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교육신문 215호
진도군 새섬(鳥島) 3년 살이 -조도고 교감 유성종-
변방 … 더 넓은 세상과 통하는 통로
길/
우리나라의 다도해라면 어느 곳에서 봐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그중 으뜸이 될 만 한 곳을 굳이 뽑으라면 필자는 단연 상조도 도리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남해안과 조도군도의 풍광을 추천한다.
상조도 최고봉인 고도 210m의 도리산에 오르면 '아름답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놀라움과 가슴 뭉클함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섬이 가장 많은 지역은 어디일까?”
어렵지 않게 전라남도 신안군이라고 대답한다.
1004의 섬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면지역에서 섬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한 번 더 물으면 어리둥절이다.
정답은 진도군 조도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도가 제주도, 거제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진도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많은 섬들을 간과한다.
조도면은 진도 본섬을 제외한 대부분의 섬들로 이루어진 면이다.
36개의 유인도를 포함한 178개의 섬이 있으며, 섬 이름 역시 새 조(鳥) 자를 쓰는 데 새떼처럼 섬이 많다는 의미이다.
섬 지역은 이촌향도 현상이 더 빠르고 크게 다가왔다.
1970년대 초반 2만 여명에 달했던 인구는 올해 여름 현재 3천명에 턱걸이하고 있다.
그나마 가장 큰 섬인 하조도와 다리로 연결된 상조도에 절반이상이 거주하고 있고 외딴 섬의 특성상 겨울철엔 텅빈 섬들도 상당수가 있다.
조도군도는 품고 있는 가치와 사연에 비해 전국적으로 너무나 덜 알려져 있어 안타깝다.
몇 가지만 들추어내도 놀라운데 말이다.
우리나라 해역에서 가장 빠른 조류지역 '조도'
인근의 울돌목(명량수로)에 이어 장죽수로, 맹골수로가 있다.
“무슨 바다가 이렇게 물살이 빠르지? 꼭 강물이 흐르는 것 같아!”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조류가 빠른 지역이라는 것은 이 지역의 사람들이 거친 바다에 적응하여 항해술이 뛰어나고
특산물인 돌미역, 톳, 참전복 등 해산물의 품질이 매우 좋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조기잡이로 유명한 영광의 칠산 앞바다를 비롯해 제주 너머까지 조도 사람들의 활동반경은 매우 넓고 촘촘했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40호로 지정된 어로요 ‘조도 닻배노래’가 활기 넘쳤던 당시를 기억하게 해준다.
술비소리(그물 싣는 소리)에이야 술비야 어허허 술비야/ 그물코가 에이야 술비야/ 칠산바다에 들오온 조기/ 우리배 방자로 다들어오너라. 삼천코면...........♬/걸릴날이............♬/ 있더란다...........♬/ 돈 실로가세.......♬/ 돈 실로가세......♬/ 칠산바다에........♬/ 돈 실로가세.......♬/ 이 그물을실어.......♬/ 만선을 하면.......♬/ 부모처자를........♬/ 봉양헐라네........♬/ 이제 가면은..........♬/ 언제오나..........♬/ 사월초파일........♬/ 맞이하여서야.........♬/ 돌아를 올라네......♬
가슴 뭉클한 아름다운 풍광
우리나라의 다도해라면 어느 곳에서 봐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그중 으뜸이 될 만 한 곳을 굳이 뽑으라면
필자는 단연 상조도 도리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남해안과 조도군도의 풍광을 추천한다.
상조도 최고봉인 고도 210m의 도리산에 오르면 ‘아름답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놀라움과 가슴 뭉클함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1816년 9월 대영제국의 중국사절단(암허스트경 일행)을 수행한 호위함 라이러호의 함장 바실 홀 대령(28세) 일행이
이곳에 올라 사방의 보석같은 섬들을 둘러보면서 한 말이 전해진다.
‘세상의 극치! 지구의 극치!(-the glamor of the world, the earth-)’였다.
당시 브라질을 거쳐 6개월의 긴 항해 끝에 목적지인 중국 천진항을 경유해 이 곳에 왔고,
세계 곳곳을 다녀봤던 군인 겸 여행가의 입에서 이런 표현이 나왔다는 것은 흥분을 누르고 객관화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어떤 이들은 한국의 ‘카프리’, 한국의 ‘하롱베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당시를 부언하자면, 이들 이방인들은 상조도 원주민들에게 얼마나 경계의 대상이었을까?
원주민들에게 여러 차례 화해의 시도가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원주민들의 파이프 담배(곰방대)가 영국인들에게 권해지고 이에 화답하여 원주민들에게 와인을 일곱 병이나 대접해줘서
‘좋다’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전해진다.
1817년 8월11일, 귀국길의 바실 홀은 희망봉을 돌아 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귀양 중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아버지의 파리 군사학교 동기)를 만나 동방의 나라 조선에 대한 얘기를 전하면서
조도군도의 섬들을 설명하였고, 그의 설명을 들은 나폴레옹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기록은 전한다.
홀 선장의 조도 얘기는 일본 오키나와 일대까지 탐사해서 1818년 영국 런던에서 펴낸 ‘조선 서해안과 류큐섬 탐색항해 전말서’란 책에 기록돼 전하고,
상조도를 그린 당시 그림이 영국 런던 캠브리지 국립해양박물관에 남아있다.
조도군도의 섬 가족들
첫 번째로 3만평의 광활한 사구에 300년 해송들의 숲,
2010년 아름다운 숲 전국 대상을 차지했던 관매도가 손꼽힌다.
‘조도는 몰라도 관매도는 들어봤다’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다.
이어서 2000년, 환경부에서 독도(1호)와 함께 보존가치가 높은 무인도(47개)를 ‘특정도서’로 지정한 병풍도와 백야도가 있고,
몸에 밧줄을 묶고 바위해안에서 목숨 걸고 돌미역을 채취한다는 독거도, 학생 1명 교사 1명이 공부하는 관사도,
17세기 중엽부터 300년 이상 고산 윤선도 집안 재산으로 등록되어 세금을 꼬박꼬박 바쳤다는 맹골도,
죽도, 곽도, 조선시대에 말을 키우는 목장이 있었다는 대마도, 소마도,
섬모양이 나비처럼 생겨 이름 붙여진 나배도,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되었고 부산 아지매가 눌러앉아 이장을 하고 있는 성남도,
김대중 대통령의 외가가 있고 최근 금광이 개발되고 있는 가사도,
기암괴석으로 바다정원을 꾸미며 세방낙조의 명성을 살리는 주지도, 양덕도, 혈도, 광대도, 내병도(안갈미섬)
24살에 발령받아 6년간 홀로 근무하면서 섬아이들과 주민들에게 50년 넘게 추앙받고 계시는
조춘기 선생님의 사도가 빛나는 외병도(밖갈미섬),
1930년대와 60년대 삼치 파시가 열려 큰 돈벌이가 되었다는 서거차도,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탄식과 눈물로 지켜본 동거차도가 있다.
지난 5월에 봉사활동을 하러 동거차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마을 정자에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놀고 계셔서 너스레 질문을 해 보았다.
“할머니들 친정이 궁금해서 그러는데 어디에서 시집 오셨어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대답들을 해 주신다.
“나는 저 건너편 섬 서거차에서 왔소, 나는 맹골도, 나는 조도, 나는 관사도,
나는 여기요, 나는 제주에서 왔소” 하신다.
제주에서 오신 할머니는 출가해녀*1로 바다 작업을 왔다가 그냥 이 섬의 날랜 놈한테 잡혀 버렸단다.
맹골도에서 오신 할머니는 동거차에 사람이 너무 많아 여기가 도회지인가 싶어 마음에 들어서 눌러 앉아 버렸다고 웃으신다.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저 섬에서 이 섬으로 통혼권도 이 지역의 운명처럼 얽혀져 왔었다.
조도군도는 밤에도 소리없이 신비함을 더한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밤중에 도리산 전망대에 올라 방부목 데크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몽골초원이 부럽지 않다.
온 세상의 별이 촘촘히 박혀 제 빛을 쏟아내고 선명한 은하수가 하늘 이곳에서 저곳으로 펼쳐져 다가온다.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유성들의 번개 같은 움직임도 차마 놓칠까 걱정이다.
특히나 북두칠성은 사시사철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인다.
누운 채 옆으로 비스듬히 돌아누우면 점점이 떠있는 섬들로부터 흔들리는 노랗고 하얀 가로등 불들이 섬 그늘과 함께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달빛에 은색 바닷길이 멀리 수평선까지 뻗어있는 날이면 감히 선계의 경관에도 뒤질 것 같지 않다.
365일 매양, 100살이 넘은 하조도 등대, 죽도 등대,
가사도 등대의 힘센 불빛들은 파수꾼을 뛰어넘어 환상의 하모니로 고요한 새섬의 밤바다를 토닥여 준다.
땅값이 가장 싼 곳은 어디?
이쯤해서 또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은 어디일까?
국토부에서 매년 1월 1일 기준으로 발표하는 표준지 개별공시지가에 의하면
2018 최고 지가지역은 서울 명동의 화장품가게 네이처 리퍼블릭이 위치한 곳으로 평당 3억이 넘는다.
그러면 땅값이 가장 싼 곳은 어딜까요? 머뭇거려진다.
명예인지, 불명예인지 판단은 자유이지만 조도면 눌옥도의 임야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최하위(‘17년 644원, ’18년 677원/3.3㎡)를 기록하고 있다.
‘16년도에는 옥도, ’15년도에는 가사도가 기록된 바 있다.
모두 조도군도의 식구들이다. ‘16년도의 경우에는 전국 최하위 10곳 중 9곳을 차지하기도 했다.
변방으로서의 조도면이 이렇게 평가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하다.
국토부 발표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2017년 가장 비싼 주택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로의 한 단독주택이 169억원으로 평가되었고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소유로 알려졌다.
반면 전국에서 가장 낮은 곳은 조도면 대마도리의 단독주택으로 대지면적 159㎡ 규모에 152만원으로 평가되었다.
전국의 부동산 투자가들이 조도면으로 대거 밀려들어올까 걱정이다.
조도,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됐을까?
한국해양조사원에 따르면 동해와 남해의 경계를 부산의 오륙도로 보고 남해와 서해의 경계는 명량수로를 기준으로 한다.
이를 진도본섬 아래로 연장하면 조도군도야 말로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인 셈이다.
위에 언급된 영국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진도와 조도군도 일대의 위치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진도 조도해역이 동양에서 항구 건설에 가장 좋은 후보지’라고 보고하였다.
이미 그들은 해도에 섬이름도 자기네 사람들 이름을 따서 표기해두었다.
말하자면 하조도는 암허스트 섬, 상조도는 몬트럴 섬, 외병도는 샴록 섬, 내병도는 지스틀 섬이라고….
이처럼 조도는 국제적으로 일찍부터 알려졌으며, 하조도는 요지로서 영국에 더 잘 알려진 섬이 되었다.
70년 뒤인 1885년,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후에 청나라와 협상하면서
홍콩처럼, 일본을 의식한 군사적 요새지로 진도 조도일대를 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2
당시 조선 정부가 영국의 요청을 받아들였더라면 진도와 조도는 지금의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상전벽해인 양 변해 있지 않았을까.
역사의 가정이 상상하기 힘든 변화를 짐 지우려 한다.
넓은 세상과 통하는 통로.
위치적 특성으로 인해 도리산 전망대에 오르면 조도군도 외에도 더 넓은 세상이 다가온다.
뭍으로는 정동방향으로 땅끝마을이 길게 뻗어져 내려와 고귀한 마무리를 지어 보인다.
그 아래로 윤선도가 음풍농월하였던 보길도와 추자도가 보이고 맑은 날이면 제주도 한라산도 장중한 모습을 보여준다.
해가 지는 쪽으로 눈을 돌리면 한때 조도면에 속했다가
1983년 신안군으로 귀속된 만재도와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가거도가 외롭게 존재감을 알린다.
진도체도는 육지인양 육중한 모습으로 작은 섬들의 어미섬이 되어준다.
정북방향으로 신안군의 하의도와 하태도가 보이고 조금 더 좌측 편에는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과
조선의 하멜이라고 일컫는 홍어장수 문순득의 사연을 간직한 우이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문순득은 200년 전 영산포로 향하던 중 표류하여 오키나와(유구국)를 거쳐 필리핀 루손섬까지 갔다가
마카오, 난징, 북경, 의주를 거쳐 3년 2개월 만에 귀향하여 조선왕조실록에까지 실린 인물이다.
조도면지에도 ‘선조22년(1589) 유구국 상인 30여명이 표류해와 명나라 동지사편에 딸려 중국을 통해 돌려보냈다.’
‘숙종 42년(1716) 조도사람 9명이 유구국에 표착했다가 귀국했다.’
등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역설적으로 변방 중의 변방이었던 조도가 그 옛날부터 더 넓은 세상과 통하는 통로였음을 반추해본다.
바야흐로 21세기는 해양의 시대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반도는 태평양을 향해 솟아있다.
제주도가 대양을 향한 선봉장이라면 조도군도의 새떼 같은 섬들은 용맹하기 그지없는 돌격대의 위풍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새섬 3년 살이, 자부심과 자랑거리
조도에서 첫 근무를 시작할 때부터 나의 로망은 조도군도내의 대부분의 섬을 학생들과 함께 직접 답사하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서 태어났지만 오로지 육지와 진도 본 섬 나가는 것에만 열중할 뿐
이웃의 작은 섬들을 거의 가본 적이 없고 관심도 별로인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사실 가고자 해도 선편이 하루 한 차례나 이틀에 한 차례 밖에 없는 형편이라 엄두도 못냈다.
장우춘 면장님과의 만남은 행운이었다. 낙도에 식수를 공급하는 면사무소 급수선을 체험학습에 연결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덕분에 올 해들어 세 차례에 걸쳐 아이들과 십 여 개 이상의 섬들을 답사할 수 있었고 계속해서 설렘으로 다음 행선지를 기다리고 있다.
뭍에서 조도에 들어가려면 팽목항에서 배를 타야한다.
세월호 때문에 너무나 유명해진 항구다. 통곡과 애절함이 너무 진해서 잊혀지는 것 보다 오히려 한반도 통일이 훨씬 빠를 것 같다.
매주 팽목항과 조도 창유항을 드나들며, 낮이건 밤이건 도리산 전망대에 올라 새떼 같은 섬들의 안부를 살폈다.
항상 강인하고 우아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섬 가족들의 모습에 새섬 3년 살이가 자부심과 자랑거리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진도 조도중고 교감 유성종
|
첫댓글 100개이상의 새(鳥)때같이 내려앉은 조도군도안내,소개글 드물게 보는 명문중에 명문으로 느낍니다. 설래임으로 읽습니다, 그곳에 여행하고푼 열망이 솟는군요, 정암선생님께서 젊음을 헌신했던 외병도도 포함되어 더욱 친밀합니다. 유교감선생님 아이들 글짓기 교육해오신 티를 느낍니다. 거듭 명문잘 앍었습니다.
임천이 고3때 국어교과서에 실린 정비석의 금강산 기행문에 버금가는 명문 글인듯느낍니다., 중고 국어교과서에 실렸으면하는 바람입니다.명문에 매료되어 두새번 찬찬히 더 읽어봅니다.~조도군도 풍광은 "아름답다"는 표현으로 부족하다.놀라움과 가슴뭉클함이 다가오기 때문이다.~달빛에 은색 바닷길이 멀리 수평선까지 뻗어있는 날이면 감히 仙界의 경관에도 뒤질것 같지않다. ~100살이 넘는 하조도등대,죽도등대,가사도등대의 힘센불빛들은 파수꾼을 뛰어넘어 환상의 하모니로 고요한 새섬의 밤바다를 도닥여준다.~~~~~~~~~~~
정비석의 금강산 기행문 제목은 산정무한(山情無限)으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위글 제목도 새섬정 무한(鳥島\情無限)으로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