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대중 정부 시기동안 한국의 신문들이 한일관계를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정리해보는 데에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각 신문사의 주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신문 사설의 구조는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뉴스의 전체적인 내용의 윤곽을 나타내는 요약, 기초정보가 있다. 둘째, 뉴스의 본질에 대해 통찰하는 문제 제기가 있다. 셋째, 신문사의 의견을 나타내어 문제 인식의 틀과 시비를 제시한다.1)
1)박동운,「신문사설의 일본론과 경험론」『신문연구』, 1979 봄호, 16쪽
그리고 사설이라는 것이 주로 신문사 간부들의 공통된 의견을 수렴한 것이라는 사실에서, 신문에서 사설이 갖는 대표성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내용분석에 주력하였다. 이 글과 같이 인식에 대한 문제를 다룰 때에 정량분석은 그다지 유용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다.
구체적 대상으로는, 한국의 신문들을 연구할 때 성향적인 양극으로서 곧잘 비교되는 조선일보과 한겨레신문을 채택하였다. 이 글에서 두 신문을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순서로 다루는 이유는 단지 가나다순과 창간 연대순에 의한 것임을 명백히 해둔다.
그 시기로 김대중 정부 기간을 선정한 이유는 단지 하나의 정부라는 시간상의 명확성 때문만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가 표방한 대일 정책은 생산성 위주의 실리 우선적인 성격이었고, 2) 이는 과거에 대한 감정과 현실에 대한 필요가 미묘하게 얽혀 절뚝거리던 이전 정부들과 비교할 때 하나의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또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비롯, 대중 매체의 발달로 한일관계가 국가간 관계에서 초 국가간 관계로 이행된 전환기가 바로 이 시기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 기간인 것이다. 3)
2)이면우,「냉전 이후 한국의 대일정책과 한일관계」『전환기의 한일관계』, 세종연구소, 2002, 25-35쪽
김대중 정부 시기동안 한일관계에 벌어졌던 굵직한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간략히 제시해보자면, 한일 어업협정의 파기와 새로운 타결, 일본 대중문화 개방, 역사 교과서 문제를 위시한 일본 사회의 우경화, 북일 회담에 따른 한국의 반응까지 4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김대중 정부 초반 한일 정상회담에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발표되는 등 제법 발전적으로 나아가던 한일관계가 중반에 들며 역사 교과서 문제 등 일본의 우경화로 점차 냉각되어 다시 불신의 관계로 퇴행했다고 볼 수 있다.
허나 이러한 시간적 추이는 어디까지나 편의에 따라 각 시기의 특징을 가시적으로 나누어본 것일 뿐, 실제로 불과 5년이라는 시간 속에는 한일관계의 모든 모습들이 혼재되어있고, 더불어 그에 대한 입장과 인식도 여러 가지가 늘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시기구분에 따라 역사적으로 정리하기보다는, 각 사건과 주제별로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이 한일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짚어보면서, 그 인식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살피기로 하겠다.
Ⅱ. 한일관계
(1) 과거사 청산
김대중 정부는 초반부터, 지나치게 과거사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으로 한일관계를 풀어갈 것을 표방하였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은 과거사 청산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비슷한 의견을 보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일정책은 …… 미래지향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같은 미래지향적 대일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 과거사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양국간 현안의 대국적인 해결이 필수적이다. (조선일보 1998년 3월 24일자)
위안부 문제를 전세계가 납득하도록 처리해야 하고, 일본문화의 수입개방을 두려워만 해서는 안 된다는 김 대통령의 발언은 원칙과 현실을 동시에 감안한 실질적인 접근에서 출발한다. …… 양국 정부는 차제에 허식을 버리고 진실에 바탕을 둔 협력과 이해의 시대를 열어간다는 각오로 우선 위안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1998년 3월 2일자)
이어 1998년 9월 18일, 김대중 대통령이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 오부치 게이조 총리대신과의 정상회담에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하자, 이에 대하여 두 신문은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과거사’ 정리와 관련해선 여전히 미흡하다는 의견이 있긴 하지만 공동 선언문 내용과 그 행동계획 내용을 볼 때 그런대로 두 나라 관계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들어섰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 양국 지도자들이 경제협력과 한반도 긴장완화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면서 이를 행동계획으로 구체화한 것은 진일보한 일이다. …… 한일관계의 장래를 위해 일단 커다란 틀은 잡혔다. 남은 것은 이의 실천을 위한 양국의 의지다. (조선일보 1998년 10월 9일자)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과거사가 한일관계의 모든 것일 수 없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했다. 물론 과거사도 중요하지만, 이것 때문에 다른 부문의 협력이 희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전체가 경제위기에 허덕이는 지금 일본을 활용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김 대통령이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일본이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의 끌차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한겨레신문 1998년 10월 9일자)
김대중 정부가 표방하는 한일관계의 의지가 처음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이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모두 김대중 정부의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의지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였다고 볼 수 있다.
(2) 어업협정
1998년 1월 23일 일본 정부 각의에서 한일 어업협정에 대한 일방적 파기가 결정되자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은 이를 강렬히 비판하였다. 두 신문 모두 일본의 어업협정 파기는 한국의 IMF 위기를 이용한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일본이 만일 지금 어업협정 파기를 선언한다면 한국의 경제위기를 악용했다는 비난의 화살을 집중적으로 받을 것도 확실하다. (조선일보 1998년 1월 14일자)
이웃의 어려움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를 기회로 잇속을 챙기려는 얄팍한 태도는 아무리 국가 이익만이 존재한다는 냉엄한 국제사회라 할지라도 용납받기 어려운 일이다. (한겨레신문 1998년 1월 24일자)
그리고 같은 해 9월 24일 타결된 새 한일 어업협정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도 두 신문은 부족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앞으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기르는 어업’을 제시하고 있는 점마저 같다.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동안 양국간 관계발전을 가로 막아온 가장 큰 장애 하나가 해결되었다는 측면에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 이번 어업협상 결과는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서 그 평가가 다를 수 있다. …… 그러나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어서 너무 잃은 것만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 우리 어민들이 입게 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르는 어업’ 등 적극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조선일보 9월 26일자)
협정 타결안의 전체적인 방향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으나, 그 세목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 세계는 벌써부터 ‘기르는 어업’으로 바뀌고 있다. 정부와 어민들은, 그런 추세에 따라 이번 협정을 오히려 어업발전의 호기로 삼기를 바란다. (한겨레신문 9월 26일자)
두 신문의 차이는 독도 문제에 있다. 조선일보는 어업협정과 관련하여 독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업협정 개정을 통해 독도를 건드리려는 속셈은 아예 말아야 한다. (조선일보 1998년 1월 14일자)
독도문제와 관련해 양국은 ‘영유권’을 명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이 기회에 왜 영유권을 확실히 하지 않았느냐는 비난도 있지만 한국의 ‘실효적 지배’를 사실상 인정했다는 것이 우리 정부측 입장이다. (조선일보 1998년 9월 26일자)
한겨레신문은 어업협정 문제를 굳이 독도와 관련시키지 않다가, 한나라당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들어 새 어업협정에 대한 비준동의를 거부하자, 이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일부에서는 이 협정이 독도에 대한 우리의 영유권에 손상을 입혔으므로 비준동의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관계를 착각했거나 국제법 해석을 잘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협정 내용과 엄연한 사실을 고의적으로 비틀어 민족주의 감정만을 부추기며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한나라당은 독도를 중간 수역에 넣은 탓에 영유권을 약화시켰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이는 어업협정의 성격을 오해한 주장이다. 어업협정은 기본적으로 배타적 경제수역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독도가 외견상 중간수역에 들어있다고 해서 영유권에 대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신문 1998년 12월 29일)
(3) 일본 문화개방
김대중 정부의 한일관계 관련 정책 중 과연 상징적이라 할 것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은 개방은 불가피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국민 정서의 문제가 있으므로 신중해야한다는 공통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 대중문화만 국내 유입을 금지한 그 동안의 정책은 사실상 이치에 맞지 않을뿐더러 국제사회에서 볼 때도 난센스였다. 하지만 일본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겪은 세대들이 생존하고 있는 만큼 반일감정 등 민족정서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사항이다. 따라서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은 하되 이에 수반되는 여러 요인들을 고려해가며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또 분야별로 개방시기와 우선순위를 정하는 등 적절한 조정 청사진을 만드는 게 필요할 듯 싶다. (조선일보 1998년 4월 18일자)
일본 대중문화 개방정책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개방프로그램을 제시하겠다고 한 것은 합당한 절차로 보인다. 그런데 이 문제는 너무나 민감하고 민족의 자존심과 맞닿아 있는 일이어서 신중하고 슬기롭게 다뤄야 한다. (한겨레신문 1998년 5월 2일자)
일본 문화개방이 정치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아서는 아니 되고, 우리 문화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한다는 의견 또한 공통적이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계기로 우리도 모방이 아닌 우리 것 창조의 활성화를 이루어야한다. 물론 문화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시장 역시 개방화 추세인 만큼 정부가 간섭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조선일보 1998년 4월 18일자)
일본영화 완전 개방은 다른 정치?경제적 논리의 종속변수로서가 아니라 우리 문화산업 진흥의 큰 틀 안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한겨레신문 1999년 3월 19일자)
92년 대통령 선거 뒤 정치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도 조선일보는 한국의 훌륭한 야당 지도자 한분을 잃었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조선이 김대중을 몰라서 그동안 왜곡하고 평하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신문장사를 하기 위함이지 조선만큼 김대중을 잘 아는 언론사도 드물겁니다.
첫댓글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의 대중문화를 개방한 것에 대해 한겨레는 합당하다며 슬기롭게 대처할 것을 주문했는데 조선일보 역시 비슷한 논조로 찬성하는 사설을 올렸군요..문제는 상황에 따라 짜깁기와 왜곡을 밥먹듯 해왔다는 것입니다..조선일보가 변해야 정치문화도 변합니다..
종아니님, 조선일보가 요즘 달라진것같다 해서.. 창간기념일날 사설을 한번 읽어봤었습니다. ..별로 바뀐거 없더군요. 자기들은 독재권력 앞에서 여론을 대변해, 항상 정론의 길만을 걸어왔답니다. 권력이나 시민단체들이 지금도.. 올바른 자신들을 모함하고, 죽이기에만 앞장선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쓴웃음만 나오더군요.
조선이 요즈음 김대중 대통령님 인터뷰 기사나, 3 .1 절 관련기사 등에서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보도 태도를 보인건 왜일까요. ..생각해보니 그동안 그분께 잘못한 것이 미안해서 ?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한 번 ?...
김대중이라는 인물은 이념이나 사상을 떠나 어디에도 필요한 존재입니다..세계가 알아주는 페미니즘이자 CEO이기 때문이지요..요즘 보면 한나라당에서도 전과 같이 함부로 정치공세를 하지 못합니다..물론 호남의 민심을 무서워하는 이유도 있겠지만요..
92년 대통령 선거 뒤 정치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도 조선일보는 한국의 훌륭한 야당 지도자 한분을 잃었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조선이 김대중을 몰라서 그동안 왜곡하고 평하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신문장사를 하기 위함이지 조선만큼 김대중을 잘 아는 언론사도 드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