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35일째; 싸리재~금대봉~비단봉~매봉산~피재~건의령(16.28km)
2010년 4월 30일 금요일, 대체로 맑으나 가끔 세찬 눈보라...
귀빈장 모텔에서, 새벽에 잠에서는 일찍깨었으나 뒤척거리다 일어나보니 7시반..., 6시에 시계 알람을 맞추어 두었는데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자고 말았다. 방안을 깜깜하게 해둔 탓도 있지만 어제 눈길을 헤치고 오느라 피곤했던 탓인듯...
그나 저나 산행을 계속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데..., 대원隊員의 의견을 물어 봤더니 대장隊長하자는 대로 하겠단다. 하루만에 눈이 그리 녹았을 것 같지도 않고..., 오늘 또 눈을 헤처 나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기왕 집을 나서서 여기까지 왔는데 하루정도 더 가보기로 한다. 어제 저녁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늘은 날씨도 맑고 어제보다 기온이 2~3도 더 오를 거라고 했다.
어제 저녁에 신발을 방에 들여 놓고 깔창을 빼 두었는데 깔창은 말랐으나 신발 속은 아직도 축축하다. 배낭을 꾸린다음, 물을 2병씩 챙기고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모텔을 나서는데..., 갈아 신은 양말이 금새 젖어 온다. 어제 저녁을 먹은 태백역 앞에 있는 기사식당에 들어간다.
메뉴에 해장국, 육개장, 우거지국이 있기에 나는 육개장, 대원은 우거지국을 시켰더니 아주머니가 "그거 다같은 국물에 다가 선지국에는 선지를 넣고, 육개장에는 고기를 조금 넣고, 우거지국에는 우거지를 조금씩 더넣어 드리는 거시래요"하고 웃으며 이곳 억양으로 대답 한다. 아침 식사하면서 점심도시락도 싸두고 커피를 마시며 어제 타고 왔던 택시를 불렀다.
두문동재를 오르며 기사에게 오늘 우리가 건의령까지 가서 상사미 마을로 내리려 하는데 그곳에 민박집이 없으면 다시 태백으로 와야 하니 어쩌면 저녁에 또 전화할 수도 있다. 상사미에서 태백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되냐고 했더니 기사는 두문동재까지나 비슷하단다. 그러더니 운전 중에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상사미 마을에 민박집이 있어? 응 있다고...,"하며 전화를 끊고 "상사미 마을에 민박집이 있다네요"하고 알려 준다. 별로 생색을 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자기 고장을 찾아온 나그네에게 친절을 보여주는 기사에게 사람의 향기가 난다. 나는 순례 길에 이런 사람을 한 사람만이라도 만나면 발 걸음은 가벼워지고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차는 두문동터널을 통과하여 영월쪽으로 넘어 가더니 다시 U-턴을 하여 꼬불 꼬불 재를 올라간다. 기사가 터널 위에 있는 옛길을 지날 때는 영월쪽에서 태백으로 일방 통행이라고 알려 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 두문동재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태백쪽으로만 보고있는데 갑자기 차가 영월쪽에서 불을 켜고 올라와서 의아 했는데...,그런 이유가 있었다.
두문동터널 옆으로는 일반철도인 태백선太白線, 정암터널이 통과하고 있다. 태백선은 정암터널을 지나 추전
역을 거처 태백역에 이르는데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으로 알려져 있다. 정암
터널을 백과사전을 찾아보았다.
'정암터널은 중앙선과 태백선이 갈라지는 제천역으로부터 83km 지점인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의 고한역과
태백시의 추전역 사이에 뚫려 있다. 터널의 길이는 '4,505m로 한국에서 가장 긴 철도 터널'이다. 태백선은
강원도 태백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시멘트·광석 등의 자원을 수송하기 위해 건설된 산업철도로, 1956
년 제천-영월 간의 개통을 시작으로 1966년 영월-고한까지 연장되고, 1973년 정암 터널을 개통한 후 1975
년 백산까지의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이 철도는 강원도의 험준한 산맥을 뚫어야 하는 터널 공사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이 함백산을 뚫는 정암터널 공사였으나, 한국 기술진으로 완공했다.'
택시가 고개 만디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앞에 섰을 때 미터요금이 18,200원 나왔다. 어제 태백으로 갈때보다
터널을 통과하여 오느라 1,000원정도 더 나왔다. 어제는 17,000원을 주었지만, 오늘은 친절비를 감안해서 2
만원을 주면서 어제 오늘 고마웠다고 했더니, 기사는 "조심해서 다녀 가시래요"하는 인사를 남기고 재를 내
려간다.
[금대봉 들머리]
두문동재 만디에 있는 산불감시 초소에 오늘은 근무자가 있다. 근무자의 요청으로 입산자 명부에 신상을 기록하는데, 최근에 지나간 사람은 4일 전인 지난 26일로 기록되어 있다. 근무자는 금대봉에서 백두대간 마루금인 매봉산 방향은 등산이 가능하지만 대덕산 방향으로는 야생화 보호로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9시, 맑은 날씨에 바람은 제법 세지만 그리 춥지는 않다. 간단하게 산행채비를 하고 임도를 따라 금대봉으로 향하는데 다행히 선행자의 발자국도 남아 있고 눈이 어제보다는 좀 얇아진 듯하다. 10여분 후에 임도를 떠나 등산로登山路로 접어든다. 느닷없이 '눈길에는 발자국을 어지럽게 남기지 마라. 뒤따르는 사람이 헷갈린다'는 백범白凡 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
[금대봉, 1,418m]
금대봉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눈이 많았으나 선행자들의 발자국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다. 두문동재를 떠난지 30분만에 금대봉에 올랐다. 금대봉 정상에도 산불감시 초소가 있고, 또 '양강 발원봉'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표지목에는 '이 봉峯을 양강兩江 발원봉發原峯이라함은 북쪽으로는 한강이 남동으로는 낙동강이 비롯하여 흐름이라' 라고 써져 있다.
한강 발원지로 알려진 검룡소와 관련하여 자료를 찾아 보았다.
'금대봉(1,418m) 북쪽 계곡의 '검룡소'(儉龍沼)는 "한강(漢江) 발원지"로 알려진 곳이며 실제 금대봉의 대간 능선에서 한시간 안팎의 가까운 거리에 있으나, 겨울철 내내 사람의 통행이 전혀 없고 워낙 눈이 많이 쌓여있어 접근이 어렵다. 늘 푸른 이끼가 자라고 구불구불하게 골이 패인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는 검룡소는, 옛날 서해 바다에 살던 이무기가 한강의 가장 먼 상류인 이곳까지 거슬러 올라와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기 위해 몸부림 친 곳이라는 신비스러운 전설을 품고 있다. 원시림이 잘 보존된 이곳에는 고목나무샘, 제당굼샘, 예터굼샘 등지의 물길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다시 검룡소에서 솟아나 520여km에 이르는 남한강의 발원을 이룬다고 한다. 이어 물줄기는 정선을 거쳐 영월까지 아름다운 '동강'으로 굽이치며 흐르고 흘러 단양과 충주, 여주, 양평으로 그 흐름을 계속하면서, 이 땅에서 태어나 쌀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베푸는 천혜의 젖줄인 것이다."'
금대봉 정상에 잠시 머물며, 강원 스키장, 대덕산 방향과 지나온 함백산, 태백산을 감상하고 금대봉을 내려간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 눈이 신발에 들어오지 않도록 선행자의 발자국을 조심해서 따라 간다. 화방재에서 부터 大幹 마루금은 좌측의 정선군과 우측에 태백시의 경계를 이루어 오다가 금대봉에서부터는 태백시로 들어가서 오늘의 종착지 건의령巾衣嶺까지 가게 되고 건의령에서 부터는 다시 좌측에 태백시 우측은 삼척시의 경계를 이루고 달려간다.
[금대봉 하산 길]
[선행자 발자국을 따라가는 隊長...]
[용연동굴 갈림길]
[괭이눈]
[눈속에 피어나는 얼레지]
용연동굴 갈림길을 지나자 눈은 현저히 줄어 들고 비로소 대간 마루금이 모습을 드러낸다. '괭이눈','얼래지'등의 야생화도 눈에 뜨인다.
[쉼터]
[쑤아발령]
금대봉에서 1시간 반만에 고목나무가 있는 쑤아발령에..., 이곳을 지나자 야생화는 더욱 많이 보이는데 특히 대간 길 옆에는 얼레지가 눈속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어느새 앞에는 비단봉이 우뚝 서서 다가 온다.
[눈이 거이 사라진 대간 마루...]
편안한 마루금이 끝나고 비단봉 된비알을 오르다 내려오는 산꾼 둘을 만났다. 어제 오늘 산행 중에 처음 만나는 산객이라 서로가 반가워 선 채로 한참이나 얘기를 나눈다. 이들은 천안에서 왔고 오늘 피재를 출발해서 화방재까지 갈 예정 이란다. 나는 이들에게 은대봉 주위에 눈이 많아 힘들거라는 얘기와 허지만 우리 두사람의 발자국이라도 있으니 조금은 도움이 될거라고 알려 주었다. 이들은 매봉산 주위에 길이 어지럽게 나 있어 자기들은 농로를 따라 가는 바람에 우회하면서 제법 헤맸는데 그러지 말고 밭을 가로 질러 풍력 발전기 있는 쪽으로 똑바로 진행하라고 일러준다.
이들은 천안에서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들 4명이 차를 가지고 와서 한 구간씩 2명은 북진, 2명은 남진을
하며 도중에 서로 교차하면서 만나 정보도 나누고, 또 차 있는 곳으로 내려오는 팀이 다른 팀을 차로 픽엎해
서 다음 구간으로 이동하고..., 이런 방법으로 대간 종주를 하고 있으며 재 작년에 지리산을 출발해서 여기까
지 왔다고 한다. 통상 한번 나오면 1박2일씩 산행 하는데 이번에는 댓재까지 갈 예정 이란다. 나는 이들처럼 대간종주를 하면, 대간 마루금을 올라가기도 하고, 또 내려오기도 하게 되어 약간 어지럽기는 하나, 대간마루금을 밟아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도 이번에 댓재까지 가니까 어쩌면 또 만나겠다 안산 즐산하라고 하고 이들과 헤어져 비단봉을 오른다.
[얼레지 군락]
[천안 산꾼]
[비단봉, 1,281m]
비단봉은 산 이름과는 달리 오름 길이 까칠한 암릉에다 된비알이 이어진다. 그러나 땀흘려 오른 정상 10여미터 전前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함백산 방향의 풍광만큼은 한마디로 끝내준다. 그런데 정상석이 왠 일인지 이 곳에 세워져 있다.
[함백산 방향]
[다가오는 1,247봉...]
비단봉을 내려서자 1,247봉이 꿈틀대며 다가온다. 10여분만에 헬기장과 1,247봉을 지나 태백산에서 부터 보이기 시작 하던 풍력 발전기가 있는 매봉산 고랭지 채소밭으로 내려간다.
[매봉산 풍력단지가 시작되고...]
채소밭 가운데에 외따로 서 있는 풍력 발전기..., 밭에는 벌써 아낙들이 일을 하고있다. 밭에 희미하게 나 있는 길을 따라 첫 번째 발전기 쪽으로 똑바로 나아 간다. 나는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발전기 사양이 어떤지 알아보려고 발전기 아래까지 왔지만 아무 설명이 없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엄청 거대한 몸집이다.
[매봉산 오름 길...]
내가 임의로 부여한 1호기號機를 지나 여러 기機의 풍력발전기가 있는 매봉산 봉우리로 밭을 가로질러 가파르게 오른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변덕을 부려 주위가 뿌여지더니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하고 지나온 산마루들이 순식간에 눈보라 속에 파묻힌다.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처 방한모를 뒤집어 쓰고 힘겹게 오르는데..., 대원隊員은 그래도 비오는 것보다는 눈오는게 낫다고 여유를 부린다.
매봉산 마루금에 올랐을 때는 눈은 그첬으나 바람이 더욱 세차 몸이 비틀거릴 정도다. 마루에는 백두대간 빗돌과 풍력발전기가 대간 마루 양쪽에 마주 보고 서 있다. 마침 발전기사양이 있어 아래에 소개한다. 그런데 설명은 거창한데 이상하게도 가동중인 것은 1대밖에 없고 7대가 정지해 있다. 이정도 바람이면 20m/s는 족히 되어 발전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인데....
[풍력 발전기 제원]
[풍차]
풍차를 지나 풍력발전기 단지를 완전히 벗어나자 매봉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나타 났다. 12시가 넘어 매봉산 정상에 오르기전에 바람이 적은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매봉산 정상 아래 갈림길]
매봉산 정상 아래에 왔다. 정상에 갔다가 다시 여기로 와서 삼수령으로 가야한다. 이정표에는 정상까지 50m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20m정도에 불과한 정상에 올랐다. 매봉산( 1,303m) 정상석 뒷면에는 천의봉이라고 되어 있다. 매봉산을 떠나 삼수령으로 가는데 또다시 채소밭이 나타나고 농부들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채소밭이 대간마루를 점령하였지만 길은 내어주고 있다.
[함백산]
[채소밭]
채소밭을 지나면서 부터 나는 무엇인가 열심히 찾으면서 내리막 길을 간다. 자료에 의하면 전신주 NO.224 직전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전신주에 붙어있는 번호를 살피며 가고 있는데...,
[낙동정맥 분기점]
[낙동정맥 분기점]
[낙동정맥 분기점]
두리번 거리며 가던 내 눈앞에 커다란 빗돌이 나타났다. 여기가 바로 내가 찾고 있던 낙동정맥 분기점이다. 낙동정맥이 백두대간에서 분기되는 지점이다. 여기서 보니 낙동정맥 마루금쪽으로도 백두대간 못지 않게 산꾼들의 발자취가 뚜렷하게 나 있다. 빗돌은 2007년에 태백시 산꾼들이 만들었는데 워낙 크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대간꾼들이 모르고 지나칠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
낙동정맥은 낙동강의 동쪽을 따르는 산줄기로 '동해안 지방의 담장'이다. 낙동정맥은 이곳에서 백두대간을 떠나 울진 백병산(1,259m) 통고산(1,067m), 백암산(1,004m), 청송 주왕산(720m), 경주 단석산(829m), 울산 가지산(1,240m) 신불산(1,209m), 부산 금정산(802m)을 지나 백양산(642m)을 넘어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끝난다.
낙동정맥은 바로 내 고장을 지난다. 내 고향 가까이로는 '안강'과 '고경'사이에 있는 시티(재)를 지나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로 간다. 나는 김해에 있을 때 낙동정맥 끝자락인 금정산, 백양산은 물론 몰운대를 여러번 간적이 있는데 그 때까지 나는 대간大幹이나 정맥正脈에 대해 아는게 없었다.
몰운대 가까이에 있는 부산 다대포 해변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달집 태우기 행사를 한다. 몰운대에는
'몰운대沒雲臺'라는 이름을 최치원 지었다는 안내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기점을 떠나 삼수령으로 내려가며 목장넘어로 뻗어가는 낙동정맥을 일별一瞥하고 이별을 고告한다. 언제 한번쯤 가보고 싶은 마루금이다.
[삼수령으로...]
이어서 삼수령으로 완만하게 내려 가는 포장도로가 나타났는데..., 갑자기 왼쪽 발목이 아프기 시작한다. 왼쪽 발목 바깥쪽 복숭아뼈 위쪽에 약간씩 통증이 있다. 이번에 올 때 그 동안 몇번 신고 아껴 두었던 새 신발을 신고 왔다. 지금까지 신던 것과 달리 목이 조금 올라온 것인데 이 것이 발목에 자극을 주는 것 같다. 신발끈 위쪽 한칸을 풀고 느슨하게 하였더니 조금은 나은 것 같다. 어제는 괜찮았는데 왠 까닦 일까? 갈 길은 아직도 먼데...,
곧 이어서 35번 도로가 보이더니 '三水嶺'이라는 큰 빗돌과 함께 삼수령이 나타났다. 삼수령 빗돌에는 태백시장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 놓았다.
이 고개의 이름은 큰 피재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길은 태백시로 들어가는 관문關門이며 낙동강洛東江 한강漢江 오십천五十川의 삼대강三大江이 발원發原하고 민족民族의 시원始源인 태백산太白山을 상징하는 삼수령三水嶺이기도 하다. 태백산太白山에서 분출되는 낙동강洛東江은 남南으로 흘러 영남嶺南 곡창의 질펀한 풍요를 점거하고 공업입국工業立國의 공도工都들을 자리잡게 했다.
한강漢江 역시 동북서東北西로 물길을 만들면서 한민족韓民族의 수부首府를 일깨우고 부국富國의 기틀인 경인지역京仁地域을 일으켜 세웠다. 오십천五十川도 동東으로 흘러 해안시대海岸時代를 창출하는데 크게 기여 할 것이다.
이 의미를 기리고 삼강三江의 발원發原인 태백太白을 찾는 이에게 삼수령三水嶺의 상쾌한 휴식休息을 권하며 이 비碑를 세운다. - 1992년(임인년壬仁年) 9월 5일 태백시장太白市長 -
[삼수령三水嶺을 떠나...]
삼수령은 백두대간의 2/3지점, 즉 지리산 천왕봉에서 500km 되는 지점으로도 알려져 있다. 삼수령에 있는 빗물의 운명(Destiny of the Rainwater)이라는 글을 읽어 보고 가까이 있는 8각정에 올라 주위를 조망한다.
피재를 떠나 오늘의 목적지 건의령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며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한다. 주차장에 있던 산불 감시요원이 어디까지 가느냐기에 건의령까지 간다니까 비오는데 어떻게 가느냐고 한다. 내가 일기예보에 비 온다는 예기가 없었다고 했더니 이분 대답이 걸작이다. "이곳은 일기예보가 안맞아요" 한다.
나는 비가 좀 뿌리다 말겠지하며 삼수령을 떠나는데 등 뒤에서는 매봉산이 바람개비를 흔들며 작별을 고告
하고 있다. 잠시 포장도로를 따라 가다가 노루메기에서 왼쪽으로 다시 등산로에 접어든다.
[노루메기]
[처음만나는 진달래...]
이제 눈은 완전히 사라지고 장중하게 뻗어 있는 대간 길 위로 언제 비를 뿌렸냐는 듯이 따스한 햇살이 비친다. 때마침 머리위에 진달래가 피어 있다. 어제가 겨울 산행 이라면 오늘은 초봄 풍광을 보여준다. 여전히 나뭇가지는 잎을 피울 기미가 없이 겨울잠에 빠져 있고 양지 바른 곳에 새싹들만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에는 어쩔 수없이 가끔 보이는 가냘픈 야생화 위에 벌이 노니는 모습이 눈에 뜨이곤 한다.
[노루귀]
어쨌던 오늘 산행을 계속 하길 잘 했다. 눈이 많을 거라 지래 짐작으로 돌아 갔다면 얼마나 억울 했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순토 시계 밧데리가 떨어져 알 수는 없으나 온도는 15도 내외로 예상된다. 잎은 없고 꽃대만 올라와 앙증스럽게 피어 있는 야생화가 나타났는데 대원隊員이 '노루귀'라고 알려준다. 그나저나 시계의 밧데리 수명이 1년도 안가는 것 같다.
삼수령을 떠난지 1시간 20분, 2.8km를 지나왔고 이제 건의령까지는 3.7km..., 오랫만에 잔설이 남아있는 길을 지나고 이어서 960.2봉을 지나 지도에도 표기되어 있는 TV 안테나 봉우리에 올랐다. 여기서 내려가면 건의령이다. 내려가는 마루금 왼쪽으로 경작지와 마을이 보이는데..., 바로 상사미 마을이다. 오늘 건의령까지 가서 저 마을로 내려간다.
[안테나 봉우리]
[상사미마을]
[건의령巾衣嶺]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 건의령에 도착했는데 무슨 공사를 하느라 파헤쳐 놓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대간 마루금의 중요한 지점인 만큼 무슨 기념비를 세우려나 보다. 이 고갯마루 아래로는 건의령터널이 뚫혀 있다. 또, 좌측에 자리한 태백시 상사미마을 앞으로는 동강의 상류인 골지천이 흐르고 대간마루 우측에는 삼척시 도계읍 옆으로 오십천이 한동안 대간大幹마루와 나란히 달려 가고 있다.
건의령巾衣嶺이라는 이름은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이성계에게 충성을 거부한 고려의 유신들이 벼슬을 버리고 이 재를 넘어 태백으로 올 때 이 재 만디에서 망건과 옷을 다 벗어 던지고 갔다는 데서 유래하여 건의령[巾衣嶺]이 되었다고 한다.
또, 건의령은 한의령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 유래는 옛날에 삼척에서 태백을 갈 때는 이 재를 넘어다녀야 했는데 겨울에는 눈도 엄청나게 오고 '바람불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살을 에는 찬바람이 사정없이 불어대는 곳이어서 고개를 넘다가 얼어죽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아무리 옷을 두껍게 입어도 추워서 얼어죽는다고 하여 찰 한[寒],옷 의[衣] 그래서 한의령寒衣嶺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공사중에 있는 고갯 길을 따라 상사미 마을로 내려가다가 다시 건의령터널을 지나는 새로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지도를 보니 이 도로는 건의령터널을 지나 삼척시 도계읍으로 가는 도로로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다.
[수석식당]
1km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로 내려가며 저렇게 드문드문 있는 집중에 어느 집이 민박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우선 처음 만나는 집에 물어 보기로 한다.
그런데, 왼쪽 발목이 점점 더 아파온다. 특히 내리막을 갈때가 아픈데 아마 등산화 목이 내 발목을 자극하기 때문인 듯..., 등산화가 잘 못 만들어 졌는지 나의 발목이 잘 못 되었는지?? 하여튼 오늘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야 할텐 데..., 그런데 바람을 받으며 35번 도로 교차점에 오자 아까부터 보이던 집이 수석식당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곰취가 그득한 저녁식사]
상사미 마을에 수석식당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만나다니...! 마당에 들어서니 식당은 분명하나 어디에도 민박기미가 없다. 집안에 대고 물음을 청해 볼까 하는데 마침 한쪽 다리가 불편하여 목木다리를 짚은 사람이 방에서 나온다. 혹시 이 마을에 민박하는 집이 있는지 물어 보았더니...,
- 글쌔요 잘 모르겠는데요 민박하는 집 있다는 말 못 들었는데요.
- 내려 오면서 보니 저 안쪽에 제법 큰 2층집이 있던데 그 집에 혹시...?
- 그 집은 일반 가정집이예요. 몇 명이지요? 우리집이 빈 방이 하나 있기는 한데...
나는 이 사람이 민박 손님 받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는 것 같아 다시 물어 본다.
- 태백에서 알아보니 상사미 마을에 민박집 있다고 했는데...
- 여기서 민박집을 가려면 한 30분은 더 가야 합니다. 아마 태백에서 상사미 마을에 민박집이 있다고 했다면
우리 집을 말하는 기야요.
나는 30분이라는 말에 아이쿠 싶어 오늘 하루 묵어 갑시다 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늘 총 산행시간 ; 8시간 25분, 산행 거리 ; 17.3km(백두대간; 16.28km)
우선 식사를 하기로 하고 삼겹살과 순두부를 시켜놓고 맥주로 목을 축이며 내일 산행 계획을 살펴본다. 금번 순례의 최종 목적지 댓재까지는 19km 정도 남았다. 어제 오늘 양일간 예상하지 못한 때늦은 폭설 속에도 계 획대로 순례를 잘 했다. 특히 함백산 주위와 매봉산 주위는 길이 복잡하여 대부분의 대간 주자들이 길을 잃고 헤매기 일 수인데 우리는 알바 한번 하지 않고 잘 지나왔다. 그리고 남은 구간 댓재까지는 무난한 구간이다. 집 떠날 때 계획은 나머지 구간을 자암재에서 대이리로 내려가서 굴피집에서 1박하고 가는 것으로 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좀 일찍 출발하면 댓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자암재에서 굴피집까지는 상당히 급경사라 내려 갔다 다시 올라 오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또 내일 저녁 댓재에 늦게 내리더라 도 댓재 휴게소에는 민박이 가능하니까 거기서 자고 다음날 집으로 가면 된다.
수석식당 아주머니가 잠시 후에 상을 차려주는데 난생 처음 보는 상차림이다. 특색은 곰취 한 소쿠리와 달래..., 곰취에 달래를 깔고 삼겹살을 싸서 맥주를 겯들여 먹으니 맛이 기가 막힌다. 그외 곰취 삭힌 것 한 접시, 고들빼기 김치등 산골 냄새가 물씬난다. 곰취 쌈을 이렇게 많이 먹어 보기는 처음이다. 특히 곰취 짱아지는 그 향과 맛이 일품이었다. 소주 생각도 났지만 내일을 위해 참고 내일 일찍 출발할 것에 대비해서 도시락을 쌌다. 아침은 그동안 비상식량으로 아껴 두었던 소보래 빵을 하나씩 먹기로 한다.
이곳 상사미 마을은 40호 정도된다고 한다. 무뚝뚝한 아주머니가 안내해 주는 방에 들어 민박료, 식대 모두 해서 6만원을 지불하고 방을 둘러 본다. 방은 제법 큼직한데 방 가운데 큼지막한 기둥이 있는 것 하며 구조로 보아 창고를 방으로 개조한 것 같다. 어쨋던 방도 깨끗하고 그 동안 불을 넣었는지 따듯한 데다 씻기도 편하게 되어 있다. TV, 냉장고도 갖춰져 있다. 그밖에 빨래 걸이하며 민박용으로 방을 만들어 많이 사용한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왜 주인 남자는 그렇게 복잡하게 예기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집에 민박합니다.'고 했으면간단했을 것을..., 알송달송하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하고 나니 기분이 상쾌해 진다. 왼쪽 발을 보았더니 아픈 부위가 약간 부어 있다. 비상약품으로 갖고 다니는 맨소래담을 발라 마사지를 해둔다. 내일 더 나빠지지 말아야 할텐데..., 9시뉴스를 듣다가 휴대폰으로 5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잠을 청한다.
|
첫댓글 엄청난 일을 치룬 후의 성취감은 겪는 자만의 소유가 되고, 내공이 쌓일대로 쌓인 대간꾼의 발걸음이 내일은 분명 가벼워지리라... 비상 통증완화제로는 맨소래담-로오숀 또는 안티프라민-연고가 제격이라.. 댓재에서 두타산 오르기는 이제까지보다는 수월할 것 같네...