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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1.5.8일) 말씀/ 출애굽기 20:12, 21:17, 엡 6:1-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합니다.
오늘을 어버이 날입니다. 평생에 감사를 해도 다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어버이 은혜일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어버이날을 기념한다는 것이 좀 그렇기도 합니다. 항상 어버이 은혜를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특별히 날을 정할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잊기 잘하고 놓치기 잘하는 것이 사람인지라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어버이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까?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며 부모 공경은 하늘 공경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형제 사랑 없이 하나님 사랑이 거짓이라면 부모 공경없이 하나님 공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 공경은 도덕 윤리를 띄어 넘어 신앙 안에서 중요한 계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어버이 공경은 유교의 가르침이나 불교의 가르침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유교에는 충효사상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데 죽어서도 제사로 공경합니다. 불교에는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를 보답하도록 가르친 불교 경전인 ‘부모 은중경’[父母恩重經 ] 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 안에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깊은가를 10대 은혜(大恩惠))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어머니 품에 품고 지켜준 은혜, 해산 때 고통을 이기시는 은혜,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 쓴 것을 삼키고 단것을 뱉아 먹이는 은혜,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는 은혜, 젖을 먹여 기르는 은혜, 손발이 닳도록 깨끗이 씻어주시는 은혜, 먼 길을 떠났을 때 걱정해 주시는 은혜, 자식을 위하여 나쁜 일까지 감당하는 은혜,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마지막에 究竟憐愍恩 (구경연민은)이란 말이 있는데 어머니의 연세 높아 일 백살이 될지라도 팔십 살 된 늙은 아들 어느 때나 걱정하네 이와 같은 크신 사랑 끝날 때가 언제인가 두 눈 감은 그 때라야 바야흐로 다하려나.... 저희 아버님을 보시면 그렇습니다. 아버님이 93세이시고 형님은 70이 다 되시는데 나이 들어 일하기도 어렵고 어떻게 사느냐고 늘 걱정을 하십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이 부모입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이던 부모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두말할 것 없습니다. 가장 높은 효도의 종교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을 보면 사람에 관한 6계중 첫 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또한 에베서서 6장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공경의 자세히 말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합니다. 인간 도리의 첫째 자리에 놓아 이렇게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하면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그 자체로 그치는 의무가 아니라 그것이 자녀들이 잘 되고 장수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것이기에 출애굽기 21장17절을 보면 반대로 부정적인 의미에서 부모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고,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무조건 쳐 죽이고(출 21장15절, 레위기 20장9절에는), 신명기 21:18-21절에는 패역한 자식은 돌로 쳐죽여 이스라엘의 악을 제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고 죽이라는 말은 참으로 살벌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안 죽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명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계명은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이라고 합니다. 정통파 유대인 청년에게 부모를 공경하느냐고 물으면 공경한다고 대답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율법에 부모 공경을 안 하면 죽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홀로 사는 여집사님이 계셨는데 그녀에게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엄마와 매일 말다툼을 합니다. 엄마가 말을 하면 가만히 있지를 않고 꼭 말대꾸를 하며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며 싸웁니다. 그래서 그 여집사는 나중엔 속이 터져서 울곤 하였습니다. 이런 사정을 듣고 목사가 그 아이를 자기 아들과 놀게 하면서 어느 날 저녁식사를 같이하였습니다. 식사시간이 되어 식탁에 앉아 있을 때 “너, 요새도 너의 어머니에게 지지 않고 덤벼드니?” 그 아들은 아무 소리를 안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너, 성경말씀에 부모를 무시하며 저주하는 자녀를 어떻게 하라고 했는지 아니?” 그 아들은 고개만 가로 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들은 죽이라고 하셨단다. 혹시 알고 있니(출 21:17, 레 20:9)” 잠시 후 그 목사는 다시 물었습니다. “아가야 죽음이 뭔지는 알고 있니” 하고 물으니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이제부터 엄마 말 잘 들어라. 그럴 수 있냐?” 하니 “네.” 했습니다. 그러고선 헤어졌는데 다음 날 아침 그 여집사로 부터 궁궁하여 하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애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요.” 인간은 예부터 죽인다고 해야 말을 듣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은 죽인다고 하면 말을 듣는데, 어른들은 죽인다고 해도 말을 안 듣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러면 공경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합니까? 공경이라고 하는 말 ‘티마’는 특별히 사람에게만 유일하게 쓰여지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랑도 아니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아닙니다. 높이 사랑하고 섬긴다는 뜻입니다. 부모를 존경하며 그의 옳음을 인정하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 공경의 가장 아름다운 본은 우리 주 에수님이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극한 죽음의 상황에서도 주님은 요한에세 어머니를 부탁하십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데..“(요한 19:27-28).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부모 공경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미국교회에서는 어머니 주일을 지키는데 이 어머니 주일에 어린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중요한 예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존경하고 잘 아는 1대 대통령 워싱턴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뱃사람이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선원이 되고 마침내 선장이 되고 바다를 헤쳐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어느 날 짐을 꾸려 하인들과 같이 이제 배를 타러 나가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나 인사를 할 때 어머니는 큰 뜻을 품고 집을 나가는 아들을 말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손을 잡고 그대로 울기만 했습니다. 그 때 워싱턴은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생각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내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내 꿈을 좇을 수는 없다.' 꿈을 포기하고 다시 짐을 풀어놓고 어머니에게 순종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국에 유명한 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되었습니다. 그는 큰 뜻을 품고 준비했던 대로 그 길을 갔다면 훌륭한 선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높여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에 꿈을 포기했을 때 그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공경이란 대가성 없는 사랑입니다. 공경해서 무얼 받아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효(孝) 하나입니다.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으려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보다 지식면에서는 더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선합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자식이 건강하기를 바라고,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더 합니다. 더 나아가 부모는 자식이 신앙생활을 잘하여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부모에게 직접적으로 잘해주는 것은 둘째입니다. 부모의 첫 째 마음은 그저 자식이 잘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효를 하려면 잘 되어야 합니다. 건강해야 합니다. 행복해야 합니다. 아프지도 말아야 합니다. 먼저 죽어서도 안 됩니다. 부모 앞에서는 큰 소리치며 형제간 다투는 보습을 보여서도 안 됩니다. 그런 것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불효의 행위입니다. 효는 신앙교육의 기초이며 인간교육 가정 교육의 기초입니다. 또한 장수하게 되고 형통하게 되는 축복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효도하는 사람이 오래 살고 효도하는 가문이 장수하고 모든 일에 형통하다는 것은 약속일뿐 아니라 통계학적 진리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강한 점은 그 전승을 지키는 데에 있습니다. 전승의 뿌리는 효입니다. 그들이 세계적으로 형통한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부모 공경은 또한 인격의 뿌리입니다. 부모 공경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 경고 할 수 없고 참된 지도자도 될 수가 없습니다. 마틴 루터는 그의 대요리문답에서 부모란 네 가지를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낳아준 부모, 나를 가르쳐준 선생부모, 나를 지켜주시는 왕부모, 그리고 내 영적인 생활을 지도하는 목사부모. 이런 네 가지가 부모 속에 있기에 부모에게 순종의 덕을 익힐 때 비로소 인격이 완성되고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게 되고 가문의 전통이 될 때 자자손손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부모는 그렇게 공경할 덕목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술만 마시면 자신을 때리고 엄마는 계모 같고 ... 정말 집이 싫습니다. 어떻게 공경합니까?” 세상에는 정말 그런 부모도 있고 그런 가정도 있습니다. 공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관계회복 치유되어야 할 문제이지 그렇다고 해서 부모를 공경할 수 없는 이유는 안됩니다. 부모는 그 자체로만으로도 공경해야 대상입니다. 성경에는 부모가 잘 해주면 공경하고 잘 못하면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공경해야 할 첫 계명으로 주고 있습니다. 설령 부모가 잘못했을 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며 공경할 때 그 자식은 잘 된다는 것을 약속합니다.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라고 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열 세 살 때에 혈우병을 앓아서 수술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수술에서 수혈이 잘못되어서 이 소년이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라고 하는 AIDS 라고 하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속수무책으로 이 병원에서 잘못한 이 사건으로 인해서 그대로 죽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가정도 특별히 의사선생님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밝은 웃음을 보였고, 모두에게 친절하게 했습니다. 오히려 염려하는 부모를 위로하며 날마다 기쁘게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방송매체를 통하여 전 미국에 전해지게 될 때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린이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유명인사들이 앞을 다투어서 이 어린아이를 찾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병문안을 했습니다. 당시에 대통령이었던 레이건도 친히 이 어린 소년을 찾아 방문했고 또 당시의 유명한 팝 가수인 마이클 잭슨까지도 이 어린 소년을 방문해서 위로했습니다. 결국 5년을 더 살다가 18세에 이 소년은 죽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기독교 잡지에 실려서 더욱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죽어 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나는 아무 것도 너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 이 아빠가 더 이상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 다오."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전 지금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많은 선물을 받고 살았지만 아무도 아빠가 제게 준 선물 같은 선물을 준 사람은 없습니다. 아빠는 내게 천국 열쇠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해 주었고, 교회에 나아가 예수를 믿게 해 주었고,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얻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보다 위대한 선물은 다시 없으니까 말입니다." 부모가 못나고 가난하고 교육을 못 받아서 자식에게 잘 해준 것이 없어도 생명을 낳아준 부모보다 더 큰 선물은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내가 오늘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은 수 있는 자가 되었다면 부모가 자식에게 못해준 것들을 다 합쳐도 그 선물을 넘어설 수 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어가면서도 소년은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 13살에 부모 곁을 떠났습니다. 실제적인 생활은 누님 형님들이 도와주었습니다. 학비도 형님 누님이 많이 대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탸향살이입니다. 생각하면 참 일찍 부모 곁을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하는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한 때였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있는 고향, 그리고 사랑만 기억됩니다. 그리고 잘 해 드린 것도 없는데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만 남아 있습니다. 나에게는 아버지 어머니 자체가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해드린 것도 없이 돌아가신 10년이 넘어서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시 한편을 올렸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주고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의 주는 사랑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Ninety-thre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불란서 혁명 이후에 불란서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 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어느 부대 하나가 이동하면서 군인들이 숲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가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긴 나머지 상사 한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체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세 아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에게는 줍니다. 자기 입에 들어간 것은 없지마는 아이들이 빵 한 조각을 먹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더 크게 기뻐하며 만족해합니다. 그것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 잠시 어버이를 공경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부모가 자라가면서 나에게 해준 것 외적인 것들을 생각하면 원망할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내 생명을 세상에 낳아주신 부모는 그 자체가 가장 큰 선물임을 성경은 말하면서 네 부모를 순종하라 공경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형통한 길이며 장수하는 길이라 합니다. 성경이 왜 그렇게 부모공경을 강조를 합니까? 부모 공경이 곧 경천,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공경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이 단지 부모님 잘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메시지로 끝난다면 유교의 교리와 다를바가 없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주의 말씀처럼 부모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이 시대의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김해영 -바다 해 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