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살의 질문 / 장서영
나사말을 아니?
열여덟 살의 봄, 친구가 능청스레 물었습니다. 물속에서 흐물거리는 춤이었습니다. 스스로 물 위까지 뻗어가서 흐름이 된 풀, 넌 나사말을 닮았어. 침묵이 흘렀습니다. 가슴 밑바닥에 뭉근하게 늦은 생각이 한소끔 뿌리를 내렸습니다. 문득 가늘고 긴 나선형으로 꼬여 있는 느낌, 나는 왜 누군가를 향해 자꾸 흔들리고 있었을까요.
지금도 물가에 앉으면 그 말이 생각납니다. 끝없이 여유롭게 흐느적거리며 물과 자연스럽게 살 부비는 관능, 그 자세를 다 풀어놓고 얘기하고 싶어도 다가가지 못한 나,반대로 끝까지 밀고 올라가 꽃을 피우던 나사말. 누군가를 향해 방추형의 씨앗까지 품고 있었는데도 나의 생각은 끝내 거기에 닿지 않았습니다. 만약 한없이 뻗어갔다면 우리라는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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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말
학명 Vallisneria natans (Lour.) H.Hara.
과 자라풀과(Hydrocharitaceae)
형태분류
줄기: 여러해살이로 백색 땅속줄기(地下莖)를 뻗으며, 끝부분에서 잔뿌리가 모여 나고, 잎에 모여 난다.
잎: 반투명한 녹색 리본모양이고, 밀생한다. 잎 윗부분에 톱니가 두드러진다.
꽃: 7~9월에 피며, 암꽃에는 가늘고 긴 꽃자루(花莖)가 있고, 수꽃 꽃자루는 짧다. 꽃자루 끝 포초(苞鞘) 속에는 수꽃이 여러 개 나며, 꽃이 시들면 꽃자루는 용수철이나 나사처럼 꼬여서 잠수한다.
열매: 선형으로 물레의 실몽당이 비슷한 모양(紡錘形)인 종자가 있다.
염색체수: 2n=201)
생태분류
서식처: 하천, 유속이 느린 곳, 드물게 얕은 연못, 가는 모래(微砂) 바닥, 양지, 과습(過濕)
수평분포: 전국 분포
수직분포: 구릉지대 이하
식생지리: 온대~아열대, 일본, 대만, 중국, 만주, 연해주, 서남아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호주 등
식생형: 습지식생(유수역 침수식물군락)
종보존등급: [V] 비감시대상종
나사말 암꽃은 꽃가루받이로 열매를 맺게 되면 용수철처럼 나선형이 되면서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말(藻) 종류는 보통 고인 물에서 흔하게 살지만, 나사말은 항상 물 흐름이 있는 곳에서 사는 천변식물(川邊植物)이다. 하지만 가는 모래 입자가 가라앉을 정도로 매우 안정적이고 느리게 흐르는 곳이어야 한다.
나사말의 속명 발리스네리아(Vallisneria)는 식물학자의 이름에서 유래하고, 종소명 나탄스(natans)는 물 위에 뜬다 또는 물속을 헤엄친다는 의미의 라틴어다. 영어명도 물속에서 좁고 긴 잎이 흔들거리며 헤엄치듯 하는 형상이 마치 뱀장어(ell)가 헤엄치는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사말 수꽃은 헤엄치듯 수면을 떠돌아다닌다. 수꽃은 포초(苞鞘)가 파열되면서 나오며, 꽃자루(花柄)가 끊어져 물위에 둥둥 떠다니게 된다. 암수딴그루이기에 수꽃은 암꽃 가까이로 떠내려가서 꽃가루를 방출한다. 암꽃은 수정하게 되고, 긴 꽃자루가 용수철처럼 나선형으로 오므라들면서 잠수하며 결실한다.
일본에서는 그와 같은 나사말 암꽃의 생식행동을 네지(螺子)에서 파생한 동형사 네지레루(捩じれる), 즉 나사처럼 감긴다라고 표현했다.2) 한글명 나사말3)은 한자 나사(螺絲)와 한글 말(藻)의 합성어로, 네지(螺子)와 잇닿아 있다. 나사(螺絲)라는 것은 나사못의 나사로 그리 오래된 옛말이 아니다. 개화기 이후 산업사회에서 생겨난 최근 용어이고 그런 일본 표기가 힌트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물과 관계되는 우리말은 모두 미음(ㅁ)의 음역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수초인 말도 같은 맥락이다. 물속에 사는 수초는 한자로 말 조(藻) 자를 쓰며, 일본에서는 모(モ)라고 한다. 나사말을 일본말로 세끼쇼우모(石菖藻, 석창조)라고 하며, 잎이 석창포를 닮은 말이란 의미일 것이다.
나사말의 결혼전략을 고려해 볼 때, 물 흐름은 나사말의 근본적인 번식조건이 된다. 식물체 전체가 뽑혀서 떠내려가지 않도록, 물속 바닥에 뿌리를 박아두고 옆으로 달리며 산다. 그러므로 물속 바닥에서 발아해 성체가 될 때까지 물 흐름이 아주 느리고 얕은 환경이 유지되어야 한다.
가는 모래(微砂) 속에서 달리는 뿌리줄기는 티 없이 하얀 색을 띤다. 그러나 가는 모래 바닥이 부영양화 되어 암모니움(NH4+) 독성과 녹조류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수질환경에서는 나사말이 사라진다.4) 가축 배수가 유입되어 냄새가 지독한 도랑이나 하천에서 나사말이 발견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최근 새로운 나사말 종류가 보고되었다. 겨울눈(冬芽)이 있고 수술이 2개인 것에서 나사말과 구분하는 낙동나사말(Vallisneria spinulosa)이 낙동강 하류지역 습지에서 처음으로 보고되었다.5)
그런데 겨울눈이 뚜렷하게 발달하지 않는 나사말은 겨울눈이 있는 낙동나사말보다 더욱 흔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낙동나사말의 경우는 겨울눈이 발달하고 생육할 수 있는 더욱 안정적인 물 바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물종의 생활형6)은 서식처를 서로 달리하게 하는 분명한 생태형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