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는 우리 몸의 ‘숲’이다. 이산화탄소와 산소를 교환해 생명을 영위토록 하는 것이 숲의 기능과 다르지 않다. 숲의 파괴가 지구온난화라는 재앙을 몰고 오듯 폐의 손상은 생명의 종말로 이어진다. 폐는 질환에 매우 취약하다. 구조적으로 호흡을 할 때 들어오는 미세먼지와 세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가볍게는 폐렴에서부터 결핵·COPD(만성폐쇄성폐질환)·폐암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병에 시달린다. 6일은 ‘폐의 날’이다. 폐 건강을 위해 이것만은 꼭 지키자.
폐 일부 절제해도 등산·달리기 할 수 있어
폐암 수술로 폐를 일부 잘라내도 생활에 지장이 없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폐암 환자 중에는 수술 후 남은 폐 기능을 향상시켜 암 발생 전보다 더 활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 등산은 물론 축구·달리기와 같은 운동도 거뜬히 소화한다.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폐 용량은 전체의 40% 정도. 폐는 5개의 좌우 폐엽(오른쪽 3개, 왼쪽 2개)으로 구성돼 있어 이 중 하나가 없어도 정상 생활은 물론 운동을 할 수 있다.
문제는 폐엽에 달려 있는 작은 가스 교환 장치인 폐포(허파꽈리)가 얼마나 살아 있느냐는 것. 폐포는 지름 0.1∼0.2㎜의 공기주머니다. 이곳에 분포된 실핏줄에 혈액이 지나가며 공기로부터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폐포 수는 대략 3억 개 정도. 따라서 폐의 기능은 얼마나 건강한 폐포가 살아 있느냐에 달려 있다.
흡연가정 자녀의 니코틴, 비흡연가정 4배
폐암 환자의 85∼90%는 흡연력이 있다. 폐의 일부를 잘라냈다고 호흡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흡연으로 죽은 폐포가 많아 호흡이 불편해진 것이다. 폐암 수술 뒤 암과는 상관없는 호흡부전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담배는 암을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하지만 폐암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가장 위험한 적인 것이다.
폐암의 90% 이상은 담배연기 속의 발암물질에 의해 발생한다.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간접 흡연이다. 2002년 폐암에 걸려 투병 중인 이태식씨는 어렸을 때 경험한 간접 흡연이 암 발생의 원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어렸을 때 부모님 모두 담배를 피워 단칸방에서 어쩔 수 없이 간접 흡연을 했다는 것이다.
국립암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저연령 어린이의 모발 니코틴 농도는 비흡연 가정보다 4배, 어머니는 3배가량 높았다. 특히 흡연자가 실외에서 담배를 피워도 실내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비흡연 가정 모발 니코틴 농도의 2배 검출). 폐가 성숙하지 않은 성장기 어린이는 흡연자의 머리카락이나 옷에 묻은 니코틴 물질을 흡입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다.
꾸준한 유산소운동으로 강한 폐 만들어야
폐를 건강하게 하는 약이나 음식은 없다. 기관지나 폐의 건조함을 막는 수분 섭취,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권하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운동은 다르다. 유산소운동의 가장 큰 수혜자는 심장과 폐다. 불행하게도 폐포는 재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남아 있는 폐포의 기능을 평생 유지하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폐암을 극복하고 환경운동을 펴는 김재일씨의 경우 음식은 라면도 거부하지 않을 정도로 가리지 않지만 운동은 반드시 규칙적으로 한다. 평소엔 생태 조사를 위해 산에 오르고, 일정이 없으면 축구를 하거나 하루 왕복 30㎞ 거리를 자전거로 달린다. 운동은 폐 기능을 좋게도 하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투병 의지를 북돋우는 정신건강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운동 강도는 등이 촉촉할 정도면 무난하다. 천천히 달리기, 빠르게 걷기, 수영 등이 좋은 유산소운동이다.
폐암 10%는 증상 없어 … 매년 검진 받도록
우리나라의 폐암 성적이 좋아진 이유 중 하나가 암의 조기 발견이다. 작은 폐암도 찾아내는 저선량 CT의 등장도 도움이 됐지만 무엇보다 건강검진 확대를 통해 조기 발견 사례가 크게 늘어난 데 기인한다.
45세 이상, 특히 폐암 가족력이 있거나 흡연자는 매년 흉부 X선 검사를, 필요하면 저선량 CT 촬영이나 객담 암세포진 검사를 받는다. 폐암 환자의 10%는 증상이 없다. 심한 기침, 피 섞인 객담(객혈), 호흡곤란, 쉰 목소리, 체중 감소와 같은 증상도 병이 어느 정도 진행한 다음에 나타난다. 증상만으로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증상을 무시해선 안 된다. 병기를 앞당겨 수술을 받을수록 치료 성적이 좋기 때문이다. 40대 이후 흡연자로 기침의 양상이 이전과 다르거나 이유 없이 체중이 줄면 서둘러 병원을 찾도록 한다.
고종관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도움말
국립암센터 조재일 원장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호흡기 내과 이명구 교수
●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이사장 한성구, 서울대학교병원 호흡기내과)는 6일 폐의 소중함과 호흡기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대국민 건강 캠페인을 연다. 이번 캠페인에선 바람개비를 상징물로 도입해 최근 심각한 질환으로 부상하는 COPD에 대한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02-557-2045, www.lungkorea.com
“흡연이 폐암의 가장 큰 위험요인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굴뚝에 코를 박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실제 폐암 환자의 80% 이상이 흡연자입니다.”
유세화 대한폐암학회장은 “폐는 피부와 마찬가지로 외부 환경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신체 부위이므로 항상 위험 요인에 노출돼 있다”며 “기침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거나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 폐암, 국내 암 사망률 1위지만 인식률 낮아
폐암은 국내 암 사망률 1위인 질환이면서 매년 약 1만 2000명이 사망하는 무서운 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폐암의 무서움을 알지 못한다.
“대한폐암학회가 2008년 2~30대 여성 483명을 대상으로 ‘여성 암 중 어떤 암의 사망률이 가장 높을까’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조사 대상자 중 49.1%가 유방암을 꼽았습니다. 실제 1위인 폐암을 답한 사람은 불과 5%였죠.”
유 회장은 “수술 후 5년 생존율만 보더라도 유방암 환자보다 폐암 환자가 훨씬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사람들이 폐암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에 운 좋게 폐암 초기인 70대 환자를 진료한 적이 있는데 치료를 강력히 권유했지만 완강히 거부해 1년 뒤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로 다시 병원에 찾아 온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치료시기를 놓친 환자를 보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픕니다.”
◆ 늘고 있는 여성 폐암 환자, 비흡연자도 위험
폐암 환자를 성별로 나누면 여성보다 남성이 3배 정도 많다. 그렇지만 유 회장은 여성이 남성보다 폐암에 더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아직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호르몬 차이 때문에 발암 물질이 여성의 체내에서 더 민감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 똑같이 담배를 피우더라도 암에 걸릴 위험은 여성이 남성보다 3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유 회장은 “여성 흡연율이 증가하면서 여성 폐암 환자 비율 역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며 “일부 여성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폐암의 위험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비흡연자도 간접흡연을 통해 충분히 폐암에 걸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실제 우리나라 폐암 환자 중 20% 정도는 비흡연자다.
◆ “폐암도 조기검진 지원사업에 포함되길 바랍니다”
현재 정부의 조기검진 지원사업에 포함된 암 종류는 위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암 등 5개다. 환자의 예후가 가장 나쁘고 사망률이 높은 폐암이 대상에 포함돼 있지 못한 상태.
유 회장은 “조기검진 지원사업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암 검진 후 생존율이 높아지거나, 특정 암 때문에 들어가는 사회적인 비용이 줄어드는 등 일종의 발전된 ‘증거’가 필요한데 폐암은 그렇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열심히 CT로 촬영한 것과 그냥 방치해 둔 것을 비교했을 때 생존율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점도 배제 요인입니다.”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조기진단법’이 없다는 의미다.
유 회장은 “적어도 60대 이상 고령자부터라도 먼저 조기 검진을 도와주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개인적으로 위험군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지원 대상을 정하면 분명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