카이사레아 총독이 구혼했을 때,
그녀는 부도덕하고 방탕한 이교인 총독의 청혼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총독은 품행이 좋지 않은 두 명의 그리스도인 여자를 보내 배교하도록 유혹했으나
오히려 성녀 도로테아의 신앙에 감화되어 그들 모두 회개하고 말았다.
이에 분개한 총독은 성녀 도로테아와 두 여자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성녀 도로테아는 심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하느님께 의지하며 끝까지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
이런 태도는 그녀의 변호자이자 이교도였던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까지도 감화시켰다.
마침내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중에 성 테오필루스는
“천국에 가면 그곳의 장미꽃을 보내주지 않겠소.” 하고 청했고,
성녀 도로테아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형리 앞에서 무릎을 꿇은 그녀는 오로지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만 하였다.
성녀가 순교한 다음 날 아침, 한 천사가 성 테오필루스의 집 앞에 나타나
“이것은 도로테아가 보내서 가져온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장미꽃과 과일 바구니를 전하고 사라졌다.
이를 경험한 성 테오필루스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얼마 뒤 성녀의 뒤를 따라 순교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교회 미술에서 성녀 도로테아는 보통 장미 세 송이와
사과 세 개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고 곁에서
천사가 시중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성녀 도로테아는 도라(Dora) 또는 도로시(Dorothy)로도 불린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동정 순교자인 성녀 도로테아와 학교 교사인 성 테오필루스의 이름과
그들이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에서 순교했다고만 간단히 언급하였다.♧
- '굿뉴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