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살아내며, 4월의 일기, Butterfly Effect
‘나비의 날갯짓 한 번이 저 바다 건너서는 태풍으로 다가갑니다.’
‘Butterfly Effect’, 곧 ‘나비 효과’라고 해서, 처음의 작은 변화가 나중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기상학의 이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헨리 킹(Henry King) 감독에 윌리암 홀덴(William Holden)과 제니퍼 존스(Jennifer Jones) 주연의 1955년 미국 20세기 폭스사 제작의 영화 ‘모정’(慕情)에 그 대사가 나온다.
영국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의 미망인인 한 스인이, 미국 신문기자 홍콩 특파원으로 아내와 별거 중인 마크 엘리엇을 사랑하게 되는 동명의 자전적 소설이 그 원작이다.
엘리엇이 마침 발발한 한국전쟁을 취재하러 떠나면서, 사랑하는 한 스인에게 남긴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
내가 그 영화를 본 것이 반세기도 더 되었지만, 그 영화로 인한 감동은 아직까지도 내 가슴에 따뜻한 온기로 남아있다.
바로 나비효과를 상징하는 그 대사 때문이다.
또 있다.
영화 주제가이다.
알프레드 뉴먼(Alfred Newman)이라는 작곡가가, 그 영화의 영문 제목인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이라는 제목으로 작곡한 그 주제가가, 20대로 꿈과 희망에 불타던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랑이란 근사한 것’이라고 우리말 풀이되는 그 곡은, 제목에 노랫말까지 감동적이어서 참으로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냇 킹 콜도 불렀고, 앤디 윌리엄스도 불렀고, 빙 크로스비도 불렀고, 프랭크 시나트라도 불렀고, 코니 프랜시스도 불렀고, 닐 세데카도 불렀지만, 나는 음악과 영화를 두루 섭렵한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가 부르는 노래로 특히 더 좋아했다.
모처럼 그 노래를 또 듣는 기회가 있었다.
요 며칠 전의 일로, 우리 문경중학교 18회 동문인 이성환 후배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앤디 윌리엄스가 부른 그 노래영상을 보내온 것이다.
계간지 ‘문예비전’ 2023년 봄호에 출품한 이 후배 자신이 지은 시 다섯 편이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하게 됨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그 다섯 편 시와 함께 띄워 보내준 것이었다.
그 중 한 편인 ‘일흔 즈음의 기도’를 여기 소개한다.
신선하고 화사한 설렘으로
아침을 환하게 여는
햇살이 되고 싶다.
향기를 나누고 즐기며
싱그러운 마음을 열어 두는
그윽한 향기 속에서 살고 싶다.
손 내밀면 다정하게 잡아주는
정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일흔 고개를 넘으며
세월이 흘렀다 해도
아름다운 동행으로
넉넉하고 마음 여유롭게
남은 생의 시간을 살아가고 싶다.//
딱 내 마음 같은 시였다.
2023년 4월 11일 화요일인 바로 어제 일이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 몇과 어울려, 이웃 마을 예천 용궁의 맛집인 ‘백가원’에서 점심을 같이 했다.
44년 전으로 거슬러 아내가 몸 풀어 맏이를 낳은 날로, 아내의 그 수고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내가 초대한 자리였다.
오후 2시쯤에 점심을 끝내고 헤어지는데, 국민학교 동기동창으로 이날 점심 자리을 같이 했던 강금순 친구가 오른손 엄지로 아내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표시였다.
하는 말을 가만히 엿들어봤다.
“줄게 있으니, 우리 집에 좀 들러서 가.”
그래서 강금순 그 친구를 우리 차에 태워서 시내 모전천 그 천변의 그 친구 집으로 가게 됐었다.
그래서 얻어 온 것이, 옥수수 한 개에, 쑥 절편에, 볶아서 빻은 콩가루해서, 세 가지 먹을거리였다.
그 세 가지를 봉지에서 내놓으면서 하는 말이 이랬다.
“옥수수는 지난해 농사지은 것 중에서 가장 토실토실 잘 익은 것을 골라놓은 것인데 밥 지을 때 얹어서 쪄 먹으라고 했고요, 쑥 절편은 미순 여사하고 둘이서 삼강 둘레길을 걷다가 문득 우리 생각이 나서 강둑에 주저앉아 뽑은 봄쑥으로 빚은 것이라고 했고요, 콩가루는요 절편에 묻혀 먹거나 아니면 쌀밥에 비벼먹거나 하라고 했어요. 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정겨운지 하도 감동이 되어서 눈물이 찔끔 났다니까요.”
아내의 그 말이, 내게 나비효과로 다가왔다.
내 가슴까지 뜨거워지는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카톡!
같은 달 12일 수요일인 바로 오늘 이른 아침인 오전 7시 11분을 막 찍고 넘어가는 시각에, 내 핸드폰으로 그렇게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이 수신되고 있었다.
곧장 확인해봤다.
카카오톡 선물 하나가 수신된 것이었다.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행복하고 좋은 날 되세요. 아들 올림’
권영현이라는 이름의 내 친구 아들이 보내준 것으로 ‘스페로스페라 크레페케이크’ 하나였다.
사실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니다.
4월 12일이라는 음력의 날짜가 공부상에는 양력의 날짜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착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굳이 생일이 아니라고 확인해줄 필요가 없었다.
따질 필요 없이,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였다.
그런 마음으로, 내 이렇게 답을 했다.
‘하이고, 고마와서 우짜노....아들 노릇 하느라 힘들겠다. 덕분에 잘 먹을게요. 감사 감사’
내 그 답에, 친구의 아들은 또 이렇게 댓글을 붙였다.
‘아버지랑 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감사해 하는 그 마음이 내겐 또 감동이었다.
나비 효과로 다가온 것이다.
그 효과를 그것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그 아비인 내 친구에게 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카카오톡 메지지로 내가 받은 선물의 내용도 전했고, 그 아들과 주고받은 메시지 문장 또한 그대로 소상하게 전했다.
거기에 덧붙인 문장이 있었다.
‘나는 그 받은 선물을 막내며느리에게 전했다. 세 살 배기 손자 서율이에게 맛보게 주고 싶어서’
그것은 나의 또 하나 날갯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