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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사로 보는 세상] 18세기 말 키 2.3미터 거구 시체의 해부
2023.03.14 13:27
● 영국 외과학 발전의 토대를 닦은 존 헌터
의학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고 하기에는 2% 모자라지만 적어도 영국에서는 ‘영국 외과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질 만큼 큰 역할을 한 존 헌터(John Hunter, 1728-1793)는 외과학 발전에 이바지한 것 외에도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1728년 스코틀랜드에서 한 농부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도 못한 채 전원생활을 하며 자연을 관찰하고, 작은 포유류를 해부하는 등 느긋한 생활을 하며 자라났다.
그보다 10살 위의 형 윌리엄 헌터(William Hunter, 1718-1783)는 1743년부터 2회에 걸쳐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의과대학생들이 해부실습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해부지식 습득을 위해 실습을 지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윌리엄 헌터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의학지식을 쌓아갔고, 1750년에 글래스고대에서 의사 면허를 얻었으며, 1756년에는 런던에서도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그는 1768년에 왕립 아카데미가 설립되었을 때 해부학 교수로 임명될 정도로 해부학에 뛰어난 학자였다.
농촌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존 헌터는 20세가 된 1748년에 런던으로 가서 형을 만났다. 윌리엄 헌터는 막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에서 해부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연 상태였다. 이 사교육기관에서 시체 해부를 가르치는 형의 제자이자 조수로 일하면서 의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형제는 12년간 함께 일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새로운 해부학 지식을 쌓아 갔다. 존 헌터는 산모로부터 태아로 태반을 통해 물질이 오가는 과정, 자궁에서 일어나는 고환의 하강과 선천성 탈장의 원인 규명, 림프계의 순환 등 관찰과 실험을 통해 점점 더 의학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해부학 지식이 충만해진 그는 군의관으로 지원하여 사상자를 치료하면서 외과의사로서의 능력을 키워 갔다. 1763년에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치과질환과 성병 등 다양한 의술에 도전하며 의학지식을 익혔다. 또 많은 이들에게 사후 부검을 요청하여 부검을 통한 지식을 쌓아 갔다. 1764년에는 자신의 해부학교를 세웠고, 사람과 동물의 해부학 표본을 많이 만들었다.
존 헌터의 명성이 점점 커지면서 런던에서 가장 능력 있는 외과의사가 되어 갔다. 그는 세인트 조지 병원에서 많은 유명인들을 치료했다. 관찰과 실험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영국 외과학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그는 부검을 통해 질병양상을 확인하고, 수술 후 결과를 계속 비교관찰하면서 어떤 수술법이 더 나은 방법인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관찰과 실험에 기초를 두고 수술법을 개선해 간 학자로 여겨지고 있으며, 과학적인 그의 태도는 영국은 물론 미국의학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 자신의 몸을 실험에 이용하다
존 헌터가 1763년 이후 런던에서 활동하면서 의사로서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자 일반인은 물론 수많은 유명인들까지 그에게 진찰을 받기를 원했다. 런던에서는 성병이 크게 유행하던 시기였으므로 존 헌터도 자연스럽게 성병을 대하게 되었다.
“헬리코박터가 한 세기 늦게 알려진 이유”라는 글에서 페텐코퍼와 마샬이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실험을 한 이야기를 기술한 바 있다. 존 헌터는 이들보다 앞서서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실험을 한 학자이기도 하다.
자신이 마주치는 의학적 문제에 모두 관심을 가지다시피 한 존 헌터는 성병에서도 권위자로 여겨질 정도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오래 전에는 성병이 한 가지만 있는 걸로 생각했지만 18세기 중반이 되자 매독과 임질이 서로 다른 성병이라는 주장이 강해졌다.
성병에 걸린 그의 고객을 자주 만나다 보니 런던에 성병 환자가 크게 유행중임을 알 수 있었다. 18세기만 해도 영국에서 의사와 의학자들이 뭔가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사용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존 헌터가 두 성병이 같은 원인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 믿은 이유는 자신의 몸을 이용한 임질 감염 실험에서 실수로 매독균이 오염된 바늘을 사용하는 바람에 두 성병에 모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이 실험이 그가 직접 수행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최근에 제기되기도 했다. 존 헌터의 영향력이 컸으므로 매독과 임질이 한 가지 병이라는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매독과 임질에 대한 올바른 지식은 1837년에 프랑스의 리코(Philippe Ricord, 1800-1889)가 실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성병에 의해 성기 주위에 발생하는 궤양에 대한 책을 발표한 후에야 알려졌다.
● 헌터 형제에게 경제적, 학문적, 혜택을 준 해부학교에서 시체를 얻은 방법
헌터 형제가 런던에서 해부학교를 운영한 12년 동안 약 2000구의 시체를 해부했다. 사람 시체만 해부한 것이 아니라 동물도 3000마리 이상 해부하여 사람과 척추동물의 표본을 약 1만4000개나 만들었다.
이렇게 많은 실험용 동물을 얻기 위해 이들은 런던 얼스코트(Earl’s Court)에 있는 농장에서 다양한 생물을 키우기도 하고, 연구와 실험을 위한 시설을 갖추기도 했다. 존 헌터는 외과학 발전에 이바지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동물의 비교해부를 통해 지구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고, 동물이 공통조상에서 유래했다는 진화론적 사고를 보여주기도 했다.
헌터 형제는 어떻게 수많은 해부용 시체를 얻을 수 있었을까.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훔쳐 오는 것이었다. 사회적 지위도 있고, 다른 일을 하기에도 바빴으므로 직접 훔쳐온 것이 아니라 시체를 공급해 줄 이들과 계약을 맺고, 공급업자들이 세상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은 빈민의 무덤에서 파낸 시체를 정기적으로 공급하게 했다. 해부학교 초기에는 학생들이 직접 시체를 찾아나서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문적인(?) 시체 공급업자들에게 이 임무를 맡겼고, 존 헌터의 시체수집은 노년이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존 헌터가 활동하던 시기에 런던에 찰스 번(Charles Byrne, 1761-1783)이라는 거인이 살고 있었다. 그의 키는 2.3~2.4미터였고, 오락을 위해 무대에 올라 웃음을 짓고,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하는 것만으로 수입을 올리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의 키가 비정상적으로 큰 이유는 뇌하수체에 양성 종양이 생겨 성장호르몬을 과다하게 분비함으로써 말단비대증과 거인증이 발생한 상태였다.
1783년 6월 찰스 번은 자신이 죽고 나면 해부학자들이 자신의 시신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바다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그 직후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희망과 다르게 그의 시체는 파헤쳐져 존 헌터에게 인도되었다. 헌터는 번의 친구와 유족들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뼈를 간추려 200년 넘도록 그가 유산으로 남겨 놓은 박물관에 전시를 했다.
18세기 말에는 영국에서 시체 해부에 대한 요구가 많았으므로 세상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무연고자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구하는 일이 흔했다. 법으로 이를 금지하기도 했으나 몰래 훔쳐가려는 시도만 증가시켰을 뿐이다.
● 헌터박물관(Hunterian Museum)
1783년에 헌터는 런던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에 큰 집을 구입했다. 이 집에서 500종이 넘는 식물과 약 1만4000개의 동물 표본을 정리했다. 찰스 번의 유골도 이사 직후에 구했다.
무덤에서 훔쳐 온 해부용 시체를 구입할 때는 해부할 때 지식을 쌓기에 용이하도록 사망한지 오래지 않은 것을 구입했으니 찰스 번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시체 공급업자는 그가 죽으면 시체를 훔쳐 올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이 크다. 존 헌터가 찰스 번의 친구에게 미리 시체를 파 달라고 부탁했다는 기록도 있다.
넉넉지 않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해부학교를 운영하면서부터 수입이 많아진 존 헌터는 닥치는 대로 표본을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유전질환을 가진 이들의 시체는 그의 관심 대상이었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더불어 방대한 미술품 전시로 유명한 영국박물관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홀본이다. 여기서 영국박물관과 반대편으로 수백미터 거리에 왕립외과학회(Royal College of Surgeons)에는 존 헌터의 수집품을 모아 놓은 헌터박물관(Hunterian Museum)이 있다.
존 헌터가 세상을 떠나고 6년이 지난 1799년, 영국 정부는 그의 수집품을 구입하여 왕립외과학회에 기증했다. 최초의 박물관은 전시하기에 용이하지 않고, 공간도 부족했으므로 여러 차례에 걸쳐 증축과 개선공사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년에는 폭격에 의해 일부 전시물과 보관물이 파괴되기도 하는 등 여러 차례 부침을 겪어 왔다.
2005년 2월에 왕립외과학회 건물에 문을 연 헌터 박물관은 수시로 기획전을 전시하는 등 아주 인기가 있었다. 필자는 2011년부터 2013년 사이에 여러 번 방문했다. 전시물에 비해 공간이 부족하여 설명이 충분치 않은 점이 부족해 보였지만 전시물의 양은 개인이 수집했다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한 느낌을 받았다.
영국왕립학회 건물의 노후화에 따라 2017년 5월 20일부터 박물관은 재개장 준비에 들어갔다. 존 헌터가 수집한 사람과 동물의 표본 중 약 3분의 1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만 2023년 1월 11일, 헌터 박물관은 찰스 번의 골격을 공식적으로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대신 1789년에 조슈아 레이놀즈가 그린 존 헌터의 유화 초상화를 전시한다고 한다. 이 초상화는 오른쪽 상단 모서리에 찰스 번 발이 그려져 있다.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실험하는 일은 오늘날 연구윤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고, 남의 시체를 파헤쳐 임의로 사용한 후 돈으로 갚는 일도 현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존 헌터가 의학발전에 공헌한 것은 지금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당시의 시대상황이 도움을 준 셈이다.
다른 여러 사람들의 기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존 헌터는 목적지향성이 뚜렷하고, 온화하거나 윤리의식이 있는 좋은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헌터박물관의 찰스 번 유골은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니 전시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하는 의견이나 시위가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찰스 번의 유골을 폐기한다고 하니 방문할 때마다 18세기 말의 영국 의학계를 떠올리게 하던 전시물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 참고문헌
1. Wendy Moore. The Knife Man: Blood, Body Snatching, and the Birth of Modern Surgery. Crown. 2007
2. 헌터박물관 홈페이지 (https://www.rcseng.ac.uk/museums-and-archives/hunterian-museum/)
3. Skeleton of man who dreaded becoming a museum exhibit will finally be removed from display. 2023년 1월 11일 CNN 뉴스. (https://edition.cnn.com/style/amp/museum-skeleton-removed-gbr-scli-intl/index.html)
4. Hunterian Museum defends decision to retain skeleton of ‘Irish giant’ Charles Byrne. Museums Associations 홈페이지. (https://www.museumsassociation.org/museums-journal/news/2023/01/hunterian-museum-defends-decision-to-retain-skeleton-of-irish-giant-charles-byrne/)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교수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존헌터#헌터박물관#영국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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