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들과 딸이 모처럼 집에 다 모이게 되었다.
아들은 방학이 되어 집으로 왔고
딸의 신랑은 한 달 간 출장을 갔기 때문이다.
딸은 저 하나도 모자라 강아지 한 마리까지 덧붙여 데리고왔다.
난 평소와 다른 특별한 일정이 있을 때는 전부터 계획한다.
마치 더불어 숲의 1년간 행사처럼.
물론 가끔 ‘오늘 마시자!’ 하는 즉흥적인 일도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은 점점 적어진다.
나와 함께 산 나의 딸과 아들 역시 나를 닮았다.
그런데 아랫집 동생이 모처럼 언니네 가족이 다 모였으니
같이 고기를 구워먹자고 내려오라고 한다.
갑자기 일정에도 없는 일이라 내키진 않았지만
성의를 무시하기도 그렇고 해서 투덜거리는 딸과 아들을
구슬러 데리고 내려갔다.
아랫집 동생과 아들, 나와 나의 아들과 딸, 이렇게 다섯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동생은 맥주 잔에 소주를
아이들과 난 맥주 한 병을 겨우 홀짝 거리며 마셨다.
술도 마시고 싶은 날이 있는데 그날은 영 아니었다.
그리고 솔직히 난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어렸을 때 삼겹살에 체해 죽다 살아난 적이 있어
그 후에는 그 맛있다는 삼겹살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린다.
평소에는 말수가 적은 동생이 술이 들어가니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데......
아니다!
난 마시나 마시지 않거나 음기가 전부 입으로 올라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수다스럽다.ㅠ.ㅠ
그런데 나도 아이들도 먹는 것보다 모기에 뜯기는 것이 더 많아
팔과 다리를 벅벅 긁으며 서둘러 올라왔다.
이제 막 술기가 오른 동생에겐 조금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기에 뜯기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리를 지키기엔
나의 인내심일까, 분위기일까, 하여튼 별로였다.
동생은 술만 들어가면 만사형통이다.
달변에 웃는 얼굴도 그때야 볼 수 있다.
그 후론 우리는 가지 않았지만(동생도 우리 부류는 별로란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 후론 부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랫집은 그런 자리가 매주 어김없이 계속 됐다.
난 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구나, 란 생각을 했다.
당장 돈이 없어 카드 빚 때문에 주소도 옮겨놓고 남의 집 설거지를 도와가며 사는 데
월부로 차를 사고 블라인드를 달고 매주 휴가를 온 사람들처럼 주말을 즐기며 사는
아랫집 동생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넉넉한 담대함에 부럽기도 했다.
언젠가부터인지 우리동네 저수지 부근에 집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사무실도 아닌 것이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빨간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며칠 후 아랫집 동생이 물었다.
“언니! 우리 저수지에 있는 빨간 건물에 놀러가 볼까?”
“빨간 집? 거기 뭐하는 곳인데?”
“저번에 낚시터에서 너무 늦게 끝났는데 밥을 먹던 그 건물 주인이
여기까지 데려다 줬어. 미대 교수래. 지금 건물이 작업실이래.”
“됐다! 싸이코는 나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무슨 말이야?”
“예술! 그 전문적인 예술가들!
전문직도 아닌 그냥 선무당인 나도 이런 싸이코인데,
그것도 미술! 특히 순수 미술가들은 조금 더 싸이코더라.”
“그래?”
동생은 아닌데? 라는 표정으로 내 말을 흘려 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아랫집에 못 보던 차가 서 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숯불에다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시며 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쾌활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났다.
조용하던 곳에 처음으로 사람 사는 소리가 난 것이다.
아랫집 아들의 친구들이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이 차가 도무지 움직이질 않고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거다.
‘새로운 친구를 알게 된 걸까……
백수면 큰일인데……’
그렇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할 쯤에
아랫집 동생이 옻닭을 먹으러 가지 않겠냐는 문자가 왔다.
'닭? 옻닭?'
난 음식에 새로운 단어가 붙어있는 것에 심히 낮을 가리는 편이다.
‘지금 막 점심을 먹었어. 미안.’
조금 후 까만 차가 슬슬 움직이며 나갔다.
그 다음날
난 오랫동안 비워 둔 아랫집이 너무 습해
보일러를 켜야 할 것 같아 슬슬 아래로 내려갔다.
새벽에 내리는 이슬이 내 팔을 간지럽혔다.
아랫집은 예상대로 사람이 살지 않아 습기가 하나가득.
보일러를 가장 세게 틀어놓고 나오는데
어김없이 그 차가 자기 자리가 거기인 듯 반듯하게 서 있었다.
내려간 김에 이리저리 차를 살펴보았다.
에쿠스 구형에 타이어가 많이 마모돼 있었다.
‘돈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는데……
타이어도 좀 마모됐는데 그대로 두고……'
난 형사처럼 차에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하긴 차 좋다고 다 돈이 많은 건 아니지.’
불쑥 어제 아들 친구라고 하기엔 좀 과발효 된,
몸집이 큰 사람이 우리집 마당까지 들어와 개복숭아를
따고 있었다.
"저기, 그거 저의 집 나무거든요. 대충 따세요."
"아! 그래요!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말은 교양있게 하며 게속 따고 있었다.
그러자 아랫집 동생이 올라왔다.
"언니 저 개복숭아 내가 따 달라고 했어."
"그래? 그럼 그렇게 말씀하시지."
"그러게 말야."
아랫집 동생이 픽하고 웃었다.
누구냐? 는 말은 묻지 않았다.
자신이 말을 하지 않는데 궂이 물을 필요는 없었다.
난 혼자 나쁜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자기 자신에게 살집을 그렇게 많이 붙여놓고 있는 것은
좋게 말하면 성격이 유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유들유들하다는 얘기인데……
가만!가만! 혹 그 예술가!
예술가가 저렇게 자기 몸에 살을 붙이고 예술을?
전위 예술가인가?
하긴 요즘은 장르가 하도 많으니’
아! 됐어!
도를 닦는 도인이 아니고야
살이 찐들 어떠하리!
마른들 어떠하리!
그래!
도인도 살집이 있을 수 있지!
너무 도를 열심히 닦아 힘들어 부을 수도 있잖아?
그나저나 제발 아래 동생이 마음을 잡고
맥주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듯 그렇게 세상을
다 마시지 않게만 된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아니지!
이번엔 설마 남자의 몸집에 어울리는
주발로 소주를 따라 마시는 건 아니겠지.’
그런 나의 기우에 딸은 핀잔을 준다.
"엄마! 저 아줌마가 이제 뭘 더 뺏길 것이 있다고 걱정이야!"
"넌 모르는 소리 좀 그만해! 맞아가며 돈 벌어다
밥 먹여줘야 하는 남자들도 많아!"
"차 있잖아! 저 차 타고 내려가겠지!"
"그럴까??? 그런데 저 차는 며칠 째 움직이지도 않는데?"
"예술가잖아, 예술가! 예술감각이 발동하면 내려가서
작업하겠지!"
"그런가???"
제발 딸의 말이 맞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랫집에 얌전하게 세워 둔 검은 에쿠스를
두고보자! 는 심정으로 노려봤다.
첫댓글 저는 사실......이해 안 되는 인연, 취생몽사하려는 듯한 사람들....가까이 못하는데...선배 덕에 구경하네요....그 사람들 인연에 선배님 마음 다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 사람들도 좋은 변화로 나아가길....^^;;
인창님 더운데 건강하게 잘 계시는지요.저의 글을 보시고 저를 염려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전 이상하게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 겪기도 힘든 일들을 다 겪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젠 제법 굳은 살이 박혀 왠만한 것들은 견딜만 합니다. 3년 전만 해도 세 아이들의 엄마고 한 남자의 아내인 평범한 주부가 이제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꼭 저 여자만의 탓일까? 종종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순간들이 있었겠지요.저야말로 속되게 살려면 가장 속되게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않으려는 의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아버지의 피를 받은 마적단 기질에서 오는 걸까요? 아니면 제 형제들 말대로 제가 독해서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 순간의 선택이 한 여자의 삶을 완전히 다른 삶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보며 인간의 나약함에 슬퍼집니다. 다음날 차가 없길래 내려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미대교수는 아니고 초등학교 동창생들이랍니다. 한 사람은 뇌출혈로 왼쪽이 불편하게 된 사람인데 부인을 놓아주었답니다. 평생 살던 남편의 왼쪽이 조금 불편해졌다고 놓아준다고 간 여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옛부터 칠거죄악에 걸려도 병 든 부인은 버리지 못하는 것인데....
┗ 아마 놓아준 것이 아니라 놓아버리고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집요한 질문 시작입니다. 직업은? 없어 그냥 놀아. 그럼 재산은? 몰라, 있으니까 놀며 살겠지. 야! 넌 가장 중요하고 영양가 있는 것을 모르니 이 고생을 하는 거야. 몸은 어느 정도로 불편한데? 조금 부자유스러울 뿐이지 자기가 다 해. 그럼 그 사람이 밥 먹고 살 정도의 여유가 된다면 서로 의지하고 같이 살아도 좋은 일 아닐까? 언니, 나 이제 남자라면 지긋지긋해. 세상에는 나쁜남자도 많지만 좋은 남자도 많아.난 네가 음식 만드는 것 좋아하고 살림하는 것 좋아하니까 같이 다독이며 살았음 좋겠다. 그럼 남의집 일 하지 않아도 되고? 동생은 그냥 빙그레 웃는다.
하하..쓰다보니 가장 중요한 말을 안 썼어요. 제가 이래요. ^^ 뵙기에 가냘펴 보이시던데 건강에 유의하시고 마지막 남은 복 더위와 늦더위 잘 넘기시길 바랍니다.
^^ 제가..... 사실......은근 좋은 분들에게만 둘러 싸여서 살아왔다는 것....그리하야 '비극'의 상황에 놓은 분들에 대해 아파하고 연민은 느끼되, '잘은 모르고' 멀리서 안타까워만 하는 심약함....많아요...;; 혹시나 나도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종속되지 말고 스스로 해결해 가야지...하며 공부 이어갑니다. 그랬더니 요즘은 더 안전지대에서 소박한 나눔 이어가네요.... 다양하게 자기 자리에서 행복하기를....좋은 마음 연대하여 세상도 그렇게 평화로운 변혁 이루어가길...기도합니다-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인데도 오늘은 덥네요....역시 말복을 향한 열대야....내일, 아니 오늘 아침 전주로 갑니다. 선배도 건강~!!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